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전정국]동갑내기 과외하기上
우와아아아.책상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내지 않은 핸드폰으로 끼리끼리 모여 게임을 하며 이기면 이겼다고 지면 졌다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이런 정신없는 교실 안에서 탄소는 자리에 앉아 두 손을 꼭 모은 채 한참 전부터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제발 제발 제발.오늘은 고3이라면 매우 중요한 모의평가의 성적표가 나오는 날.곧 있으면 담임선생님이 성적표를 가지고 종례를 하러 올것이다.다른 것은 다 필요없다.제발 영어만.모의고사라면 시험 보는 날 가채점을 통해 미리 점수를 알 수 있지만 탄소가 이렇게 초조하게 성적표를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마지막 시험 영어에서 시간이 부족해 한문제를 보기도 보지 못한 채 찍었기 때문이다.덩달아 너무 당황했던 나머지 몇번으로 찍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망할.이번 시험은 진짜 너무 어려웠다.영어가 주특기인 자신이 이만큼 어려워서 시간이 부족할 정도면 말 다했다.이미 가채점으로 채점해본 결과 일단 찍은 문제를 제외하면 다 맞았다.그렇다면 그 한문제만 맞으면..으-제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앞문이 벌컥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좀 조용히 좀 해라 이것들아"
아이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잽싸게 앉는 소리가 들렸다.선생님의 손에 들린 성적표로 추정되는 종이뭉치들을 보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조용해진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은 씩 웃었다.
"오늘 모의평가 성적표 나온 거 알지? 번호 순서대로 나와라"
"으으"
그제야 성적표라는 암울한 상황을 떠올린 아이들이 제각각 표정을 찌푸렸다.아 나 이번에 개망했는데.내가 더 망했을듯.지랄 마 이 새끼 맨날 이러면서 잘 봄.교실 곳곳에서 한두 마디씩 탄식의 소리가 들려 나왔다.성적표를 받고 울상을 짓는 아이들을 명하게 쳐다보던 탄소는 어느덧 자신의 차례가 되자 얼른 교탁으로 나갔다.
"오!김탄소 이번에는 영어 몇 점이냐?"
"탄소는 이번에도 백점이지 않을까?"
"아니야.그래도 이번에 어려웠잖아.쟤도 백점은 힘들걸?"
"쟤가 너랑 같냐?"
탄소가 교탁 앞으로 나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아이들의 목소리도, 시선도,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탄소는 어려서부터 영어를 해왔다.딱히 부모님이 영어에 욕심을 내신 건 아니지만 그냥 어렸을 때부터 영어가 좋았다.이러한 것에는 아마 가족의 영향이 클 것이다.엄마, 이모, 외삼촌까지 외가 쪽이라면 다 영어선생님 아니면 영어 관련 직업이니까 말이다.그래서 탄소는 이모나 삼촌들의 영어 교제나 영어로 쓴 논문을 보면서 자라왔다.그런 것들을 보며 영어에 대한 흥미가 점점 커졌고, 중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영어공부를 제일 열심히 했다.그러면서 원래의 영어적 능력과 노력이 더해지면서 항상 모의고사에서는 일등급을 놓친 적이 없다.하지만 이번 시험은 너무 불안했다.요즘 영어시험은 만점이 거의 일등급이라 한 문제라도 틀리면 일등급은 놓치기 쉬웠다.이 모의평가가 중요하기도 하고 또 중요한 만큼 여태까지 중에 제일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일등급과 더불어 만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탄소는 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얀 성적표를 보았다.쿵쾅거리는 심장에 눈을 꼭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제발.
"자, 조용하고.탄소 성적표를 보고 축하할 일이 있다.탄소가 이번 모의평가 영어 만점을 받았어.이번에 되게 어려웠는데도 잘해줬다.전교에 혼자야"
눈이 번쩍 떠졌다.방금 뭐라고?백점?그럼 찍은 게 맞은거야?미친 듯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잡으며 탄소가 얼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영어과목에 당당히 쓰여있는 숫자 1.앗싸!해냈다.만점이다!일등급이다!자리에 앉아서도 탄소는 1이라는 숫자를 감격의 눈으로 쳐다봤다.흐잉 장하다 김탄소!감격에 겨워 계속해서 성적표만 바라보고 있는데 교실 뒷문이 열리며 누군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야 전정국!너는 성적표 나눠주는데도 늦을래?체육이 다가 아니라 했지"
예예 선생님.죄송합니다.또 체육을 하고 왔는지 앞머리가 땀에 젖어 티셔츠에 체육복 차림의 전정국이 선생님의 불똥 같은 잔소리에 대충 대답하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그럼에도 선생님의 잔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너가 아무리 체대라고 해도 영어는 해야 된다니까?너 이번 성적표 영어점수 좀 봐라 가관이다 임마"
전정국이 교탁에 나가 성적표를 받자 담임선생님이 전정국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아아 아파요 쌤.아프기는!
