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어야, 내가 말했잖아. 견디기 힘들면 나가라고.
징어야, 너 진짜 넌 진짜 대박이다, 어디서 이런 애가 들어왔니. 내가 너 꼭 데뷔 시켜줄게. 데뷔 해서 대박 한 번 치자.
언니! 너무 예뻐요, 진짜. 대박, 언니 평생 언니 팬 할래요!!!!
누나! 누나!!! 징어 누나!!!!!! 사랑해요!!!!!!
떴다고 개인 대기실 쓰니? 꼴 사나와서 정말, 너도 곧 바닥이야, 알아?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바보 같이. 정신 차리자. 겨우 잡생각을 털어낸 후에야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콘서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따라 연습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처음에 노래를 시작할 때 마음가짐? 그딴 거 기억 조차 나질 않는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을까, 행복하고 싶었는데. 과연 나는 지금 행복한가. 답이 없는 물음에 한숨만 나올뿐이다. 굳이 연예인이 되고 싶던 건 아니였다, 유명해지고 싶던 것도 아니였다. 아니 솔직히 유명하고 인기 많으면 좋지, 하지만 내 목적은 그게 아니였다. 노래가 하고 싶었고, 춤이 추고 싶었다. 무대에 서고 싶었고, 내 무대를 보러 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행복할거라는 철 없이 음악을 꿈 꾸던 소녀는 지금 여기 없다. 데뷔를 한지 2년 째, 생각보다 내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덕에 시기와 질투는 물론 어디 가져다 쓰지도 못할 논리로 지껄이는 비난까지 다 받아내야 했다. 내가 왜?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도 열심히 해요!"
"어유, 징어씨 왔어요? 오늘도 징어씨 덕에 촬영장이 화사하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서 꼭 빨리 촬영 끝내보도록 할게요!"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연기는 시작 되는 거다. 난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니다, 낯을 가리고, 부끄럼을 많이 탄다. 하지만 아닌 척. 밝은 척, 활발한 척, 친화력 좋은 척하는 내 모습이 나한테 더 친근하다. 이렇게 살아온지도 오래 되었으니. 잠깐이라도 무표정으로 있으면 날라오는 대중들의 손가락질, 웃음끼 없는 말투로 말했다간 또 어떤 인성 논란에 휩싸일지 모르기 때문에 이럴 수 밖에. 이젠 어느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조차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밝게 인사를 한 뒤, 촬영장을 빠져 나와 차에 올라탔다. 스케줄 표를 펼쳐보니 음악방송이 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거라 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하는 일정이였다. 한숨을 쉬고 고개를 뒤로 꺾자, 매니저 오빠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을 건낸다. 간신히 웃으며 고맙다고 한 뒤 물병을 잡아들었다.
눈을 붙이기도 전에, 공항에 도착했고 짐을 챙겨 차에서 내리자 수많은 카메라들이 날 반긴다. 사실 사람을 마주하는 걸 좋아한다. 이거 하난 다행인 거 같다. 말이 없어서 첫만남 때 오해를 자주 사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이런 카메라들 가득한 공간보단 사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 난 더 좋다.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한껏 피곤한 표정으로 걷다가 고개를 들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 저기서 들리는 내 이름에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웃으며 손인사까지 한 후에 출국 소속을 밟았다. 여권을 들고 서서 눈을 감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현아 언니가 웃으며 팔을 벌리고 있다. 방향을 틀어 현아 언니한테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머리를 쓰다듬어준 언니는 자신을 찾는 소리에 전화할게 하며 매니저와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슬기 언니! 멀리 서서 졸고 있는 언니를 향해 달려가자 웃으며 반겨주기에 다른 언니들은? 하고 물으니, 예리가 고개를 들고 언니 저는 왜 안 찾아요? 하고 물었다. 웃으며 예리를 꽉 안아주며 삐쳤어? 하고 물으니 약간? 하며 애교스럽게 웃는다. 오랜만에 편한 사람들을 보니 여유가 조금 생겼는지 웃음이 새어나왔다.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매니저 오빠와 보내는 게 대부분이였다. 다른 사람들 만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같은 멤버들까지도, 현재로썬 솔로 활동 중이고, 다른 멤버들도 고정 스케줄이 있어 혼자 출국하는 길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방송 측에서 나만 섭외했지만. 멤버들끼리도 다 아는 사실일 거다. 실장님이 워낙 솔직하신 분이라.
"피곤해?"
"오랜만이네, 오빠"
"어제 밤에 전화 했었지? 미안, 못 받았다"
"바쁘면 그럴수도 있지"
"삐쳤어?"
"아냐 안 삐쳤어, 주말에 스케줄 있어?"
"오랜만에 데이트?"
"그렇지 뭐, 싫음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