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아슬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그리곤 씻으러 방을 나서려는 찰나, 김민석, 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
그런 그의 모습에 너무도 놀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지려 한 나를 그가 팔로 자신의 허리를 감아 잡아주었다.
"……."
"……."
그로 인해 너무나 밀접한 거리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된 우리. 그와 이리 밀접한 관계에 놓이니 방금전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와 시선이 겹치며 본능에 이끌려 저절로 그의 입술에 다가갈려고 할 즈음, 그가 살짝 뒤로 빠지며 날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에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하면 안 될 짓을 할 뻔 했다는 죄책감에….
그 마음이 자꾸 나를 조여가는 그 순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하도록 해. 이렇게 넘어지면 위태롭잖,아?"
그렇게 말하고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깨에 얹어진 손에 온기가, 내 마음에 따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
그의 행동에 어찌 할 줄 모르고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그의 시선을 피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모든 게 다 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방금 전까지 느꼈었던 죄책감까지도….
"…그리고, 그렇게 넘어지면, 내가, 곤란하잖아? 안 그런가, 이름씨."
곤란하단 말과는 달리 전혀 그렇지 않아보이는 표정. …오히려 내가 더 곤란하게만 느껴진다.
"…뭐, 해…?"
그리곤 이윽고 들려오는 종인씨의 목소리. …맙소사, 종인씨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었다. 종인씨는 표정이 굳어진 채, 정색을 하며 나와 그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니야, 별 일. 그냥 넘어질 뻔 한 것을 잡아줬을 뿐이야."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듯 그의 말에 맞받아쳤다. 그런 그의 말을 듣고는 나 또한 그를 보았다. 틀린말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걸려왔다.
"어? 자기야, 넘어질 뻔 했어요?"
넘어질 뻔 했다는 말에 종인씨는 약간 놀랐는지, 눈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네, 뭐… 그래도 민석씨가 잡아주어서 다행히 안 다쳤어요."
그런 내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그제서야 굳어있는 표정을 조금 풀고는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의 웃는 모습에 나 또한 그를 따라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그가 그 미소에 화답이라도 하듯 내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시 거실로 가버렸다.
"……."
그리곤 그를 따라 거실로 가버린 김민석. 그런 그 둘의 모습에 저절로 시선이 뒤를 쫒고 있었다.
"……."
…근데 이상하게 종인씨보다 그가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뭘까….
그 의문점을 그 자리에 남겨둔 채 나 또한 욕실로 들어갔다.
***
"……."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에 말고는 욕실에서 나왔다. 샤워를 하는 내내, 아까 전의 일들이 자꾸 내 눈앞에 보란듯이 맴돌았었다. …마치 이건 끊어질 수 없다는 듯이…. 하지만 더 생각해선 안되었다. 더 생각할수록 나 자신에게 자꾸 각인이 될 것만 같았기에 애써 잊어버리려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수건으로 꾹꾹 누르며 머리의 물기를 짜내고 있었다.그리곤 거실로 나갔더니, …그가 있었다.
"…종인이는 방 안에 있는 욕실에서 씻겠다며 들어갔어."
나오자마자 들려오는 그의 한 마디. 그 말이 마치 운명처럼, 둘만 남으라는 운명 같았다.
"…아, 그래요."
애써 그 운명을 우연이라 생각하며 무시하려 애쓰고는, 그를 지나쳐 침실로 향했다.
"……."
그렇게 옆을 지나쳐 가려는데, 탁- 내 손목을 잡는 그다.
"…놓아, 주세요…."
…당혹스러운 마음에 놓아달라 말하니, 내 손목의 힘을 주고는 잡아당기는 그. 그가 잡아당기니 내 몸이 저절로 그에게 안겨있는 폼이 되었다. 자세가 민망하고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그런지 팔에 힘을 주고는 밀어내고 있는데… 밀어내면 밀어낼 수로 더욱 꽉 안는 그. 그리곤 내 턱을 잡아들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아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잘 빠져 나갔네…. 아깝다… 곤란해 하는 표정을 봐야하는데…."
