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르(noir)
w 려안
: 검은. 음산한. 어두운.
증오는 검다.
증오는 강하다.
증오는 누아르의 원동력이다.
" 민윤기 너가 왜 여기,. "
민윤기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목을 이끌고 긴 복도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뒤에서는 우리를 쫒아오는 건지, 까만 양복을 입은 덩치의 남자 세명이 따라붙었다. 이대로 나가면 주인이 눈치챌거야. 그럼 김석진이 위험해. 나의 말에 민윤기는 급하게 꺾어지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기 여자화장실인데..? 그런와중에도 이것저것 따질 정신은 있는지 주책맞은 내가 민윤기에게 물었지만 그는 가볍게 내 말을 무시하고 화장실의 가장 끝 칸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 ... "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민윤기는 가쁜 숨을 내쉬었고 곧 그런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눈을 피해버렸다.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물어보고 싶은게 한두가지가 아닌지라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겨우 입을 떼는데, 그것마저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는 민윤기의 행동에 관둬야했다. 민윤기가 조용히하라는 제스쳐를 취하자마자 화장실로 들어오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얼마나 좋으면 저걸 눈치챈거지. 내가 새삼 놀라 그를 올려다보는데 얼마지나지않아 여러명의 발자국소리와 함께 낮고 굵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쥐새끼 같은 놈들. 어디간거야? "
" 정말 단순히 술에 취해서 잘 못 찾아온게 아닐까? "
" 어쨌든 대통령께서 그 여자를 잡아오랬으면 뭔가 있는거겠지 "
그 여자라면 나인가? 대통령이 내 얼굴을 기억해낸거야? 놀란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윤기를 올려봤지만 민윤기는 여전히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거지. 점점 우리에게로 가까워지는 남자들의 발자국 소리에 더욱 숨을 죽이는데 아까 화장실에 들어왔던 여자들의 괴성에 순식간에 화장실이 시끌벅적해졌다. 당신들 미쳤어? 신고하기 전에 당장 나가! 여자들이 소리를 빽 지르자 남자들은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뱉으며 걸음을 돌렸고 동시에 나도 참고있던 숨을 겨우 몰아쉬었다.
" 저..민윤기..난 그러니까..거기에 사람이 있다을거라고 생각을.. "
" 김여주 "
" ..응? "
곧 남아있던 여자들이 모두 나간 뒤, 소란스럽던 화장실이 조용해지자 내가 이런저런 변명들을 늘어놓기 바쁜데 민윤기가 대뜸 내 이름을 불렀다. 괜히 긴장한 내가 더듬거리며 답하자 민윤기는 자기가 쓰고있던 검은색 모자를 벗어 내게 씌워주며 말했다. 다시 할 수 있겠어? 그러더니 입고왔던 까만색 후드집업까지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는 민윤기다. 다시 한다면, 씨씨티비 설치 말이야? 내가 묻자 민윤기는 후드집업 모자까지 마저 씌워주며 답했다.
" 어. 지금쯤 다시 가면 룸에 아무도 없을거야. 나 믿고 갔다와. "
05. 이유
나는 민윤기가 빌려준 모자와 옷 덕분에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다시 VIP룸으로 향했다. 어쩐 일인지 다시 간 그곳은 민윤기의 말대로 금세 텅텅비어있었다. 그 사이에 민윤기가 무슨 수를 쓴건지는 몰라도 나는 실수를 반복하지않기 위해 서둘러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총 세 대였는데, 최대한 들키지 않으면서도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곳에 설치해야했다. 내가 두 대를 먼저 설치하고 나머지 하나를 높은 곳에 설치하기 위해 까치발을 들어가며 낑낑대는데 누군가 내가 들고있던 카메라를 뺏어들었다. 발걸음 소리도 듣지 못한 탓에 내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시야를 가리는 남자의 가슴팍에 벽으로 몸을 최대한 밀착시킨 뒤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 키도 작은게 "
" .....전정국..? 넌 또 왜 여기있어..? "
" 윤기형이 너 데리고 가라해서. "
아무리 들어도 네살이나 어린게 반말을 참 자연스럽게 한단 말이지. 곧 전정국은 수월하게 카메라를 설치한 뒤 나를 이끌고 급하게 룸 밖으로 나섰다. 빠르게 걷는 탓에 복도를 지나가던 중 험악하게 생긴 남자와 어깨를 부딪혀버렸다. 어이, 애기는 이런 곳 말고 엄마 품에 가서 놀아야지. 놀란 전정국이 아파하는 나를 살피는데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어려보이는 전정국을 비꼬는 듯 말했다. 정국아 참아, 빨리 빠져나가는게 중요해. 내가 그를 타일렀지만 전정국은 이미 그 남자에게 바짝 다가가 멱살을 붙들었다. 생각보다 강한 전정국의 힘에 놀란 남자가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겁에 질린 얼굴을 했다. 전정국은 멱살을 잡은 팔에 더욱 힘을주어 남자를 강하게 벽으로 밀어붙이며 낮게 읊조렸다.
