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apple)
우리 옆집엔 (홀로) 고딩이 산다 04
(부제: 전정국에게 썸이란)
w. 애기무댱
1.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니라고 해.... 수없이 마음속으로 부정해 봤지만 저 기럭지에 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딱 한 명 밖에 없다. 우리 오빠. 전정국 표정도 꽤나 볼만했다. 나랑 하나도 안 닮아서 다른 남잔 줄 알았을 거다. 좀 굳은 표정으로 눈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 전정국과, 그런 전정국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는 우리 오빠라니.
"야, 김석진!"
"너 자꾸 나한테 반말 할래?"
"...오빠가 여긴 왜 왔어?"
"오빠가 여동생 집 오는 게 죄냐?"
"아니, 말을 하고 오던가 해야지...."
"근데...너 옆에 설마 남자친구?"
"......."
"일단 들어가자. 옆에 있는 너도 같이."
난 우리 오빠와 친했고 오빠를 좋아하긴 했지만 난 오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오빠는 내가 남자 친구 사귀는 꼴을 잘 못 봤다. 내가 처음 남자를 사귀었을 때가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아마 오빠는 그 때 고 2였던 것 같다. 정말 건전하게 남자친구랑 손 잡고 있었는데, 오빠가 그걸 보는 바람에 아주 깔끔하게 헤어지게 돼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도 오빠는 의로운 일을 한 마냥 좋아했지. 나도 안 사귀는 여자를 너가 사귀면 안 된다. 그건 형제의 사랑을 배반하는 행위다, 뭐 이런 잡다한 말들을 덧붙여가며. 엄마가 장난 삼아 그럼 막내는 시집도 못 가겠네, 석진이 때문에, 라고 했을 때 돌아온 오빠의 대답은 경악할 만 했다. 평생 내가 데리고 살지 뭐. 평생 내가 데리고 살지 뭐? 정말 싫거든? 그런 오빠한테 스무살이 되고 나서부턴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 철저히 비공개로 하고 다녔다. 페이스북 친구도 안 받아준 지 3년 째다. 아마 내가 독거노인마냥 적적하게 살 줄 알고 찾아왔겠지. 이 정도면 시스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김석진이 딱 봐도 엄청나게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며 전정국을 쳐다보았고 전정국은 잔뜩 쫀 표정으로 우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청소해 놓길 잘 했지.... 나 원래 집 정리 더럽게 안 하는데.... 먼저 소파에 거만하게 앉은 김석진이 턱짓으로 나와 전정국보고 앉으라고 했다. 무슨 취조 받는 것 같잖아.... 나 진짜. 오빠는 여자친구 없어?
"교복 입었네."
"......."
"고등학생?"
"......네."
"둘이 사귀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뭔데?"
"누나 잠깐만 어디 좀 들어가 있으면 안 돼요?"
"야, 너 들어가래."
지들이 뭔데 오라가라야? 나보고 방에 들어가라고 전정국이 말했다. 난 김석진이 뜯어 말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흥미롭단 표정으로 나한테 들어가라고 말했다. 진짜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괜히 애한테 이상한 소리하면 안 되는데.... 그리고 전정국이 사귀냐고 했을 때 그건 아니라고 말했는데, 왜 거기에 쿠크다스 심장이 바스라졌는진 나도 모르겠다. 나도 주책이다, 주책.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막 서럽고 그러네.... 혼자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면서 도대체 저 대화가 언제 끝나나 싶었다.
"너 나와도 된대."
"아니, 진짜 갑자기 찾아와서 왜 오라가라야?"
"오빠는 너를 데려갈 사람이 하나도 없을 줄 알아서 걱정을 안 하고 살았었는데."
"......."
"내가 너무 노파심이 많았나 보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나 같으면 안 놓친다."
