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작은 집. 그 곳엔 너와 할머니가 단둘이 살고 있어.
얼마나 깊은 숲 속이냐면,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심에 장을 보러 갈때면 거의 1시간이 가까이 걸릴 정도로.
하지만 공기도 좋고, 가끔 뛰어다니는 토끼나 다람쥐를 보는 것도 좋아서 너는 꽤 행복하게 살고 있지.
하루는 할머니가 말해. 아가, 저녁거리가 떨어졌구나. 너는 빵바구니가 비어있는 걸 보고 한숨을 쉬어.
다녀올게요.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든 채로 산길을 걸어. 날씨가 좋은데다가 오랜만에 외출이라 기분이 좋아.
빵집 아저씨가 오랜만에 찾아온 니가 예쁘다며 사과도 하나 얹어주셔서 기분이 좋아졌어.
그런데 이를 어째. 빵을 사고 나오니 그새 하늘이 어두워져있네.
가을이 가까워져서 해가 짧아진 탓일까? 빵이 든 바구니를 들고 너는 조심스럽게 숲 속으로 들어서.
벌레 우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조금 더 걸음을 빨리해.
부스럭.
..무슨 소리지? 너는 놀라서 순간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봐. 그 때 한 번 더 소리가 들려.
부스럭. 부스럭.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야. 누군가 있나? 너는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가.
헉!!!! 뭔가 빠르게 너의 옆을 스치고 튀어나와.
너무 놀라 너는 그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져버려.
"....히..."
...뭐지 이 수줍은 눈빛은...? 남자는 쪼그려 앉아있다가 넘어진 너에게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서 건네. 너는 남자가 무서워서 받지 못하고 망설여. 남자가 뭐라고 말하려는것 같아서
너는 꿀꺽 침을 삼켜. ..사과... 너는 왠지 허탈해져서 사과를 받아.
그런데 이 남자.. 좀 이상하다.. 약간 덜 길들여진 느낌? 가만보니까 옷도 더럽고. 머리도 헝클어져있고.
너도 모르게 넌 손을 뻗어 남자의 머리를 헝클여. 그때 남자가 그르릉, 짐승 우는 것처럼 울어.
넌 놀라서 다시 손을 떼.
왠지 시무룩한 표정의 남자를 뒤로 하고 너는 빨리 뛰어서 집까지 와.
아가, 왜 이렇게 늦었니?
할머니. 오는 길에 이상한 남자를 봤어요. 막 저를 보고 울었어요. 동물이 우는것처럼.
..어머! 요즘 사람 모습을 하고 다니는 짐승이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조심하렴, 아가.
네, 할머니.
저녁을 먹고, 자려고 할머니 옆에 누웠지만 왠지 남자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아.
뭘까, 누구지. 정말로 사람의 모습을 한 짐승인가? ..아니야, 그런 거 신경써봤자 좋을 것도 없어.
너는 애써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어. 잠이 오질 않네.
다음 날,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너는 부스스 눈을 떠. 위에 얇은 옷을 걸치고 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 어! 어제 그 남자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어.
이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올라와? 썩 꺼져! 제일 나이가 많은 옆집 할아버지가 나뭇가지를 휘둘러.
너는 순간 놀라서 그 남자를 봐. 남자의 손에 너의 분홍색 지갑이 들려있어. 오, 어떡해.
그 때 남자와 너의 눈이 마주쳤어.
너는 놀라서 뒷걸음질쳐. 그 때 할아버지가 말해. 저거, 니꺼니? 너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할아버지는 나뭇가지로 남자의 어깨를 한번 쳐. 그르릉. 또 우는 소리를 내.
남자의 손에서 떨어진 지갑을 주워준 할아버지가 너보고 들어가라고 말해. 남자는 여전히 널 보고 있어.
뭔가 죄책감이 들지만 무서움이 앞서서 집에 들어와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돌아와서 의자에 앉아.
식탁 위에 가만히 놓여진 사과를 봐. 많은 생각이 들어.
그 후로 꽤 오랜만에, 너는 다시 장을 보러 나가게 됐어. 몸조심하고 다녀오라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길을 나서. 또다시 빵집아저씨가 인사를 하지. 오랜만이구나. 오늘도 빵바구니 위에는 사과가 있어.
빵집을 나오자 어두웠던 하늘에서 비가 내려. 어떡하지.. 너는 대충 손을 들어 머리를 가리고,
한 손으로 바구니를 들고 걸어. 어두워서 그런지 산길은 더 무서워.
부스럭.
익숙한 소리에 너는 그때처럼, 걸음을 멈춰. 저번과는 다르게 천천히, 검은 그림자가
가까워져. 아니나다를까. 그 남자야.
넌 그 남자를 조심하라는 할머니와 마을 어르신들의 충고가 떠올라 소리를 질러.
저리가! 그 말에 남자가 잠깐 멈칫하더니 더 이상 가까이 오진 않고, 너쪽으로 고개를 내밀었어.
너는 잠시 고민하다가, 떨리는 손을 뻗어서 처음 만났을때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줘.
그릉, 우는 소리가 나다가 멈춰. 니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것처럼.
니가 손을 떼자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어. 아, 비가 거세진다. 너는 할머니가 걱정하시기 전에
들어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을 옮기려다가 비에 젖은 낙엽을 밟아버렸어. 으악!
..아, 눈을 떠보니 남자가 너를 안고 단단히 받쳐주고 있어. 여전히 더러운 옷이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한 향기가 훅 끼쳐. 너는 어서 자리를 뜨기 위해 남자에게서 떨어져 바구니를 집어들어.
어쩌면 나쁜 사람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어.
바구니 위에 있는 사과를 건네자 남자가 비에 젖은 머리를 털고 사과를 받아.
그리고 널 보면서 계속 웃어. 너도 덩달아 웃으면서 이제 진짜로 멀어지려는데,
남자가 품속에서 뭔가 꼬물꼬물 꺼내. 뭔가하고 봤더니 낡은 우산이야. 서투른 손길로
우산을 편 남자가 너에게 그걸 건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덕분에 너는 비를 맞지 않았지만 남자는 흠뻑 젖어버렸어.
빗 속에서 남자와 너의 눈이 마주쳤어. 투둑, 툭. 넌 문득 어깨를 맞으면서도 너의 눈만 보고 있던 남자를 생각해.
우산을 건네받으면서 스친 손이 뜨거워. 고마워. 너의 말에 남자가 다시 배시시 웃어.
"다음에, 또. 만나."
아가, 왜 이렇게 늦었니.
비가 와서..
우리 아가, 할미가 미안하다. 오늘은 별 일 없었구?
...네..
저번에 니가 봤다던 사람은 이제 갈 길 돌아갔는지 모르겠구나.
그 날 밤도, 너는 마음 편히 잠을 이룰수가 없었어.
첫번째 이야기 |
안녕하세요 옛날에 독방에서 쓰던 걸 조금씩 수정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ㅎ.ㅎ 남은 여름 즐겁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