우리 옆집엔 고딩이 (홀로) 산다 01
w. 애기무댱
1.
남자친구랑 헤어졌다. 이유는 꽤나 간단했다. 잠자리를 하지 않아서. 내 생활 신조였다. 결혼 전까진 몸을 주지 않을 것. 절대로. 친구들한테 너가 무슨 조선시대의 절개를 지키는 여인이냐고, 도 닦으려고 사귀느냐며 욕을 많이 먹긴 했었다. 그러나 워낙에 보수적인 가정 교육 탓인지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 혼전 관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숱한 이별의 주 원인이었지만 나름 내 입장에서는 사람을 가릴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피 끓는 청춘이래도 내 철칙을 이해해 줄 줄 알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사랑한다면. 근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 이유 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벌써 3번째다. 3년을 잠자리 하나에 날려 버리고 만 지금,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은 정말로 엿 먹는 기분이다.
"넌 남자를 몰라도 너무 몰라."
"...너가 발정 난 새끼인 건 아니고?"
"너가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남자 하나 만날 수 있을 것 같냐? 어차피 못 만나. 다 똑같거든. 그리고 그건 그렇다 쳐. 별 볼일도 없는 년이 몸까지 안 주면? 짜증나지."
"....뭐?"
"너는 그냥 여자가 별로야. 매력이 없어. 너 같은 애는."
3년이나 만났던 남자친구 입에서 나오는 말은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별 볼 일이 없어? 예전엔 사탕 발린 말들만 늘어놨었던 그의 입술에서 저런 저급한 단어들이 줄줄이 나오는 걸 보니 머리를 한 대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새 여자친구 생겼다는 말도 끝에 덧붙이면서 나한테 그런 말을 내뱉다니. 3년 동안 그를 배려한답시고 매일 갔었던 지긋지긋한 카페 흡연실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그가 피는 담배 연기를 받아내며 그런 얘기까지 들으려니 치가 다 떨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놈한테 차여? 내가?
"......그럼 나 왜 만났는데?"
"잘 수 있을 줄 알고. 그리고 1년 전부터 만나던 여자 있어."
"뭐?"
"너같은 애. 누가 좋아하냐. 몸이라도 같이 굴려주면 몰라. 예뻐할래야 예뻐할 수가 없어."
"너 진짜 저질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에 마시던 커피를 들이부었다. 커피로 뒤덮힌 그 잘난 상판때기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 놓여 있던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갈 채비를 했다. 회피라면 회피였다. 너가 한 말이 사실이래도 믿기 싫었다. 무엇보다 저런 애랑 오래 사귀었다는 내가 너무나도 싫었으니까.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려니까 그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곤 그가 화가 치밀었을 때마다 나오는 짓을 나한테 시전했다. 그의 손이 내 뺨을 향하려고 했다. 그냥 때려라, 때려. 맞고 떨어지게. 분명히 얼얼해지고도 남았을 텐데, 찰싹하는 소리가 났지만 내 뺨에서는 아니었다.
"아, 씨발. 넌 또 뭐야?"
"미친놈. 여자를 때리냐?"
"너 고삐리지? 알바 주제에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
"너 같은 게 남자인 게 수치스럽다."
딱 봐도 나 알바에요, 라고 쓰여져 있는 것 같은 남자가 그의 손목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한 대 친건지 입술 주변이 보기 좋게 터져 있었다. 꼴 좋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친 알바생을 슬쩍 올려다 보니, 누가 봐도 고등학생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본인은 손찌검 하나 못 하면서 온갖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들을 늘어놓는 저 미친놈을 더 보다가는 사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거기에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이 곳으로 쏠리자 부끄러워서 죽고 싶었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흡연실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한 걸 보니 정말 보통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늘 조용히 살던 나에게 이런 식의 관심이 쏟아지는 건 부끄러움을 넘어서 수치심을 주는 것과도 같았다. 조만간 얼굴책에서 내 동영상이 돌아다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고딩한테 꽤나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 남자가 여자 분 때리려고 하시길래. 말린 게 답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영업 방해죄로 고소....."
사장이 내 구. 남자친구를 붙들더니 뭐라뭐라 훈계 아닌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영업 방해죄로 고소할 겁니다. 그리고 이거 폭행 미수에요.... 등등등.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지라 충격먹을 틈도 없었는데, 카페 밖을 나오자마자 갑자기 그가 나에게 쏟아부었던 모든 말들이 고장난 카세트테이프마냥 느리게 반복되는 것 같았다. 넌 별로야. 왜냐면 넌 나랑 안 자 줬으니까. 그게 뭐 대수야? 내가 뭐 어때서? 연애라는 게 결국엔 이런 거야? 결론은 잠자리? 갑자기 몰아치는 서러움에 지나가는 사람들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길바닥이 뿌옇게 보였지만 애써 눈에 힘을 꽉 주어봤지만 두 볼에 흐르는 액체를 보니 난 울고 말았다.
