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보다는 조금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가게에 출근 했다. 1시간 늦게 출근 했을 뿐인데 하루가 이렇게 상쾌하다니- 도대체 난 언제쯤 정상 출근을 해볼까나~ 김민석이 늙어서 노망이 나기전까지 그런일 절대 네버 없겠지.
"막내, 어제 저거 다 채썰고 간거야?"
"찡찡이 손목 괜찮아? 금가거나 그러지 않았지?"
먼저 출근한 김종대 셰프님과 박찬열이 한가득 쌓여 있는 어제의 눈물 겨운 결과물을 보고는 내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괜찮냐고 물어왔다. 물론 내 손목이 마징가 제트 뺨치게 튼튼하긴 하다만, 어제 그렇게 채를 썰어 댔는데 괜찮을리가. 그래도 어제 김민석이 사다준 검은 봉다리 안에 파스도 들어 있어서 뿌리고 잤더니 한결 나은 것 같다. 채썰기 시킬려고 작정하고 파스를 사다준게 분명해.
"쫑솊ㅠㅠㅠ 저 진짜 채 썰다가 결혼도 못해보고 죽을뻔 했다니까요?"
"오빠한테 시집오면되"
"아 넌 좀 저리가요"
틈만 나면 나랑 쫑셰프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박찬열을 밀어내고 어젯밤 있었던 일을 쫑셰프에게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았다. 내 투정을 다들어주고는 수고했다며 앞머리를 살짝 헝클여주는 김셰프님. 으 오늘도 김셰프님에게 또 한번 반한것 같다.
아 김종대 셰프는 박찬열만큼이나 내 말에 잘 귀 기울여준다. 모든 주방 사람들에게 친절하긴 하지만 우리 주방에 여자라고는 나뿐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써주는 편이다. 잘해주시는 만큼이나 나도 김종대 셰프를 '쫑솊'이라고 부르면서 잘따르는데 그걸 박찬열이 이상하리만큼 질투한다. 가끔 죽빵을 날리고 싶을 정도로,
"어제 내가 머리 저렇게 할 때랑 왜 다른 반응인데"
"너랑 쫑솊이랑 같냐?"
띠꺼운 말투와 함께 박찬열에게 메롱을 한번 날려주고 도망치려고 앞을 안보고 뛰어가다가 딱딱한 무엇인가에 부딪히고 말았다. 부딪힌 이마를 짚으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박찬열에게 너 때문이라고 짜증을 부리고 있는데 평소 같았으면 한마디 하고 남았을 박찬열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앞을 쳐다봤는데..
오.마.이.갓-
내가 부딪힌건 김민석의 넓직한 가슴팍이였다.
"언제부터 내 주방이 니네 놀이터였더라"
아 주여 또 걸렸어.
김민석의 주방에서 술래잡기를 한 댓가로 박찬열과 나는 창고 정리를 하게 됬다. 도대체 얼마나 청소를 안했던 것인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하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 던전급이야"
"내말이 그말이예요"
꽤 오랫동안 묵묵히 청소를 한 것 같은데도 아직도 많은 일거리가 남아 있었다. 맥이 빠져서 주변을 멍하니 둘러봤는데, 박찬열도 아무말 없이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먼지 털이로 내 얼굴을 공격했다.
너 새끼는 한시라도 나 안 괴롭히면 몸에 가시가 돋지 아주그냥? 전쟁이다 박찬열.
"으아아아아악"
"꺄아악"
각 자 먼지 털이개를 서로의 얼굴로 향한채 미친듯이 흔들었다. 박찬열이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팔도 길었기 때문에 내가 전적으로 불리했고 그 바람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어어어어!!!으악!!!"
결국 뒤에 있던 상자에 걸려서 이제 넘어지는구나 했는데 박찬열이 한 손으로 내 등을 받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박찬열에게 안긴 자세가 되어버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눈만 굴리고 있었는데 박찬열이 피식 웃었다.
"우리 찡찡이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박찬열은 날 다시 똑바로 세워놓고 옷을 탁탁 털어줬다. 어색할뻔했는데 타이밍 기가막히게 일어나자마자 김민석이 창고로 우리를 감시하러 내려왔다.
"보나마나 청소 안하고 놀고 있었겠지"
이 싸이코가 창고에까지 CCTV를 달아 놨나.
"찬열이는 나머지 정리다하고 올라오고 막내는 따라와"
박찬열은 김민석의 오더에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어버버 거렷고 나는 승리의 브이자를 지으며 김민석을 따라 나갔다. 그래 뭐든 저 먼지 구덩이와 도비의 조합보다는 낫겠지.
(도비=박찬열)
*
창고를 나온 김민석은 주방으로 가지 않고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셰프 우리 어디가요?"
"수산시장"
"에?????"
일단 타라는 김민석의 말에 차를 타긴 탔는데. 왠 뜬금없이 수산시장을 가자는건지. 차에 타고나서부터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김민석을 힐끔힐끔 쳐다보니, 사이드 미러 가리지말라며 내 이마를 살짝 누르면서 말했다.
"여름 시즌 스페셜 메뉴 재료 보러 간다. 이제 됐어?"
"아~ 아니 근데 그거 말해주는게 뭐 그렇게 어려운일이라고"
"척하면 척"
우리가 파밧하고 텔레파시라도 주고 받냐, 내가 어떻게 김민석 니 생각을 척하고 알아채냐고.
