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ㅇ, 아. "
" ㅇ,야, 너네, 나 연애상담 비슷한 거, 그런 거 좀 해줄 수 있냐? "
" ... 뭔데요. "
" 그니까, 지금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하나 있는데, "
그 때 술자리에서 진실게임을 한 이후로, 나와 ㅇㅇㅇ사이에는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예전엔 과제를 물어보거나 전공책을 잠깐 보여달라던지, 그런 소소한 이야기는 주고 받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통 말이없다. 남중 남고 루트를 타버린 나였기에, 여자와 말을 나눠본 경험조차 많이 없었기에, 도대체 ㅇㅇㅇ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 ...야, 현수야. "
" ... "
" 너는 좋아하는 여자애 생긴 적 있냐? "
" ... "
" ...막 생각나고, 귀엽고 그래 "
" ... "
" 내가 어떻게 해야할 것 같냐? "
" ... "
" ...자냐? "
" ... "
" ... "
*
" 지금 내 상황이 대충 이래. 어떻게 고백하지? "
" 형은 그 여자분 전화번호도 모르잖아요. "
" ...아니야, 내가 과대라서 찾아보면 있긴해. 카톡에 없는 거 같긴하다. "
" 생일은 알아요? "
" ... 아니. "
" 남친 있는지 없는지는, 알아요? "
" ... 아니. "
" 혹시 이름 석자는 제대로 알아요? "
" 난 너희한테 상담을 해달라고 했지 심문을 해달라고 한 적은 없어 새끼들아. "
" 뭐, 대충 각 나오네요. "
" ... 뭐 어떻게 나왔는데. "
" 아는 거 쥐뿔도 없잖아요, 만약에 지금 남친 있으면 어떡할 건데, 그냥 포기하세요. 내가 볼 때 둘은 아니야. "
" ... "
" 너 그 ㅇㅇㅇ인가 하는 애도 남자친구 있을 수 있다는 건 생각 안해봤냐? "
" 왜 잘 돼가고 있는데 초치고 그래요? 거의 다 넘어왔어요. "
" 초치는 게 아니라, 한심해서 그래 이 새끼야. 걘 너한테 관심도 없는데 너 혼자 삽질하는게 한심해서그런다고, 한심해서. "
" 그건 형도 마찬가진데요. "
" ... "
" ... 전 이만 ㅇㅇ랑 통화하러. "
*
전공 시간이었다, 개강을 기념한다나 뭐라나, 조별과제가 하나 있단다, 시발. 애석하게도 우리 교수님이 질질끄는 걸 싫어하시는 탓에, 조까지 친히 정해오셨단다. 시발, 개 좆같다.
*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형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분명 교수님이 임의로 정하신 조라고 하셨는데, 나와 ㅇㅇㅇ이 같은 조로 편성되어 있었다. 지금 이 기분은, 어, 너구리를 샀는데 다시마가 하나 더 들어있는 느낌, 그 느낌이다.
" 그래서, 회의는 토요일에 만나서 하는거지? 안 나오면 안된다, 진짜로. "
진짜 귀엽다. 키도 조그만게 나름 협박이랍시고 주먹을 꼭 쥐고 때리는 시늉을 하는데, 진짜 귀엽다.
" 그럼 나는 발표문 작성할게. 윤기야, 너는 뭐할래? "
" ... "
ㅇㅇㅇ이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것도 성 떼고. 그냥 담당맡고싶은 게 뭐냐고, 형식적으로 물어봤을 뿐인데,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 나...는 ppt 만들게. "
" 진짜? "
" 역시 민군주님이네, 군주님이야. "
시발, ppt가 제일 좆같은데, 나름 잘보이겠다고 제일 어려운 담당을 맡는답시고 말을 내뱉긴 했는데, 사실 지금 좀 후회된다.
*
" ...윤기형 뭐해요? "
" 뭐 새끼야, 너 모자 있냐? 좀 줘봐. "
" ... "
" 저 형 왜저래요, 토요일 대낮부터. "
" 야 전정국, 너 자주쓰는 스킨 좀 줘봐. "
" ... "
" 야, 날씨 좋네. 나는 나갔다 온다, 잘 있어라. "
*
" 근데 형들은 좋아하는 여자 없어요? "
" 난 있지, 새로 들어온 사원인데, 되게 귀여우셔. "
" 요즘 계속 저 따라다니는 여자애 한 명 있어요, 처음엔 진짜 싫었는데, 계속 보니까 좀 귀여운거 같기도 하고... "
" 나도 있긴한데···. 같은 반 여자애. "
" ... "
" 그럼 남준이형 빼고는 다 짝이 있는거네요. "
" 무슨 짝이야 시발, 걔가 일방적으로 나 따라다니는 거라니까? "
" 나 걔랑 말도 많이 안하는데... "
" ㅇㅇ씨랑 같은 부서긴 한데, 얘기를 잘 안해. "
"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 없을 거라고 생각하냐? "
" 그럼 있어요? "
" 없는 건 아닌데, 그, 요즘 막, 별로였다가 좋아졌다가···. 이게 뭔 감정인지 잘 모르겠어, 나도. "
" 각 나오네요. "
" ...? "
" 둘이 썸타는 거잖아요, 맞죠? "
*
내 나이 스물한 살, 대학교 2학년이다. 남에게 용돈을 타 쓰지 않는게 버릇이 되어버린 탓에, 고등학생 때 부터 꾸준히 알바를 해왔었다. 요즘은 카페에서 알바 중인데, 사장님이 알바를 뽑는다고 하셨다. 이왕이면 여자였으면 좋겠다. 남자만 네 명인 탓에 카페 분위가 지나칠 정도로 칙칙하다.
