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심심히 사람들의 카톡을 구경하다 너를 봤다.
친구들의 사진에 껴있는 웃지않는 너의 얼굴.
카톡 사진을 끄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다 아파오는 얼굴에 너를 껐다.
난 너를 기억하려 하는데, 넌. 나를 기억할까-
시험이 끝나고 스트레스 때문인건지 다툼인지 시험성적은 개판중에 개판이였다. 저번 중간고사 점수는 어디로 갔는지 등수도 전보다 팍팍떨어졌다. 그중에 사회점수는 진짜 받자마자 울고싶었다. 짜증을 내는 아이들, 시험지를 찢는 아이들, 환호성을 지르거나 시험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이제 곧 방학이 시작된다는걸 기뻐하는 아이들. 그 속에 은혜는 엎드려 있었다. 앞문을 쾅쾅치며 조용히 하라는 선생님이 들어오시며 곧 영화를 틀어줬지만, 여전히 은혜는 엎드려서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나 또한 가슴이 막막해서 가만히 엎드려 누웠다. 엎드려 있으니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아니, 너무 복잡해서 생각이 안드는걸까,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후회가 많았다. 아, 그냥 공부 더 할껄, 더 열심히 할껄... 수능시험에 비하면 그냥 자잘한 고민이지만 기복이 심한 나에겐 충분한 힘듦이였다.
"시험잘봤냐?"
"뭐라카노 다 찍고 잤다. 꿀잠이드만."
새끼ㅋㅋ 하면서 떠드는 연제민과 이창근의 목소리가 괜히 더 미웠다. 너네는 운동만 열심히 해도 좋은 학교 가잖아. 똑같은 예체능인데 왜 난 이런걸로 힘들어해야되? 떠있는 눈에 눈물이 찔끔 하고 나왔다. 이러다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눈물이 나올것 같은 마음에 눈을 질끈 감고 애써 잠에 빠져드려 했다.
눈을 뜨니 점심시간이 다된것 같았다. 다시 시끄러웠던 분위기가 내 눈앞에서 연출됐다. 그리고 난 은혜에게로 다가갔다. 은혜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인지 눈이 살짝 부어있는게 입가에 미소가 조금 번졌다.
시험 잘봤어? 하는 나의 물음에 조용히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다. 밥을 먹으러 나가는 애들에게 먼저 먹으라 하고 조용한 교실에 은혜와 나 단둘이 남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하면서 조금은 울먹이기도 하고 서로가 도닥여주고, 짧지만 깊은 이야길 했다. 뭔가 이유없이 은혜와 내가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실없지만 진지했던 이야기를 마치고 둘이서 급식실로 천천히 내려갔다. 뜨겁지만 따뜻하기도한 여름의 햇살이 급식실로 내려가는 창문사이로 눈을 찌푸리게 했다. 급식을 먹는 내내도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해도 우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역시나 급식을 먹고선 하드하나를 빨며 교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여전히 정기와 반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있었다. 전과 똑같이 은혜는 정기한테 소리를 질렀고 정기는 은혜한테 씩-웃어보였다. 그리고 나또한 은혜의 손을 잡고 신나게 웃으며 아이들 사이로 꼈다.
우리는 다른게 없었다.
시험이 끝나서 그런지 1시간짧게 수업이 끝났다. 의자를 올리고 집에 갈라고 은혜랑 나왔다.
"익시야 너 오늘 뭐 어데 가나?"
"아니? 집에서 쉬려고."
"에~내랑 놀자!정기네 가는데 갈래?"
"아진짜? 가도되?"
"같이가자! 딴 아 들도 온다."
은혜와 떠들며 반밖으로 나가니까 정기랑 이창근, 이광훈, 연제..민? 뒤에서 싱글생글 대며 웃고있는 얼굴이 왠지 뻘쭘했지만 최대한 안그런 티를 내려고 노력했다.
