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누나~ 여기서 자면 죽어~"
으응... 누가 날 이렇게 부르냐...
"일어.. 어? 정신이 좀 들어?"
아, 머리아파. 근데 나 왜 누워있지. 그것도 길 한가운데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쯧쯧 젊은 사람이 낮부터...'를 연신 중얼거리며 나를 지나쳐간다.
아 여러분 저 술 마신거 아니거든요. 날 깨워준 남자는 아까부터 내 옆에 앉아 계속 싱글벙글 웃고만 있다. 뭐,뭐지? 정신병잔가.
그나저나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니까 나는 석진선배를 만나고 집에 가는 중이였고, 그러다 갑자기 이 남자가 벽에서 튀어나와서....
"ㄲ어라어ㅏ아아ㅣ아아이아ㅣ, 귀,귀신!"
생각난다.
나는 대학 선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옆 벽에서 사람인지 귀신일지 모를 이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에이 잘못봤겠지-라는 생각을 한 그 순간, 지나가던 사람 한명이 이 남자를 그대로 통과해 버렸었다.
그 다음은 뭐 아까 그 상황처럼 그냥 기절한 것 같다.
"음... 역시 나 귀신인건가?"
뭔 이건 멍멍이 소리야. 벽 통과하지 사람 통과하지...
"하하 내가 꿈을 꾸나. 헛것이 보이네."
어쨋든 난 지금 이 상황을 꿈이라 단정짓고 열심히 볼을 꼬집고 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가 생각이라도 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누나, 근데 누나 말고는 아무도 내가 안 보이나봐."
그 말에 볼을 꼬집던 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수근대고 있었다.
말도 안돼. 이렇게 생생하게 보이는데 나만 보인다고?
"아주머니~ 이 남자 안 보이세요?"
한 아주머니를 붙잡고 내 눈앞에 버젓이 보이는 이 남자가 보이지 않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굉장히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혀를 차곤 갈 길을 가셨다.
나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누나~ 어디가! 같이가!"
아 안들린다 안들린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거야 헛것이.
이 길을 분명 두명이 걷고 있는데 터벅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내것밖에 들리지 않는다. 소오름.
그나저나 이 남자 나를 졸졸 따라오며 계속 쫑알거린다.
"와, 신기해. 뭐 나름 소원성취네. 누나라도 나 볼 수 있으니까."
"이 동네는 바뀐게 없는 것 같아. 그치 누나."
"혹시나 해서 와본건데 누나가 아직도 여기 살 줄이야."
더는 듣고만은 못 있겠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휙 뒤를 돌았다.
"오~ ㅎㅎ 이제야 나 봐주네?"
오엠쥐 내 심장. 귀신주제에 웃는 게 너무 이쁘잖아. 안돼 안돼. 정신차리자. 정신. 날 데리러 온 저승사자일지도 몰라. 아멘아멘.
후욱후욱. 포커페이스.
"너 나 알아?"
날 아느냐는 내 말에 정체모를 남자의 얼굴이 조금은 시무룩해진다.
"탄소누나 아냐? 맞잖아. 설마 나 기억 안 나는 거야? 조금 섭섭하네."
기억나고 말고가 어딨어. 난 오늘 귀신이라고는 태어나서 처음봤는데 널 내가 언제....
순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 하나가 생각났다.
하얗고 이쁜 얼굴형, 예쁜 눈에 큰 코, 이 입모양.
고등학생 시절 자주 같이 놀던 옆집 중딩이였다. 몸이 많이 약했던...
지금도 그렇지만 다소 여자다움이 부족했던 어릴 적 나는 옆집 중딩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었다.
그러다 한번은 걔가 기절해서 엄마한테 궁둥이를 뒤지게 맞았었던 기억이...
이상하게 지금 이 귀신이 걔랑 너무 닮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중에는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가버린 괘씸한 애가 말이다.
"너, 너 설마, 전정국?"
"누나 너무하다. 난 단번에 알아봤는데. 그래도 누나..."
"보고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