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날로부터 이틀 뒤.
갑자기 김태형씨와 연락이 안되기 시작했어.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방학이라 학교에 있을리도 없고, 그렇다고 김태형씨 집에 가볼 수도 없어서 혼자 끙끙 앓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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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어.
여전히 연락은 안되고, 나는 약간 포기한 상태였어.
[여보세요]
[어 누나.나 윤기]
[어쩐일이야?]
[그냥 안부 물으러]
[그냥 안부는 무슨 ㅋㅋㅋ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ㅋㅋㅋㅋㅋ누나 무용했었지?]
[응 왜?]
[누나 CF한번 찍어볼래?]
[갑자기 무슨?]
[내가 아는 디렉터 중에 이번에 보험회사 광고를 맡은 분이 계시는데 이번 컨셉에 무용수가 필요하대. 근데 너무 셀럽은 부담스러운가봐.
나한테 누구 아는 사람 없냐고 하는데 딱 누나가 제격이잖아]
[나 근데 체중관리도 안하고 요즘 연습도 안해서...]
[미팅은 2주 뒤, 촬영은 미팅 다음주에 진행된대. 빨리 다이어트해]
[그럴까..?]
[페이 장난아니다. 무조건 잡아야돼]
[얼만데..?]
[기본 500. 광고 300회 이상 방영시 초과 방영 회당 0.1% 인센티브 지급. 이거 일반인한테는 꽤 센 조건이다?]
[알았어.할게]
[그럼 그 디렉터 번호 보낼게]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공허해진 마음에 옛날 영상들을 틀어서 보고 있었어.
무슨 무용을 해야 예쁜 CF가 나올까.
아주 애기때부터 그만두기 전까지 봤는데, 한 150개 영상을 보면서 처음엔 너무 귀여웠다가 실수하고 우는 모습이 웃겼다가 나중엔 그냥 왠지 모르게 슬퍼서 눈물이 났어.
"흑...아 씨 나 왜 울어.."
약간 미친 여자같았어. 전화할 사람도 없고....외로워서 약간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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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주가 흘러 디렉터랑 미팅이 끝나고, 구체적인 플롯도 알았어.
윤기랑 만나서 식사를 하는데,
"남자친구가 있다고.."
"응. 근데 요즘 아예 연락이 안돼.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누군데 그 남친이"
"왜..?"
"새끼가 존나 하는 짓이 쓰레기잖아"
마치 내 남동생인마냥 분개하는게 ㅋㅋㅋㅋㅋ 귀여웠어.
"민슈가님이 내 걱정을 해주시다니 아주 영광입니다"
"나한테 하나뿐인 누난데. 잘 해야지 그럼."
하긴 윤기도 나도 둘다 외동이라서 서로 의지할데가 없어. 그래서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쉽게 친해졌고.
"넌 여친 없어?"
"연예인이 무슨 여친 ㅋㅋㅋㅋ"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있지... 늘 있어"
"사귀어봐~"
"됐어"
이 철저한 놈..진짜 연예인 마인드더라구. 팬들이 원하는 그런 마인드.
좋아하는 건 혼자 하고, 일에 방해되는 로맨스는 절대 삼가하는.
심지어 이제 좋아하는 여자 포기하는 것도 지쳐서 음악이랑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댄다.
에휴 스타의 인생이라는게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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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들 붙었다. 나 가볼게!"
"그래~ 자주 전화하고! 오늘 고마웠어!"
윤기랑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
전화가 왔네?
[여보세요~?]
[어디야]
[나? 나..]
[빨리 말해!!!]
김태형씨가 다급해 보였어.
[지금 여기 ㅁㅁ카페! 우리 저번에 갔었던]
[그럼 당장 그 앞 정류장에서 공항버스 타. 4시 12분에 한 대 도착이니까 2분 남았다. 빨리!!]
[집도 안들리고?]
[그럴시간 없어. 공항버스 타서 인천공항에서 내려.]
[돈도 별로 없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제 곧 올 것 같은데? 빨리 타. 자초지종은 만나서 설명할게. 지금 너 되게 위험해]
위험하다는 소리와 함께 공항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얼떨결에 탔어.
공항이면 외국으로 가는 거겠지....?
제주도로 갈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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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김태형씨가 보였어.
김태형씨는 내 손을 급히 잡고 공항 플랫폼 안으로 들어갔어.
"나 여권도 비자도 없어!"
"그런거 필요없어."
그러고 보니 처음보는 곳으로 들어가더라구.
"어디가는거야?"
"전용기 타러"
전용기???? 아....얘 재벌이었지.
정말 편하게 비행기에 탔어.
크기는 소규모였지만, 안이 정말 고급이었어.
완전 VVIP 대우를 받으면서 편하게 어디론가 가는데,
"근데 우리 어디가?"
"잠깐 피해있을 곳."
"무슨 일인지 알려줘"
"다 밝혔어."
"뭐를?"
"우리 계속 사귀고 있고, 너랑 결혼할거라고."
"뭐??? 정말이야???"
"아버지가 빨리 너 찾아오라고 시키길래 내가 너 먼저 찾았다."
"아니.."
"일단 2주정도만 피해있어. 내가 다시 데리러갈게"
"알겠....아!!안돼!!"
"왜?"
"진짜 중요한 약속이 다음주에 있어"
광고가 있잖아. 윤기 때문에라도 무조건 해야되는건데.
"미뤄"
"절대 안돼"
"무슨 약속인데"
"광고 촬영."
"광고??"
"윤기가 다리놔준 광고라서 안찍으면 안되는거야"
"너가 무슨 광고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감독님이 마음에 든대"
"그래도 안돼. 한국에 들어갔다가 너 잡히면.."
"설마 나한테 어떻게 하겠어?"
"엄마가 찾는 거면 나도 신경 안쓰는데, 아버지가 찾으시잖아."
"그럼 다음주 목요일엔 귀국할 수 있게 해줘."
"일주일 가지고는 안될텐데"
"촬영하고 다시 들어가던가 할테니까...."
"그럼 핸드폰이랑 번호 바꿔. 어차피 그래도 걔랑은 연락 되잖아"
"...알겠어."
번호바꾸고 일주일동안은 꽁꽁 숨어있는 걸 조건으로 일주일동안 파푸아뉴기니에 있기로 했어.
일주일동안 즐겁게 놀다가는걸로 생각하지 뭐.
눈호강 하는 곳에서 무용연습도 하고 오랜만에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