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X첸 초능력 시리즈 02 : 번개가 내려치는 오후
지루했던 강의가 끝나고, 항상 그랬듯 백현은 자신의 동방을 찾았다. 그런데, 오늘 백현의 발소리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쪼르르, 라는 효과음이 날 것만 같았던 백현의 발소리는 쿵쾅거리는 공룡과 같이 변한 지 오래였고, 발소리의 힘이 전달된 건지 동아리 방의 문을 여는 손에는 마치 광선검이라도 나올 듯이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백현은 문이 열린 순간, 그 모든 힘을 담아 자신의 깊은 화남이 느껴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야, 김종대!!!!!"
w. 고넬
"야, 이 개새끼야.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응?"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 백현의 고운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창문 밖으로 자신의 친구 천둥과 함께 맹렬한 기세로 출연하고 있는 번개였다. 백현, 우리 종대한테 욕하지 마. 종대를 향한 백현의 욕을 들은 것인지 자신의 어깨에 기대있는 종대의 머리를 쓰다듬던 크리스가 타이르듯 얘기하는 것을 들은 백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크리스가 있으니 아마 강의 내내 머리를 굴려가며 번개 좀 그만 치게 하라는 의도로 계획했던 협박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의 백현!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찬열의 옆에 찹쌀떡처럼 떡! 하니 붙어 있으며 백현의 얻은 것은 그 어떤 상황이라도 넘어갈 수 있는 임기응변과 잔머리였으니. 갑작스런 닭살 커플의 습격에 찬열이 너무나 보고 싶어진 백현은 작전을 바꾸어 자신의 눈을 찌르고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꼬리를 보였다.
"그치만, 무섭단 말이야. 응? 나 번개 무서워하는 거 알잖아."
"백현, 성인 남자가 저걸 무서워해?"
맞아, 변백현. 저게 무섭냐? 크리스는 눈물에 약하니 눈물을 보여야겠다는 백현의 작전은 종대의 눈물에만 반응하는 크리스에 의해 보기 좋게 실패하였다. 백현은 크리스의 말에 맞장구치는 종대가 너무 얄미워 자신의 주특기인 파워, 백현 빔! 을 날리고 싶었지만 우선 번개를 향한 자신의 무서움이 먼저였기에 참았다. 는 백현의 변명이고, 사실 그런 종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크리스가 무서웠다. 저 병신이 뭐가 좋다고…. 찬열아, 보고 싶어. 강의는 잘 듣고 있니..?
"엄마야!"
종대를 얄미워하는 백현의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번개가 한 번 더 쳤다. 자신의 귀를 두 손으로 꼭 막고 빛과 같은 속도로 황급히 책상 밑으로 들어간 백현의 귀에 종대가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 이 번개같은 새끼야! 아니, 사랑하는 나의 단짝 친구 종대야. 내가 미안. 응? 번개 좀 어떻게 해 봐. 좀!
"야, 변백, 너 전에 박찬열한테 받은 기프티콘 있지?"
"응? 응, 왜?"
"나 크리스랑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백현은 언젠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찬열이 더울 때 친구들이랑 먹으러 가라며 보내준 기프티콘을 생각하며 방긋 웃다 이어지는 종대의 말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 저 개새끼가!
"종대야, 크리스는 먹고 싶지 않아하는 거 같아. 크리스, 그치? 응?"
백현, 나도 먹고 싶은데? 결정타를 치는 크리스의 말에 백현은 이내 축 쳐져 힘없이 카톡을 실행시켜 종대에게 기프티콘을 보낸 후 곧바로 번개가 멈추자 백현은 한숨을 돌리며 맨 위에 올려져 있던 찬열과의 채팅방을 열었다. 찬열아…. 내가 미안해.
