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Apink - 끌려
#봄, 캠퍼스 그리고 고백
봄은 새로운 시작이다. 봄이 오면 괜시리 마음이 설레고 들뜬다.
이런 말도 있듯이 다른때보다 봄이 빠르게 찾아온 지금 캠퍼스는 연분홍빛의 꽃잎들로 물들어있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내가 설렌다는건 아니었다. 아닌가?
강의실 복도 끝에서 여러선배들과 함께 걸어오는 너의 모습에 그런 생각따위는 잊었다.
'사회과학대학에 훈남이 많대, 이왕 갈거면 그쪽으로 가.'
라는 말을 던진 자는 누구였던가. 가서 와락안아주고는 뽀뽀라도 퍼부어주고싶을정도로 이 캠퍼스의 사회과학대학에는 훈남들이 넘쳐났다.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 네 모습만 바라보다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네 모습에 난 강의실 안으로 숨어버렸다.
나혼자 핑크빛이면 뭐하나, 정작 저 사람이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나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을 한순간에 지워버리고는 강의실을 나섰다.
"어, 탄소, 김탄소. 맞지."
"아아, 안녕하세요."
"강의실 여기 써? 너도 교양수업 나랑 같이 듣는거야?"
왜일까, 잔뜩 들떠보이는 너의 모습에 난 웃음이 나오려다가 네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에이, 뭐야-. 괜히 기대했나?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한듯 나를 보며 웃는 너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어쩜 저리도 예쁘게 웃을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옮기려는 나의 손목을 너는 잡고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주위에 있던 선배들이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않는건지 여전히 내 손목을 잡고는 떼려던 입술을 다시 닫았다.
의아해하는 내 모습에 너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고있던 자켓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보이는건 키패드, 내가 찍어야 하는건? 번호.
"번호 좀 찍어줄수있나해서.
남자친구 같은건 없지?"
"번호요? 아, 찍어드릴게요.
없어요 그런거-."
"오, 정호석-. 드디어 가나요."
내게 핸드폰을 넘긴 너는 뒤에서 뭐라 환호를 지르는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서있는데도 너는 그들의 입을 막은채 낮은 목소리로 '입 좀 닫아 제발.' 이라는 말을 던지고는 내게서 핸드폰을 가져가며 웃어보였다.
나한테 안들릴 줄 알고 목소리를 깐건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다른 층에 위치한 강의실로 향했다.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있는 지민의 모습에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가자 지민은 웃으며 나에게 화답했다.
자신의 자리의 옆자리를 통통 치며 여기에 앉으라는 말도 뒤이으며, 내가 지민의 옆에 앉자 하던 핸드폰을 내려놓고서는 내게로 자세를 돌린채 말을 이어갔다.
"그 왜, 사회복지 전공하는 선배. 호석..이었나? 정호석? 알아?"
"알아, 왜?"
"아니, 오늘 아침에 그 선배랑 윤기선배랑 남준선배랑 오면서 니 얘기하는것같길래-."
얘기? 무슨얘기? 듣던 중 흥미가 가는 소리에 나는 가방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지민의 얘기를 들었다.
"신문방송학 전공하는 애 중에 맨날 418번 버스타고 등교하는 애, 이러던데?"
"418번 밖에 없잖아, 이학교 오는건. 다른 여자애일수도있지."
"옆에 키..키작..키작은 남자애도 같이 다닌다고 이 얘기도 하더라.."
금세 울상을 지어버리는 지민을 보며 난 웃음이 터져버렸다, 웃으면 안되는데 끝까지 입에 담기가 싫었는지 버벅거리며 말을 하는 지민이 웃겨서.
아, 웃지마아-.
사실 그게 웃긴것도 있었는데 네가 내 얘기를 했다는게 기분이 좋았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강의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전날 달린 이유에선지 금세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 물론, 박지민도 같이.
책상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짧게 여러번 울리는 것도 모른채 나는 계속 잠에 취해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치는 손길에 일어나보니 방금 잠에서 깬듯 비몽사몽한 지민이 내 핸드폰을 가리키고 있었다.
카톡, 카톡왔어 너.. 너 얘기하던 선배한테..
나 얘기하던 선배가 누구던가 잠결에 생각을 하려니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누군데. 하는 내 말에 지민이는 정호석 선배라고.. 라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잠이 확 달아나는 느낌. 눈을 번쩍 뜨고는 핸드폰을 책상 밑으로 내려 잠금을 풀고는 카톡을 확인했다.
채팅목록에 들어가자 '정호석' 하고는 7이라고 쓰여있는 채팅창이 보였고 미친듯이 두근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채팅창으로 들어갔다.
[나 아까 2층에서 만난 사람인데]
[저장 하라고 연락했어!] AM 11:07
[강의 열심히 듣나보다]
[나랑 다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M 11:09
[혹시 이따가 밥 같이 먹을래?]
