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주니어 - 도로시
당신의 가장 빛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 순간을, 내게 파시겠어요?
추운 겨울날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옷깃을 여미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서둘러 길을 걷는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멀뚱히 앉아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검은 천의 로브를 뒤집어 쓴 소녀의 눈은 텅 비어있었다. 그저 다리를 끌어 모아 앉아서는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을 삽니다. 괴상한 문구가 적힌 나무판은 소녀의 옆에서 힘없이 굴러다닐 뿐이었다. 어쩌다 발걸음을 멈추고 소녀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쯧. 하고 작게 혀를 차고는 걸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얼굴의 반쯤을 가린 천을 정리한 정국이 걸음을 멈췄다. 소녀는 제 앞에 선 발을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햇살 사이로 얼굴을 검은 천으로 반쯤 가린 한 사내가 보였다. 텅 빈 소녀의 눈은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정국은 소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맨질맨질한 금화 몇 개가 손에 쥐어졌다. 한참 만지작거리던 정국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뜻밖의 반응에 소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녀의 눈동자에 정국이 비쳐졌다. 킁. 하고 콧물을 작게 들이킨 정국이 바람이 찬 듯 다시 옷깃을 여몄다. 그런 정국을 보며 소녀는 제 옆에서 멋대로 굴러다니던 나무판을 손으로 톡톡 쳤다. 정국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풋 미소를 지었다.
괴이한 광경이었다. 검은 로브를 쓴 소녀와 검은 천을 얼굴에 두른 사내가 마주보며 쭈구려 앉아 있는 것은. 간혹 자리에 서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자 잔뜩 실망한 얼굴을 하고는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내 기억을 팔고 싶어요."
"다섯 개요."
한참 마주보고 있다 정국이 먼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기억을 팔고 싶다는 말에 소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꽤 청아한 목소리였다. 망설임없는 대답에 정국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소녀는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정국은 손가락에 잡히는 대로 동전을 건넸다.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자신의 기억을 파는 대가로 금화까지 내는 모습이란.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전혀 위화감이 없어 보였다.
언제의 기억을 팔고 싶은가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손으로 꼭 집어가며 금화의 갯수를 확인한 소녀가 다시 정국과 눈을 마주했다. 잠시 생각하던 정국이 얼굴의 반을 가린 천을 풀고는 바닥에 편하게 앉았다. 그 전에. 정국이 입을 열었다. 왜 기억을 사는거죠? 정국의 물음에 소녀가 작게 웃었다. 입꼬리만 겨우 끌어올린, 텅 빈 미소였다. 소녀는 제 옆에 굴러다니는 나무판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저는 기억이 없어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사서 내 머릿속에 넣는 거에요. 끔찍한 기억이든, 행복한 기억이든, 지우고 싶은 기억이든... 내 것이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기억이라는 게 생기기는 하잖아요? 가만히 말을 내뱉는 소녀를 보며 정국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요. 정국의 말에 소녀가 작게 웃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많은 기억을 샀어요. 겁탈 당했던 처녀의 기억도, 아이가 태어난 젊은 부부의 기억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남자의 기억까지. 내 머리는 한 권의 서책 같은 것이지요. 소녀의 말에 정국이 작게 웃었다. 좋아요. 정국의 말에 소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꿈꾸던 표정으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던 소녀의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당신은 왜 기억을 팔려고 하죠?"
"당신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갑작스러운 소녀의 말에 정국이 태연히 답했다. 정국의 대답에 소녀는 작게 미간을 찌뿌렸다. 나는 어떤 기억이든 필요해요. 덧붙여 말하는 소녀의 말에 정국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기억을 사면, 오히려 내게 돈을 주고 싶을 거에요. 당신에게 꽤 가치있는 것일테니.
좋아요. 이번에는 소녀가 살풋 웃었다. 눈을 감고 작게 쉼호흡한 소녀가 눈을 떴다. 여전히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정국을 보며 소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내게 팔고 싶은 순간의 기억을 생각해요. 곧 정국이 눈을 감았다. 더, 더, 그렇게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기억을 펼쳐놓아요. 정국은 잔뜩 집중한 듯 미간을 찌뿌렸다. 곧 소녀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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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얘야! 근엄한 남자의 목소리가 소녀가 정신을 차렸다. 온통 화려한 방이었다. 식탁 위에는 생전 보도못한 진귀한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소녀가 자신을 부른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똑닮은 남자였다. 이상하다. 잠시 의아하게 생각한 소녀가 머쓱한듯 작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풉, 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앳되게 생긴 소년 하나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소녀와 눈을 마주친 소년이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모른 체했다.