김석진은 어렸을 때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꽤나 많은 편이었다. 가끔 훔쳐 본 오빠 핸드폰에는 석진아 지금 뭐 해? 석진아 나랑 문자하자, 뭐 이런 류의 언니들로부터 온 각종 메시지로 문자 메시지함이 가득 차 있곤 했었다. 내 친구들 중에서도 오빠를 좋아하는 애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이유는 준수한 외모와는 상반되는 허당 매력? 이라고 하던데 그건 순 뻥이다. 평소에 진지한 게 멋있다나 뭐라나. 그러나 우리 오빠는 365일 진지한 듯 안 진지한 사람처럼 지낸다. 진지함과는 사실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웃기기만 엄청 웃기지. 그리고 말을 참 못 알아듣게 하는 편이다. 무슨 드라마 예고편처럼 말을 해.... 그리고 전정국을 슬쩍 보니 얼굴이 꽤나 벌겋게 상기 돼 있었다. 뭔 얘기를 했길래 분위기가 훈훈하대? 이내 전정국이 오빠하고 목례랑 악수를 하더니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자기 집으로 쓱 들어가 버렸다. 이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무슨 얘기 했는데?"
"너 요즘 잘 지내냐?"
"아니! 왜 내 말 씹어?"
"엄청 잘 지내는 것 같다? 애가 이제 좀 봐줄만 하게 생겼네."
"......아, 진짜."
"아,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남자 막 집에 들이고 그러진 말고."
"오빠나 이제 여자 좀 만나. 줄 섰더만 왜 안 만나?"
"그건 내가 알아서 할...거야."
급하게 대화 주제를 돌리는 오빠에 그냥 나중에 전정국한테 차차 물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오빠한테 잔소리를 했다. 여자 좀 만나라고. 사실 내가 예전에 내 친구들한테 오빠 소개를 가끔 해줬었던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사정없이 오빠가 다 까 버려서 민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애들은 잘생기면 뭐 하냐고, 사람이 돌부처 같은데, 하며 울기도 했었고. 그러던 오빠에게 또 여자 좀 만나라고 하자, 오빠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옛날엔 그냥 넘겼었는데 지금은 얼굴을 붉힌다 이거지. 이건.... 오빠한테도 봄날이 왔다는 건가.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대충 넘기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뒤 오빠를 보냈다. 근데 진짜 궁금해서 죽을 것 같다. 무슨 얘기를 했길래 막 나까지 들여 보냈지? 저 누나가 나한테 흑심을 품는 게 보여요. 이런 말 한 건 아니라고 해 줘, 제발. 누나는 감옥에 가기 싫어....
2.
"너 무슨 말 했냐니까!"
"아.... 안돼요. 진짜 안 돼."
"그거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들으면 후회한다니까?"
다음날 퇴근길에 또 전정국과 실랑이를 벌였다. 무슨 말 했냐고 끝까지 집요하게 물어오는 나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정국이가 안 된다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라고! 내가 너 덕에 이렇게 떼도 다 써 본다니까? 근데 진짜 궁금한 걸 어떡해. 원래 남이 나에 대해서 얘기한 내용을 아는 건 내 정신 건강에 안 좋긴 하지만 혹 너가 내 욕을 했더라도 듣고 싶어, 진짜.
"후회해도 되거든?"
"그럼 나 진짜 처음처럼 못 봐요."
"아니, 그니까 그게 뭐냐고. 난 진짜 자신 있어!"
"후.... 알았어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전정국이 귀여워 보였다. 진짜 이런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아님 이런 아들. 막 괴롭히고 싶다.... 근데 얼마 있으면 이런 생각도 못할 것 아니야. 성인 전정국. 뭔가 이상하다, 진짜.... 성인 된다니까 갑자기 기분이 또 안 좋아지는 건 무슨 심리에요? 사실 지금은 전정국이 할 말보다 전정국에 대한 감상이 머릿속을 뒤덮고 있었다. 그래서 더 훅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전정국의 말이.
"나 딱지 떼기 전까지 그냥 이 얘기 못 들은 걸로 해요."
"그니까 뭔지 말이나 해."
"좋...아한다고."
"...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거 아니면 지금 똑바로 들어요."
"......."
"내가 누나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거고 이상한 짓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
"누나는 나 안 좋아해도 꼭 어떻게.... 어, 그니까.... 아, 나 그만 봐."
"......"
"꼭.... 어, 아 몰라. 그러니까!"
"......."
"나 좋아하게 만들...거라고. 나 애 아니라고. 아무튼 그래도 이상한 남자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거니까 앞으로 물어보지 마요. 그리고 대답도 하지 마."
"......"
