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글 형식입니다.
nothing without you-10cm
엘규
끝자락 조각 |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새벽.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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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벽을 실감시키는 듯 쓸데없는 눈물은 나의 시야를 가려오고 있다. 안 되는데. 내가 널 만나게 해준 그 손, 내가 널 바라보게 된 그 눈, 내가 널 사랑하게 된 그 입술까지. 한순간도 놓치면 네가 아닌 내가 후회할 것이다. 너에게 우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지만, 네가 날 떠나는 모습도 보기 싫었지만. 가슴으로부터 차오르는 무거운 전율에 눈가가 흔들렸고, 결국 뜨거운 눈물이 너를 보여주었다.
하얗도록 맑은 하늘에 봄빛보다 투명하게 하얀 너는 봄의 풍경화 같았지. 세상과 너는 그렇게 조화로웠고 이제 너는 풍경 속으로 스며 들어가네. 그에 반해 너와 나는 어떤 그림이었을까. 우린, 아니 적어도 나는 너에게 충분히 큰 존재라고 생각했었어. 같이 색을 만들어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그런 관계인 줄 알았지. 그런데 내가 크게 착각했구나. 유성물감을 섞어 종이를 넣어 찍어 내는 마블링처럼 처음부터 우리 둘은 함께 될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같은 물감이니까 그냥 단지 같은 물감이라고 생각해서 함께인 듯 느꼈지만, 너와 나를 찍어 낸 종이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착각. 그 무모하고도 광범위한 것에 난 빠져있었고, 넌 물러서 있었구나. 그 구덩이 속에서 난 구덩이를 더 넓혀만 갔고, 넌 하마터면 빠질까 두려워 더 물러섰지.
이제야 깨달은 나를 용서해 줘. 아니, 이제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해 줘. 너와 내가 머물렀던 이 시간은 나에겐 어떤 경험보다도 새롭고 놀라웠어. 그래서 이렇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어.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숨이 막혔던 나의 이 일상에 손을 내밀고 먼저 다가와 준 너를 정말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사랑해. 네가 나에게 베푼 사랑이 나의 고통과 맞바꿔 갔던 걸까? 이렇게 된 건 어쩌면 다 나 때문이지. 내가 너를 나의 안으로 발을 들여놓게 한 것 굉장히 후회스럽다. 네가 한 이 선택의 시발점이니까.
이게 너의 선택은 아니었겠지, 성규야? 이것만은 대답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나는 너를 두고 떠날 수 없을 것 같은데, 너는 아니었네. 행복해. 그곳에선. 아직 단정 짓기엔 미안하지만 넌 내가 가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 이곳에서도 그랬으니까. 또 내가 훼방 놓을까 봐 두렵기도 해. 그곳에선 남우현 같은 배필을 만나기 바라. 이게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참. 야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너 없인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할 것 같긴 해. 그래도 네가 못 이룬 그 꿈들 내가 이뤄줄게. 그리고 당당히 너에게 찾아갈게. 너의 꿈을 가지고.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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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상황없이 짧은 조각이에요.
제가 이 글을 쓰며 생각했던 장면은 흰 솜처럼 뽀얗고 순수했던 성규를 갑갑한 사회에서 뛰쳐나온 명수가 만나 서로 정반대인 둘이 이어가는 이야기였어요.
그런 성규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고 잊고 싶었던 기억이 있던거죠.
성규도 원래는 명수처럼 사회에서 뛰쳐나와 순수한 청년이 된 여정이 있는데 명수가 들춰버렸고, 그로 인해 둘은 틀어지고 성규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그만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이야기를 구상했었어요.
짧은 조각글에 나왔듯이 우현이도 나와 삼각구도를 형성하는 스토리이죠.
이 글 제목에는 쓰지 않았는데 혹시 글을 읽으며 불편하셨더라면 이야기 해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