"……."
그런 그의 말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내 곤란해 하는 표정이 보고 싶다는 말로 밖에 안 들리기에….
그런 그에게 안겨있는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더욱 그를 밀어내었다.
"…이거, 놔요…. 종인씨가, 안에…."
"김종인이야, 뭐. 워낙에 관대한 녀석이라…. 이것 또한 관대해지겠지."
종인씨를 핑계 삼아 말하니, 그의 대답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종인씨가 관대하게 날 보낸다….
그런 그의 말에 나의 멘탈이 흔들리고 있을 무렵, 어느샌가 답답하게 안고 있던 그가 손을 풀고는 한발짝, 두발짝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곤 뒤에서 딸깍 거리며 들려오는 문이 열리는 소리. 그 소리에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수건을 어깨에 걸치곤 흰 티를 입은 종인씨가 보인다. 그리곤 이윽고 든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가 했던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건지… .
"…자기야- 다 씻었어요?"
너스레 웃으며 내게 물어오는 그를 보며,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슬쩍이나마 올리며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거림과 동시에 그의 말은 무시하기로 결심하였다.
"……."
내 등 뒤로 안아오는 종인씨. 그리곤 들려오는 달콤한 목소리.
"민석이 자리는 내가 깔아줄테니까, 자기는 먼저 들어가요-"
그러면서 나를 안은채 방으로 향하는 종인씨. 그런 종인씨의 행동에 발걸음을 조금은 억지스럽게 맞추며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
"……."
"먼저 자진 말고, 편하게 쉬고 있어요- …쪽-…."
이윽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내 볼에 입을 한 번 맞추어주더니 문을 닫고 나가는 종인씨.
"……."
문을 닫고 나가는 종인씨의 표정을 무심결에 보아버렸다. …굳어있는 그의 표정을….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떠오른 그의 말.
"김종인이야, 뭐. 워낙에 관대한 녀석이라…. 이것 또한 관대해지겠지."
떠올리면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도 떠오르는 내 머릿속은, 걷잡을 수 없는 미궁으로 빠지는 듯 했다.
***
달깍- 방문을 닫으며 나오는 종인. 그리고 그런 종인을 따분하게 보는 민석.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내일 방에 짐 옮겨놓을게."
"……."
그녀와는 전혀 다른 말투로 민석을 대하는 종인이다. 그런 종인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민석. 친구라던 둘의 공기는 한없이 어색하고도 어색했다.
"……."
이불을 들고 나오는 종인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고, 그런 종인을 보는 민석은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불을 펴며, 민석의 자리를 깔아주는 종인. 그때까지도 둘 사이에서는 정적만이 흘렀다. 하지만 곧 정적을 깬 건 다름아닌 종인이었다.
"…아까 일이 걸려서 그러는데…. 진짜, 잡아준거지…?"
아까까지의 일이 아직까지 마음에 걸리는 지 민석에게 묻는 종인이었다.
"…응, 놀라서 뒤로 넘어지려는 거 잡아준거야. 손은 무심결에 닿게 된거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넘기는 민석을 보니, 종인은 그제서야 굳은 표정을 풀고는 민석을 보았다. 그리곤 민석을 향해 살짝 눈웃음을 지어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잘 자라."
어느새 이부자리를 다 깐 건지, 잘 자라며 툭툭-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 들어가는 종인이었다. 달깍- 종인이 방으로 들어간 후, 거실에 혼자 남은 민석. 그리곤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을 혼자 이야기하는 그였다.
"…뭐, 그 일이 네 예상과 달리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리곤 불이 꺼지며 창문 너머로 어두움이 밤하늘과 함께 자욱히 깔리고 있었다.
조금 늦었네요ㅜㅜ 앞으로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겠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