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 빙의글]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 02
"나 교과서 없는데..."
일교시는 제 2 외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오시고,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정국이는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아, 하며 작게 탄식했다. 그리고는 곧 내 쪽을 돌아보며 교과서가 없다며 살짝 웃었다. 정국이를 한 번 보고는 교과서를 정국이와 내 책상 중간으로 밀었다. 오늘은 18쪽, 선생님의 소리가 들렸다. 정국이는 다시 가방을 열고는 부스럭거리며 뒤지기 시작했다. 잘 잡히지 않는 것인지 살짝 인상까지 쓰고 가방을 휘젓다가 곧 공책과 필통을 꺼냈다. 공책과 필통 모두 빨간색이었다. 보통 남자애들이 빨간색을 쓰나? 조금 신기하기도 해 정국이의 공책과 필통을 빤히 쳐다보았다. 곧 선생님이 아이들과 이것저것 잡담을 하기 시작하셨다. 선생님이 여행 갔다가 있었던 일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으셨고, 반아이들은 우와! 하며 신기해했다.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만족하셨는지 한참을 더 이야기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이제 수업하자며 필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교실은 온통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정국이도 가만히 공책에다 무엇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필기를 하나보다. 연필 하나를 꺼내어서는 한참을 부여잡고 있는다. 나도 뒤늦게 필기를 시작했다. 필기를 반도 하지 않았는데 정국이가 공책을 내 쪽으로 슥, 내밀었다. 친하게 지내자, 이 한마디를 쓰려고 그렇게나 오래 공책을 붙잡고 있었을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본 정국이의 얼굴이 창피한 듯 붉어졌다. 얼굴. 빨게. 내가 정국이의 글씨 밑에 끄적거리니 정국이가 또 아래에 답을 단다.
글씨.
이쁘다.
별 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쿵거린다. 내가 미친걸까. 이상하다.
결국 1교시 내내 정국이와 낙서를 하며 놀았다. 정국이는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었다. 좋아하는 색은 뭔지, 버릇은 뭔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수영이랑은 언제 만났는지. 많은 것을 물어보아도 핵심적인 것은 교묘히 피해가는 게 고마웠다. 둘이서 몰래 숨어서 웃기도 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내기도 하면서 온 공책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빨간색 좋아해? 내가 좀 망설이다 끄적거리자 완전! 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밑에는 귀여운 웃음 이모티콘까지 그린다.
"매점 가자."
수영이가 아침도 못 먹었다며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손을 이끌었다. 배고파 죽겠어, 빨리 가야지 초코빵 살 수 있다고! 빨리! 수영이의 말에 서둘러 교과서를 책상 서랍 속에 집어 넣고 일어났다. 배고프면 평소보다 백배쯤은 예민해지는 걸 알기에 순순히 따랐다. 가자, 수영이는 내가 일어서자마자 내 손을 잡고는 얼른 가자고 재촉했다. 나도 같이 가도 돼?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국이가 입을 열었다. 수영이가 잠시 망설이더니 그러자고 했다. 좀! 초코빵 먹어야된다고!
"이모, 저 초코빵요!"
매점 이모는 수영이를 보자마자 웃으시면서 빵을 주셨다. 오늘은 수영이가 올 것 같아서 하나 숨겨놨지. 이모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수영이에게 말했다. 수영이는 역시 이모가 짱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올렸다. 그런 수영이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해 웃었다. 정국이가 매점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모에게 다가갔다. 곧 무언가를 계산하고 와서는 내 앞에 선다. 자, 정국이가 딸기맛 막대사탕을 건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얼른 받아라는 듯 사탕을 흔든다. 사탕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잡아 왜, 라고 천천히 쓰자 정국이가 웃는다. 웃는 이유를 몰라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자 곧 웃음을 멈추고는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한다.
이거, 좋아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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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교실에 왔다. 수영이는 초코빵을 먹으면서도 빠르게 교실로 향했다. 늘 볼 때마다 감탄스러워 놀란 눈으로 수영이를 쳐다보자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는 웃는다. 그 다음 시간 수학이라고! 채 삼키지도 못하고 수영이가 복도에서 소리쳤다. 덕분에 지나가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를 향했다. 내가 창피함에 고개를 숙이거나 말거나 수영이는 얼른 가야한다며 아는 애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빠르게 걸어간다. 그런 수영이의 뒤를 따라가며 나도 아는 애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는 진짜 정국이랑 놀지말고 열심히 들어야지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학 시간인 2교시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4교시가 끝나기 십 분전이었다.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놀랍다고 해야할지. 그래도 밥을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왜냐면 내 옆자리에서 정국이도, 앞자리의 수영이도 전부 자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수업을 듣는 척 하면서 필통과 교과서를 정리했다. 애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선생님께서도 졌다는 듯 일찍 마치자며 책을 덮으셨다. 선생님이 책을 덮자마자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쳤다. 종이 치자마자 반 아이들이 와아, 하며 달려나갔다. 그 소리에 정국이도 깨어났다. 눈을 감은 채로 작게 하품하고는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한다. 곧 눈도 비빈 정국이가 잘 자더라, 하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런 정국이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머릿 속은 다른 생각뿐이었다. 정국이는 누구랑 먹으려나.