"괜찮아요?"
"...네?"
"그냥. 울지...마세요. 울고 그래요. 저런 사람이랑 뭐하러 만나. 시간 낭비 하는 게 취미에요?"
목소리가 아까 그 알바다. 살짝 사투리가 섞인 억양이 담긴 어설픈 말투에는 이 사람이 고등학생이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더 확신을 얹어 주었다. 그러게. 난 왜 시간 낭비를 했을까. 그것도 3년을. 군대도 기다려 주고.... 내가 미쳤지. 나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눈이 없나? 그가 건내준 휴지를 그냥 손에 쥐고서 온갖 자책들을 하고 있으니 걔가 미쳤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남자 보는 눈이 더럽게 없구나, 하는 결론만이 나올 뿐이었다.
"설마 지금 본인 탓 하는 건 아니죠."
"......."
"그럼 진짜 제대로 바보 인증 하는건데."
2.
내 옆집엔 원래 신혼부부가 살았었다. 신혼부부인데 주말부부란다. 여자가 돈 버는 집이라고 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뭔가 육감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걸 느꼈다. 여자가 매일같이 내연남인지 뭐인지 모를 남자를 불러서 은밀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보니까 결혼하기 전부터 사귀었던 남자였던 것 같았다. 거기에다 남자는 여자보다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내 또래 애였다.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지 윗집, 아랫집도 아닌 옆집인 나한테 사랑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릴 정도였다. 결국은 남편에게 들키고 말아서 이혼했다. 더 화가 나는 건 여자가 돈이 많은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 윗집으로 그 남자랑 이사를 왔다는 거다. 덕에 난 죽을 맛이었다. 그냥 그거 하려고 만나는 사이에요? 정말 기승전섹스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였다. 이게 불과 2주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집에 어떤 사람이 이사 온단다. 오늘.
헤어짐의 충격과 나에 대한 회의감, 그 미친놈에 대한 끓어오르는 복수심 때문에 토요일까지 하루종일 자려고 했더니만 수리하느니 이삿짐을 옮기느니 뭐니 옆집에서 난리 부르스를 추는 바람에 한 숨도 못 잤다. 누가 이사왔는지는 모르지만 라면 사러 갔다왔을 때 마주쳤을지도 모르겠어. 거기 누가 서성이고 있기는 했으니까. 근데 나는 전혀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떡 받고 나서 인사해야겠단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엔 잠이 다 깼다. 내가 그냥 이런 인생이란 말이지. 뭐 되는 일이 없어, 되는 일이!이사가 끝났는지 그나마 좀 조용해졌을 땐 잠이 하나도 안 왔다. 불타는 금요일을 망친 옆집 분은 반성해 주세요. 짜증나니까.
라면 물을 담아 놓고 가스 불을 켰다. 오늘따라 점화가 잘 안 되네. 짜증나게. 그러다 요란하게 옆집이에요, 하며 초인종을 누르는 그 소리 때문에 완전히 폭팔해 버렸다. 아, 진짜. 콱 죽여버려?
"저 옆집...."
"......어?"
당신 그 때 그 알바잖아요. 고딩.
"구면이네요."
"......."
"뭔지는 아실 것 같고...."
"요새 고등학생은 엄마 심부름도 잘 하나봐요. 떡 돌리라면 돌리고."
"자 자취하는데요."
"요새 고등학생은 자취도 해요?"
"올해 수능 끝나서 대학 주변으로 방 구한 건데..."
내가 무슨 정신머리로 얘한테 이것저것 묻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 고딩이 재수 없어서일 것이다. 내 금요일을 완전히 망쳐버리신 분 아니에요? 아직도 교복을 안 갈아 입은 건지 교복 위에 검은색 후드집업을 걸친 자태가 꽤나 껄렁해 보였다. 우리 오빠는 선도부여서 고등학교 때 바지 통 하나도 안 줄이고 다녔었는데(물론 오빠는 대학에 가서 옷에 눈을 뜬 케이스지만), 얘는 꽤나 껌 좀 씹었을 것 같이 생긴 것 같았다. 근데 대학 주변에 집을 구한 거라고 한 걸 보니까 우리 집 주변 대학이라면 최상위권이라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아, 그리고."
"........"