" 짤리기 싫으면, 그 더러운 주둥이 조심하세요. "
" ..이..이새끼가... "
" 여자친구 같은데 옆에있는 숙녀분 앞에서 개쪽당하기 싫으면. "
" 전정국 너 뭐하는거야? 차는 어디서 난거고? "
" ... "
" 말 좀 해봐, 너 운전 할 줄 알아? "
" 어 "
미성년자가 어떻게 운전을해! 면허증도 없으면서 미친거아니야? 까만 승용차 조수석에 올라탄 내가 계속해서 종알거리는데 전정국은 그런 내게 안전벨트를 메주며 말했다. 시끄러우니까 입 좀 다물어. 곧 그의 시선이 내 입술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기도 잠시, 전정국은 자신의 노골적인 시선에 벙찐 나에게서 멀어지며 아무렇지않게 자신도 안전벨트를 멘다. 너무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에 계속해서 전정국을 쳐다보았지만, 전정국은 아랑곳하지않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 자. "
차가 출발한 뒤로 계속해서 불안에 떨던 나에게 전정국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까만 지갑을 꺼내던졌다. 지갑 안에 민증이랑 면허증 있으니까 보던가. 전정국의 말에 나는 두둑한 그의 지갑을 열어보았다. 지갑 안에는 현금 대신 카드 몇 장과 함께 휴대용 나이프와 라이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보통 19살짜리 남자아이의 지갑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새삼 전정국이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면허증과 민증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 이상하다. 위조 민증이랑 면허증 잡아내는건 완전 내 전문이었는데.. "
" 진짜랑 재료, 과정 다 똑같이 만들어진거니까 못 알아내는게 당연하지 "
" 그게 가능해? 누가 누아르 아니랄까봐.. "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말버릇 처럼 나와 누아르를 분리시켜 말하자 전정국이 피식 웃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숙소로 향하는 내내 전정국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궁금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민윤기는 나와 김석진이 출발한 뒤 대통령의 움직임을 살피던 중, 원래 대통령이 오늘 오후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별장에 나타나지않자 주변인들을 조사하던 중 그가 와인바로 향한 걸 알고 즉시 내게 달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김석진은 나와 전정국이 빠져나오기 직전 주인에게 잠시 통화를 하고 오겠다고 말한 뒤 숙소로 향했다고 했다.
" 아..맞아 이걸 안물어봤네 "
" ... "
" 내가 다시 룸에 들어갔을 때, 왜 아무도 없던거야? 혹시 알아? "
나의 말에 전정국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그런 반응에도 꿋꿋히 전정국을 졸라댔다. 민윤기가 뭐 어떻게 한건데? 응? 전정국은 앞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게로 옮기며 말했다. 너는 핸드폰도 없냐. 그의 말에 자연스럽게 손이 더듬거리며 주머니로 향했지만 생각해보니 납치가 된 이후로 내 핸드폰을 본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에 혼란이 오는데 전정국이 라디오 전원 버튼을 누르더니 주파수를 빠르게 맞췄다. 곧 속보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s기업이 세금 면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유영석 대통령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주요 관심거리인데요‥ `
" 이렇게 언론이 난리가 났는데 와인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가겠다. "
" ...이걸 민윤기가 꾸민 일이라고? "
" 정확히 말하면 꾸민 일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힌거 뿐이지. 기자들한테 이런 먹잇감 던져주면 좋다고 받아먹으니까. "
새삼 다시한번 누아르의 스케일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 여태 내가 몰랐던 것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고 느껴졌다. 이번에는 워낙 급했던거라 윤기 형이 가지고 있던 카드를 쓴거 같은데, 그래도 둘이 뒷 돈을 주고받은 확실한 증거는 아직 풀지않은 상태라서 금방 조용해 질거야. 전정국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무언가 내가 굉장히 무서운 일에 휩싸인 기분에 느낌이 이상했다.
