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현이와 점심을 먹고 교실로 털레털레 걸어왔다. 너무 추워서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인지라 새학기의 3월달은 나에게 너무 힘든 달이다. 교복을 모두 갖춰 입고 마이에 가디건에 패딩까지 겹쳐 입었지만 한기가 모두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세현이는 급식실에서 나를 보더니 수영장에서 한참 놀다 나온 꼬마처럼 입술이 퍼렇다고 했다. 나는 괜히 입술을 만지작댔다.
5교시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부승관이 들어온다. 항상 옆에 붙어있는 최한솔과 남자애들이 보였다. 지난번 복사 사건 이후로 부승관은 나를 볼 때마다 '복사 못하는 여주' 라고 불렀다. 정색도 하고 무시도 했지만 그만 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단히 약점을 잡혔다. 아무리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 봐도 괜히 얄밉고 짜증났다.
"어! 복사 못하는 여주다!"
"......저리 안가?"
"어, 여주야 너 입술이 파래."
부승관이 어느새 내 책상으로 다가와 양손으로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나는 얼떨결에 부승관을 바라보았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에 확 열이 몰리는 것 같아서 부승관의 손을 쳐냈다. 뭐해, 하지마. 순간 창피한 기분이 들어 책상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부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얼굴을 자꾸 잡아 올리려고 했다. 야 너 아파? 왜 그래? 그 말을 들은 최한솔도 내 책상으로 다가왔다. 김여주 너 어디 아프냐.
"아니, 나 안아파."
"근데 왜 이렇게 입술이 새파래? 얼굴도 빨갛고."
"그...냥 추워서 그래. 나 추위 잘 타서."
"너 물속에서 놀다 나온 애 같다."
부승관은 세현이랑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더니 내 패딩 모자를 쓱 빼내 머리 위로 덮었다. 추우면 모자도 이렇게 쓰고 있어야지. 나는 갑자기 커다란 모자에 시야가 가려졌지만 별 저항도 못하고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최한솔은 내 모자 위로 손바닥을 턱 올려놓더니 얄미운 말을 했다.
"김여주 튼실한 줄 알았는데 존나 아니네?"
"......남부럽지 않게 건강해."
"너 왜 여주한테 그래. 우리 여주가 비록 복사는 못하지만 건강 하나는 끝내ㅈ..."
"야!!!"
아 또 그말이야!!! 나는 발끈한 나머지 거의 의자에서 일어나다시피 했다. 주변의 시선이 순간 내 쪽으로 몰렸다 이내 떨어졌고, 부승관과 최한솔은 지들끼리 키득대기 바빴다. 그만 좀 해라. 나는 스르륵, 얼음 녹듯이 책상으로 다시 엎어졌다. 근데 진짜 콧물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몸이 으슬으슬했다. 5교시 영어인데 그냥 보건실이나 갈까. 고민되네. 고개를 살짝 들자 최한솔이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승관은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히터를 틀고 있다. 여주야 좀 있으면 따뜻해진다!!
결국 담임에게 보건실 출입허가를 받았다.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에 도저히 수업을 들을 힘이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워 계단 난간을 잡고 겨우 1층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와 꺄르륵, 웃는. 부승관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화장이 진한 여자애가 있었다. 전에 최한솔이 준 젤리를 가져갔던 그 애였다. 곧 5교시 시작인데 둘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싶어 최대한 발소리를 줄이고 천천히 내려갔다. 아 나 돈없어. 아 왜애! 큰 거 바라는 것도 아닌데 응?
"나 진짜 돈 없는데? 어떡하지? 지갑 보여줘?"
"왜 걔한텐 사주고 난 안사줘~ 나 싫어?"
"아니, 그런거 아니구. 내가 그때 여주 화나게 해서 그랬어."
여주? 설마 내 이름인가. 나는 그대로 굳어 둘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여자애 이름은 지혜였던 것 같았다. 사실 학교에서 행동을 안 좋게 해서 내심 꺼려하던 애였는데. 부승관이랑 내 이름을 거론하며 하는 얘기가 대체 뭐지. 설마 젤리 이야긴가......
"걔 언제부터 알았다구. 그럼 다음에 나도 하리보 사줘?"
"알겠어 알겠어. 큰 걸로 사줄게."
"아싸! 그럼 난 승관이 밥사줘야지~"
"오 그럼 나 비싼거."
"뭐 먹구 싶은데?....어, 여주야."
지혜가 무심코 고개를 드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해 거기서? 나는 내가 둘의 대화를 엿들은 꼴이 된 것 같아서 황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나 보건실 가던 중이어서.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하고는 패딩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었다. 부승관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앞을 막아선다.
"보건실 왜 가? 아파서?"
"아...여주 아픈가봐...?"
"아니 별건 아니고...그냥 좀 감기 온 것 같아서."
"감기?!"
"진짜 별 거 아냐. 5교시 들어가 지혜야."
부승관은 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왜 저러는거야. 나는 둘을 빨리 보내고 보건실에 가서 당장 눕고 싶었다. 지혜가 부승관의 교복 셔츠자락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래 승관아 가자. 하지만 부승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혜야 너 먼저 올라가."
"어,어...?"
"나 여주 보건실 좀 데려다주고 올게."
"우리 그럼 수업...늦잖아. 그냥 가자."
"선생님한테 말씀 좀 드려줄래? 반장 아파서 부반장이 보건실 데려다주고 간다고. 부탁해."
"아......어."
야...! 뭐야 됐어! 내가 부승관의 등을 떠밀자 내 이마를 살짝 민다. 너야말로 곧 기절하겠다. 지혜는 나 못지않게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알겠다며 혼자 계단을 올라갔다. 이게...무슨 상황이야. 지혜를 부르려고 했지만 이미 약간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안절부절 못하고 지혜와 부승관을 번갈아보자, 부승관은 내 어깨를 잡아 받쳤다. 보건실 가자.
"나 진짜 괜찮은데 왜 그랬어? 지혜한테 미안하잖아."
"뭐가 미안해. 어차피 선생님께 말해줄 사람 필요하잖아."
"내말이 그게 아니잖...!"
"보건실이나 가자."
".........."
"반장님 왜 아프고 그래."
생소했다. 누가 나에게 왜 아프냐는 말을 해준 것도, 또래 남자애가 내 어깨를 잡고 있는 느낌도. 지혜가 꺼림칙했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더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묵묵히 부승관에게 의지해 보건실로 걸어갔다. 부승관은 또 평소처럼 혼자 옆에서 쫑알쫑알댄다.
보건실이 이렇게 가까웠었나.
+여러분.....보고 싶었어요....제가....드디어 왔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
저 기다려 주신다고 했던 독자님들께 너무 감사하네요!! 저를 매우 치세요 일단 ㅠㅠㅠㅠㅠ조만간 암호닉 정리도 해서 올려드릴게요!
밤이 늦었네요. 안녕히 주무시고 승관이 꿈 꾸세요! 사랑해여....♡다이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