"저 그때 알바 잘려서요."
"......."
"댁 돕다가요."
"........"
"그날 처음 나온 건데.... 바로 잘려서."
"........"
"저한테 빚진 거. 알고 계세요."
3.
요즘 고등학생들은 다 저렇게 재수없나 싶었다. 고3이면.... 내가 몇 살이더라. 어제 그 남자애가 던지듯 나한테 내밀었던 비닐봉투 안에는 무슨 강박증 걸린 사람이 싼 것 같이 엄청 깔끔하게 랩으로 싸여 있는 시루떡과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내가 라면 사러 갔을 때 걔가 날 알아봤었는지 미리 쓴 것 같았다. 카페 시급이 뭐 그렇데 비싸대? 그 포스트잇에는 꾹꾹 눌러쓴 글씨로 7700×7이라는 누가봐도 알바비 적어놓은 듯한 식과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은 왜 적었대? 전정국?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왔다갔다거릴 때마다 그게 뭐냐고 물었지만 그냥 갚아야 하는 돈이라고 어물쩡 넘어갔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계산 관념도 철저하고 남 돕는 의식도 꽤나 철저한건가? 착한 것 같긴 한데... 그 고딩이 워낙에 재수 없어야지. 내가 초임이고 중학생 담임이라 고등학생 대하는 게 어려웠다. 더군다나 이렇게 무대뽀로 나오면 더더욱.
전정국인지 정전국인지 모르겠는 고딩은 춥지도 않은건지 마이 위에 후드집업과 목도리를 걸친 채로 팔짱을 끼더니 막 퇴근한 나를 째려봤다. 너가 어떻게 서울권 대학에 다 왔냐. 나 고3때 수능 끝나고는 아무 옷이나 입고 학교 다녔는데 얘는 그래도 교복을 잘 챙겨 입네. 근데 얘라면 뭔가 귀찮아서 교복을 입을 것 같았다. 정신없이 풀어헤쳐진 넥타이와 꽤 줄여져 있는 교복바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학벌주의 선생님식의 발상을 하게 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나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본 고딩은 후-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뭐야. 무섭다.
"그냥 넘어가기로 한 건가봐요. 53900원은."
"...."
"자취생한테 그거 되게 큰 돈입니다. 라면 53그릇 정도 사먹을 수 있고 김밥천국 10번은 더 갈 수 있어요."
"......"
"그 돈으로 여러 생명 살릴 수도 있구요."
"......"
"내가 알바 다시 못 구하면 책임져야 돼요."
누가 나 도와 달래? 뻔뻔하게 돈을 달라고 말하는 전정국에 기가 다 차서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싫다고 거절하기에는 저 애가 직장을 잃은 건 사실이고... 더군다나 내가 우는 것도 다 봤는데, 저 애가 그 때의 굴욕적인 일을 다시 언급할까봐 그냥 어영부영 대답을 미룬 채로 우리집으로 들어갔다. 참 이상한 애야.
4.
그 고딩은 그 때부터 수시로 나랑 마주쳤다. 1주일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정말 짜증나게도 그 미친놈한테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아, 화딱지 나. 비굴하기 짝이 없는 텍스트들의 연속에 핸드폰이라도 깨부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게 저녁때부터였는데 시험문제를 내고 퇴근하는 지금은 전화도 다 건다. 얘는 진짜.
"응."
-내가 진짜 그땐 큰 실수를 했어.
"퇴근길에서까지 화딱지나게 하지 마."
-집이야? 갈까?
"좆이나 까."
-까도 돼. 나 다 정리했으니까 제발.
몸이나 굴려주면 모를까. 라고 말했던 그의 악마같은 모습이 계속 오버랩됐다. 근데 이제 와서는 다시 만나자 이거지? 하긴, 넌 백수였으니까 내 돈이 궁했겠지. 그치? 정말 좆이나 까세요. 화를 애써 억누르려 전화를 끊었다. 안 받을 거야. 네 전화.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고는 계속해서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손에 꽉 쥐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을 땐, 내 뒤에 고딩이 서 있었다. 쌍으로 화딱지나게 하네요?
"전화 안 받아요?"
"오지랖 넓다?"
"댁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참겠어서."
"안 받을 거야. 그냥 신경 쓰지마."
"설마."
설마, 고딩이 똥 씹은 표정을 짓더니만 자기 마음대로 내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아? 어?
"야. 너 뭐해!"
"있을 때나 잘해라. 병신."
"야!"
"어. 어. 응? 나 이 핸드폰 주인 남자친군데."
".......뭐?"
"어. 잘 자길 바랄게."