"너 저번 상담 때 선생님이 영어 하라고 했지.체육 쪽으로는 탑이면서 영어만 하면 되는데 왜 그러냐.니 체육실력이 아깝지도 않냐?영어만 잘하면 대학은 제일 좋은 데로 갈 텐데"
"안되는데 어떡합니까 쌤.진짜 영어는 외계어라니까요.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에휴 저놈을 어떡하면 좋아.집중 과외라도 받으면 오르려나?"
"소용없습니다 쌤.영어는 무슨.남자라면, 체대라면!체육으로 승부를.."
"아 시끄러!남자 같은 소리하네.가만있어 보자 과외라..괜찮은데?김탄소!"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아이들과 같이 선생님과 전정국의 톰과 제리같은 모습에 웃고 있던 탄소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네?"
"너가 전정국이 영어 좀 가르쳐줘라"
"아 쌤!저 영어 싫다니까요!"
"조용히 안 해 진짜?"
정작 당사자인 탄소는 자신을 쏙 빼놓고 열렬히 아웅다웅하고 있는 선생님과 전정국을 바라보았다.아니 쌤..?과외라니요?이대로 분위기에 휩쓸려 진짜 과외를 해야 하는 건가 탄소는 심히 불안했다.
"저..선생님"
"응?왜 우리탄소"
"와 우리탄소래.너무 차별하시는거 아닙니까 선생님?"
"차별은 무슨.너가 탄소처럼 영어를 만점을 맞아봐라.아주 내가 너한테 뽀뽀를 해준다"
"그건 제가 아니고요.아 근데 쟤 백점이에요?와 대박.너 되게 잘한다"
갑자기 선생님과 얘기하다 말고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칭찬을 해오는 전정국에 탄소가 고개를 휙 돌렸다.아 민망해.전정국과는 같은 반이 되고 나서 말 한마디 해본 적이 없다.전정국은 친구가 많았다.물론 남자친구들.전정국이 여자와 대화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정말 단 한 번도.전정국의 생활은 단순했다.수업시간엔 운동장, 쉬는시간엔 교실.수업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체력단련이나 축구 혹은 농구를 했고, 쉬는시간에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모여있거나 퍼질러자는 모습만 보여주었다.그 단순한 하루 일과에서 전정국 옆에 맴도는 아이들은 남자애들뿐이였다.말 한마디 못해본 나도 전정국을 이렇게 자세히 아는 이유는 전정국이 인기가 꽤 많기 때문이다.막 학교를 휩쓸 정도는 아니지만 잘생긴 얼굴에 체대라며 매일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으면 여자애들이 몰려서 쳐다보곤 했다.정작 자신은 여자한테 관심이 하나도 없어 자기가 인기가 많은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어쨌든 탄소 너가 정국이 영어 좀 가르쳐주라 응?고3이라 바쁜 건 아는데 그냥 얘 상대로 너가 공부한 거 정리라도 해주는 셈 치고 한번 가르쳐봐"
정말 안타깝다는 듯 말씀하시는 선생님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하긴 체대는 영어성적만 필요한데 그게 안 나오니 안타깝지.들어보니 체육 실력은 이미 뛰어난 것 같은데.고개를 돌려 전정국을 바라보니 선생님 한번, 나 한번 번갈아보며 울상을 짓고 있다.아..진짜 영어 싫어하나 보다.하기싫어라는 말이 역력히 드러나는 표정에 웃음이 나오려 했다.근데 본인이 하기 싫어하는데 해야하나?선생님께서는 가르쳐주라고 하긴 했지만 격렬히 싫어하는 전정국을 보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처했다.선생님께 전정국이 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어떡하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가르치라고 하실게 분명하고,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 애를 앉혀다가 가르쳐줄수도 없는 노릇이였다.아 어쩌지?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아이들에게 마저 성적표를 나눠주시고 금방 반을 나가셨다.아이들은 하나둘씩 짐을 싸서 자율실로 가거나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향했다.마치 나한테만 폭풍이 휩쓸고 간듯했다.전정국의 자리를 보니 성적표와 가방이 책상 위에 이리저리 놓여있고 자리 주인은 이미 운동장으로 나간듯했다.후우 한숨이 나왔다.나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
학원에 가는 날이라 석식만 먹고 터덜터덜 학교를 나서는데 저 멀리 운동장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탄소?탄소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가 이리저리 찾고 있는데 운동장 저 끝에서부터 전정국이 달려오고 있었다.탄소야..?자신의 이름이 전정국 한테서 나오자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 전정국의 축구화가 들어왔다.헥헥 거리는 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전정국이 힘들다는 듯 다리에 손을 올려 몸을 구부리고 있었고, 그 뒤로는 운동장에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체대입시 아이들이 보였다.아마 여자와는 말도 안 하고 가까이 하지도 않는 전정국이 먼저 여자를 불러세워서 그렇겠지.그저 전정국과 자신은 영어를 가르쳐주고 배우는관계일 뿐인데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니 괜스레 부끄러워졌다.미쳤어 미쳤어.괜한 생각을 한 자신이 바보 같아 다시 전정국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전정국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이름이 탄소..맞지?아까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던 거 같은데"
"어?응 맞아.."
