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소년, 소년!
w.lamant
0
소년과 소녀는 같은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달랐다.
아, 정말 쓰잘머리 없는 걸로 하나 찾자면 아이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다는 것 정도.
소녀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손찌검을 당하거나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상스러운 말을 귀에 닳도록 들었다. 그에 비해 소년은 많은 아이들 속에서 항상 중심에 서있었고 어떤 행동을 하건 소년의 말과 행동, 아니 그냥 소년에게서는 항상 빛이 났다.
소년에서 정말 빛이 나는 것이 아니었더라도 소녀가 소년을 바라보기에는 정말 그랬다.
소년, 소년, 소년!
: 소녀는 소년이 싫었다.
1
매일 같이 그 애들을 따라 불려 나갔다. 대부분은 교단 앞으로, 가끔은 매점 뒤쪽 등나무로, 손에 꼽을 만큼 누군가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빈 교실로 끌려 다녔다.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는 날에는 요 앞 골목 만 원에 몸을 파는 흔한 창녀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고 아무 것도 거슬리지 않는 날에도 창가 건물에 사는 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소녀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애들을 원망하거나 그 아이들에게 맞선 적도 있었지만 제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몇 번이나 바뀌는 몇 년간 무뎌지고, 또 무뎌져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무리끼리 모여 놀던 아이들 중 하나가저를 치대며 불렀다. 아이는 작고 왜소한 키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귀여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눈꼬리가 비쭉 올라간 화장을 했다. 얇은 손가락으로 제 팔을 꾹꾹 누르며 별명과 함께 자신을 부르던 아이는 제가 고개를 들자 키만큼 자그마한 손바닥으로 머리를 후려 쳤다. 제법 큰 소리와 함께 시선이 몰렸다. 하지만 아이가 눈을 한 번 흘기자 몰렸던 시선은 금새 사라지고 반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름아, 왜 사람이 불러도 쳐다보질 않아?”
제 입술에 바른 새빨간 루즈와 같은 색깔로 웃은 아이는 이제는 말병신에 이어 팔병신까지 된 거냐며 비아냥거렸고 그 애와 같이 엉덩이 라인이 모두 드러날 정도로 옷을 줄인 아이들은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이런 비아냥은 이제 익숙했다. 그렇게 서너 대를 맞고 저 골목에 몸 파는 씨발년이 너희 엄마라며? 꼬는 여러 아이의 비아냥도 들었다. 아이들에게 치가 떨렸다. 여러 아이들 속에서 자신은 먹이사슬 가장 밑 플랑크톤과도 같았다. 아니, 어쩌면 플랑크톤의 처지가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강한 포식자가 자신의 몸을 힘껏 조이고 압박한다. 멍청하지만 영악한 아이들이다. 때리고 압박하면서도 겉으로 상처는 남기지 않는다.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어른들에게 티를 내지 않는다. 작은 아이 옆에 서있던 길쭉하고 마른 남자아이는 이 년 어미 거기가 자신의 것을 조이는 그 느낌이 어떻드니, 넣어줬더니 애도 낳은 년이 덜덜 떨며 더 해달라고 운다는 등의 소리를 내뱉고는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쭉 밀어왔다.
“너도 너희 엄마처럼 남자 이거에 환장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지가 좆에 환장해두 말병신이랑 누가 하냐”
내가 같은 병신이었어도 싫겠다. 오가는 말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마른 남자아이와 그 친구가 잔뜩 신이 나 말을 덧붙이고 덧붙여 말이 눈사람만큼 크게 변했다. 말은 하면 할수록 새하얀 눈 밭에 굴려지는 눈덩이처럼 그 크기를 부풀린다. 커지고 커지던 눈덩이가 터질 무렵, 나갔던 소년이 들어왔다.
“승준아 거기까지 하면 된 거 같은데 더 해야 해?”
남자아이의 몇 마디 말을 듣고는 듣는 자신이 불쾌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아이에게 그는 말한다. 잔뜩 숙인 고개를 살짝 들었다. 고개를 들자 아이의 빛이 자신의 눈에 따갑게 들어왔다. 아이의 빛에 눈이 부셨다. 이 짙은 곳에서 그는 고고히 빛을 내뿜었다. 나를 둘러싸던 아이들은 빛이 나는 소년에게 심하긴 했다며 아양을 부리듯 웃었고 소년은 아이들의 말을 대충 맞춰주다 종이 치니 곧 앉자며 아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빨간 루즈를 바른 아이는 그 예쁜 소년을 좋아하는 듯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가면서도 끊임없이 소년을 힐끔거렸다.
2
'고마워’
수업 중 책 끄트머리를 찢어 펜으로 꾹꾹 눌러 적었다. 그리곤 소년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지 몰라 눈을 도르륵 굴렸다. 소녀에게 소년은 언제나 어렵다. 제 옆에 빛이 나는 소년을 힐끔, 그리고 또 힐끔 쳐다보았다. 소년은 어김없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년을 지켜보던 소녀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몇 분간 소년에게 주려 찢은 종이를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다시 소년에게 눈을 돌렸다.