[내 뒤에있던 거적대기들 떼고 나랑만] AM 11:25
한참을 고민하다가 보낸걸까 밥먹자는 말이 담긴 말들은 자그마치 15분이나 지난 후에 보내져있었다.
나처럼 부끄러워서일까, 아니면 다른 일을 먼저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걸까.
또 다시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내 머리 위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나 좋아하는거 아니야? 라는 결론에 이르자마자 나는 갑작스레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쥐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뭐하냐. 언제 깼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지민의 목소리에 난 아무것도 아니라며 둘러대고는 강의를 듣는척 책을 펴고 교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그 선배가 날 좋아하는건가 이 생각뿐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
지민이에게는 대충 둘러대고 나는 너와 만나기로 한 캠퍼스 근처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사실 곧바로 그곳으로 향한건 아니고 화장실에 들려서 혹여나 얼굴에 묻은건 없는지 재차 확인하고 왔었다.
멀리서 내 모습을 확인한 네가 빠른 걸음으로 내 쪽으로 오는것을 확인하고는 나는 벌써부터 달아오르는 내 얼굴을 어찌해야할까 고민했다.
혹시나 들켜버리면 뭐라고 해야하나. 그대로 차여버리면 어쩌나. 아니 혹여나 저 선배랑 사귄다면? 상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자 너는 언제온건지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
"아니, 아니 전혀요! 방금 왔어요 저도."
익숙하게 주문을 하고는 너는 나를 앞에 앉히고 내게 물과 수저를 준비해주고서는 나와 눈을 맞췄다.
그게..
너와 내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목소리에 너는 웃으며 먼저 말하라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눈썹을 찡긋, 움직였다.
"아니, 그.. 그게, 별건 아닌데요..
친구한테 들었는데, 아침에 제 얘기 선배들이랑 하셨다고.."
"..? 들었어? 뭐라고했는지도 들었어?"
"뭐, 뭐라고했는지는 못..들었어요. 그냥, 그렇다고 해서.."
"아, 깜짝이야. 난 또..
그때 한말 안그래도 오늘 할려고 했었거든."
내 예상보다는 다소 많이 당황하는 네 모습에 도리어 내가 당황해서는 말까지 더듬자 너는 웃으면서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다가 나를 보며 내 눈을 바라보면서 웃는 네 모습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두근거렸다, 많이.
난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얼버무리면서 상황을 넘어가고서는 나온 음식을 서로 말없이 먹기만했다.
밖에 비온다, 우산 있어요?
하며 들어오는 사람들에 너와 나는 동시에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침에 예보도없었는데.. 소나기인가. 하며 다시 음식을 이것저것 집어먹자 너는 내게 우산이 있냐며 물어왔다.
아차, 우산. 우산이 없지.
내가 고개를 들고 없다며 다시 밖을 내다보자 너도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아..나도 없는데? 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아까 벗어둔 제 자켓을 들어올리며 이거라도 쓰고가야하나? 하며 장난스레 웃었고, 나는 정말 장난인줄알았다.
정말 이렇게 자켓을 너와 내 머리위에 쓰고 강의실건물까지 올 줄이야. 건물의 현관에서 넌 젖은 자켓을 털어내며 어두운 하늘만 올려다봤다.
내쪽으로 자켓을 다 씌워준건지 젖어있는 네 셔츠의 왼쪽어깨가 처량했다, 근데 섹시한것같기도 하고. 이쯤되면 병인가?
"어딜 그렇게 봐? 내 어깨보는건가?"
"네? 아니, 아니.. 꽃보고있었어요. 꽃 다 떨어지겠다고, 구경도 못갔는데."
터무니 없는 변명에 너는 살짝 젖은 내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웃었다.
꽃 구경도 못가봤어? 벌써 4월인데?
라며 날 보고 다시 웃는 네 모습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못가봤다, 여태껏 한번도 못갔다 사실은.
"커플만 가는건 줄 알았죠, 그 놈의 꽃구경은. 그래서 지금까지 한번도 못갔어요."
"커플만 가는거라고? 뭐야-."
"그냥 그런줄알았어요.. 사실 그렇게 속고 살았어요 엄마한테.."
한숨이 섞인 내 한탄에 너는 웃겼는지 큭큭대며 웃었다. 이어지는 내 한숨소리에 너는 한쪽 팔로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게 뭐람?
어떠한 대처도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서는 앞만보고 있자 넌 내 표정을 살피더니 마지막말을 흘리듯이 던졌다.
"커플끼리 가는거 맞으니까, 올해는 같이 나랑같이가자.
싫으면 말고-. 난 좋은데."
*
저때의 이야기는 지금 연애한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었다. 그때 멋있지 않았냐며 어깨를 으쓱대는 네 모습에 난 고개를 저었다.
멋지진않았는데 설렌건 인정. 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넌 그때처럼 팔로 내 어깨를 감싸더니 내 볼에 짧게 입맞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받아주길 잘한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