이게 뭐가 어쩌고 저째? 왜 남의 전화를 막 받아? 그리고 뭐? 남자친구? 그냥. 어이가 하나도 없었다. 얼굴이 철면피인건지 아니면 얘는 위험에 처한 남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으면 온 몸에 가시가 돋는 정의의 사도인 건지 도통 감잡을 수가 없는 저 고딩의 돌발행동에 기가 다 찼다. 피 끓는 청춘은 뭐가 좀 다른가? 그래도 막 그렇게 전화를 받으면 어떡해?
"와. 아직도 연락해요?"
"......온 거야. 자기가 한 거라고."
"여자한테 손찌검 하는 건 남자도 아냐."
"........"
"저런 남자 만나지 마요. 정 주지도 말고 전화 받지도 마."
"안 줘."
"차라리 내가 낫겠네."
"......뭐?"
"뭘 그렇게 놀라요. 내가 쟤보다 낫다. 댁 도와주려고 알바나 잘리고."
"그래. 그거 돈으로 줘? 그럼 어른 일에 참견 안 하려나?"
"...아뇨."
"그럼?"
"몰라요."
몇달 후면 성인인 애한테 어른 일이니 뭐니라는 말이 참 우습기도 우스웠지만 일단 더럽게 생색내는 이 고등학생 상대하기가 벌써 지쳤다. 그래서 그냥 돈으로 준다고 냉큼 말했더니, 얼굴이 굳어버렸다. 지나치게 싸늘해진 표정에 내가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순간 조마조마해졌다. 쌩하니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던 건 기분 탓일까.
5.
그 뒤로부터 고딩하고는 아무 말도 안 섞었다. 사실, 말을 안 섞었다기 보다는 걔가 날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 같았다. 퇴근길에 유독 자주 마주치는데 내가 뒤에서 걸어가고 있으면 한번 꼭 뒤돌아본다. 그러고 나선 다시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혹시 내가 애 취급해서 그런가? 아니면 본인의 수고를 돈으로 때워버리려고 한 나의 물질만능주의적 사고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인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만 확실한 건 엄청 신경이 쓰인다는 거였다.
일주일 동안 퇴근길을 같이 해 본 결과 느낀 점은 고딩이 꽤나 인기가 많다는 점이었다. 지나갈 때마다 여자애들이 10분 간격으로 아는 척을 했다. 정국아 안녕. 오빠 안녕하세요. 등등. 그리고 매정하게 그는 싸그리 무시해 버리기 일쑤였다. 어째 쳐다도 안 봐주냐. 부끄러운 건가.
그리고 수능도 성공적으로 끝낸 주제에 여전히 교복은 얌전하게 잘 입고 다녔다. 신발은 늘 반스 올드스쿨 검은색. 내가 얘를 왜 관찰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잘생겼네, 다. 가끔 뛰어올 땐 손에 마이를 쥐고 왔는데 와이셔츠만 입은 모습이 뭔가 야...하긴 무슨. 내가 새파랗게 어린 애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또 어김없이 퇴근길에 올랐다.
어김없이 내 앞엔 딱 봐도 텅 비어 보이는 가방을 매만지며 이어폰을 꼽고 걸어가는 고딩이 보였다. 나를 흘낏 보더니 시선을 아이에 돌려 버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인사할 이유도 없지 뭐. 그런데 그냥 괜한 오기가 생겼다. 내가 말을 걸고 말겠다. 뭐 이런?
"정...국아."
"........"
"전정국."
"왜요."
온 젖 먹던 힘을 다해서 고딩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이어폰을 빼더니 별 시덥잖은 사람 다 본다는 표정으로 왜요, 하고 대답했다. 내가 도대체 왜 말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그때 도와준 거."
"그 때 돈으로 준다면서요."
"아, 아니. 그런...게 아니고. 내가 나중에 밥 사줄게. 진짜."
"......밥?"
"응. 너가 먹고 싶은 거.... 어. 내가 선심 쓰는 거야."
"그럼 그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다시 능글맞은 표정으로 돌아온 고딩에 얘가 진짜 고등학생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가 보면 영업사원인 줄 알겠어?
"그, 그렇지."
"진짜요?"
"......그럼."
"무르기 없어요."
"........"
"나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무르지 마요."
오 전정국 센데ㅔ에에ㅔㅔㅔ
이 글을 다 읽으셔서 이걸 보시는 분들은 대단하신 겁니다
어떻게 이런 똥글을 봐여.... 진짜 15포인트도 아까운 거 사실 잘 알구 있어여...
우리 청구기 잘 봐주세여. 그럼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