[차녈아ㅜㅜㅜㅜㅜㅜㅜ] 오후 03:28 [김종대가기프티콘안주면번개안멈춰준다고해서] 오후 03:28 [김종대한테ㅈ..줬어ㅜㅜㅜㅜ] 오후 03:29 [내가미안해ㅜㅜㅜㅜ오늘내가아이스크림사줄게ㅜㅜ..♡] 오후 03:30
어? 어! 읽었다! 그러고 보니 3시 30분, 찬열의 강의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그랬어, 우리 백현이? 김종대 혼내야겠다. 아, 나 강의 끝났는데 동방이지? 금방 갈게. 곧바로 온 찬열의 답을 입모양으로 따라서 읽던 백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띄었다.
*
"크리스, 맛있어?"
응, 맛있어. 종대는 왜 안 먹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저 자신에게 아이스크림을 권하는 크리스를 본 종대는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나는 너랑 놀고 싶은데, 말도 없이 자꾸 아이스크림만 먹고. 지금 나보다 아이스크림이라는 거야? 응? 설마.. 신종 밀당 수법인가?! 아이스크림 보지 말고 나만 보라고 떼 써 볼까? 으, 크리스한테 이런 거 말하면 아이스크림한테도 질투한다고 나 되게 한심하게 보겠다. 나 질려 할 지도 몰라.. 아이스크림 먹자고 한 내 탓이지. 종대는 금방이라도 나와버릴 듯한 말들을 애써 속마음으로 봉인하고 제 딴엔 최대한 어른답게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속이 안 좋아서. 맛있게 먹어, 크리스.
종대의 컵 안에 있던 아몬드 봉봉은 이미 녹은 지 오래였다.
"종대, 화 났어? 응?"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땅바닥과 아이컨택을 하는 종대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크리스가 고개를 숙여 종대와 눈높이를 맞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스크림만을 먹고 있는 크리스의 모습에 정말 단단히 삐친 건지 다정하기만 한 크리스의 행동에도 반응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 종대의 모습에 크리스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만 해도 기분 좋았는데…. 이따 비행이라도 시켜 줄까. 아니, 종대 고소공포증 있어서 안 되는데. 순간 크리스는 저 멀리서 번개를 본 것도 같았다.
"종대, 고개 좀 들어 봐. 응? 얼굴 보고 싶어."
크리스의 말에 발걸음이 멈춤과 동시에 땅바닥과 아이컨택을 끝낸 종대가 고개를 들어 한참 위에 있는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어, 종대. 울어? 밀려오는 서운함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건지 크리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왜 울어. 응? 종대. 순식간에 크리스의 너른 품에 안긴 종대는 터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크리스한테, 흡,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은데, 흐, 자꾸 질투가, 나."
"어? 어떤 거에 질투가 나, 종대?"
"그냥, 흐윽, 아이스크림 먹지 말고, 나만, 나랑, 얘기했으면, 흐, 좋겠어."
백현이 종대의 말을 들었다면 당장 내 기프티콘 내놔, 개새끼야! 아님 파워, 백현 빔! 맞고 싶냐? 것도 싫음 빛 모아서 배 뚫어줄까? 라고 말 할 게 눈에 선했지만, 그래도. 지금 종대는 너무 서러웠다.
"어구, 종대. 아이스크림한테도 질투 하는 거야?"
말과는 다르게 다정한 크리스의 말투와 행동에 종대는 어른스러워 져야 겠다 라는 생각을 잊은 건지 크리스에게 답했다. 응, 그니까, 흡, 나랑 놀면 안 돼?
"당연 아이스크림보단 김종대지."
진짜? 진짜지?! 크리스의 말에 언제 울었냐는 듯 환하게 웃은 종대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크리스를 올려다 보았다.
울면 못났어, 종대. 그니까 이제부턴 울지 마. 응? 끄덕이는 종대의 얼굴에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던 크리스가 자신에 비해서 턱없이 작기만 한 종대의 조그만 손을 조심스래 잡아 쥐었다.
/초능력 시리즈는 야다와 고넬의 릴레이 픽입니다. 라파엘은 야다와 고넬 공동 명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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