오늘 전학을 온 정국이가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수영이가 일어날 때 까지 기다리며 필통에 채 넣지 못한 볼펜 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런 고민하는 내 모습을 옆에서 봤는지 정국이가 볼펜 닳겠다, 하고 말한다. 내가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잘근거리며 씹으니까 닳는다니까, 하고 다시 말한다. 자기 것도 아니면서 엄청 뭐라고 한다. 내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결국 한숨을 푹 쉰 정국이가 내 입에서 볼펜을 빼낸다. 좋지도 않은 거 왜 자꾸 입에 물고 있어, 애기도 아니고. 정국이는 내 필통을 다시 열어 가만히 볼펜을 집어넣었다.
어느새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은 나와 정국이, 그리고 잠든 수영이뿐이었다. 저런 거 씹지마, 꽤 단호하게 정국이가 말해온다. 다시 필통에서 정국이가 넣은 볼펜을 꺼냈다. 뒷부분이 보기 흉하게 씹혀있다. 내가 볼펜을 꺼내는 모습을 본 정국이가 살짝 인상을 썼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밥, 같이 먹을래? 볼펜을 씹으며 내내 고민하던 말을 공책에 쓰기가 무섭게 정국이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마지막으로 끄적이고는 볼펜을 다시 필통에 넣었다. 수영이는 급식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니 곧 깨겠거니 했는데 어찌나 깊게 잠들었는지 일어날 생각도 안한다. 결국 더 기다리면 밥을 꼴찌로 먹겠다 싶어 깨우기로 했다. 세상 모르게 잠 든 수영이를 툭툭치니 수영이가 움찔거리다가 일어난다. 수영이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미친! 하고 소리친다. 얼굴에는 잠을 덕지덕지 묻은 상태로 왜 이제 깨웠냐며 징징거린다. 잠긴 목소리로 얼른 밥 먹으러 가자, 하고는 앞문으로 향한다. 나도 신나서 따라가려다 수영이한테 전하지 않아 그 자리 그대로 정국이랑 서 있는데 이상함을 느낀 수영이가 다시 앞문으로 나타난다. 왜 안와. 내가 정국이를 한 번 보고 수영이와 눈을 마주치자 수영이가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오란다. 수영이의 말이 긍정의 뜻임을 알고는 가만히 서있는 정국이를 한 번 툭, 치고는 앞문으로 향했다. 잠시 어리둥절하게 있던 정국이도 잠시뒤 따라나왔다.
"아, 오늘 급식 짱이다."
시끌시끌한 급식소 안에서 말을 하는 건 수영이 밖에 없다. 나야 원래 말을 하지 않고 정국이는 아직까지 수영이랑 어색하니 그럴만도 하다. 한참 혼자서 떠들던 수영이는 그제야 입을 닫고는 밥을 먹는다. 나 좀 시끄러웠지, 수영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말에 이제 알았냐는 듯 살짝 웃었다. 말없이 밥을 먹던 정국이도 이제서야 알아서 다행이라며 소리내어 웃는다. 정국이가 장난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어색한 단계에서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아서 흐뭇했다. 수영이가 뻘쭘한 듯 웃더니 짝지가 쌍으로 그러는 거 아니라며 툴툴거린다.
수영이의 툴툴거림을 시작으로, 아까보다는 시끌벅쩍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영이와 정국이가 잘 맞았다. 둘이서 장난스럽게 티격태격거리는데 애기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그리고 보고 있으면 재밌기도 하고. 내가 밥 먹는 것도 멈춰서 둘을 바라보자 동시에 뭘 보냐며 얼른 밥이나 먹어! 한다. 괜히 내가 시무룩한 척 국을 한 숟갈 떠서 먹자 둘 다 안절부절 못한다. 곧 소곤거리며 니 탓이니, 내 탓이니하며 또 티격거린다. 둘이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내가 다시 웃자, 둘 다 장난치지 말라며 툴툴거린다.