소희는? 좀따 온다카든데. 휴대폰을 두드리며 정기에게 은혜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렇게 정기와 은혜, 나. 이광훈, 이창근,연제민. 이렇게 여섯명이서 정기네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이광훈은 어딜가나 시끄러웠다. 차라리 그게낫지- 우리반 분위기 메이커라 할만 했다. 일분 일초도 조용하게 가는 일 없이 우린 정기네 집에 도착했다. 아들있는 집 치고는 깨끗한 집에 쇼파에 앉아서 발만 가만히 구르고 있었다.
"정기야 뭐 묵을거 없나"
"맞다!! 밥!!!!밥해도!!!밥!!!!!!밥!!!"
"주디좀 닥치라. 야, 뭐좀해도"
"이럴때만 내가 니 식모가?"
이창근을 시작해 다시 시끄러워지면서 은혜가 결국 부억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나도 여기있다간 뻘쭘해질께 뻔해서 쫄래쫄래 부억으로 갔다. 역시 애들 단골메뉴는 라면인지 라면을 꺼내는데 라면양에 헉하고 놀랄뻔했다. 역시 운동하는애들은 위장도 넓나 보다... 하면서 은혜랑 장난으로 애들을 까기 시작했다.
"뭐하는데?"
"뻔하지 뭐겠나, 라면이다."
"뭐도와줄까?"
"머스마들은 가만히 즈 앉아계세요~"
물병을 꺼내며 연제민이 부억에 쓱- 왔다가 다시 남자애들이 있는 소파로 향했다. 커다란 냄비에 라면을 끓이고 있는 우리사이에 정적이 흘러왔다. 뜬금없는 연제민의 등장에 내기분이 다시 어색해졌다.
"익시야."
"응?"
"너...그, 연제민이 니좋아한다는거.."
"뭐?!"
당황해서 그만 큰소리로 답해버리고, 남자애들까지 조용해져 버렸다. 망했다.... 은혜도 큰눈을 더 크게 뜨면서 날 쳐다보았고 라면만 내 머릿속처럼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당황한 남자애들도 몇초간 다시 조용하다 뭐냐고 무슨얘기하면서 웃다가 다시 시끄러워졌고 은혜는 진짜가? 진짜? 라고 날 추궁했다. 망했다.. 그런거 아니라고 그 때의 일을 말해주자 은혜가 뭐꼬 뻥이네 하면서 다시 딴이야기를 시작했다. 은혜한테까지도 이상한이야기를 하면 정기한테도 말할것이고, 퍼지면 '연제민과 익시 이어주기' 같은 말도 안돼는 사건으로 이어질게 뻔해서 미안하지만 은혜에게 '솔직히 연제민이 나한테 호감가지고 있는것같아' 이러고 말할수가 없었다.
다했다 그지들아!! 하는 은혜의 소리에 남자애들이 우르르 수저랑 물, 커다란 라면냄비를 가져가서 먹기 시작했다. 먹방이라도 찍는듯 4명이 아주 거대하고 신명나게 먹고있었다. 결국엔 우린 뭐먹냐고 작작먹으라고 은혜의 등짝 스매싱을 맞긴 했지만..
역시 라면은 신라면인지, 우린 그 많던 국물까지 다 먹고 축늘어졌다. 이러다 난 살만 피둥피둥 찌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진지하게 몇분들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나도 같이 거실 마루에 축늘어있었다. 밥을 다먹고서 소희도 오고 다시 시끄럽게 떠들기도 했다.
"야, 사진찍자 사진."
"뭘또 사진이고, 사진... 존나 오그라들게"
"헐. 이광훈 찍지마라. 꺼지라"
"헐. 개치사."
제일 큰 화면을 가지고있는 은혜가 폰을 꺼내 셀카모드로 바꿨다. 아무리커도 7명이 북적북적하게 있으니 불편하긴 했다. 처음찍는 애들과의 사진에 나도 어색하게 포즈를 잡았다가 엽기사진도 찍자는 애들에 그 어색했던 포즈도 사르르 녹아내려서 웃기 시작했다. 한 8장정도의 사진을 다 찍고선 너도나도 웃으면서 보내달라고 단톡방 만들자고 따발따발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