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안 나와서 그러는데 도대체 누구 잘못일까. 친구들 데려와서 집에서 재워도 된다고 허락해 준 우리 엄마. 또 좋다고 친구 부르겠다는 부승관. 그걸 덥썩 물고 우리 집에 온 이석민. 아니면 부승관이랑 한 집에 사는 가여운 나. 집에 남정네들이 우글우글하니까 오늘만큼은 엄마도 아빠도 걱정 없이 하루 나가서 주무시고 오신다는데, 그럼 그 시끌벅적한 집에 홀로 남아 견뎌야 하는 나는! 분명히 부모님도 애들이 시끄러울 걸 아시니까 나가신다는 게 분명한데, 아무래도 집에 남은 하나뿐인 딸래미 고막은 안중에도 없으신 듯 하다.
"야, 부너봉. 엄마가 뭐 시켜 먹으라고 돈 줬는데 뭐 먹고 싶냐."
"그래, 너봉아. 뭐 먹고 싶어. 마음대로 골라."
"우린 다 잘 먹음."
"우리 너봉 공주는 뭐 먹고 싶어? 오빠는 너봉이가 먹는 거라면 다 좋아요."
야, 노크 좀 하고 문 열어! …먹을 건 됐고, 이석민 너만 사라져줬으면 좋겠는데. 내 말을 듣자 마자 순영이와 민규는 웃기 바쁘고 이석민은 혼자 상처 받은 척, 세상에서 제일 가여운 척, 온갖 불쌍한 척은 자기가 다 한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한 번 쳐다봐주곤 넌지시 '난 피자.' 라고 말하니, 부승관이 '오케이, 피자.' 하면서 내 방에서 나가니 순영이와 민규가 정체불명의 기차놀이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를 잡으면서 내 방문을 나섰다. 다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려고 하는데, 어라.
"이석민, 넌 왜 안 나가."
내 방에 들어온 건 네 명이었다. 부승관, 권순영, 김민규, 이석민. 그 망할 이석민! '우리 자기랑 놀려고 그러지.' 라며 팔을 벌리고 침대로 다이빙하는 이석민을 향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발을 올렸는데, 짧고 굵은 비명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서 이석민이 사라졌다. 나는 다가오는 이석민에게서 왠지 모를 위험함을 느껴 본능적으로 방어를 한 것 뿐인데, 왜 내가 이석민 미래를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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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에 쓰러져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석민을 겨우 일으켜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은 채 괜찮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말도 못 하고 허공에 손만 허우적거리더니, 이제는 좀 괜찮아진 건지 씩 웃으며 내 허리를 감싸 안는 손길에 오른손을 들어 힘껏 이마를 내리쳤다. 야, 뒤질래! 맞은 이마가 아프지도 않은 지, 배달음식이 지금쯤이면 다 왔을 거라며 나를 어깨에 둘러메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하나, 둘, 셋. 와아아악! 뭐냐, 이석민. 내가 저럴 줄 알았어. 다들 이석민에 비해 정상인 거지, 부승관 친구 중에 정말 극도로 정상이고 안 시끄러운 애는 있을 수가 없다. 음식 세팅을 하던 중이었던 건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박수를 치는 최한솔, 우리에게 삿대질 한답시고 콜라를 든 손을 마구 위아래로 휘젓는 권순영. 헐, 콜라!
내가 그렇게 콜라 조심하라고 말을 했건만, '나는 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라는 표정으로 열심히 흔들던 콜라를 딴 권순영이 그제서야 내 말을 이해한 듯 생난리를 치며 콜라입구를 손으로 막았다. 그러나 소용이 있을 리가. 결국 부승관의 한심과 분노 섞인 샤우팅을 들은 순영이는 바닥에 흘린 콜라를 끈적임 없이 닦는 게 치킨을 먹는 것보다 급선무였고, 걸레질을 다 끝내고 자리에 앉았을 땐 이미 닭다리가 모두 실종이 됐음에 양 볼을 한껏 부풀리고 날개를 뜯을 수밖에 없었다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이야기.