" 전정국 근데 나 또 궁금한거 있는데..하나만 더 물어봐도돼? "
" ... "
" 너는 어쩌다 누아르가 된거야? 나이도 어린데.. "
" ... "
" 또 대답안해주네, 이제 놀랍지도않다. "
내가 투덜거리는 사이 우리를 태운 차는 숙소 1층, 실내 주차장으로 미끄러지 듯 들어갔다. 곧 전정국도 능숙하게 차를 구석에 몰아넣었고 시동을 끄며 말했다. 물어봐도 되냐는 말에 된다고 한 적 없다, 나는. 전정국은 그렇게 말하면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그대로 차 문을 닫는가 싶더니 다시 활짝 열어 고개를 차 안으로 내밀며 내게 말했다. 야 안내려? 그대로 잠구기 전에 얼른 내려. 나는 전정국의 말에 후다닥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정호석이였으면 직접 차 문을 열어주고도 남았을 거다. 항상 주변에 매너가 좋은 놈들 뿐이라 내가 잠시 정신을 놓았었나보다.
" 전정국 너는 진짜..좀 착하게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 "
" ... "
" 내가 마음에 안드는건 알겠는데..그래도..나 생각보다 마음 여리거든..!? 그렇게 말하면 상처도 받는다고.."
내가 전정국의 뒤를 쫒아 계단을 올라가며 말하자 세,네 계단 정도 더 높이 올라가던 전정국이 뒤를 돌아 나를 내려보았다. 화를 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괜히 말했나 싶기도 해서 그의 시선을 피하는데 전정국이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와 나를 더욱 빤히 바라보았다. 전정국의 분위기에 눌린 내가 시선을 둘 곳을 정하지 못하는데 전정국이 덥석 내 손목을 낚아채며 말했다.
" 나 너한테 싫다는 말 한적없는데 "
" ... "
" 가자 "
***
![[방탄소년단/조직물] 누아르(noir); 05화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80921/4e0606235775ca669e13b227baa28ee3.jpg)
" 아빠 배고파요.. "
" ... "
" 엄마는요? 엄마는 어디갔어요? "
" 입닥쳐! 집나간 여편네 뭐가 좋다고 계속 찾는거야! "
내가 엄마 얘기를 꺼낼 때 마다, 아버지는 나를 인정사정 없이 때리셨다. 이곳저곳 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고 뼈가 부러지는 일도 흔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계셨을 때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 엄마와 함께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신 이후 매일 같이 알콜을 달고 사셨다. 술을 마시고, 엄마와 나를 때리고. 그것들이 오직 아버지 삶의 전부였다. 어머니는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10살이 되던 해에 집을 나가셨다.
" 선생님, 분명 전정국이 제 지갑을 훔친 범인이에요! "
" 전정국은 어딘가 무서워요..이상하고.. "
반 아이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내 이름은 밥먹듯이 거론되었다. 문제아. 그건 나와 딱 맞는 타이틀이었다. 다른 문제아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집단으로 몰려다니거나 소위 말하는 일진 흉내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항상 혼자 다닐 뿐. 어둡고 차가운 성격인 내 곁에는 아무도 다가오려 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하루에 한끼라도 먹을 수 있었던 건 학교 친구들의 지갑을 훔친 덕분이다. 잘 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만 두기에는 내 삶에는 이미 잘 못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증오 속에서 치열하게 매일 매일을 살아나갔다.
" 꼬맹이는 이런 곳에 오면 안돼요.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라, 응? "
" ...아저씨들이 죽인 사람을 알아요. 사진도 있구요. "
중학교 3학년, 내가 알바를 하던 피씨방에서 우연히 평범해보이지 않는 남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머리를 빡빡 밀은 대머리였고 몸은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목에서 부터 두피까지 흉측한 문신이 덮혀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는데 귀는 물론 입술과 코 까지 모조리 피어싱을 뚫은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동네 양아치인 줄로만 알았는데 우연히 둘 중 한 사람이 전원을 끄지않은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완벽하게 목숨을 끊어놓았습니다. 증거사진은 첨부파일로 올려두겠습니다. 입금은 이번 달 이내로 부탁드립니다. '
평범한 사람의 메일 내용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않았다. 나도 모르게 사진과 메일을 저장해 두었고 다음주, 다시 우리 가게를 찾아왔던 남자들의 뒤를 무작정 쫒아갔다. 처음에 남자들은 담배를 태우며 내게 귀찮다는 듯 말했지만 내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꺼내자 그들의 태도는 백팔십도 변했다. 온통 문신을 한 남자가 나의 멱살을 잡아 올리더니 물었다.
