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시네요! 연예인이세요? 02
부제 : 12년 괜히 더 먼저 산게 아니다.
현재 시각 11시 05분. 원래 이 시간 즈음엔 늘 잡혀있던 스케줄 때문에 집이 비워져 있는데 오늘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부터 일주일은 스케줄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침대에 편하게 누워있다. 평소엔 매니저 오빠의 모닝콜로 긴박하게 일어나 옷 대충 꿰어 입고 나가서 스케줄을 가는데 이번 주에는 스케줄이 하나도 없다고 어제 매니저 오빠가 전화로 말해줬다. 젊은 애가 맨날 일에만 지쳐 사는 게 불쌍하다고 좀 놀러 다니고 이번 주에 조금 쉴 시간을 주는 게 어떠냐고 사장님에게 말해서 같이 합의해서 스케줄 조정 했단다. 그리고 오빠도 일주일 정도 쉬는 걸로. 매우 좋은 결말이야. 사람이 일을 했으면 좀 쉬어야지!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의 자유는 시작되었다.
차에서 늘 자던 쪽잠대신 침대에서 편하게 걱정 없이 늦잠도 잘 수 있고, 일 생각 없이 편하게 있을 수도 있고,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시간이 생겼지만 난 무엇보다 평소에 카톡이나 통화로만 잠깐 잠깐 연락하던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맨날 쌓이고 쌓인 스케줄 때문에 아저씨 얼굴 볼 일도 진짜 없었는데 이번 주는 만날 수 있으니까!
지금이 11시 조금 넘겼으니까 아저씨도 일어났을 거 같은데 연락이나 해볼까나? 핸드폰 자판에 아저씨의 번호 열한자리를 눌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어서 들려오는 단조로운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아저씨 뭔가 안 일어나있을 거 같고 혹, 일어났다 해도 귀찮다고 밥도 안 챙겨먹었을 거 같은데 같이 점심이나 먹자 할까? 근데 이 아저씨 또 전화 늦게 받네. 연락하기 참 힘들어. 뚜르르르- 통화 연결음이 계속 길어진다. 아, 진짜 한 번에 받지 좀! 길게 가는 신호에 지쳐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때에 딸깍 소리와 함께 핸드폰 건너에서 푹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윤기 입니다.
평소 같으면 어어 웬일이냐? 이렇게 말 할 텐데 민윤기 입니다. 라니! 목소리 들으니까 아주 푹 주무시고 계셨네. 그 와중에 잠긴 목소리 진짜 섹시하다. 아저씨 목소리 때문에 아침부터 막 심장에 무리가 오네. 목소리 하나로 사람 수명을 단축시키겠어! 아저씨 자는데 전화 벨소리가 시끄러워서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바로 받았나보다. 전화 너머로 흐암-하며 하품하는 소리는 빼박 실컷 자다 방금 깼다는게 짐작이 갈 정도. 이 시간에 아저씨가 일어나 있던 것을 바란 건 역시 무리였어.
아저씨 전화 좀 빨리 받아요!
-어….
밥도 안 먹었죠?
-당연히 안….
그럼 나랑 점심 먹으러 나가요. 나 오늘 시간 짱 많아요!
-싫어.
뭐냐, 방금까지 웅얼웅얼 하다가 나가자는 한 마디에 단호하게 대답 하는 건? 아저씨 느므 매정하다? 나 마음 아파. 흑.
아니 왜 안 나가요?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귀찮아. 밥 안 먹고 싶어….
와, 아저씨 언행불일치 좀 봐. 살기 위해 밥 먹으라더니? 안 먹고 싶기는 무슨 그냥 나가요!
-으, 귀찮아….
아니 귀찮다는 말만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거야? 저렇게 세상만사가 귀찮은데 일은 어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참. 설마 진짜 안 나올까, 그냥 좀 튕기는 거겠지? 버려지지 않는 조금의 기대를 가지고 한 번 더 물어봤다.
…진짜 안 갈 거예요?
-응. 귀찮다니까.
헐, 진짜 이럴 줄 몰랐는데 진짜 안 나온다니. 하하 아저씨 완전 잘 튕기시네. 무슨 농구공인 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섭섭한 건 못 숨긴다.
그래, 아저씨 귀찮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요. 끊을게.
