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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나 영화에선 조각같이 잘생긴 제벌 2세역할의 남자주인공이
귀티나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구질한 옷을 입은 여주인공에게
구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곤 한다.
그때마다 여자는 구애에 부담을 느낀다며 남자를 밀어내고,
남자는 그러한 여자의 거절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다가간다.
이 흔해빠진 스토리를 책가방을 매기 시작한 어렸을때부터 심심치않게
봐온 나로선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을 하고, 여자는 남자의 고백을 받아들이는게
당연한 사랑의 시작인줄로만 알았다.
누군가 그러던 내가 여자도 남자에게 구애하고, 사랑의 시작의 끈을 쥘수있다는 생각을
갖게된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정확히 민윤기를 만난 이후라고 대답하겠다.
***
“ 어, 오늘은 왜이렇게 일찍 나왔어? ”
아직 덜 마른 머리를 손으로 빗어내리며,
한 손에 쥔 핸드폰에 시선을 두던 민윤기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물기가 조금 남아있으나 가지런히 덮힌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썹이 찌푸려졌다.
‘ 오늘도 왔어? 네 집념도 참 대단하다. ’ 말은 하지 않았으나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 아- 나 오기 전에 일찍 가려했구나? ”
민윤기는 아까의 그 표정 그대로 내려오던 계단을 마저 내려온다.
옆으로 다가가자 아침마다 진하게 나는 민윤기의 샴푸냄새가 코를 찔렀다.
언젠가 무슨 샴푸를 쓰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그 향이 좋아서인탓도 있었으나, 더 큰 이유에서는 변태같지만 민윤기의 향이 궁금해서였다.
그때, 찡그려지는 이마와, 뭐였지..하고 꿈틀대는 입술을 나는 유난히도 살폈던게 기억난다.
“ 오늘은 왜 그 운동화 안신고 컨퍼스 신었어? ”
민윤기에게 닿는 나의 시선은 어느 한곳을 빼어놓지 않았다.
심지어 발 끝, 제 성격과 비슷하게 단정한 네이비색 컨퍼스 까지도.
모두 두 눈에 꼭꼭 담으려 애썼다.
“ 음..여름이라서? ”
“ ... ”
“ 아니면, 내가 맞춰볼게! 기분전환? ”
“ ... ”
“ 아니야? 그럼 뭐지? ”
“ ..야 ”
“ 어,어? ”
“ 조용히 좀 가자. ”
" ..아, 한마디만 할게. 윤기야 넌 왜 맨날 잘생겨?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것같.. "
예예, 입 닥치겠습니다
민윤기의 말(협박) 대로 입을 꾹 다물고 아무말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민윤기가 사는 동네는 유독 한적했다. 사람이 많이 없어보인달까.
매일 아침 바쁘게 나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나의 동네와는 다르게
지금 걷고있는 이 길에는 나와 민윤기, 다른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 몇이 전부였다.
매일 민윤기를 집앞에서 기다리는동안 느꼈던 거지만
이 동네는 아침 특유의 냄새가 좋았다.
길을 따라 심어진 나무냄새도 좋았고, 얕게 깔린 흙내음도 좋았다.
“ 윤기야, 올때마다 느끼는건데 너네 동네 공기 진짜좋아! ”
“ ... ”
“ 푸른냄새! 그거 뭔지 알아? 그 냄새가 난다니까? ”
묵묵히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민윤기는 힐끗 쳐다보는것 말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렴 어떠나 민윤기가 사는 동네라 공기가 좋은건데!
혼자 실없는 생각을 하고있는데 옆에서 가방뒤적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왜, 뭐 찾아? ”
“ 어 ”
“ 내가 찾아줄ㄱ..아, 이어폰 찾는건 아니지? ”
맞는데. 계속해서 가방을 뒤적이는 민윤기가 결국 이어폰을 찾아냈다.
“ 너무하네 진짜. ”
나랑 조금만 더 얘기하다 가면 누가 잡아라도 가는지 귀에 이어폰을 꽂는 민윤기를 흘겨봤다.