딸아이가 요즘 하는 것이 많아서 그런지 자주 피곤해합니다. 남자, 그러니까 아마도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과 똑닮은 얼굴을 보니 분명 소년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잠시 정적이 식탁에 왔다. 소녀의 아버지가 큼. 하고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얼른 들자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제야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 그리고 소녀까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 너무나 맛있어서 황홀할 지경이었다. 간간히 소년과 눈이 마주치는 것만 빼면. 열심히 먹던 소녀가 숟가락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기침을 했다. 그런 소녀의 반응에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 특히 소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사레가 들려. 소녀의 말에 조심하라며 소녀와 소년의 아버지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심란한 마음이었다.
숟가락에 비친 제 모습은, 말그대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소녀가 눈을 감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천천히 눈을 뜨자,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이 보였다. 가만히 소년을 바라보던 소녀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자신에게 기억을 판 사내의 얼굴, 그러니까 눈이 소년과 똑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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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소년의 아버지 모두 대신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충신. 뜻이 같은 두 사람이었다. 말도 잘 통하고, 군주,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았다. 아내를 일찍 잃었다는 것도, 비슷한 나이의 자식이 있다는 것도. 때때로 서로를 초대해 저녁을 같이 먹는 날도 많았다. 소년의 이름은 정국이었다. 전정국. 정국의 아버지와 소녀의 아버지가 만나는 날이 잦아질수록 소녀와 정국이 만나는 날도 잦아졌다. 적지 않은 나이었지만 둘은 빠르게 친해졌다. 가끔 저녁식사자리에서 장난스러운 둘의 혼례 얘기가 나오면 소녀의 볼이 붉어지긴 했지만. 그런 소녀는 늘 빤히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정국은 살포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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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아버지끼리 만남이 없어도 정국과 소녀가 만나는 날이 늘어났다. 때때로 정국이 소녀를 데리고 근사한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했으며,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가서 시간을 떼우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정국과 소녀를 보며 둘의 아버지는 흐뭇해했다. 자연스레 소녀의 마음에는 정국으로 가득 찼다. 몰라도, 정국 역시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소녀는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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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
"아, 진짜. 야아."
어김없이 바람을 쐬러 나온 소녀와 정국이었다. 눈을 감고 있던 소녀가 정국의 부름에 한 쪽 눈만 떴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은 소녀를 본 정국이 작게 웃었다. 아, 진짜 그렇게 보지마. 너털웃음을 지은 정국이 소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소녀는 다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소녀를 한참 보던 정국이 작게 쉼호흡했다. 소녀가 눈을 뜨지 않은 것을 확인한 정국이 잠시 망설이다 소녀의 볼에 제 입술을 닿았다. 아주 잠시, 그렇게 닿은 입술에 깜짝 놀란 소녀가 눈을 떴다.
정국이 해사하게 웃었다. 우리 이제 연애하자. 꽤 뻔뻔하게 소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하는 정국을 보며 소녀는 멍하게 있을 뿐이었다. 어? 정국의 물음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인 소녀가 정국을 빤히 바라보았다. 귀까지 붉어진 정국이 작게 웃고는 다시 소녀의 볼에 작게 입맞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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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소리에 소녀가 눈을 떴다. 늦은 밤임에도 집 안은 부산스러웠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소녀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잠시 고민하던 소녀가 방문 앞에 섰다. 소녀가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서둘러 들어온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를 바라보자 깜짝 놀라더니 소녀의 어깨를 잡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를 본 소녀의 아버지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전대신. 전대신이, 반역을 일으켰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충분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제야 소녀는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왕궁에서 전대신이라고 칭할 사람은 정국의 아버지 밖에 없었다.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소녀의 아버지는 연신 말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소녀의 말에 채 닿기도 전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멍하게 서있던 소녀가 걸칠 것을 들고는 방을 뛰쳐나갔다.
자신을 잡는 사람들의 손길을 벗어난 소녀는 달리기 시작했다. 걸칠 것을 대충 뒤집어 썼지만 쌀쌀한 가을 바람이 볼을 떼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자신의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있는 정국의 집으로 향할 뿐이었다. 거리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고, 다들 삼삼오오 모여 수근덕거리고 있었다.
정국의 집 앞에 도착한 소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활활타고 있는 정국의 집이 소녀의 눈에 가득 들어찼다. 인기척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던 소녀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서 나오기 전,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반역에 실패했으며, 집안의 모든 사람이 잡혀갔다는 것을. 하인들까지도.
