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면서 할 일 : 브금이랑 같이 듣기
민윤기가 설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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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는 농구를 잘했다. 고등학교 때면 매번 농구하는 민윤기의 뒷통수만을 지겹도록 바라봤던 날이 꽤 잦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 진탕 농구장에서 뛰고 온 날이면 민윤기는 잘도 뻗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나랑 민윤기는 나란히 지각줄을 세웠다. 민윤기가 잠이 많거든. 이상하게 얘가 늦게 깨는 날이면 나도 늦게 깼다. 그건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당연히 짜증났다. 그 때문에 벌점은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많았다. 그래서 별명이 뭐였냐면.
"야! 벌점!"
내 별명은 벌점이었다. 친구들이 나는 꼭 일주일에 한 번은 지각을 한다며 붙여준 별명이었다. 벌점은 봉사로 때웠다. 당연히 허리는 뻐근했다. 민윤기는 매번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머물렀다. 그리고 농구를 했다. 나는 벌청소를 하다 말고 민윤기에게 자주 빽 소리를 질렀다. 운동장에서 복도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고함소리가 귓전을 때릴 때면 민윤기는 늘 툴툴댔다.
"내가 농구하겠다는데 뭐!"
"내일도 늦게 깰 거잖아!"
"아니거든?"
"그럼 한 번이라도 실천을 해보든가! 내일 일찍 깨 봐!"
"그러던가."
그러더니 민윤기가 다시 내게서 등을 돌려 공을 집어던졌다. 깔끔하게 골이 들어갔다. 민윤기는 공부도 잘했다. 나는 민윤기를 보며 늘 생각했다. 앞길도 참 창창하네. 농구만 할 거면 공부를 못 하던가, 공부쪽으로 갈 거면 농구를 못 하던가. 세상은 불공평했다. 나는 툴툴대며 대걸레를 집어들곤 바닥을 닦았다.
어느새 밖이 어둑해져 있을 때쯤, 난 청소를 끝냈다. 또 집 혼자 가야겠네. 내 입술이 꼴 안 좋게 튀어나왔다. 혼자 가는 거 딱 질색인데. 뒷처리를 마치고 나니 20분이 흘러 있었다. 한숨을 쉬며 가방을 뒤로 맨 내 볼에 차가운 게 닿았다.
"......"
"먹을래?"
민윤기였다. 오. 뭐야. 웃으며 음료수를 받아드니 민윤기가 기분 좋게 웃는다. 다음에 갚아. 마시던 음료수를 뿜을 뻔했다. 사레가 들어 컥컥대니 민윤기가 깜짝 놀라선 내 등을 내리친다. 야. 괜찮아?
"아, 아악! 아파! 치지 마!"
"그럼 기침을 하지 말던가! 기침엔 등짝 때리기가 직빵이야."
그 말에 기침이 멈췄다. 민윤기가 내 등짝을 때리던 손을 멈추더니 또 웃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민윤기를 올려다보았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열어 놓은 창문 틈새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갓 태어난 개 마냥 피부가 보들보들해보였다. 아무 말 않고 민윤기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입술에 따끔한 통증이 자리잡았다.
"아!"
"입술 좀 집어넣지."
민윤기가 내 입술을 꼬집었다.
"뭐야."
"매사에 뭐가 그리 불만이냐?"
"뭔 상관이야."
"그냥 빨리 집에나 가자."
"뭐. 나 기다린 거야?"
"아니. 농구 방금 끝났는데 그냥 반 들어와 본 거야."
"그럼 그 음료수는 뭔데?"
"...선배가 준 거거든?"
민윤기가 안절부절 못했다. 저건 딱봐도 거짓말이었다. 민윤기의 팔목을 꼬집으며 말했다.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해라. 너 아까 아침에 돈 없다며 툴툴댔잖아. 그러자 민윤기가 멍해진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을 들이댔다.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다.
"길에서 주웠어."
"아. 그러세요?"
"만원 주웠어."
"얼굴이나 치워."
달작지근한 냄새가 났다. 단게 땡겼다. 민윤기를 쳐내고 먼저 반을 나섰다.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내가 멈추자 발걸음도 이어지지 않았다. 야. 민윤기를 부르자 대답한다. 왜.
"나 배고파."
그러자 민윤기가 내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살이나 빼. 그리고 그 날 결국 민윤기한테 돈을 뜯어냈던 나는 만족한 모습으로 집 현관문에 들어섰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그때와 같았다. 아까 전, 공원에서 민윤기가 내게 했던 행동들. 고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설렜다. 남자친구랑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누군가한테 설레냐. 나도 참 미쳤지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민윤기한테 설레는 거면 괜찮지 싶었다.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