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살..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쯧."
"크어억..!"
저벅저벅저벅
남자는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적막한 골목을 울리는 남자의 발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
처음으로 죽음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 01
"고딩?"
"..."
"봤지."
"..네."
"곤란하네."
하얀 볼에 점점이 튄 핏자국을 묻힌 채 곤란하다며 피실 웃는 남자는 전혀 곤란해보이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에 일순간 사로잡혔던게 언제였냐는 듯 탄소는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방탄고 다녀?"
'네."
윤기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허공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손을 올려 턱을 문지르는 손 때문에 턱이 피로 점철되었다.
손에도 피가 튄 것 같았다.
어둔 골목에 살짝 들어오는 약간의 빛만으로도 하얀빛을 발하는 남자의 피부에 진득한 피는
이미 검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골목 어딘가에는 이름모를 남자가 주검이 되서 나뒹굴고 있었고
그 남자를 죽인 살인범은 내 앞에 서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현실감없는 상황에 내 감각이 무뎌진 걸까.
"저기,"
"..음?"
"..."
방금 사람 하나 죽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며 심지어 장난스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남자였다.
범죄현장을 목격했고, 살인범이 바로 내 앞에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가 이렇게 빠른 안정을 찾은 이유는
이 남자 특유의 여유와 나른한 분위기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미소에 홀린 듯 멍하니 서 있다가 탄소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요?"
"오. 좋은 질문인데."
"..."
"어떻게 할까? 내가, 너를.."
"..."
남자는 나를 뚫어지게 봤다.
나를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때문에 왠지 숨이 가빠오는 듯한 느낌이다.
"무섭진 않아?"
"네?"
"..."
남자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글쎄요, 그냥..."
"..."
"왠지 안 죽을 것 같다는 느낌?"
"감 좋네, 꼬맹아."
"..."
"맞아, 죽이지 않기로 했어."
"..."
"목격자는 척살한다-."
"..."
"가, 조직방침이기는 한데. 뭐, 어때."
"..."
"재밌잖아?"
"..."
어디에서 신고를 하면 분명히 나를 죽일 것 같았다.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었지만 남자는 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은 서늘했다.
"제가 만약에 신고하면요?"
"..."
알고 있지만 괜히 물어봤다.
왠지 모르지만 그냥 지기 싫은 느낌이다.
"알면서 묻는건 버릇인가?"
"..."
"글쎄, 그냥...신고 안할 것 같다는 느낌?"
"..감 좋네요, 아저씨."
남자는 비로소 진짜 웃음을 보여줬다.
금세 사라지긴 했지만 탄소는 남자의 웃음이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진한 피냄새를 풍기며 스쳐지나갔다.
"아."
"네?"
"곧 조직에서 뒤처리 나와."
"..."
"그럼, ....아."
"네?"
바람에 흩어지는 말소리는 나에게 남자의 말소리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했다.
되물었지만 남자는 손을 들어 허공에 휘적였을 뿐이다.
# 다음 날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긴장했다.
이래뵈도 나는 살인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였고, 살인범의 범행사실을 숨겨주겠다고 약속해버린,
나도 범죄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지나치며 지난 밤 사건현장을 지나쳤지만 지워질 것 같지 않던 핏자국과 냄새는 사라져 있었다.
다만, 물로 흥건한 바닥만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야! 김탄소!"
"왜?"
"그거 들었어?!"
"아니? 학교 분위기가 좀 묘하게 뜬 것 같긴한데, 그거때문인가?"
"당연하지!!!"
"..."
커진 목소리와 커진 콧구멍이 정말 무슨 일이 있구나, 라는 것을 추리할 수 있게 해줬다.
얘가 이렇게 흥분한 거면 잘생긴 남자문제 밖에 없는데.
"하..씨발..나한테도 어떻게 이런 날이 오니? 응?"
"그래, 어떤 존잘남을 봤길래 그래?"
"그 존잘남들이 학교쌤으로 들어왔다고! 왜, 지난번에 촌지랑 성추행 혐의로 제 발로 나간 쌤들 있었잖아."
"아, 그랬지? 그렇게 잘생겼어?"
"하, 씨발..조오온나아아!!! 코피터질 것 같애..눈물 날 것 같기도 하고..흑..탄소야 나 진짜 너무 기뻐서.."
"그래. 자, 진정해."
"보러가자! 아니, 지금도 늦었어. 지금 교무실이 얼마나 빡빡한지 알아?"
"뭐하러. 나중에 어차피 볼건데."
"그 환상의 비주얼을 니가 봐야된다고!"
"..."
하지만 혼란스러워진 교무실과 학교분위기를 정돈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나서서 정리하는 바람에
교실안에 갇혀있어야 했다.
"..얼마나 잘생겼길래 연예인 온 거 못지 않아?"
"솔직히. 야..와. 스읍..완벽한 비주얼과 피지컬, 목소리가 삼위일체하기는 어렵지. 하지만 그 선생님들은
아니란다."
"..."
"나중에 보면 알 것이야."
탄소는 1교시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책상위에 붙은 시간표를 봤다.
수학이네.
"이제 너 수학 좋아하겠다."
"미쳤냐?"
"수학쌤 성추행으로 쫓겨났었잖아."
"헐, 아 미친..!!"
드륵-
"..."
문이 열리고 늘 같은 시간에 보던 얼굴이 아닌 익숙치않은 얼굴이 등장했다.
여학생들의 절제된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정장바지에 소매를 걷어올린 흰색 와이셔츠 차림에 수학교과서를 덜렁 들고 오는 사람은..
"..."
"와..."
골목길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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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라지지 않고 돌아온 작가입니다ㅎㅎ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용기가 샘솟네요.
뒷끝발이 약한게 단점이라 심히 걱정이 되지만..ㅠㅠ
포인트도 그렇고 분량도 적당한가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당..
그런데 막 접었다 폈다 그거 어떻게 하는거에요? 갈켜줘여..
아니면 저 계속 여기다 이렇게 주저리 쓸거라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