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기대를 품고 달려온 것이었다. 말도 안 돼. 중얼거린 소녀가 활활타는 집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전정국이, 정국이가 그렇게 잡혔을리가 없다. 하다못해 표시라고 해두었겠지. 소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꼼꼼하게 살피며 집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차라리 왕궁에 가서 얼굴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을 해야하나. 싶은 찰나에 소녀가 무엇을 발견하고는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신경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었다. 자신과, 정국이 장에 가서 샀던 작은 머리핀. 필요도 없는 것을 왜 자신에게 주냐며 정국이 툴툴거렸던 것이었다. 얼마나 박혀있었는지는 몰라도 장신구가 더럽혀져있었다. 머리핀을 조심스럽게 빼낸 소녀가 그 옆에 작게 그려져있는 화살표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국이다. 전정국. 중얼거리며 소녀가 주위를 살펴보고는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잘 향하지 않는 숲이었다. 마녀가 산다고 소문이 난, 아주 평범한 숲. 숲의 입구에서 작게 쉼호흡을 한 소녀가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숲은 껌껌했다. 들고 온 등불에 의지하며 소녀는 서서히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곧 소녀의 팔을 잡아끄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악! 소녀가 소리치자 큰 손이 소녀의 입을 막았다. 쉿, 나긋하게 소녀를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웃고 있는 정국의 얼굴이 보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은 소녀가 정국의 품에 안겼다. 걱정했잖아. 투정 섞인 소녀의 말에 정국이 도리어 소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한참 정국의 품에 안겨있던 소녀가 천천히 떨어져나왔다. 정국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녀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괜찮아? 어디서 난 상처인지 피딱지가 앉은 정국의 볼에 살포시 손을 댄 소녀가 울망울망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소녀의 물음에 정국이 작게 웃었다. 그런 정국의 반응에 소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바보. 그런 소녀를 따스하게 내려다보던 정국이 등에 메고 있던 주머니를 풀었다. 검은 망토 같은 것을 소녀에게 뒤집어 씌워준 정국이 천천히 손을 들어 소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응... 돌아가서, 나랑 만난 적 없다고. 그렇게 말해야 돼."
"...왜?"
"그냥. 그렇게 말해야 돼. 나랑 만난 적 없다고. 나 찾으러 나간 거 아니라고. 그런 반역자의 자식 따위, 모른다고. 그렇게."
"...싫어. 싫어, 정국아..."
"나 이제 도망다녀야 되니까... 나 찾을려고 하지 말고. 건강하게, 그렇게 잘 살아야 돼, 알겠지?"
"너... 너, 왜 그래. 정국아."
"너희 아버지가 나랑 혼례시켜주실 줄 알았는데. 이런 사위는 싫겠다, 그치?"
"아니야, 아니야..."
"너랑 혼례하고 싶었는데. 못하겠네."
자, 이제 가봐야지? 살풋 웃은 정국이 소녀의 팔을 붙잡고 일어났다. 나 잡히면 안되니까, 데려다주고 싶은데 안되겠다. 끝까지 덤덤하게 말한 정국이 고개를 젓는 소녀의 등을 떠밀었다. 자, 이제 돌아갈 시간. 정국의 말에 소녀가 더 거세게 고개짓을 했다. 싫어, 정국아. 나 싫어. 그런 소녀의 반응에 정국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어. 내가 찾아갈게. 나긋한 목소리로 소녀를 달랜 정국이 다시 소녀를 떠밀었다.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던 소녀가 뒤로 돌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는 정국이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소녀는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다시 발을 뗐다. 하나, 둘... 다섯. 딱 다섯 발자국 움직인 소녀가 다시 뒤로 돌았을 때, 정국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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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소녀는 식음을 전폐했다. 화를 내려던 소녀의 아버지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정국의 아버지는, 처형되었다. 정국의 아버지의 얼굴이 궁전 밖에 걸렸다는 말을 누군가가 소녀에게 전해주었다. 창 밖을 바라보던 소녀가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발 정국이가 이 도시를 떠났길. 보지 않았길. 잔뜩 힘준 소녀의 손이 하얗게 질렸다.
갈수록 그리워졌다. 정국이 웃는 모습이. 정국의 목소리가. 그냥 정국의 모든 것이 그리웠다. 정국은, 분명 아버지의 뜻을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정국이 그대로 놓아두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정국이 안쓰러워지는 기분에 소녀는 참담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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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 조심히 문을 연 소녀가 집을 나섰다. 한참을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정국과 자신이 자주 오던 들판이었다. 온통 껌껌한 들판을 보자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정국과의 추억을 되짚은 소녀가 늘 앉던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네가 너무 그리워. 네가, 너무. 들리지 않을 말을 중얼거리던 소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작은 단도였다. 날카로운 단도가 달빛에 반짝 빛났다. 네가, 네가... 보고 싶어. 중얼거린 소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곧,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단도를 든 소녀가 자신의 손목을, 그대로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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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손목의 통증이 느껴졌다.
정국의 기억은 그것이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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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을 때문인지 주황빛으로 물든 정국의 얼굴이 보였다. 정국이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씩 웃었다. 내 기억은 어땠나요? 당신에게 꽤 가치있는 기억인가요? 그런 정국의 눈을 바라보며 소녀는 왠지 울고 싶어졌다.