" 야, 남준아. "
" 네? "
" 알바 새로 뽑았어, 너랑 같은 타임에 뛸거니까 네가 잘 좀 챙겨주고, 혼자 여자라서 적응도 못할거야. 네가 맡아서 잘 가르쳐, 알았지? "
" ...네. "
여자다, 새로 오는 알바가 여자란다, 여자다. 여자알바다.
뭐부터 가르쳐주지, 스무디? 아니, 빙수? 아니, 생과일주스? 아니, 카운터? 아니, 대걸레질은 잘 하겠지? 아니, 그런 거 필요없다. 일단 여기 와준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
" 어... 안녕하세요. "
" ...누구세요? "
" 저... 그, 아, 같이 일하게된 사람...인데요. "
" ...아, 그렇구나. "
" 네, 저 뭐부터 해야할까요? "
" 포스기 사용할 줄 알아요? "
" 네, 편의점 알바 했었어요, 예전에. "
" 걸레질은 할 줄 알죠? "
" ...네. "
" 그럼 여름이니까, 에이드랑 빙수, 프라페노 알려줄게요, 옷 갈아입고 와요. "
" ...네. "
*
이 여자 카페알바 한 번도 안해본 거 티내기로 작정한건가, 제빙기도 못쓴다. 게다가 컵홀더도 잘 못 씌운다.
뭐, 조금 귀여운 거 같긴 했다.
*
" ...저기, 뭐해요? "
" ... "
잠시 카운터를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잔뜩 화가 나신 채로 나가는 손님, 어지럽게 쓰러져있는 프라페노,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ㅇㅇㅇ, 그리고 쓰러져 있는 의자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 ... "
" ... "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
"... 죄송합니다. "
" 죄송할 거 없고,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
" ... 키위스무디를 시키셨는데, 어떻게 만드는 지 모르겠는데, 선배는 나가서 없고, 이미 시간은 엄청 지나있어서, 그래서 그냥 키위랑 얼음이랑 ... 우유랑 갈아서 넣고 위에 생크림 뿌려서 드렸는데, 제가 못할 짓을 한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
" ... "
지금 내 표정은 겉잡을 수 없이 굳어 있겠지만, 사실 속으로는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다. 당연한 거지, 잘 가르쳐 주지도 않은 키위스무디를 손님이 주문하는데, 같이 알바하는 오빠는 화장실가서 없고,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주문 거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셨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내 잘못이다. 알바 시작한지 하루도 되지않은 애한테 무슨 주문을 맡기겠나, 다 내 탓이다. 그래, 내 탓이야.
*
어느새 시침은 10을 가리키고 있었고, 슬슬 마감준비를 해야할 것 같았다.
" ㅇㅇㅇ, 파우더통이랑 시럽통들 다 설거지좀 해라. "
" 네. "
" ㅇㅇㅇ, 대걸레 갖고와서 저기 좀 닦아, 끈적거린다. "
" 네. "
" ㅇㅇㅇ, 블랜더기 좀 씻겨놔. "
" ...네. "
" ㅇㅇㅇ, 테라스 좀 정리하고와. "
" ... "
*
" 집이 어디 쪽이야? "
" 멀어요, 버스 타고 가야해요. "
" 돈은 있어? "
" 당연하죠, 아까 도시락 사먹고 7000원이나 남아ㅇ... "
" ...? "
" ... "
" ...왜, 없어졌어? "
" ...아까, 키위스무디 제 돈으로 메꿔서... "
" 근데? "
" ...500원만 빌려주세요. "
" ... "
" ... "
*
아무리 상가때문에 거리가 밝다고 해도,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의 길거리는 여자 혼자 걸어가기에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버스정류장 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 ...오늘 내가 많이 구박했지, 이것저것 다 시키고. "
" 아니에요, 원래 알바가 이런 거 하는거죠, 뭐. 저야말로 엄청 죄송하죠, 첫날부터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
" 괜찮아, 나도 예전엔 그랬어. "
" ...진짜요? "
" 그럼, 짤릴뻔한 적도 많았어. "
" ... "
" 포스기 다루는 것도 어렵지? 손님들 주문 하는것도 잘 못알아듣겠지? 음료수도 만들기 어렵지?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냐. "
" ...감사해요, 제가 선배였으면 저 한 대 때리고도 남았을 거에요. "
" 한 대면 다행이지. "
" ... "
" ... "
" ... "
" ... 다 왔다, 잘 가라. "
" ㅈ, 저기 선배 ...! "
" ...? "
" 감사합니다, 진짜로... 내일 봬요, 돈 꼭 갚을게요. 안녕히 가세요, 선배 ! "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미소짓던 얼굴이 지나가던 차에 내 모습이 비쳤을 때, 그 때였다.
