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부탁해!
中: 아는 사람 얘기
그래. 나 전정국. 눈치 빼면 시체나 마찬가지다. 아, 근육도 같이 빼고. 전정국 - 눈치 = 0 이라는 말씀. 근데, 요즘에는 진짜 나 시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어째 잘 돌아가던 머리도, 빠릿빠릿 잘 채던 눈치도 어떻게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건지.
“……”
“뭐야. 너 이거 안 먹어?”
“……”
사고를 친 당사자는 저렇게 멀쩡한데, 왜! 어째서!
“정구가? 응?”
“……”
어째서! 저렇게! 태평한데!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지!
* * *
술김에 연애하자는 말을 내뱉어버린 형은 다음 날 아침 해장을 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자기도 실수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냥 기억이 안 나는 걸까. 아니야, 근데 그렇게 꼬장을 부리고 폭탄 발언을 내뱉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을 리 없어. 분명! 형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걸 무마하기 위해 아무 말하지 않는 거야!
“정구가. 데이트 할까?”
라는 내 생각은 형의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다. 데이트. date. 이성끼리 교제를 위하여 만나는 일. 교제, 만남으로 순화. 아니. 이성끼리. 이! 성! 끼! 리! 교제를 위해 만나는 일인데. 도대체 그걸 왜 나한테 하자고 하는 걸까.
“……”
“정구가? 너 졸려? 어제 술 덜 깼어?”
“……형.”
내 부름에 형이 눈을 초롱초롱 뜨며 날 바라봤다. 아, 근데 이 형은 뭐 이런 게 잘생겼대. 자고 일어나서 떡져서는 까치집을 지은 머리와, 가득 낀 눈곱. 개기름 좔좔 흐르는 얼굴. 근데 이것마저도 되게 잘생겼다.
“……어제, 일 기억 안 나요?”
내 말에 형이 콩나물국을 원샷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올려 웃는데, 왜 저 웃음이 자꾸 무서워지는 걸까.
“기억?”
“……네.”
내게 다시 되물은 형의 입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술에 취해서 저지른 일 기억하는 게 내 취미인데?”
X 같은 세상. 제발, 술에 취해서 꼬장 부린 것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하소연 한 것만 기억하고 형이 이불을 찼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그래서 연애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내 예상은 역시나, 완벽히 빗나갔다.
* * *
“정구가! 일어나! 학교 가야지!”
나를 깨우는 손길에 눈을 뜨니 형의 얼굴이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아, 이 얼굴은 며칠째 보는 얼굴인데도 영 적응이 되지 않는 수준의 잘생긴 얼굴이다. 오늘은 또 무슨 미친 짓을 한 건지, 핑크색 앞치마를 두르고는 국자를 들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 해요?”
이런 아침이 형이 술에 취해서! 고작 술에 취해서 나한테 연애하자고 고백한 그날 이후로부터 며칠째 반복되고 있다. 그것도 언제 어떤 패턴인지도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
“뭐 하긴? 울 정구기 학교 보내려고 아침 차리고 있었지.”
물론…… 나도 좀 미쳐가는 게. 그런 형의 모습이 나쁘지 않다 이거다. 솔직히, 내가 좀 변태기가 있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형과 가까이 있던 시간이 꽤나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남중, 남고 루트를 타서 여자를 많이 만나보지 못 해서 그런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진짜 요즘 나 좀 미친놈 같다. 저런 형의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고……. X발…….
“……오늘은 뭐예요?"
근데, 귀엽다는 거에서 그치고 끝난다. 왜냐고? 요리가……,
“오늘은! 정구기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X나 맛없거든.
* * *
“……”
“이야! 우리 존잘 전정국이가 나한테 먼저 술을 먹자고 다하고, 하늘이 두 쪽 나겠네.”
“……”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고민 상담은 해야겠고, 근데 존나게 빈약한 내 인맥을 보자니 고민 상담은 초 치게 생겼고.
“……”
결국 상대를 지민이 형으로 고른 걸 후회하면서도, 나는 지민이 형에게 털어놓았다.
“……”
“그러니까, 니가 게이야?!”