내가 지금 들은 게 잘못 들은 건 아니지? 그치? 횡설수설, 한 겨울에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속사포로 말한 전정국이 먼저 아파트로 뛰어가 버렸다. 나 지금 고백 받은 거야? 진짜? 나 미친 거 아니야? 헛것이 들리나? 뺨을 때려 봤더니 정말 미치게 얼얼하다. 사실인가봐. 나 어떡해. 나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아님 전정국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어디가 볼만하다고? 나 그리고 내년 반오십인데? 막상 듣고 나니까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3.
전정국이 요근래 학교에 안 나갔다. 사실 수능 끝나고는 학교 안 가는 맛으로 사는 게 맞긴 하다. 못 본 애들은 못 본 애들대로 재수학원을 알아보거나 절망에 잠기느라 학교에 안 오고, 잘 본 애들은 잘 본 애들대로 그 때 면허를 따거나 알바를 구하느라 학교에 잘 안 오고. 그렇게 교복 잘 입고 다니던 전정국과 출근길에 사복 차림으로 마주치니 어제의 쭈뼛쭈뼛하던 전정국이 떠올라 얼굴이 저절로 붉어졌다.
"너 어디 가?"
"한강이요. 그냥 돌아다니게."
"아.... 이렇게 일찍? 친구 안 만나?"
"내일 놀아요."
평소엔 나랑 눈 맞추면서 말 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대답만 로봇같이 한 전정국이 먼저 쌩하고 엘리베이터를 벗어나 버렸다. 저 나이 때 애들이 그렇지 뭐. 이해는 갔지만 사실 나도 굉장히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까. 거기다가 대답하지 말라는 말에 힘까지 줘가면서 말한 애한테 대답하기에도 뭔가 그렇고.... 물론 내 대답은 강한 긍정이겠지만! 그리고 지금은 전정국이 귀여웠다.
귀엽단 말은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이 미친듯이 흘러갔고, 거의 연말이었다. 지방에 계신 엄마 아빠한테 안부 전화도 드리고, 애들하고 약속도 잡고. 그 시간동안 전정국은 나를 보면 슬슬 피해 다녔다. 얼굴이 새빨게져 있는 걸로 봤을 땐 그냥 부끄러워서, 가 맞는 것 같지만 내가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시점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강력한 행동을 취해서 가져라. 우리 아빠가 예전부터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24년 살면서 이렇게 강력하게 무언가를 쟁취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도 내 뒤에서 느즈막히 걸어 오는 전정국 때문에, 그리고 뭐라 액션을 취하지 못하는 쑥맥같은 나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며 메신저 온 것만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주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서 또 전화가 오길래 전화를 그냥 받았다.
"여보세요? 왜?"
-너 아직 남자친군 없지?
"왜?"
-소개팅 할 생각 없어? 내가 진짜 괜찮은 애 알아!
"소개팅? 언제?"
-그냥 우리 만나기 전 날에? 걔 정도면 괜찮아, 진짜. 스카이 다니고, 집도 괜찮은 것 같고.
"그거 꼭 해야 되...니?"
-얘가. 마다할 걸 마다해라. 너한테 이런 남자면 엄청 땡 잡은 거거든?
"아니.... 그게."
얘는 꼭 말할 때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게 틀림없다. 나한테 그런 남자가 뭐! 난 지금 아무도 안 만나고 싶거든? 전화로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돌려 말했더니 이런 남자 어디서 못 구한단다, 나 같은 애는. 더더욱 만나기 싫어졌다. 얼굴까지 구기며 잠시 멈춰 서서 한숨을 내뱉었을 때엔, 내 앞을 누가 가로막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전정국이었다. 다 들은 건지 온갖 감정이 다 뒤섞인듯한 표정을 지은 전정국이 내 핸드폰을 빼앗아 가더니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그거 달라니까?"
"얘가 싫대요."
"......."
"아, 남자친구 없대요?"
"......."
"있는데? 혼나야겠네. 그럼 그냥 안 하는 걸로 할 거죠?"
"......."
"끊을게요."
빠르게 통화를 끝낸 전정국이 다시 나한테 핸드폰을 돌려주더니만 처음 봤을 때 날 보던 그 눈빛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못마땅한 사람 보는 저 표정.
"진짜 하려고 그랬어요?"
"뭐? 소개팅?"
"어."
"하면 어쩌려고?"
"내가 하게 안 놔둘 걸요?"
"왜? 요즘 맨날 귀신 보듯이 슬슬 피해다닌 게 누군데."
"이제 안 그러려고."