그러나 흘김과 동시에 보이는 민윤기의 얼굴을 보자 그것도 잠시였다.
***
“ 너 오늘도 민윤기랑 같이 등교했어? ”
“ 응. 대박이지. 오늘 하루는 뭘해도 될날인가봐 ”
같이 등교한건 어떻게 알았는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무섭게 달려들어 묻는 친구의 표정은 내가 말하면 말할수록 썩어들어갔다.
“ 그럼 몇시간을 집 앞에서 대기탔겠네? ”
“ 대기? 아, 얼마 안기다렸어 ”
한 두시간? 혹시나 민윤기가 빨리나온 탓에 같이 등교 못하면 어떡해.
가방 속에 든 책들을 꺼내며 대답하자,
어이가 없다는듯 고개를 젓는다. 너도 정말 대단하다 ㅇㅇㅇ.
***
3교시 수업이 얼른 끝났으면 하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렸다.
다른 반은 이미 수업이 끝났는지 복도는 북적이는 소리로 가득한데,
왜 우리반은 아직도 수업이 안끝나는지 원망의 눈으로 앞에계신
국사쌤을 쳐다봤다.
선생님이 앞문을 나감과 동시에 민윤기의 반으로 달려갔다.
원래 1교시가 끝난 후에는 민윤기를 보러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첫시간이니 준비할게 많을것을 생각한 내 나름의 배려였다.
2교시는 하필 체육이라 체육복을 갈아입는 시간조차 빠듯했다.
[ 2-3 ]
몇반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여기가 민윤기의 반이라는건 알고있는 사실이였지만
굳이 한번 더 확인했다.
민윤기의 이름도 아닌 학년 반만 적혀있는 그저 반패에 불과하였으나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쌕쌕거리며 자고있는 모습은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반에 있는 담요라도 가져올까, 분홍색이 잘 어울릴것만 같았다.
반대편 빈 의자를 끌어당겨 한참을 쳐다보다가 곤히 자는 모습을 보자니 깨우기는 또 뭐해서
조용히 일어나려는데,
" ..아 깜짝이야 "
일어날때 쏠린 내 머리칼이 민윤기의 볼을 쓸었는지 볼에 손을 댄 채 몸을 일으키는 민윤기였다.
" 아, 미안. 그냥 가려했는데 깨워버렸네 "
" 아냐 "
막 잠에서 깬 탓에 잠긴 목소리에 하마터면 멍때릴뻔했다. 가뜩이나 목소리 좋은애가 목까지 잠기니까.
" ..음, 아직 잠 안깼으니까 난 가야겠지? "
" ..마음대로 해. "
" 아싸! "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지라 그냥 가라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마음대로 하라니.
튕기듯 곧바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히고 앉았다.
헤헤,턱을 괴고 민윤기를 웃으며 올려다보자 나를 가만히 앉아 쳐다보는것도 잠시,
곧바로 핸드폰으로 가져가는 민윤기의 손을 붙잡았다.
" 아, 맨날 게임!게임! 내 눈좀 봐주면 안돼? "
붙들린 자기 손을 쳐다보던 민윤기가 내 손을 떼고 팔짱을 끼더니 나를 쳐다봤다. 보고있어.
" 야, 나는 내이름이 민윤기 핸드폰이였으면 좋겠어. 그럼 너가 하루종일 쳐다라도 보겠지! "
" ... "
" 아, 아껴주기도 하겠다. 너 네 핸드폰 되게 아끼잖아. "
" ..참나 "
휴대폰을 콕콕 찔러가며 하는 얼토당토않은 내 말을 가만히 듣던 민윤기가 어이없다는듯 웃었다.
" 봐, 핸드폰 얘기하면 웃기까지해요! 와나 쇳덩이가 부럽긴 처음이다! "
ㅡ
으앙 이게뭐지..그냥 흔한 짝사랑 우리 여기서 맘껏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