‘뭘 그렇게 봐?’
몸이 흠칫 떨렸다.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무어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그렇게 어벙하게 그와 눈을 맞추고 있다 급히 눈을 돌렸다. 찢은 종이에 저와 어울리지도 않는 고마워라는 말을 제 성격대로 찍찍 그어 버리고 잔뜩 구겼다. 그러다 소녀는 잔뜩 구긴 쪽지를 바닥에 대충 던지곤 다시 모퉁이를 찢고 아까와 같이 성의 없는 말을 적었다. 벼랑에서 종보다 몇 분이라도 먼저 구해준 소년이 생각난 것이다. 멀쩡한 쪽지를 주기 싫어 빳빳하던 걸 잔뜩 구겨버렸다. 잔뜩 구겨져 어느 쓰레기와 다름없는 것이 자신과 쏙 닮아 있었다.
소녀는 쪽지―종이 뭉치라는 것이 더 어울릴만한 것―를 던졌다. 쪽지는 그 짧은 거리도 가지 못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게 마치 세상은 버림받은 아이가 빛나는 소년에게 건네는 쪽지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 같았다. 왠지 모를 비참함에 거스러미와 상처가 내려앉은 입술을 물었다.
3
소년은 그런 소녀와 저 아래에 떨어진 종이 뭉치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펜이 떨어진 척 뭉치를 주웠다. 소년을 바라보던 소녀는 어느새 고개를 돌리고 듣지도 않는 수업을 귀에 억지로 박으며 펜을 그러쥐고 있었다.
주운 종이 뭉치를 책상 위에 대충 올려놓고 억지로 집중을 하느라 찡그린 미간의 소녀를 지켜보았다. 소녀의 얼굴을 보곤 평소 소녀가 짓던 무표정을 생각했다. 소년은 괴롭힘 당하는 소녀를 보며 항상 귀엽다고 생각했다. 매일 짓고 있는 무표정도, 초점이 없는 그녀의 눈도, 지금 보이는 소녀의 찡그린 미간도 귀엽다고. 소년은 소녀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녀의 목소리는 분명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에게 비쳤던 그녀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도 소년을 끌어당길 것이다.
소녀는 몇 분간 영어를 쑤시다 포기를 했다. 소녀는 소년이 싫었다. 소년은 항상 자신을 구해줌에도 소년은 소년이 가진 그 빛나는 아름다움이 싫었다. 소녀는 생각했다. 자신도 조금 더 평범한 집에서, 더 나은 공간에서, 더 나은 얼굴과 몸을 하고 있었다면 저 소년처럼 빛이 났을까. 정답은 소녀가 생각하기에도 뻔했다. 소녀는 허튼 생각을 지우곤 제 입술에 앉은 거스러미를 떼었다. 피가 작게 맺혔다.
작게 맺힌 피를 핥곤 소녀는 몰래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니, 몰래 바라보려 했다. 소녀를 계속 지켜보던 소년은 소년을 몰래 바라보려던 소녀와 눈이 마주쳤고 소녀는 당황스러운 듯 눈을 키우다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 봐? 네 일이나 해’
아까 소년이 한 말을 소녀가 인용했다. 소년에게 입모양으로 말을 쏘아 뱉은 소녀는 눈을 책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곤 포기한 영어를 쑤기로 마음을 먹었다.
4
소년은 자신의 피를 핥던 소녀의 혀를 보았다. 소녀의 혀는 그녀의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귀여웠다.
항상 그랬다. 소년이 소녀를 아이들ㅡ소녀를 괴롭히는 병신 같은 이들ㅡ에게서 구해줄 때면 소녀는 소년에게 쪽지를 건냈다. 건네는 쪽지의 내용은 늘 같았다. 쪽지에는 예의상의 ‘고마워’라는 말 하나만 적혀져 있을 뿐, 쪽지는 굳게 닫혀 있는 소녀의 입처럼 잔인하다.
소녀의 입모양을 모두 알아들었음에도 소년은 소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분명 한 번쯤은 더 자신에게 시선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가 자신에게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자 소년은 책상에 올려놓았던 종이 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잔뜩 구겨져 있던 종이를 펴 소녀가 쓴 내용을 보았다. 소년이 예상했던 대로 같은 말이 적혀있다. 반듯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예쁜 소년의 글씨와는 달리 삐뚤빼뚤하고 어그러진 소녀의 글씨를 보고 소년은 다시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년이 보기에 소녀의 모든 것은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소녀의 글씨가 담긴 구겨진 종이 뭉치를 만지는 동안 소년의 입가에는 내내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소년은 소녀가 좋았다.
연인 |
안녕하세요 라망입니다! 글잡은 처음이라 되게 떨리구 설레구 그러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을 어떻게 봐주셨을지 상상두 안가구 되게 막....... 복잡미묘한 그ㄹㅓㄴ...... 글 구상이나 글을 쓰는 게 평소보다 오래 걸렸는데 이렇게 보는 분량은 한없이 적어보이구 아 다음 편에서는 조금 더 낭낭한 분량을 가지고 올게요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