"한솔아, 나 저기 피자 한 조각만."
마침 빈 손으로 있는 사람이 최한솔뿐이어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피자 좀 달라고 말한 것 뿐인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이석민이 자기가 먹던 피자를 내 입가에 대주며 피자는 자기한테도 달라고 할 수 있지 않냐며 생떼를 부리는데. 이석민 내쫓을 파티원 구함.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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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어른이 부재인 집은 청소년들이 음주가무를 즐기기 적합한 장소였다. 항상 문제는 이석민. 어디서 구한 건지도 모를 초록병과 갈색병들이 줄 지어 서있는 모습을 보니 몇 시간 뒤에 난장판이 되어 있을 거실이 상상이 돼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도 마실 거냐는 한솔이의 말에 안 마실 거라며 손을 내저으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내 손목을 붙잡은 이석민이 눈 앞에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익히 알고 있던 초록색 뚜껑이 아닌 형형색색의 뚜껑으로 잠겨진 찰랑거리는 내용물이 가득한 초록병을.
"야아, 너. …이석민, 몽총아아아."
세상 만사 걱정이 모두 없어지고 그 자리를 즐거움이 대신 메꾼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나는 분명히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부승관 찌끄래기는 내 발 밑에서 엎어져 반쯤 남은 새우깡을 끌어안은 채로 잠이 들었고, 권순영이랑 김민규는 서로 부둥켜 안고 과연 누가 상대의 몸에 다리를 올리는가에 대해 치열한 몸싸움 중이었다. 술이 셀 거 같던 최한솔은 비교적 멀쩡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 코를 골고 있다. 멀쩡한 상태라곤 안 했다. 이렇게 되면 이석민이랑 나, 둘만 남은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복숭아맛이 말도 안 되게 맛있어서 내일이 없는 사람인 거처럼 계속 마셨다. 손이 가요, 손이가. 새우…, 아니 소주잔에 손이 가요. 기분 좋음도 잠시, 많이 취한 거 같으니 그만 마시라며 내 손을 제지하는 이석민의 손길에 괜스레 짜증이 나서 젖 먹던 힘을 쥐어짜듯 얼굴을 구겼더니 그것조차 귀엽다며 나를 품에 안고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이석민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며 토기가 올라왔다. '야, 야. 나 토 할 거 같아.'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이석민이 부엌으로 달려가 찬물을 가져다 주었고, 나는 그대로 원샷.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여잡고 바쁘게 움직이는 이석민이 뭐 하나 싶어서 가만히 쳐다보는데, 여태 혼자 거실을 정리한 건지 다 치웠다며 한숨을 폭 내쉰 이석민이 내 눈 앞에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우리 너봉 공주 졸려죽겠구나. 들어가서 오빠랑 자자.' 내 뒤로 가더니 겨드랑이 밑에 팔을 넣어 날 일으켜 세운 이석민이 익숙한 듯 내 방문을 열고 날 침대에 눕혔다. 내가 이불을 어제 빨았던가…. 코를 간지럽히는 섬유유연제 냄새에 편안해져 이불을 부여잡고 눈을 꼭 감았다. 한참을 정신을 놓고 자는데 아무리 여름밤이라도 그렇지. 너무 더운 나머지 이불 좀 걷어 차려고 하는데, 내가 술 마셨다고 이불도 물을 먹었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겁고 뜨거운 지 모르겠다. 자꾸 정수리 쪽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사람 숨소리인 거 같기도 하고…. 아, 몰라. 그냥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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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도 많이 늦었ㄷㅏ....☆★
분량 늘리려고 노력하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네요ㅠㅠㅠㅠ
암호닉 신청해 주신 리마 님, 윤천사 님, 여네 님! 감사합니댱 !!!
그 외 다른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댓글도 얼마나 힘이 되는 지 모르겠어요
갑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