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상으로 05 w.기분이나쁠땐 심란함도 잠시 민석이와 바깥으로 나와 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쐬자 심란했던 마음과 머리가 심란함을 잠시 잊는 듯했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흐르는 따스한 햇빛에 나는 한껏 몰입해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과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한채 잊고 있었던 민석이를 생각했다. 민석이 또한 의자에 앉아서 바람과의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 민석이는 이런 풍경을 항상 동경해오고 갈망해왔을 꺼다. 항상 병실에서만 보던 풍경. 정겨운 풍경. 자신의 병실과 다르게 행복하고 따스한 풍경. 괜시리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까 의사선생님의 모습과 민석이가 소망하고 원하던 이 순간이 오버랩되어 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민석아.. 뭐해..?" 계속 민석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다면 분명 울 것만 같아 조심스레 민석이를 불렀다. "루한.. 난 다알아.." "뭘?" "루한..고마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였다. 무슨 말을 하는 지 말하지않아도 다 알것만 같았다. 그 뒤로 우린 서로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루한...나 뭐하나 물어봐도 되..?" "뭔데...?" "넌 어디서 왔어?" ".....비밀이야.." 웃으며 묻는 민석이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궁금해하지만 알려줄 수 없는 답답한 이 마음을 알까..? "루한... 있잖아... 난 니가 어디서 왔든 뭘하고 다녔든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어.. 니가 좋아.. 넌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될거야.. 니가 부모님보다 소중해.... 루한.. 난 말이야.. 여태까지 친구라는 건 없었어.. 긴 병실생활에 애들이 한번쯤은 다 다녀와봤을 제주도도 못가보고 놀이동산도 못가보고.. 시험도 본 적 없고.. 학교를 다녀본적도.. 학원을 다녀본적도 없어.. 그나마 아아주 어렸을 때 놀이터 한두번 가본게 내 인생의 신나는 추억이야.. 물론 그마저도 희미하게 지워져가고 있지만.. 루한. 니가 의사 선생님한테 무슨 말 듣고 왔는 줄 알아. 분명 내 이야기가 나왔겠지. 루한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고통속에서 주사바늘속에서 병실속에서 아픔속에서 수술속에서 그렇게 살아왔어. 니가 알고 있는 18살 남자아이의 생활과는 많이 다른.. 그런 생활을.. 루한.. 너를 처음 만나고 니가 나한테 니 생각을 말해줬을 때. 희망을 가지라 했을 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좋다. 사실 그 누구도 나한테 희망을 가지라 한적 없어. 아니 우리병실에 애초에 희망이란 단어는 없었어. 병원에서 자신 인생 대부분을 바친 그 아이들과 나에게는 희망이란 단어보다 힘내라는 말이 더 많았고 힘내라는 말이 우리를 이끄는 말이라고 생각했어. 루한.. 희망이란 말은 정말 좋은거야... 너한테 희망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로는 난 매일같이 창문밖의 세상을 보며 희망을 느낀다. 비록 그게 내가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 지 언정.. 루한.. 니가 날 이곳까지 이끌고 왔어. 병실이 더 익숙하고 바깥에 나와본적은 손에 꼽을만큼 적은 내가. 이곳까지 나와서. 너와 함께 바람을 맞고 너와 이런 얘기를 하고.. 루한.. 나도 알고 있어. 내 온몸에서 얘기해주고 있어. 내가 곧 죽을거라는 것을. 솔직히 널 만나기 전까진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강했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창문밖으로 보이는 세상을 보면서 슬퍼하기, 좌절하기, 아파도 참고 누워있기, 잠자기, 먹기, 화장실가기 밖에 할 수 없고.. 게다가 다들 넌 살기 힘들꺼다. 힘내라. 라는 말밖에 안해주고.. 희망이라고는 없는 절망의 향연이였지. 그런데 널 만나고 니가 해주는 얘기. 하나하나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어.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어. 기적이란 없는 현실에 화도 났어. 근데 이러다가도 내 몸이 죽음에 닿으려고 한다는 걸 알자...." 민석이의 몸이 떨렸다. 흔들렸던 목소리는 역시 물기를 머금었고 민석이는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민석이가 뭘 잘못했다고... 하늘은 18살밖에 안된 친구를 왜 희망이라는 달콤한 오아시스에 적셔줄 수 없는 것일까.. "루한.. 나도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정말 많아.. 니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야.. 근데.. 난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일 중 반도 하지못했어.. 내 인생이 억울하다가도 널보고 니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그 서러움이 어느정도는 날아가는 듯해.... 루한.. 니가 어디서 왔든 뭐하는 사람이든 누구랑 사귀든 난 상관없어.. 분명히 의사선생님은 너한테 내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내 죽음을 옆에서 지켜봐달라고 했겠지..." 역시 민석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자세하게 눈치채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말도 않고 그저 내 이야기에 웃어주던 민석이의 모습에 왠지 저릿저릿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가 없었다. "루한.. 의사선생님한테 다시가서 말해. 친구들과 말동무하는 건 좋지만 그 친구들의 죽음은 보기가 많이 힘들다고.. 나름 정들었던 친구들이고 좋은 추억만 남기고 싶다고.. 그렇게 말해.. 아니 아예 다시 이곳에 오지마.. 더이상 이곳에서 봉사하지마.. 돈 준다해도 오지마.. " 민석이의 말은 내 귀를 타고 들어와 의사선생님의 말과 복잡히 섞여 나를 미친듯이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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