*
" 아, 형들은 좋아하는 여자랑 말 좀 텄어요? "
" 아니, 얼굴도 잘 못봐. "
" 그냥 그래. "
" 형들 할 짓 없죠, 그럼 제 연애상담 좀 해주실래요. "
" 왜 시발 요즘 연애 못해서 안달난 애들이 이렇게 많아, 시발. "
" 아아, 그러지말고 제 얘기 좀 들어봐요. "
*
그 때 허세를 부리다가 개쪽을 당한 이후로 ㅇㅇㅇ과는 얘기도 한 번 못해봤다. 뭐, 그 전부터 얘기를 나눌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요즘따라 더 어색해진 것 같기도 하다.
담임이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시발, ㅇㅇㅇ과 그나마 가까운 자리라서 훔쳐보는 것 만으로도 내심 행복했는데, 자리를 바꾸게 되면 이제 그마저도 못하는 게 아닌가,
자리를 바꿔주는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60여개의 눈동자들은 모두 tv를 향해있다.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자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신없이 내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맨뒤다, 그동안 키가 큰 탓에 ㅇㅇㅇ을 훔쳐보다 괜히 마음에 찔려 잘 훔쳐보지 못했는데, 맨뒤에 걸린 덕에 이제 좀 맘편히 ㅇㅇㅇ을 훔쳐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짝꿍은 ㅇㅇㅇ인듯 했다.
?
*
심장이 너무 떨렸다, 매일같이 가느다란 목선만 보여주던 그녀가 내 옆에 앉아있다. 드디어 시계를 쳐다보는 척 하며, 드디어 목선이 아닌 옆모습을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이쯤되니 내가 너무 애잔하게 느껴졌다. 고작 옆모습 볼 수 있다고 좋아하는 꼴이, 안쓰러웠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까, 씹으면 어떡하지, 얘 나 싫어하는 것 같은ㄷ...
" 저기... "
" ...어? "
" 왜 계속 쳐다봐...? "
" ... "
정신을 차려보니 난 꽃받침을 한 채로 비스듬히 앉아 대놓고 ㅇㅇㅇ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나도 알지 못했다. 그냥, 너무 보고싶으면 이러나, 아, ㅇㅇㅇ이 나 이상한애로 보면 어떡하지, 아, 괜찮으니까 변태로만 생각 안 해주면 좋겠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변태로 낙인 찍히는 것 만큼 애잔한 남자는 나말고 또 없을 것이다.
*
" 학교일정이 나왔다. "
" ... "
" ... 체육대회가 2주 남짓 남았다. "
" ...? "
" ... 다들 반티 어떻게 할건지 정해놓고, 오늘 야자대신 체육대회 출전종목 정할거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생각해놔. "
*
" 어, 계주 마지막 주자 관심있는 사람 손 들어라. "
" ... "
" ... 추천 좀 해봐라. "
" 김태ㅎ...! "
" 그래 그럼 태형이, 하고, 여자는? 누가 잘달리냐? "
" ㅇㅇㅇ이요. "
" 그래 그럼 여자 마지막 주자는 ㅇㅇㅇ, 반티는, 다 정했냐? "
" 일단 후보 5개로 추려봤어요. "
" 그래 그럼 가라. "
" 네? "
" 오늘 야자 안한다고 했잖냐, 오늘은 그냥 집 가라. "
*
계주연습이 있다고 해서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몇 분 뒤 선생님이 나오셨고, 계주 연습이 시작되었다.
ㅇㅇ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주자였던 탓에,
괜시리 걱정되었다. 넘어지면 어떡하지, 너무 부담 안가졌으면 좋겠는데, 긴장하다가 발 삐끗하면 진짜 큰일나는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내가 바통을 넘겨주고 난 뒤 ㅇㅇ이가 그만 넘어져버렸고, 무릎엔 피가 나고 발목은 퉁퉁 부어있었다. 나 때문에 넘어진 건 아닌가싶어 괜시리 미안해졌다. 반에 친한애가 없는 것 인지 스탠드에 홀로 앉아 인상을 찡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픈 애를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귀여운 걸 뭐 어떡하나.
그나저나 지금 보건실 안 가면 큰일날 것 같은데, 발도 더 부어있고. 피는 계속 흐르는 거 같고, 혼자 보건실을 가기에는힘들 것 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또, ㅇㅇㅇ에게 이상한 변태같은 애로 확실히 자리매김 할만한 짓을 저질러버렸다.
" ... 저기. "
" ...어? "
" 보건실... 같이 갈래? "
*
이 망글은 뭐죠ㅠㅠ 7명의 이야기를 다 풀어나가려니 확실히 한계가,,, 방탄이 형제라면도 거의 끝나가네요 ! 뭐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끝나,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이 글을 끝마치고 나오는 글이 이 글과 연관되는 글이에요 ! 무슨 소리냐면,,, 나중에 보시면 아실 거에요,,
지금까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