" 어디서 젖비린내 나는 새끼가 기어들어와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어? "
" 아저씨들이 하는 일..저도 하고싶어요.. "
" ...뭐? 하, 진짜. 이새끼가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
내 멱살을 쥐고 있던 남자는 그닥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 덕분에 나도 남자를 있는 힘껏 밀어내어 겨우 그에게서 벗어났고 남자는 꽤나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저도 그 일 할 수 있게만 해주시면 증거는 싹다 지울게요. "
" ... "
" 진짜 잘할 자신있어요. "
그렇게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나는 겉잡을 수 없이 성장해갔다. 점점 내 영향력이 커지자 이름이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최연소 킬러. 최연소 청부살인업자 등등. 내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는 늘어만 갔다. 그리고 나는 발을 들여놓던 그 순간 부터, 물론 지금 까지도. 돈을 모으는데에만 관심을 두었다. 이제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는데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것이 내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더욱 일거리를 많이 찾는 이유였다.
열여덟살이 되던 해에 나는 남준이 형을 처음 만났다. 그는 이미 이 바닥에서 유명한 누아르라는 조직의 보스였는데 내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걸어왔다. 덧붙여, 더이상 사람 죽이는 일은 거의 없을거라며 말이다. 사실 내 자신을 돌볼 새 없이 달려온 몇년 동안, 내 속은 망가질대로 망가져있었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죄책감이 없다고 믿었는데, 그 죄책감은 방심한 틈을 타서 봇물 처럼 터져나왔고 나는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되었다. 그러던 중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남준이 형이었다.
증오를 안에만 가두어만 놓으면, 그 안은 썩어버릴 수 밖에.
누아르는 증오를 표출하면서 시작되는거야.
형이랑 같이 갈래?
나는 아직도 남준이 형의 그 말을 잊지 못한다.
***
" 김여주는 아직 자요? "
" 그건 너가 알아서 뭐하려고. "
학교를 가기 전 나는 무의식중에 김여주의 방으로 향했다. 때마침 김여주의 방에서 나오는 호석이 형과 맞딱드렸고 나의 물음에 호석이 형은 날카롭게 받아쳤다. 아무래도 김여주는 아직 자고있는 것 같았다. 어제 첫 임무였으니, 힘들만도 했다. 나는 호석이 형에게 별 일 아니라는 듯 답하고 아쉬운 걸음을 옮겨 현관으로 향했다. 처음 김여주가 숙소에 온 날, 내게 왜 밥을 안먹고 가냐고 물었던 것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 주는 건 처음이었다.
" 진석이 아이패드가 사라졌다는데, 누구냐. 솔직하게 말하는게 좋을거야. "
나는 평소와 똑같이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아서 두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어떤 학교를 가든 학교에서는 내가 출석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는 탓에 내가 수업을 듣지않거나 다른 딴 짓을 한다하더라도 신경을 쓰는 선생님은 없었다. 또 내게 느껴지는 싸한 분위기 탓인지 아이들도 곁에 다가오는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김여주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는데, 누군가 교탁을 두드리더니 반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 어떤 거지새끼냐고, 빨리 말안해? 오늘 점심시간에 교실에 있던 새끼 누군데. "
길게 찢어져 올라간 눈에 오렌지색으로 염색을 한 남자아이 하나가 반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 아무리 백날 떠들아봐도 도둑이 제 발로 걸어나오겠냐, 멍청한 새끼. 딱 그런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데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그제서야 오늘 점심시간에 혼자 교실에 남아 잠을 잤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런 시선에도 그닥 큰 동요없이 교탁 앞에 서있는 주황머리에게만 시선을 두었다.
" 야. 너 이름 뭐냐? 전학온지 얼마 안된 새끼가 뭘 꼴아봐. "
" ... "
그의 말에도 내가 시선을 거두지않자 주황머리는 씩씩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아올리며 말했다. 너가 훔쳤냐? 어? 진석이 아이패드 내놔, 거지새끼야. 표정도 존나 띠꺼워가지고 그렇게 야리면 어쩔건데? 힘이 부족한건지 주황머리는 내 멱살을 잡았을 뿐 나를 들어올리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참을만 했지만 주황머리의 조롱이 점점 심해지자 옛날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재새끼. 도둑놈. 수백번도 더 들은 그 말을 내가 잊을리 없었다.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나보다 키가 작았던 주황머리는 발꿈치를 들어올리면서 까지 내 멱살을 놓치않았다.