아저씨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 가지 않아 어두워진 화면이 된 휴대폰을 바라보다 결론을 내렸다. 아저씨가 나가기 귀찮다면 뭐.
내가 찾아가면 되는 거 아냐?
-
너무 막무가내로 찾아가는 건 미안하지만 아저씨가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고 또 밥도 잘 안 챙겨 먹는 아저씨가 걱정되니까 그런 거지! 오늘도 뻔뻔한 자기 합리화는 시작 됐다. 아저씨네 집에 가서 밥을 차려주는 게 좋을까 라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요리 같은 거 잘 못해서 그냥 밖에서 사온 음식을 먹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저씨 좋아하는 게 고기, 고기, 고기인데 고기 좋아하더라도 아침부터 먹을 거 같진 않아서 그냥 떡볶이랑 튀김 이런 것들 두루두루 사가도 잘 먹을 거 같으니 점심은 이걸로 정했다. 그 겸에 마트에 가서 아저씨네 집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장도 보기로 했다. 가끔 기회가 되서 놀러갔던 아저씨네 집의 냉장고는 늘 비어 있었기 때문에. 밥도 안 먹으니까 그렇게 말랐지 이 아저씨. 진짜 솔직히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나보다 마른 거 같다. 아, 눈에 습기 차는 거 같기도 하고….
대충 살 목록을 정리 했으니 이제 살 일만 남았다. 습관이 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왔는데. 으, 여름이라 그런지 마스크는 좀 오바였나? 진짜 너무 더워. 뭔가 나가기 귀찮다는 아저씨 심정이 이해가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냐, 아저씨에게 휘둘릴 수 없어. 최소한 1시 전 까지 아저씨의 집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집 근처의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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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와, 진짜 실내로 들어오니까 살겠다, 살겠어. 이 갑갑한 마스크는 잠시 넣어두고 휴대폰의 메모장에 대충 적어놓은 목록들을 보며 카트와 함께 마트의 입구로 향했다.
우선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 고기, 고기는 카트에 담아두고 늙으면 비타민도 많이 먹어줘야 한다니까 과일도 좀 담았다. 또 뭐 살 거 있나 하고 곰곰이 생각 해봤는데 나 아저씨에 대해 아는게 많이 없나…? 솔직히 아저씨를 알게 된 건 진짜 오래 됐는데 뭔가 아저씨는 잘 알 수가 없다. 야심차게 냉장고 채우겠다는 포부는 어디가고 고기들과 과일 몇 개 밖에 담겨있지 않은 카트를 보니 괜히 좀 씁쓸하다. 뭔가 자존심 상해. 마치 몇 년 째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 대해 매우 잘 알며 엄청나게 자부심에 쩔어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던 그런 느낌…? 내가 말 했지만 굉장히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뱉었는지도 모르겠다.
쓸데없이 몰려오는 잡생각과 함께 카트 안의 과일과 고기들을 노려봤다.
그래도 좋아하는 거 하나쯤은 알고 있다는 거에 자부심 가져도 될 거 같은데? 시간은 많고 많으니 아저씨에 대해서 더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당연 그렇지! 캬, 긍정적이야 김탄소! 빠지면 섭섭한 자기 합리화와 함께 계산대로 향했다.
에어컨 빵빵했던 실내에서 햇빛 작열하는 실외로 나오니 훅 느껴지는 열기는 주머니에 곱게 접혀있던 마스크를 다시 낄 생각 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숨도 못 쉬겠는데 이것까지 끼면 호흡곤란으로 죽어버릴지도 몰라. 진-짜 더웠지만 곧 도착해 가는 아저씨네 집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떡볶이는 아저씨네 집 근처 포장마차 떡볶이가 그렇게 맛있다며 아저씨가 늘 말했던 그 집에 가서 사왔다. 지금 시간은 12시 55분. 좋았어. 1시 전까지 도착해서 다행이야. 양 손에 들린 봉투들을 들고 아저씨를 볼 생각에 들뜬 발걸음을 이끌고 아저씨가 사는 빌라로 향했다.
3층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왔다. 똑똑 하며 노크를 했지만 문 건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아저씨 또 자는 거 아니야? 아니면 노크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건 아닐까 해서 딩동- 하며 벨을 눌렀다. 누른 뒤 좀 지나서야 누구냐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밥 사왔으니까 문 좀 열어요!! 대체 뭐 하고 있었길래 제때에 안 나와요?!"