"나한테 영어 가르쳐줄 거야?"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니.당황하여 전정국과 마주치고 있던 눈을 돌렸다.한다고 해야 돼?말아야 돼?괜히 한다고 했다가 자긴 하기 싫다면서 안 한다 하면 어쩌지?그럼 되게 쪽팔린데..한참 뭐라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있자 전정국이 말을 이었다.
"혹시 너 공부에 방해 안되면 가르쳐주라"
"어?"
뜻밖의 대답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선생님 말대로 영어만 잘하면 좋은 대학 갈수 있는 거잖아.이왕 가려면 멋있게 좋은 데로 가야지"
벌써 좋은 대학에 들어간 듯 으쓱한 표정을 짓는 전정국에 실없는 웃음이나왔다.알겠다는 내 대답에 고맙다며 환히 웃는 전정국이다.
"근데 정말 공부에 방해 안되겠어?아니면 그냥 선생님 말처럼 진짜 너가 공부한 거 정리하는 식만이라도 괜찮아"
"아니야.어차피 뭘 가르쳐주던 나한테는 다시 한번 정리할 기회야.그러니까 이왕 가르쳐주는 거 너한테도 도움 되고 나한테도 도움 되게 너가 모르는 걸 가르쳐줘야지.아마 내가 공부하는 건 지금 거의 영어 처음 시작하는 너한텐 너무 버거울 거야.그러면 하나도 도움 안 될껄?너도 체육 하는 시간 쪼개서 영어하는 걸 텐데 그럼 너무 아깝잖아"
"응?응.."
"넌 영어 중에 뭐가 제일 어려운 거 같아?너가 어려운 부분 말해주면 일단 그것부터 시작하자.내가 예전에 영어공부하면서 정리한 노트 있거든?그거 찾아보면 될 거야.아님 그냥 아예 처음부터 시작할까?"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전정국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한참 내가 말하는 것을 보던 전정국의 얼굴이 점점 흔들렸다.이상한듯 갸웃거리는 나에게 아직도 약간 멍한 상태로 말한다.
"아니 그게..너, 너 엄청 착하다"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하는 전정국에 그게 뭐냐며 어쨌든 앞으로 잘해보자고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와, 방금은 또 엄청 예뻤..아니 아, 뭐래.맞아맞아 앞으로 잘해보자.나야 말로 잘 부탁해.하하하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전정국은 횡설수설 내가 내민 손을 맞잡더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갔다.뭐지?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던 탄소도 이내 다시 교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
전정국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한 시간은 점심 자율시간.담임선생님이 특별히 나에게 전정국을 부탁한 것이기 때문에 전정국과 나는 점심 자율시간에 3학년 상담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허락을 맡았다.일단 어제 집에가서 예전에 내가 정리해뒀던 노트를 싹다 가져오긴 했는데, 뭐부터 가르쳐줘야 할지 모르겠다.한참 지루하게 이어지던 문학시간에 창밖을 보자 역시나 전정국이 있다.햇빛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그것도 이 한여름에 땀이 뻘뻘 나도록 뛰고 있는 전정국은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쟤는 덥지도 않나.상대방에게 공을 뺏어 빠르게 공을 몰아 슛으로까지 연결하는 전정국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하긴, 더워도 좋으니까 하는 거겠지.
어제 전정국과 말해본 결과 전정국은 정말로 체육을 좋아하는 듯했다.또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가 있는듯했고.그러니까 그렇게 싫어하는 영어도 체육을 하기 위해서 배우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뭐가 됐든, 이렇게 된 이상 전정국에게 정말 잘 가르쳐주고 싶었다.전정국이 체육을 좋아하는 만큼 대학도 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영어를 잘 가르쳐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게다가 탄소의 꿈은 원래 영어선생님이었다.학생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영어를 가르쳐준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할 것 같았다.그러한 교사에 대한 꿈을 향한 첫걸음이 전정국과의 수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그래 할 수있어!꼭 전정국이 수능에서 영어를 잘 보게 하겠다는 결심을 남몰래 다지는 탄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