묘하게 둥둥떠다니던 어색한 기류가 가라앉고, 이제는 조금 더 편한 느낌이었다.
역시 식후땡은 아이스크림이지, 수영이가 수박바 봉지를 깠다. 꽁꽁 언 수박바를 한 입 깨물고는 아, 차가워, 하며 중얼거린다. 그거 맛있어?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정국이가 입을 열었다. 아이스크림을 내미니 정국이가 됐다며 고개를 젓는다. 맛있는데,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한 입 베어물었다. 수영이가 너네 뭐 하냐, 하고 묻고는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다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짓는 박수영은 무섭다. 애가 워낙에 눈치가 빠르기도 하고, 그 눈치가 틀린 적이 없어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찔리는 기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벤치는 아침에 정국이와 내가 처음 만난 곳이었다. 만난지 하루도 안됬는데 조금 많이 친해진 것 같아 문득 기분이 좋았다.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원래 이렇게 단시간에 친해지기 힘들었는데. 정국이도 아침 일이 생각났는지 작게 웃었다. 수영이 몰래, 우리 둘만의 비밀이 생긴 것 같았다. 슬슬 지는 해에 하늘이 붉게 물들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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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학 왔으니 첫 날에는 좀 빨리 와주는 게 예의라며 말도 안되는 논리를 늘어놓으며 정국이 교문 앞에 섰다. 패기 있게 학교로 들어선 것과는 달리 낯선 학교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을 무렵, 운동장 한 켠에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교무실 찾는 것은 이따 하기로 하고 정국이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다가선 줄도 모르고 공중에 손을 휘휘 젓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정국이 미소를 지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지 입을 삐죽이다가 결국 잡고 말았는지 아이같은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보여 대뜸 말을 걸었더니 흠칫 놀란다. 옆에 가서 앉고는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내뱉었다. 이름을 묻자 한참 고심하던 표정을 짓다 대뜸 제 손을 잡아온다. 순간 놀라 움찔거리자 손을 꽉 잡고는 한 자 한 자 꾹꾹 쓰기 시작한다. 작은 손이 야무지게 움직이는 걸 보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동글동글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정국만의 비밀일 것이다.
굳이 이름을 손바닥으로 써주나 싶었다가 곧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름 예쁘다, 뿐이었다. 정국의 그런 반응이 소녀에게는 상처를 준 행동이 아니었는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너무 익숙해져서 반응을 하지 않게 된 것인지. 이제 가봐야겠다며 일어서서는 소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소녀도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교무실로 향하는데 자꾸만 가슴이 간질거린다. 왠지, 또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국의 그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소녀와 같은 반이 되었다. 1분단 뒷자리에 앉아 창 밖을 쳐다보다 깜짝 놀라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결국 소녀와 짝지가 되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치대지 않을텐데 소녀에게는 왠지 관심을 주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꽤 친해져 정국은 뿌듯하기만 하다.
2교시가 시작되고 열심히 수업을 듣던 소녀가 곧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한다. 소녀와 친해보이는 앞자리의 수영이와 태형이는 이미 꿈나라 속이다. 잠들지 않으려는 듯 자꾸만 고개를 젓던 소녀가 결국 잠을 이기지 못하고 엎드린다. 색색거리며 고른 숨소리를 낸다. 자는 모습도 귀엽다.
소녀의 모습을 보며 정신없이 2교시를 보냈다. 아이들도 수학 때문에 괴로웠는지 종 치자마자 자리에 엎드린다. 그 사이에서 정국도 가만히 엎드렸다. 소녀와 얼굴을 마주보게 엎드리고서는 다시 한 번 찬찬히 소녀의 얼굴을 눈으로 훑는다. 눈, 코, 입. 한참 소녀를 바라보던 정국이 가만히 웃는다. 새근거리는 소녀가 듣지 못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니 같은 애를 부산에서는 이삐라고 한다. 정국이 이삐의 머리를 한 번 넘겨 정리해주고는 눈을 감는다. 잘 자, 이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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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서도 이삐라고는 하는데 우짜징...8ㅅ8
휴... 정국이 설렘보스세여...? 우럭...8ㅅ8 우럭...8ㅅ
진도가 빠르다고 느끼는 것은 여러분의 착각입니다. 착각일걸요....?
이미 썸이라고...! 썸일걸....!
댓글이랑... 어흑.. 암호닉... 고마워요....8ㅅ8 싸라해여....!
암호닉
카누/브이태/여기봐전저꾸/랩지니어스/슙디/요를레히/비비빅/인사이드아웃/정구쿠/봄꾸기/호독/핑퐁/연
늘어나따. 싸라해여..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