" 삼초 줄게. 이거 놔. 놓는게 좋을거야. "
" 니네 엄마한테 가서 사달라하지, 병신 같이 친구 물건을 훔치,. "
꺄악-!
내가 그대로 주황머리의 목을 조르며 강하게 바닥으로 내던지자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교실을 메웠다. 주변에 몰려있던, 주황머리의 친구놈들로 추정되는 남학생들이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앓는 소리를 내는 주황머리에게로 다가가 그 앞에 쭈구려 앉은 뒤 교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평소 현금은 거의 들고다니지 않는 편이었지만, 지갑을 열어보니 십만원 짜리 수표 한장이 있었다. 나는 그 수표를 꺼내 주황머리의 벌어진 입에 틀어넣으며 말했다. 동시에 주황머리의 얼굴이 징그럽게 일그러졌다.
" 이걸로 가서 머리 다시 물들이고, 다시 오면.. "
" ...으윽! 하,하지..ㅁ.. "
" 그때 너랑 너 친구. 아이패드인가 뭔가 사줄테니까 입 좀 다물어. 애새끼 마냥 찡찡거리지말고. "
나는 수표를 그 놈의 입안으로 완벽하게 쑤셔넣은 뒤 다시 지갑에서 휴대용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곧 다시한번 듣기 싫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주변에서 보고만 있던 주황머리의 친구녀석들도 얼굴이 반은 사색이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주황머리의 표정이었다. 나는 가장 짧은 칼을 빼낸 뒤 주황머리의 쇄골 주위로 가져다댔다. 내가 엄마가 없어서 사달라고 말을 못해. 어쩌냐. 내가 작게 읊조리며 칼 끝으로 주황머리의 살곁을 스치자 놈이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넌 엄마 있어서 좋겠다. 그치?
***
눈을 떠보니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허기진 배를 붙들고 주방으로 나가자 도시락 하나가 눈에 띄었다. 뭐야, 이거 내가 완전 좋아하는건데? 평소 내가 즐겨먹던 음식을 아는 건 정호석 뿐이었다. 나는 신난 표정을 한 채로 당장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렇게 도시락을 거의 다 먹어갈 때 쯤, 집으로 전화가 왔다. 워낙 이곳이 넓은 탓도 있고 전화기가 어디 설치되어 있는지도 몰라 한참을 헤맨 끝에 김남준 방에 있던 인터넷 전화기를 찾아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
" 누구,. "
- ...김여주학
" 전정국이야..? "
- 학교로 와줄 수 있어?
교에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당장 전정국의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칼을 쓰다니, 어제 차에서 봤을 때 뺏을 걸 그랬나. 내가 뺏으려 해도 전정국이 가만있지는 않았겠지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오랜만에 형사 뱃지도 함께 챙겨들었다. 가는 길에 민윤기에게 전화를 하니, 나와 전정국을 남매인 것 처럼 가족관계증명서를 위조시키겠다고 했다. 제발 아는 사람만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 정국아..! "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정국의 표정은 멀쩡해보였다. 오히려 주변에 앉아있던 선생님들과 피해자 학생의 부모로 추정되는 여자의 표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난해보였다. 내가 전정국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모여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전정국도 잠시 나를 힐끔 바라보았지만 바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무슨 일일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정국은 프로였고 절대 아무데서나 실수를 범할 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 그러니까..정국이가 칼로 피해자 학생의 몸에 상처를 냈다는거죠? "
" 완전히 찌르려던 걸 제가 먼저 발견해서 그정도에서 멈췄죠 "
여선생의 억양에 날이섰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전정국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이제보니 전정국도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칼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엄청나게 준 모양이었다. 아마 전정국의 손에 상처도 꽤나 깊을 것이다. 다시 말을 이어가는 여선생에 나는 다시 그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두 분이 합의하신다고 해도 아마 전정국 학생에 대한 징계는 피하지 못할거에요. 여선생의 말에 나는 차분히 답했다. 사실 전정국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려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놀랄 일도 아니었다.
" 어떤 징계든 상관없습니다. 합의금은 얼마로 보시겠어요? "
" 사실 합의금이고 뭐고, 바로 경찰에 넘기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
피해자 측의 부모가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챙겨왔던 형사 뱃지를 꺼내보이며 말했다.
" 사실 제 직업이 형사거든요. 이 쪽 일은 제가 잘 아는데.. "
" ... "
나의 말에 교사들과 피해자 부모도 꽤나 놀란 얼굴을 지어보였다.
