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조별과제 제출은 다음주 월요일 자정까지로 하고 남은 시간은 각 조별로 의논하도록 하죠. 그럼 이만. "
웅성웅성. 말을 마친 교수가 강의실을 빠져나간 후, 그제서야 학생들은 일제히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각자 앉은 자리에서 앞, 옆, 뒤 네 명이 같은 조가 말이 돼? 몰라 우린 붙었잖아. / 안녕하세요, 저희는 12학ㅂ… 네에에? 아, 하던말씀 계속 하세요. / 너랑 같은 조라고? 저기, 저랑 조 바꾸실 분!? 야, 나도 너 맘에 안 들어! 순식간에 강의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각자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죽어라 싸우고 헤어졌던 CC, 12학번 세 명과 같은 조가 된 15학번, 다행히도 친한 사이들끼리 붙은 조….
그에 비해 우리 조는 지나치게.. 조용했고. 핸드폰만 만지는 선배 한 명, 무료하다는 듯이 책상만 손끝으로 두드리는 또다른 선배, 그리고 후드티의 모자에 뒤덮혀 시작부터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턱만 괴고 있는 남자. 조별과제의 저주가 나에게도 드디어 오는구나- 라고 직감한 순간이었다. 예쁘게 칠해진 매니큐어가 다 벗겨질세라 점점 더 과격하게 책상을 두드리는 여선배의 행동을 바라만 보던 핸드폰만 만지던 선배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 저어,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서로 전부 모르는 사이 같은데…. "
" 그런건 굳이 필요 없을 것 같고, 과제 관련 이야기는 카톡으로 해요. 저 가봐도 되죠? "
" 네? "
누구의 말이라도 좋으니 시작하기 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뱉은 여선배는 그렇게 강의실을 떠났다. 그 모습이 흡사 예상치 못한 포상휴가를 받은 직장인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그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핸드폰만 만지던 선배 또한 슬그머니 짐을 챙겨 일어섰다.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조원의 절반이 사라졌다. 다른 조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내 앞에 말없이 앉아있는 이 사람이 학교 내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학교 내에서 '민윤기'라는 이름 석 자만 대도 열에 아홉은 아, 걔?하고 반문할 만큼 유명한, 자발적인 아웃사이더. 풍문으로 들은 그는 그렇게 말이 없고, 없는 말 만큼 싸가지는 더 없는 남자였다. 그냥 이번 과제는 나 혼자 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을 다독이고서는 여전히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턱을 괴고 눈을 감은 민윤기에게 말했다.
" 저희도 이만 가요, 자세한건 저녁에 카톡으로 이야기해요. "
" .......... "
" 네? "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이어서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빈정이 상했다. '여기서 나갈래.' 단 여섯글자 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게 화근이 된 건지 스텝이 꼬여서 가방을 놓치며 보기 좋게 넘어졌고, 시선집중은 덤이었다. 이제서야 두 눈을 떠 나를 쳐다본 민윤기의 시선도 포함시켜서. 창피함에 화끈해진 얼굴을 감싸고 강의실을 나오며 카카오톡을 열었다.
[야] 1
타박타박.
[나 이번에 조별과제 망한듯] 1
..크흠-.
[ㅠㅠㅠㅠㅠㅠㅠ 다 재수없어] 1
톡톡.
어젯 밤 마신 술로 인한 숙취가 여즉 가시지 않은 것인지 정국에게 보낸 카카오톡에서는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괜히 애꿎은 운동화 코만 땅바닥에 질질 끌며 나름의 화풀이를 하던 중이었는데,
" 히이익!! "
" .. 놀랐어요? "
" 그렇게 갑자기 뒤에서 치면 누구나 다 놀라죠! "
" 갑자기 아닌데..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태껏 제 말은 다 무시해오던 그 소문의 주인공 민윤기'님'께서, 갑자기 왜 이렇게 비맞은 병아리 코스프레를 하는 지 부터, 온갖 가설이 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신종 엿멕이기 방법인가? 내가 그 실험의 첫번째 피실험자고? 말이 곱게 나갈리 없었다.
" 그래서, 저 왜 따라나오신 거에요? "
" 아.. 사실, "
따끔한 내 말투에 다시 주눅든 듯한 표정의 민윤기는 입을 다시 열기 전 후드티의 주머니에서 한 손을 빼내어 후드를 고쳐 썼다. 아까는 꽤 잘 보이던 노랗게 탈색한 그의 앞머리가 이젠 보일락, 말락했다.
" 저, 강의 시작부터 잤어요. 그 쪽 넘..어지는 소리에 깼구요. 그런데 화이트보드엔 조별과제만 적혀있고.. "
" 상황 파악이 안되더라구요.. 혹시, 저랑 같은 조세요? "
" 그것도 모르고 저 따라나오신 거에요? "
" 아뇨, 이거.. 아까 넘어지면서 흘리셔서. "
아예 고개를 푸욱- 숙임과 동시에 민윤기가 나에게 건넨 것은 화이트였다. 흔히쓰는 필기도구 화이트 말고, 여자들의 그 화이트. 말하는 종종 나의 눈치를 살피던 흰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창피해야 할 건 나 아닌가? 자신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에 걸맞지 않게 너무 부끄러워하는 민윤기 때문에 순간 창피함이 사라진 나는 미적지근하게 그걸 받아 가방에 챙겨넣었다. 보통 이런거 안 가져다주지 않나.
" 아, 감사해요. "
" 그리고 저랑 같은 조 맞아요. "
" .. 나머지는요? "
" 어, 이름이... 아! 13학번 심민규선배랑, 14학번 김지현선배요."
조원들의 이름을 호명하자 점차 민윤기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희다가 빨갛다가 파랗다가. 얼굴색 변화가 다이나믹하네.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와는 달리 민윤기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조별과제, 둘이 해야겠네요. 걔넨 답 없으니까. "
으아, 처음올리는 글이라 기쁘기보다는 걱정이 더 많이 되네요..ㅜㅜㅜ 제가 제 머릿속에 있는 걸 다 표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요. 분량이 많이 짧죠? 제가 봐도 너무 짧더라구요. 하하하.. 하지만 여기서 끊어야 제가 전개가 수월 할 것 같아서 끊어 냈습니다. 모쪼록 서투른 글이라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