"........"
"나 진짜 짜증나요."
"나도 진짜 짜증나거든?"
"......."
"왜 자꾸 나 피해다녔어? 내가 뭐 너 싫다고 그럴까봐?"
"......"
"나도 너 좋거든? 엄청 좋거든?"
"......."
"너 그냥 동생 아냐. 그러니까 그러기만 해. 확 소개팅 잡아 버릴 거야."
"...같이 가요."
원래 담아두고 있던 말을 당사자한테 확 해 버리면 맘이 편해진다. 지금 딱 그렇다. 나도 너 좋아한다고, 좀 부드럽게 말하려고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 화 내는 꼴이 돼 버렸다. 그렇게 속사포로 말해놓고 나니 전정국이 뭐 한 대 맞은 표정을 짓더니만 이내 피식 웃으며 내 뒤를 졸졸 쫓아 왔다. 그리고 내 손을 조심스레 잡았고, 난 오늘도 심장 폭행을 당했다. 손에 땀이 안 난 게 다행이었지, 뭐.
4.
[누나 31일에 어디 가요?]
[약속 없으면 나랑 놀아요]
[있어도 깨요]
[나랑 술 마셔요 ㅋㅋ]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연락을 따로 해 본 적은 없어서 쓸 일이 없었던 전정국의 번호였다. 필요하면 옆집 문 두드렸음 됐으니까. 방학식을 한지라 온 몸으로 해방감을 느끼며 집에서 후줄근한 차림으로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카톡이 와서 봤더니 전정국이었다. 넌 어떻게 띄어쓰기 맞춤법 하나도 안 틀리니? 진짜 오늘도 나는 이런 거에 심장 폭행을 당하는구나. 좀 빈틈을 가지라고, 허점이 존재하긴 해?
-응응 알았어 특별히!
그리고 또 내 작위적인 모습에 또 놀란다. 난 엄마 아빠를 제외한 모든 사람한테 단답하기로 유명했었다. 심지어 반 애들이 숙제 이거 맞냐,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 이런 문자를 보내올 때도 ㅇㅇ 혹은 ㄴㄴ으로 답장하고 이모티콘이나 느낌표같은 건 쓰지도 않았다. 무미건조한 여자. 딱 그거였는데 응응에 느낌표.... 느낌표라니.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지만 정국이 앞에선 여자 취급을 받고 싶은 걸 어찌하리오.
[그리고 지금 나와요]
-지금??
[어디 갈 데 있으니까 나와요]
-나 오래 걸리는데...
-괜찮아?
[안 꾸며도 예쁜데]
[1시간만 줄거니까 빨리 나와요]
[아님 그냥 불시에 들어갈 거에요]
엄마, 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 진짜. 이건 진심이야.... 안 꾸며도 예쁜데, 안 꾸며도 예쁜데, 안, 꾸, 며, 도 예뻐? 진짜? 온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바로 이거구나. 어쩌면 내가 전정국보다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근데 세상에 어떤 여자가 남자가 예쁘다고 해 주는데 기분 나빠하겠냐고. 하루종일 집에서 퍼질러 있고 싶었는데, 어느새 다 씻고 나와서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거울을 보고 있는 나였다. 나 그냥 네 노예 할게. 진짜.
"대충 나와도 되는데."
"이게 뭐가 꾸민 거야.... 1시간 가지곤 아무것도 못해, 진짜."
"거짓말."
"......거짓말 아니거든?"
"여기 뭉쳤다."
"......."
"애도 아니고. 급하게 나온 건 맞나보네."
전정국은 역시 눈치가 빠르다. 내가 5분만에 씻고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거든. 안 꾸몄다고 말하니까 거짓말. 이라고 짧게 대답한 전정국이 막 웃었다. 너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던 내 마음을 비웃진 말구 그냥 갸륵히 생각해 줘, 정국아.... 그리고 너무 빤히 보지 마라. 내가 널 어떻게 할 지도 모르니까. 이 구역에서 제일 위험한 여자가 접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국이가 계속 날 쳐다보더니 큰 손을 내 얼굴로 갖다 대더니만 눈가를 훑으며 여기 뭉쳤다, 하고 옅게 웃었다. 뭔가 부끄러운데 좋...고 난리야!