" 이런 사건은 법에 맡긴다해도 아주 가벼운 처벌밖에 내려지지 않아요..차라리 저희에게 합의금을 받아내는게 더욱 손해보지 않으실거에요. "
사실 전혀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피해자 부모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는 겨우 설득에 성공한 뒤, 합의금 500만원으로 결론을 지었다. 처음에 300을 해준다하자 별로 탐탁치않아하는 눈치라, 이백을 더 올려준 것이다. 그렇게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나와 전정국은 학교를 나섰다. 내 뒤에서 떨어져 걸어오던 전정국이 신경쓰여 자꾸 뒤를 돌아보았지만 전정국은 내 시선을 피하기만했다. 결국 숙소 앞에 도착할 때쯤 나는 전정국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 전정국 "
" ... "
" 나한테도 말해주기 싫어..? 무슨 일..이었어..대체..걔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일반인을.. "
내가 전정국의 팔을 잡으며 말하자 전정국은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를 내려보는 전정국의 눈이 그의 기분을 말해주는 듯 슬프게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는 내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돈만 많이 벌면 엄마가 돌아올 줄 알았어.
그렇게 믿었는데.
아직도 안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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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하루만에 보내요, 우리!
요즘 글쓰는데 왜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거죠ㅠㅠ
하 정말 하루종일 썼는데 분량은 많지도않고..
졸려죽어요..저는 자러갈게요! 독자들도 좋은 밤 되세요! :)
제가 암호닉은 4화 댓글에 올라왔던 것들만 일단 확인해서 올렸는데
혹시 그 전화에서 신청하셔서 빠진 분들 계시면 말씀해주시고.
다음주 내로 암호닉 마감+QnA 공지 올릴게요!
암호닉 확인하구가요 이삐들~'ㅅ'♡
연이/딘시/진리/봄/민슈가/비솔/설렘/윤기모찌/0324/설탕맛/눈부신/넬스/젤라또/꽃비/누아르/맑공/라 현/연애학개론/태태뿡뿡/마끼/숲/명언/민트/권지용/햇살/융기맘/민면/미스터/망공/토순/윤기난다/호석이가스파이/망개/민군주님/준회/회색/젤리/다우니랑꾸기/맹고/핑퐁/꿈/프리/인영/펜잘규/비글태/카페모카/1013/곱창/통밀/윤기야/오골계/침슙/여명/디즈니/보라색양말/흑슙흑슙/엽떡/딸기/복동/꾹이/0901/미로/핫초코/넌내밤/작가님하트/핑슙/네 이 청년/나라세/비빔밥/뷔틀뷔틀/애플덕/8ㅅ8/산들코랄/혀니츄/론/공감/김데일리/꾸꾹이/내마음의별로/인사이드아웃/흑슙/김태태/코나/돈까스/지니/됴종이/꽃잎놀이/초딩입맛/하루/토익/어항/윤민기/판도라/둡우/베네/아카시아/밀짚모자/뽀삐/움파파움파/3시9분/아오네코/꾹꾹이/연두/구구콘/들레/반지/나니꺼/요플레/알매V/손뚱땡이/미니언/물고기/전기장판/혜자/해열제/플레어/장니사탕/글로스/치킨/선블록/김태극/윤/시걸쓰/다이어트중초예민/보솜이/콩알/빠밤/태형워더/솜지/따슙/미자탈출/백설/인생베팅/사자/꽃님/통밀/어썸/슈간데여/두둠칫/뽀로로/화양연화/꼬깔콩/응캬캬/코튼캔디/아기/외로운쿠키/예봄비/요다/디기/슝슝이/암어본씨걸/달달한설탕/골드빈/깨진계란/이인/발콩달콩/효인/대머리독수리/빵야빵야빵야/이사/패패/러블리한 윤기/침침아이삐왔어/소금/무민/당긴윤기/징징이/뿌Yo/헤이호옹/EHEH/꿀떡맛탕/슙슙/강아지/침침/별별/닭갈비/새우튀김/자몽/태태뿡뿡/소녀/계란알/솔트/머루/꾸미기/김치만두/헬로키티/침침맘/전루살이/윤/꿀비/태형아♡/가리거리/호시기호시기해?/슈맘/설탕/오하요/곰방와/밤비/2302/노루웨이/윤기나는치명이/꽃비/소뿡/그로밋/윤기쑤쑤/밀짚모자/치느님/꽃밭/알라/플랑크톤회장/설탕잼/호빵/세병/레몬라임/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