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칼럼 쓰는 여자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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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애칼럼 쓰는 여자다.
논현동에 위치한 잡지사.
10cm 즈음 되는 하이힐을 신고 강남 한복판을 또각또각 누비며 한 인기 한다는 남자배우를 인터뷰하러 카페로 들어서면,
남자배우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겠지.
마치고 한 잔 하러 갈래요?
나는 너 따위 나한텐 그리 대 스타도 아니라는 듯이 도도한 척이란 척은 다 하며
생각해보겠다 답하겠지.
인터뷰를 마치고 바에서 한 잔 걸치며 그와 나는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든 결론은 정해져 있을 거야.
뜨거운 밤. 그래, 그거.
.......
는 무슨.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이다.
잡지사라지만 이미 주요 자리는 엄청난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무슨 철밥통마냥 지키고 앉아 있다.
하이힐 좋아하네.
나 같은 신입은 종일 발로 뛰며 심부름이나 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편한 운동화나 신어야 했다.
글 솜씨로 뽑혀 들어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몇 개월이 지나도록
내게 글을 쓸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난 영원히 잡일이나 하려나 보다, 하고 포기할 즈음에서야 첫 기회가 내게 왔다.
"우리 칼럼 자리 이번 달 갑자기 펑크 났어.
연애칼럼니스트가 쓰던 건데,
급하니까 네가 대강 뭐라도 써서 채워봐."
부하직원은 자고로 '거절'이란 단어를 알아서도, 써서도 안 되는 법이다.
연애라...
실패한 연애밖에 한 적 없는 내가 연애에 관한 글을 싸질러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했다.
내가 연애 칼럼을 채우게 된다면 그건 그저 소설에 불과한 게 될 텐데.
나는 대타로 자리나 채워보자는 심산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될 줄은 나조차도 꿈에도 몰랐다.
***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경 중 하나다.
"오늘 저랑 둘이 야근이네요. 뭐라도 마시고 할래요?" 라며 눈을 찡긋 하는
잘생긴 팀장님이 어디선가 뿅 나타날 것만 같으니까.
하하.
그래, 물론 우리 회사에는 남자라고는 얼굴 한 번 안 비추는 사장을 제외하곤 한 명도 없다.
남자 복이라곤 지지리도 없네, 한탄하며 컴퓨터를 켰다.
[Dr. love에게 물어보세요! 사이트에 썸,연애,불같은 밤 등 모든 남녀관계에 관한 궁금증을 올려주세요. 질문이 채택된 독자에게는 푸짐한 선물도 드려요!]
뭐라도 시작해보기 위해 홈페이지를 클릭하자마자 튀어나온 팝업창 내용이다.
불같은 밤 좋아하네.
나는 조용히 [다시보지않기]에 체크하고 질문을 고르기 시작했다.
Q. 이 남자, 매일 같이 간만 보고 고백할 생각을 안 해요.
Q. 짝남이 여자 친구가 생겼대요.
'짝남'은 또 뭐람? 요즘 인터넷 용어는 도통 모르겠다.
짝꿍 같은 건가.
Q. 남자친구가 관계 후...
[조회수 109]
어이구, 조회수 봐라.
허를 끌끌 차면서도 나 역시 그 글을 클릭했다.
[남자친구과 관계 후 바로 잠들어요. 저는 단지 그게 하고 싶어서 관계를 하는 게 아닌데.
뒤에서 꼭 안아주고, 서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하면서 같이 잠드는 걸 바라는 게 너무 큰 소원인가요?
남친한테 말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에요.
말 할 때마다 알았다, 미안하다 해놓고 또 잠드네요.
제 욕구만 채우고 마는 남자 같아서 이제 정말 헤어짐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로 따지자면 클리셰 라고 할 수 있는,
어느 잡지 연애 칼럼에서나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남자는 과학적으로 관계 후 졸음이 오는 게 당연하다는 류의 썰을 풀고
대화를 좀 더 해보라는 식의 정답 아닌 정답이나 대충 써 넣으면 칸은 채울 수 있을만 한 소재다.
그래, 하나는 이걸로 정했다.
또 어떤 질문을 고를까.
질문은 다 유치하고 또 유치했다.
연애를 하면 유치해진다지만 어째 내 글 솜씨를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 뿐인 걸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별 기능을 하지도 않는 내 뇌가 그만 터져버릴 성 싶어
커피나 한 잔 하려고 사무실을 나섰다.
카페는 소재를 찾기엔 더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연애 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있는 연인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카페니까.
서로 좋아하는데 고백은 아직인 남녀,
막 사귀기 시작해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
(덧붙이자면 참 꼴 보기 싫다. 당연하다, 난 솔로니까.)
서로가 너무나 익숙한 오래된 커플.
이제 서로 이야기 나누기조차 귀찮은 권태기 남녀.
그리고,
이별이 임박한 순간의 남녀.
지금 내 앞 쪽에 보이는 한 커플처럼.
"누나, 이렇게 일하는 데까지 오면 어떡해요.
가족이라고 핑계대고 나오긴 했지만 저 정말 곤란해질 뻔 했잖아요."
연하남인가 보네.
참 뭐랄까 청명하게도 생긴 아이다.
잘 뻗은 콧날에 앞니는 마치 아기토끼같은 게 귀여운 연하남의 정석 같은 얼굴이다.
코가 참 크다. 코가 크면 자고로...
아, 나도 참 주책이다.
여자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하고 계속 울먹거렸다.
"정국아, 나 너 없인 정말 못 살겠어. 그냥 우리 다시 한 번만 잘 해보면 안 돼?"
연인을 붙잡는 1단계 쯤 되는 말을 하네.
나도 모르게 흥미가 생겨 라떼를 휘휘 젓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누나, 울지마요."
정국이라 불린 아이가 제 엄지손가락을 내어 여자의 눈가를 훑으며 눈물을 닦아내었다.
저거 저거, 여자를 아는 놈일세.
"그리고, 누나도 알잖아요.
우린 다시 시작해도 또 똑같이 끝날 걸."
"내가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다구.
나 진짜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어."
정말 간절한가보다. 바로 3단계로 넘어가네.
"조심해서 들어가요.
어두워졌으니까."
절대 차가운 말도 표정도 짓지 않으면서 잘도 여자를 밀어낸다.
여자를 두고 연하남이 카페를 나서는 것을 바라보니
문득 망할 전 남친 김태형의 뒷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그 놈도 이렇게 카페에 나를 두고 갔지.
우린 다시는 사귈 일 없어, 따위의 제 딴에 멋있다는 말을 내뱉고는.
생각하니 열이 올라 남은 라떼를 한 입에 들이키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분명 오늘 일을 다 마치고 내일부턴 칼퇴를 하리라 결심하고 컴퓨터 화면을 켰건만, 아니 커피도 마셨건만.
그날 나는 결국 책상에 엎드려 몇 시간을 졸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깨어나
나 자신에게 갖은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김태형 꿈을 꾼 것 같았다.
우린 다시는 사귈 일 없어.
꿈에서 다시 들을 만큼 기억하고 싶은 말은 아닌데 왜 또 하필.
그 날 김태형 꿈이 내게 남긴 거라곤
목에 걸린 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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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친, 김태형.
" 우린 다시는 사귈 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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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정국.
"그리고, 누나도 알잖아요.
우린 다시 시작해도 똑같이 끝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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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이라도 봐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아직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