"ㅇ, 야! 니가 여기 왜 와!"
"나가기 귀찮대서 밥 사왔다니까!! 문!! 문 열어요!!"
"아이씨-, 기다려!"
점점 커지는 발소리와 함께 아저씨네 집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젖은 머리 위에 수건 하나 얹고 있는 아저씨다. 그런 아저씨의 눈앞에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씻기 귀찮다더니 씻었네요? 아저씨 밥 먹자. 우리 떡볶이 먹어요! 요 앞에서 사왔어요.”
“…왜 사왔어.”
“아저씨 먹으라고 사왔지. 아, 아저씨가 좋아하는 고기도 사왔어요. 귀찮다고 밥 안 챙겨 먹어서 장도 보고 온 건데! ”
히- 하고 웃어보였지만 아저씨는 봉투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표정 되게 좀 그래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괜히 눈치 보이게…. 나 팔 떨어지겠다. 아저씨 봉투 좀 들어줘요. 그제서야 들어오라며 아저씨가 봉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화났나. 내가 너무 막무가내로 쳐들어 와서 그런가? 아저씨 화나면 장난 아닌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먼저 뭐라 못하겠다. 눈치를 보며 방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가 제 옆 바닥을 툭툭 치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재빨리 후다닥 아저씨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봉투 안에 있던 떡볶이들과 튀김 등을 꺼내놓고 먹기 시작하는데 아저씨 말없이 조용하게 먹으면 나 또 찔리잖아요…. 깨작째작 떡볶이를 집어 먹는 아저씨에게 용기 내서 말했다.
“아저씨 내가 막무가내로 쳐들어와서 화났어요…?”
오물오물 떡을 씹던 아저씨가 날 쳐다봤다. 아주 뚫어져라. ㅇ. 왜지? 니가 잘못한게 그것 밖에 없어? 라는 표정인데…? 또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전부터 우리 엄마가 내게 늘 했던 말이 있었다. 이유를 모른다면 우선 사과부터 하고 보는 거라고.
“…잘못했어요.”
잘못했단 내 말에 아저씨는 씹던 떡을 삼키고 헛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왜, 왜 웃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해 죽겠다. 진짜. 그런 날 알아챘는지 아저씨가 이름을 불렀다.
“야, 김탄소.”
불안하다. 근데 내 이름 부르면서 뒤에 실실 웃는 이유는 왜죠. 조심히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너가 점심 같이 먹자고 그랬지? ”
“그랬죠. 같이 밥 먹자고. 근데 아저씨가 계속 귀찮다면서요. ”
“씁, 말 끊지 말고.”
예예, 그래서 다음 하실 말은? 코 한 번 훌쩍이더니 아저씨가 말했다.
“원래 이렇게 데이트 신청 하는 건 세 번 정도 튕겨줘야 하는거 아니냐?”
“……? ”
“아, 그리고 또 서프라이즈 막 이런 것도 모르는 거 같네. 넌.”
뭔가 예상치도 못한 말이 아저씨 입에서 막 나오네? 서프라이즈라니? 아저씨가 마저 얘기를 꺼냈다.
“너가 막판에 일방적으로 끊어서 말 못했잖아. 바보야. 딱 세 번 튕겼는데 갑자기 끊고. 그래서….”
그래서 또 뭐, 뭐요. 따지듯 묻는 닥치고 들으라는 듯 내 입에 떡 하나를 넣어주고 아저씨가 말했다.
“뭐 할까, 뭐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선 씻고 너 만나러 가려고 했지. 너 모르게.”
역시 아저씨야. 12년 먼저 살더니
뭔가 낚인 기분이지만 그래도 아저씨가 내 생각은 해준건 좀 많이 감동받았달까.
-읽어 주시는 분은 없겠지만 작가의 주저리-
오 저 생각보다 글 빨리 올렸어요! (뻔뻔)
물론 내용은 재미가 1도 없지만 그렇다고요..!앜
아 그리고 저번에 댓글 달아준거 보고 저 감동 먹었어요 허허
뭐지 재미도 없는 글이라 그냥 혼자 끄적이는 글 될 거 라고 생각했는데 답글 달아주셔서 많이 놀랐답니다!
그렇다고요 하하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