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입생들은 연주누나의 바람대로 인물들이 꽤 수려했다. 전 학년을 통틀어서 이렇게 꽃밭이었던 적은 없다며 호들갑을 떨던 누나는 아예 한명한명 손으로 가리키며 궁금하지도 않은 신입생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쟤가 김종인인데, 진짜 섹시하지않아? 어린 게 누나 마음에 불을 지피네. 그리고 쟤는 오세훈인데… 누가 금사빠 아니랄까 봐 예찬에 가까운 한 줄 평들을 열렬하게 내뱉는 누나의 목소리를 경청해주는 척하며 심드렁하게 턱을 괴었다. 아, 빨리 집 가고 싶다.
“ 마지막으로 대각선에 앉은 쟤 보이지? 쟤가 도경수인데.. ”
“ ..으응 ”
“ 난 경수가 제일 좋더라. 잘생긴것도 잘생긴 건데.. ”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아주 남자답지 않아? 왠지 밤일도.. 소곤거리며 덧붙이는 누나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게 느껴졌다. 누나! 그거 성희롱 아니에요? 그것보다 저도 남자거든요?? 혹여나 대각선에 앉은 도경수가 들을까 봐 나 역시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리니 그게 또 귀엽다며 장난이란 말과 함께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아무튼, 부끄러움은 항상 내 몫이지?! 괜히 민망해져서 코끝을 긁으며 도경수를 슬쩍 쳐다보았다.
“ ... ”
“ ... ”
순간 허공에서 도경수와의 시선이 맞닿아졌다. 어..이쪽을 보고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눈이 마주친 게 뭐라고 급히 시선을 피했다. 아 진짜, 연주누나는 왜 그런 말을 해서! 들은 건 아니겠지? 애꿎은 누나를 흘기며 앞에 놓인 안주를 젓가락으로 깔짝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진득한 시선. 진심으로 집에 갈까..
“ 자자, 다들 하던 거 멈추고! 서로 통성명해야지. ”
시선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무리 애써 무시한다고 한들 온 신경이 도경수 쪽으로 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난데없이 과대형이 자기소개를 하자고 한다.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도경수의 시선이 과대형의 왼쪽에 앉았다는 이유로 제일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김종인에게로 옮겨졌다.
“ ..도경수 입니다. ”
그리고 몇몇 신입생들을 거쳐 마침내 도경수 차례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충격적인 자기소개를 들었다.
“ 아, 참고로 게이입니다. ”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해있었다.
[경수X백현]연하남의 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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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모임이 이렇게도 잦은지, 오늘도 강의가 끝나자마자 친목 도모를 위해 동방에 모이라는 카톡을 받고 동방으로 향했다. 겉포장만 그럴싸한 친목도모지 사실 금요일이고 하니 술이고픈 동아리 회장의 뻔한 패턴이 분명했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쉰다고 해야겠다. 최근 동아리에 들어온 신입생 중 불편한 도 모씨도 있고 하니 차라리 술을 포기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다짐하며 동방 문을 열려고 할 찰나,
“ ..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
“ 네. 그러니까 좋아하지 마세요. ”
“ 어..어떻게.. ”
“ 그리고 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요. ”
절대 엿듣고 싶어서 엿들은 게 아니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연주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미들로우톤의 보이스가 들려왔다. ‘ 아, 참고로 저는 게이입니다. ’ 저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까. 아무튼, 대충 상황을 보니 경수, 경수 거리던 연주누나가 기어코 고백을한 것 같긴 한데.. 저렇게 고민도 없이 단칼에 뻥 차버리다니. 어쩐지 괜히 머쓱해져 코끝을 긁으며 문고리에서 손을 떼는데 둘의 대화가 다시금 들려왔다.
“ 누구인지.. 물어봐도 돼? ”
“ 저는 엉덩이 페티쉬가 있습니다. ”
“ ...어? ”
“ 더 말해야 합니까? ”
어.. 엉덩이 패.. 뭐?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뜻밖의 대답에 당황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연주 누나의 되묻는 물음에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긴 정적 끝에 연주누나가 동방을 뛰쳐나왔고 행여나 엿들은걸 들킬까 봐 재빠르게 숨을 삼키며 벽 쪽에 달라붙었다.
“ 너 여기서 뭐 해? 쟤는 또 왜 저러고. ”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
“ 어? 도경수, 너밖에 없어? 이새끼들이 빠져가지고. ”
때마침 도착한 민석이형이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보고 낄낄 웃으며 동방 문을 열다가 도경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단톡을 보낸 지가 언젠데 왜 안 오냐는 둥, 아직 확인도 안 한 사람은 뭐냐는 둥. 투덜거리는 민석이 형을 사이에 두고 도경수와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 안 되겠다. 너희 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
“ .. 형! ”
“ ... ”
“ 금방 잡아올 테니까 딴 데 가지 말고 있어! ”
그냥 기다리면 안되요? 형 제발.. 아님 나도 데리고가요. 다리를 붙잡고 매달릴 기세로 애원하는 날 내버려두고 매정한 민석이형은 끝끝내 씩씩거리며 동방을 나갔다. 아.. 벌써부터 어색함에 숨이막힌다. 저 진득한 눈빛만 거둬주면 그나마 살 것같은데.. 민석이형이 나가자마자 올곧은 시선이 또다시 나를 향했다. 왜인지, 도경수가 빤히 쳐다볼때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부끄러움이 더 커서 애써 영양가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 어.. 오늘 날씨 참 덥다, 그치? ”
“ ... ”
“ 일찍온거 같은데 강의가 없었나 봐 하하. ”
“ ... ”
“ 저, 저기에 앉아있어야겠..으악! ”
무슨 벽이랑 대화하는것도 아니고 대답없는 도경수의 반응에 민망해져 로봇처럼 뻣뻣하게 의자를 향해 걸어가다 스탭이 꼬여버렸다. 쪽팔림은 둘째치고 닥쳐올 고통이 두려워 외마디 비명과함께 눈을 질끈 감았는데 바닥에 닿기도 전에 단단한 팔뚝이 가슴팍을 안아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미들로우톤.
“ 선배. ”
“ 야, 너.. 너 왜 엉덩이를 만져! ”
“ 백현아. ”
“ ..너.. ”
“ 나 엉덩이 페티쉬있다니까. ”
미, 미친새끼! 입을 쩌억벌리며 경악에 찬 얼굴을 내보이는 내게 도경수는 씨익-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 얼굴만 내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
“ ... ”
“ 엉덩이마저 존나 마음에 드네. ”
“ ..야!.. ”
“ 찾았다, 내 이상형. ”
내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끈질기게 시선을 맞춰오는 도경수를보며 백현은 앞으로의 대학생활이 걱정되었다.
이 죽일놈의 연하남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