역시나 차 안에서는 김민석의 입을 누가 본드로 붙여놓은듯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어색한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만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이 상황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어제는 10분이였지만 오늘은 40분정도 혼자 떠들어대니까 수산 시장을 돌기도 전에 지친 기분이였다.
"넌 어떻게 쉬지 않고 떠드냐"
"셰프는 어떻게 한마디도 안받아줘요"
"굳이 대답해야돼?"
"헐 나 방금 그 말 상처받았어요"
김민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로 저으면서 앞장섰다.
"같이가요 셰프!!!!"
아아!!!!!!! 벌써 2시간째다 2시간째. 김민석은 수산시장에 있는 모든 가게를 하나씩 다 들릴 생각인가보다. 그래 꼼꼼히 돌아보는 것도 좋고 짐꾼으로 나 부려 먹는 것도 다 좋은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고 밥은 먹여가면서 부려야할꺼 아니냐고요 이 사람아. 아까 미끈한 자태로 나를 유혹하던 산오징어가 눈에 아른 거린다.. 징어야..오징어..배고프다..
"먹고 갈꺼니까 회로 준비해주세요"
와 할렐루야 민석님 아멘. 어떻게 내가 오징어 먹고 싶은거 딱 알고 시켰지? 이제보니 우리 싸이코 생각보다 센스쟁이인가보다.
"셰프 제가 오징어 먹고 싶은거 어떻게 알았어요.."
"너가 아까 오징어보면서 먹고싶다고 중얼댔잖아"
"그거 다 들렸어요..?"
"그렇게 크게 말하는데 안들릴리가"
분명히 혼잣말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는데 그걸 들었다니.. 다음부터는 더 빨리 알아듣도록 크게 말해야겠다.
횟집 아주머니가 "총각이 잘생겨서 더 많이 줬어-"라는 말과 함께 ohoh 나의 사랑 oh징어가 테이블에 놓여졌다. 아주머니가 앞의 말만 안했더라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텐데. 뭐 사실은 사실이니까 깔끔히 인정하고 폭풍 흡입을 시작했다.
참 오징어는 언제 먹어도 옳은것같다. 우걱우걱 열심히 먹고있는데 셰프는 젓가락도 안들었길래 살짝 쳐다봤는데 날 쳐다보면서 웃고 있는 것 같아서 제대로 얼굴을 드니까,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야 비웃은건가. 내가 너무 돼지처럼 먹어서..? 셰프님 주변엔 다 예쁘게 한 가닥씩 먹는 사람들 뿐인가.
"셰프는 왜 안먹어요?"
"오징어 안좋아해"
"??????"
"너 많이 먹어"
오징어를 안좋아하다니. 진짜 김민석은 무슨 낙으로 살까? 아니 근데 쉐프가 못먹는 음식이 있으면 요리를 어떻게 한담. 참 알다가도 모를 인간일세
"야 막내"
"예 셰프"
"넌 왜 우리 가게에 계속 붙어있냐"
"왜요"
"그냥 다른 여자 요리사들은 한달도 못버티고 떨어져나가는데, 너는 꽤 오래버텨서"
"솔직히 저같은 여자가 어딨어요 셰프님 성격도 다 참아ㄴ..."
"뭐?"
"아니 그냥 좋잖아요 우리 주방~ 쫑쉪도 있고 박찬..아니 조리장님도 있고
셰프님도 능력있고! 다들 잘해주시는데 이만한 주방이 어딨어요"
"그게 다야?"
"뭘 더 기대하는거예요. 아. 그리고 전 그거 좋아요 우리 오픈전에 외치는 구호"
"구호?"
"오늘도 사랑하자!"
"아~"
"그리고 또 셰프님이 덧붙이는 그말도 좋아요. 음식이 아닌 마음을 요리한다는 생각으로 하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요리라는게 만드는 사람 정성이 들어가 있는거 잖아요.
만드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들고, 먹는 사람도 먹으면서 만든 사람을 생각하면서 먹으니까
진짜 음식을 만드는 건 마음을 요리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말한 뒤로 김민석은 내가 다먹고 가게를 나설 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건지, 밥먹다가 체할뻔 했다.
밥을 먹은 뒤에 2군데 정도 더 들렸다가 차로 돌아갔다. 오늘은 가게말고 집으로 퇴근하라는 김민석의 말에 정말 얼굴에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 2년정도 부려 먹었으면 지금은 당근을 줄 때도 됬지. 김민석이 친절히 집 앞까지 데려다줘서 편안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히가세요 셰프~"
"오늘 수고했어"
"네! 아 오징어 잘먹었어요"
"그래"
"진짜 안녕히가세요~"
"아까 니가 한말 마음에 들었다"
김민석은 저 한마디를 끝으로 쿨하게 떠났다. 뭐야, 괜히 사람 간질거리게- 그래도 김민석한테 모처럼 만에 듣는 칭찬이라 기분은 좋네
안녕하세요 ye솊!입니당
저번화에 댓글 많이 달려가지고ㅠㅠ저진짜 너무 씐남 완전씐남!!!!1
암호닉 신청해주신분들도 너무 감사해요ㅠㅠ감히 저따위가 윽-
오늘도 민석이와 함께 설레셨나요?
저는 4화에서 찾아뵙겠습니다~'-'
8암호닉8
요남석/한강우/백허그/막내/챈/코쟁이/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