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나는 그 눈을 기억한다. 암흑 같은 나날들 속에 유일하게 빛나는 눈을. 나태와 무심함으로 범벅된 눈 아래에는 무언가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한심함인줄로만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매일 스치던 무관심한 눈. 다른 무엇보다 아팠던 그 눈을.
Dear, Mr
01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눈을 마주한다. 여전히 무덤덤한 눈. 나를 알아볼까 싶어 불안함에 떠는 나와 달리, 그는 나에게 일말의 관심조차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떨어진 애매한 상사,정도? 안도감과 함께 기묘한 실망감이 얹혔지만, 딱 그 뿐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내미는 파일을 건내 받았다. 다음 상담자 박지민군 입니다. 피해자의 아들이고, 열여덟살입니다. 이상했다. 이미 종결된 사건의 피해자 아들이라니.
"피해자... 아들?"
"피해자가 연루되어있던 사건까지 종결시키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형식적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래 좆같을테지. 저보다 어린 년이, 게다가 진짜 경찰도, 형사도 아닌 년이 제 머리 위에 있다는게 기분 좋을 리가. 파일을 훑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딜가나 불청객이라는 사실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은 불과 한달 전 쯔음이었다. 나는 심리학, 그 중에서도 상담심리학과 범죄심리학에 중점을 두고 공부 하기는 했었지만 경찰 쪽으로는 꿈에도 생각한 적 없는 일개 상담사였다. ..조금 잘 나가는. 내가 이 일, 정확히 말하면 상담을 통한 프로파일링을 하게 된 건 내 은인 때문이었다. 지금은 경찰 서장까지 올라간 아저씨는, 내가 힘들 때 내 후원자를 자처하며 학비나 생활비를 모두 대주고 정말 가족처럼 대해준 분이셨다.
'아미야, 네가 이쪽 일 질색하는 건 알지만, 부탁 좀 하마. 정말 미안하다.'
강력 범죄나, 경찰 같은 건 정말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아저씨의 부탁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일종의 '자문' 역할로, 일주일 전 교통사고 당한 프로파일러 대신 세달 동안만 그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원래 하는 일과 크게 겹치지 않게 최대한 도와준다고는 했지만, 아저씨에게 제대로 보답하고 싶어 사무실에 세달 동안 월차도 냈다. 그런데 하필 나를 전담으로 돕기로 한 형사가 민윤기였다. 나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민윤기.
임시로 쓰는 책상에 앉아 상담자의 파일을 꼼꼼히 분석했다. 민윤기는 어느새 제 자리로 가 동료 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라면 신경 쓰이지 않을 일도, 이상하게 민윤기라면 신경 쓰였다. 분명 내눈은 파일을 분석하고 있는데, 온 신경은 민윤기를 향해 있었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심한 민윤기의 눈이 따라붙었다. 애써 무시한 채, 강력 1팀 실을 나왔다. 문을 닫으려 손잡이를 잡은 손 위로, 큰 손이 겹쳤다. 놀라기도 전에 민윤기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 가십니까?"
"...잠깐 바람 좀 쐬러, 밖에."
"같이 가시죠."
"혼자 가고 싶어요. 폐 끼칠 일 안 만들겠습니다."
작게 목례하며 그럼, 하곤 여전히 그의 손 밑에 있는 내 손을 슬쩍 뺴냈다. 아직도 손등에 그의 손이 겹쳐있는 것만 같았다. 뒤돌아 걷는 내내 그의 시선이 따라오는게 느껴졌다. 지독하리만큼 무심하고, 지독하리만큼 무감한 시선. 화끈거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며 경찰서를 나왔다. 답답한 폐에 비로소 빈틈이 생긴 것만 같았다.
02
"안녕."
"안녕하세요."
"상담 시작할게."
상담은 대부분 취조실에서 이뤄졌다. 차가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민이는 씨익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어딘지 불안한 감이 들었다. 불안함을 애써 접어두고 녹음기를 켰다. 캠코더보다는 이게 낫네요. 지민이의 말에 내가 나도 그렇더라구, 하고 동감해주니 지민이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2015년, 11월 27일, 오후 7시 33분, 피해자 박준성의 아들 박지민 군과 상담합니다. 내 굳어있는 목소리에 지민이는 한 번 더 작게 웃었다.
"누나, 누나 있잖아요."
"누나가 아니라, 선생님."
"그래, 알겠어요. 근데, 누나, 누나 되게 남자들 잘 홀리게 생겼어요."
갑작스럽게 치고들어오는 말에 수치심과 당혹감을 느끼며 녹음기를 확 껐다. 붉어졌을게 분명한 귀와 눈가가 생각나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지민이는 이번에는 큰소리로 하하하, 웃었다. 욕 아니예요. 내 불안하게 떨리는 내 시선에 지민이가 씨익 미소지으며 말했다. 내가 홀렸다는 말이니까. 여전히 답 없이 저를 노려보는 나에게 지민이는 나에게로 몸을 가까이 하며 작게 속삭였다.
"저어기 까만 유리 뒤에서 보고 있을 형사님도, 혹시 모르죠?"
"...내일 다시 상담하자."
내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화를 억누른 목소리였다. 여태껏 이렇게 감정에 휘둘린 적이 몇번이나 있었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나를 보며, 지민이는 크게 웃었다. 아, 이 누나 너무 귀엽네. 멀어지는 지민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계속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본능처럼 약점을 치고 들어오는 녀석이었다. 기어이 나오는 눈물을 닦으려 화장실 쪽으로 걷는 나를 누군가 잡아챘다. 강제로 돌려진 내 앞에는,
"멈추라고 계속 말했잖아요."
처음 보는, 눈에 열기가 드리운 민윤기가 있었다.
03
민윤기는 내 눈물을 손 끝으로 훔쳤다. 이상한 다정함에 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름끼치게 낮은 목소리로, 민윤기가 속삭였다. 괜찮아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민윤기는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섬세한 손길로 정리해주었다. 나 좀 봐요. 그 말에, 이끌리듯 고개를 들었다.
"...화, 나요?"
그의 말에 나는 말 없이 눈을 떨궜다. 아니요, 힘 없이 대답했다. 화가 나는게 아니라, 그냥... 그냥 제 감정을 못 다스렸을 뿐이예요. 그는 이런 내 말에도 여전히 나를 응시했다. 꿰뚫리는 기분에 시선을 피하며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하며 그가 잡은 팔을 빼냈다. 뒤를 돌려고 하는 순간, 그가 다시 나를 잡아챘다.
"신경 안 쓸 수가 없네, 진짜."
그리고 그의 입술이 짙게 나를 덮었다.
찍먹파/ 별이/현쓰/ 감귤쓰/ 요를레히/ 알라/ 강아지/ boice1004/ 비빔밥/ 골드빈/ 고망맨/ 바람민/ 샘봄/ 민군주님/ 민슈팅/ 최현석
민빠샛기(+공지8ㅅ8) |
러브레시피로는 안오고 우울 터지는 글로 백백한 민빠샛기 입니당 이번 글은 민슈가 외 두세명 정도가 더 엮이는 글이 될 듯..! 이른바 역^하^^렘^^^! 그리고 제가 이제 개학을 해서리ㅜㅅㅜ 기숙사 닝겐에 예체능 크리 먹어서 주말에만 올 거 같아용 ㅠㅠ 그래서 토요일에는 셰프의 러브레시피, 일요일에는 디어 미스터로 찾아올 예정 입니다! 한편 씩 올라올 수도 있고 두편 씩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죠용^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