가만히 정국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소녀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흘러내려간 로브를 정리하던 소녀가 자신의 손목의 흉터를 보곤 작게 웃었다. 기억의 후유증인지, 자꾸만 멍해졌다. 소녀가 겨우 머리를 젓고는 자신의 로브 한 쪽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꽤 묵직한 주머니였다. 끈을 풀자 많은 금화가 반짝거리며 빛난다.
정국은 소녀가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녀는 주머니에서 금화를 한 웅큼 꺼냈다. 정국에게 금화를 내밀자 정국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게 기억을 판 것으로 나는 충분해요. 정국의 목소리에 소녀가 정국의 손을 잡았다. 억지로 손에 금화를 쥐어주자 정국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주머니를 넣은 소녀가 해가 지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어느새 거리에는 몇 안되는 사람 밖에 없었다. 작게 웃은 소녀가 다시 정국과 눈을 마주했다. 당신의 기억은... 당신에게 아주 소중했던 순간이었네요. 너무나도 빛나서... 행복한 꿈 같았어요. 소녀의 말에 정국이 작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마음에 들어서. 소녀가 정국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정국이 천을 얼굴에 두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나는 다시 길을 떠나야해서. 정국의 말에 소녀가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나요? 소녀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정국이 미소를 지었다. 발길 닿는대로요. 다시 나를 찾아올 때까지. 계속 가야죠. 곧 정국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신의 옆에 있고 싶기도 하네요. 꽤 마음에 들어요. 알쏭달쏭한 정국의 말에 소녀가 괜히 나무판을 만지작거렸다.
당신의 말이 맞았어요. 내게 가치 있는 기억인 것 같아요. 머뭇거리다 내놓은 소녀의 말에 정국이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다행이네요. 나긋한 정국의 말에 소녀가 고개를 숙였다. 당신의 여행이 끝날 때 쯤에는... 내 여행도 끝났으면 좋겠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쏟아낸 소녀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소녀가 고개를 들어 정국을 올려다보았다. 정국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요. 정국의 답에 소녀가 작게 웃었다.
난 항상 여기 있을테니 다음에 또 나를 찾아와요.
또 와서 당신의 기억을 내게 팔겠어요?
당신을 또 보고싶네요.
그 때는 당신에게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아요.
***
와, 정국이 편까지 썼어요. 이제 남은 건 센빠이네요!ㅎㅅㅎ
기억을 삽니다 시리즈 얼른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왜케 오래 질질 끌고 왔져ㅠㅠㅠ 그나저나 이번편 최고로 망한 것 같네요. 고데기 필수인 듯.
전 드디어 시험도 끝났어요! 사실 시험기간에 더 열심히 쓸 줄 알았는데 안되더라구욬ㅋㅋㅋㅋㅋ 시간표가..ㅎ... 좋다고 해야할지, 별로라고 해야할지. 여튼 저는 거의 일주일 밤을 새고 어제 집에 와서 기절한듯이 잤습니다. 하하. 대다내!
근데 저 맞을 소리 해두 되여?ㅇㅅㅇ 이거 쓸려고 요새 생각하다가 다른 시리즈도 생각났어욬ㅋㅋㅋㅋㅋ 역시 저는 연재보다는 시리즈나 단편이 더 맞는 것 같아여... 여튼 그건 좀... 그냥 발랄하고 제 사심 채우기로'ㅅ' 쓸 계획인데 사실 쓸 지는 모르겠어요. 잘 써야 성공할 것 같은 소재라. 지금 나름 구상하고는 있는데, 아마 기억을 삽니다 시리즈 다 끝내고 어린아빠도 쓰고, 거의 바로 올라올 것 같아요. 몇 명은 얼추 거의 끝냈거든요! 사실 걍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거져 뭐!ㅎㅅㅎ
힌트를 좀 주자면
아이유 - rain drop
세븐틴 - 만세, 또는 아낀다
러블리즈 - 예쁜 여자가 되는 법
레드벨벳 - 사탕, 또는 something kinda crazy
방탄소년단 - 이불킥
이 정도...? 아, 어떡행. 힌트 너무 많이 준 것 같아여ㅠㅠ 사실 덜 정하기는 해찌만. 여러분들이 나중에 보면 저 욕할 지도 몰라여ㅠㅠ 이게 무슨 힌트냐! 작가년! 이러면서...ㅎㅅㅎ
헤헤. 여러분은 시험 끝났어여? 전 너무 잉여로워요. 그 잉여로움으로 글을 써야하는데ㅇㅅㅇ... 역시 나레기... 저레기...ㅎㅅㅎ 그래도 주말에 바지란히 써서 올릴게요. 헿
늘 얘기하지만 고맙고 사랑해요'ㅅ' 이번 주 안으로 기억을 삽니다 끝내고! 어린아빠도 써서 올리고! 되면 새로운 시리즈까지 쓸게여!'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