전정국이 성인 되니까지는 거의 일주일 반 정도가 남았다. 너 이제 앞자리 숫자 나랑 똑같아지는 거야? 신기하네.... 전정국이 자연스럽게 내 손에 깍지를 끼더니 이리저리를 쏘다녔다. 너 앞으로 혼자 다닐 때 츄리닝 같은 거만 입고 다녀!
"너 앞으로 혼자 다닐 때 후줄근한 옷만 입고 다녀. 알았지?"
"원래 혼자 다닐 땐 대충 입고 다니는데?"
"아, 그럼 그냥 밖에 돌아다니질 마."
"왜요, 갑자기."
"다 너 쳐다보거든?"
"질투해요?"
"......."
"왜 갑자기 말 안 해? 질투하지? 맞지?"
"......부정 안 할게."
"누가 그렇게 귀여우래요."
죽은 자는 말이 없어요, 정국아. 나 오늘 여기다가 묘비 세우려고.... 설렘사로 잠들다. 이렇게.
"누나는 누나 예쁜 것도 귀여운 것도 모르죠?"
"난 사실만 알거든."
"내 눈에만 그런거였음 좋겠다."
"......."
"아니면 누가 채갈 걸."
이게 이제 그냥 아무 표현이나 다 한다 이거지. 그러면 뭐 내가 좋아할 것 같냐? 내가 그런 말들에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크나큰 오예지, 정국아. 상승하는 광대를 애써 억누르며 전정국이 가는 대로 따라 갔더니 전정국이 대뜸 옷을 보기 시작했다. 또 검은색 옷 사려고 그러지? 잠시 무표정으로 돌아가 이 옷 저 옷 뒤져보는 정국이를 보니 왠지 모르게 또 심장이 바스러지려고 했다. 너랑 나랑 동갑으로 안 만나서 다행이다. 고3때 너가 자습하는 걸 봤다면 아마 고3내내 너 공부하는 것만 쳐다보다가 수능 말아먹었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애기 오빠 정국이는 사랑입니다.
"그거 사게? 대 봐봐."
"괜찮...죠?"
"응. 근데 왠일로 흰색이야?"
"지난번에 왜 검은색밖에 안 입냐고 그러길래."
"......."
"나도 똑같거든."
"뭐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건 누구나 그래요."
내가 어둠의 자식이라고 한 게 그렇게 걸렸니.... 정국아.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고등학생 맞는데. 그리고 검은색 별로라고 그런 거 아니야! 넌 검은색은 검은색대로 핫핑크면 핫핑크대로 잘 어울리는 흰색 같은 사람이라고.... 검은색 맨투맨이 얼마나 새,ㄲ...한데. 본심이 나올 뻔 했지만 그냥 다 잘 어울리거든, 이라고 무마했다. 난 늑대같은 남자라면 징그럽고 질색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인데 어째 이젠 내가 늑대가 된 것 같아....
"빨리 성인 됐으면 좋겠다."
"아주 그냥 노래를 불러라. 성인 되고 싶다고."
"성인 되면 선물 줘요."
"뭐 갖고 싶은데? 비싼 건 자체 심의로 빼라?"
"엄청 비싼 건데...."
"뭔데?"
"예를 들면 여자친구라던가."
"......."
"아니면 뭐 누나라던가...."
"......."
"줄 거죠?"
당연히 줘야지 정국아~ㅎㅅㅎ~~~~~
어차피 선택지는 예 아니면 예잖아여.
드디어 썸을 제대로 타는군욬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다음 편은 드디어 정국이의 미 ☆자 ☆탈 ☆출...이에요...
실제로 정국이가 미자탈출한다면 좀 꽁기하겠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빨리 했음 좋겠어요!!ㅋㅋㅋ
지난번 글에 댓글을 엄청 많이 달아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ㅜㅜ
이런 똥글에 댓글이라니... 매번 놀랍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헝헝ㅠㅠㅠ
암호닉은 제가 사실 지금도 급하게 글을 적는 거라 늘 미루는 것 같은데.. 아직 정리를 다 못 했어요ㅜㅜ죄송합니다ㅠㅠㅠ
암호닉은 늘 받슴다.. 이런 똥글 읽고 신청해주시는 것도 감지덕지한데 제가 어떻게 막 규제를 하고 그래여..
5화 때 다 몰아서 암호닉 적을게요!! 신청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ㅠㅠ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