술에 취해서 뜬금없이 연락이 온 날부터, 지금까지 눌어붙어있는 태형이 형에 관한 이야기를 친구 이야기라고 하고 말을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눈치를 챈 건지. 매우 큰 소리로 가게가 떠나가랴 말했다. 강제 아웃팅 당하게 생겼다. X발. 도움이 안 되는 박지민.
“아, 아뇨. 제 얘기가 아니라……”
“아. 뭐야. 잘 못 들었네. 미안!”
“……후.”
“사람들! 얘 게이 아니에요! 제가 착각을 해서! 얘 친구가 게이에요!”
……존나 도움이 안 된다.
* * *
근데 말이야. 그건 그 형이라는 사람이 존나 잘생겨서 그냥 언뜻 그런 걸 수도 있지 않아? 왜냐면 나도 가끔 이나영 보면 생각하거든. 원빈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아, 물론 난 게이 아니다.
……나도 아니거든요.
뭐. 누가 뭐래? 아무튼, 음 그런 거거나. 아니면 그 니 친구라는 애가 남중, 남고 루트 탔다며. 그러니까 여자를 조금…… 안 만나 봐서 그런 거 아니야?
……근데 그러기에는 그 친구가 좀 생겨서, 여자가 주변에 꽤 많아요.
야. 꽤 많은 거랑 만나보는 거랑은 다른 거야. 엄연히! 다른 거라고! 여자친구와 여자 사람 친구는 한 끗 차이지만 그 한끝이 남극과 북극의 차이랑 같다고.
뭔 소리예요?
……아니야.
박지민(형 같지도 않으니까 호칭도 생략)은 진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지만, 예상외로 큰 도움이 됐다. 그래. 태형이 형이 좀 잘생겨야지. 진짜 잘생겼지. 과거 사진도 지금 모습 그대로인데. 진짜 잘생겼지. 그래서 내가 좀 막…… 그런 걸 거야.
아니면! 내가 남중, 남고 루트를 타서. 여자를 만나보지 못 해서 그런 걸 거야. 그래. 분명, 그런 거야!
박지민과의 상담 같지도 않은 고민 상담 시간을 마치고 술에 떡이 돼서 집에 들어왔다.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들. 언제 이렇게 깔끔했더라. 늘 쌓여있던 설거지가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언제 잠든 건지. 원래 이 시간에 자는 건지. 눈을 꼭 감고 이불을 가지런히 덮은 태형이 형이 자고 있었다.
“……”
가로로 길게 찢어진 눈. 그렇다고 해서 또 세로로 좁은 것도 아니다. 진짜 당장이라도 안구가 튀어나올 듯…… 아, 표현이 좀 거칠었다. 안구가 튀어나오는 건 좀 그렇고.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을 다 보고야 말겠다는 듯 생긴 큰 눈과, 이마부터 쭉 높게 내리뻗는 콧대. 그리고……
“아.”
도톰한 입술. 내가 미쳤나? 진짜 미쳤나? 형의 얼굴을 감상하면서,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내 입술 말고. 형 입술. 미쳤나 봐. 형이 인상을 쓰고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정구기 왔어?”
“……”
“으. 술 냄새. 뭘 이렇게 마셨어. 응? 누구랑 마셔써.”
“……아는 형이요.”
“아는 형? 누구야. 잘생겼어?”
마치, 단속을 하듯 말하는 그 말투.
“……아뇨.”
“다행이다.”
“……뭐가요.”
“잘생겨서 그 아는 형이랑 바람나면 어떡해.”
입을 쭉 내밀고, 혼자 진짜 그날 일을 실현시키겠다는 듯 말하는 그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형.”
“응?”
“……”
술 기운이라 생각한다. 이건, 절대 술에 취한 술 주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형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형이 용서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도 형의 망할 술 주정을 다 받아 줬으니까.
“……”
“……”
무슨 낯짝으로 내일 얼굴을 보려고 난 형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댄 걸까.
“정구가. 술 냄새 많이 난다. 얼른 누워. 자자.”
그리고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뽀뽀를 받아들이고는 침대 옆 자리를 손으로 팡팡 두드리는 걸까. 아, 진짜. 전정국 미쳤나 봐. X친 놈아. 아, 진짜……. 아무래도 내일부터 미팅이란 미팅은 다 나가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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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답니다... 미팅.. 다메!!!! 태효이가 이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