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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천개의 태양




눈 먼 자들의 도시
1


[EXO/오세훈] 눈 먼 자들의 도시 1 | 인스티즈


inspiration           코렐라인 (Coraline, 2009) , 미스테리어스 스킨 (Mysterious Skin, 2004)









" 자, 니년에게 얼마를 주면 될까. "

" ..오빠가 원하는 대로, 딱 주고 싶은 만큼만 줘요. "





더럽다. 역겨워서 토가 나올 지경이다. 나를 흝는 남자는 나보다 족히 스무 살은 늙어 보였다. 남자는 때가 낀 손으로 제 배를 긁으며 귀가 울리게 웃었다. 기름진 얼굴을 향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최대한 야살스러운 미소를 비추었다. 당장이라도 내 앞에 서있는 이 짐승보다 못한 새끼를 때려죽이고 싶은 내 속마음 들키지 않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처럼. 그렇게 말이다.어차피 그런 미소 달고 온갖 아양 떠는 게 내 일이었다. 매일 수십 명의 아저씨들을 상대로 앙탈을 부리고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번들번들거리는 자태로 나오는 만 원짜리 몇장를 위해 엉덩이를 흔들고 누군가의 무릎 위에서 춤을 췄다. 이곳은 시궁창이니까. 번쩍번쩍 거리는 곳이 아니다. 뒷골목에 음침하게 놓인 이곳은 약한 자들이 더욱더 약한 자들 위에서 군림하는 돼지우리. 





나는 나를 찾아오는 남자들을 아주 잘 안다. 평범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라는 작자도 있고 번번한 직업 없이 술만 처마셔대는 게으름뱅이 새끼도 있다. 그리고 나라는 년은, 그들을 어떻게 해야 잘 구슬리고 돈을 빼낼 수 있는지 제일 잘 안다. 어느새 익숙해진 환경. 오랜 시간 동안 빨지 않아 눅눅해진 커튼. 마치 정육점을 연상시키는 빨간색의 불빛. 그 속에서 오늘도 나는 생판 모르는 남자의 품에 안겨 가식적인 애정을 내뿜는다. 왜냐.



어렴풋이 엄마의 모습이 남자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밥 먹듯이 아버지에게 맞고 살아 울긋불긋한 멍으로 가득한 얼굴이 아닌, 아주 어렸을 적 나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의 평온한 얼굴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가끔씩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는 행복한 기억들이 이런 상황에서 연상된다. 잠시라도 악(惡)함과 선(善)함이 공존한다. ..그래. 왜일까. 나는, 나는..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딴 생활을 지속하는 것일까. 



멍하니 서있는 내 모습에 벨트를 푸르는 남자의 손길이 멈칫했다. 제 눈썹을 올리며 위협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나는 그것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아버지가 어머니와 우리에게 내뱉었던 눈빛과 똑같았으니까 말이다. 





"..안 할거야 이 년아?"

"......"





왜일까.





"이 년이 귓구멍이 막혔나."

"에이 오빠, 지금 벗을 거예요."





살아야 하니까.










Blindness, 2015


[EXO/오세훈] 눈 먼 자들의 도시 1 | 인스티즈










일이 끝나는 시간은 어렴풋이 새벽 한시. 관계 후 뒷정리는 두말없이 업소 여자들의 몫이다. 그 후의 할 일 또한 산더미. 숨통을 억죄이는 옷을 벗고 악취나는 향수를 최대한 살결에서 박박 문질러 없앤다. 마지막으로 얼굴 위에 바른 가면과도 같은 화장을 지운다. 두꺼운 화장을 깔끔하게 닦아낼 무렵 거울에 비치는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짙은 아이라인이 번져 충열된 눈 속에는 악마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낡은 도어락이 느리게 풀리는 소리가 들리며 현관문이 열렸다. 지속적으로 몇 시간씩 높은 굽의 신발을 신은 터라 욱신거리는 발목을 거의 부여잡듯이 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명색은 집이라고 하지만 그저 단칸방에 그치는 허름한 내부. 뜨거운 물이 이틀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이 곳은 이 년째 나와 동생 아연이 살고 있다.





" ...안 자고 뭐 해. "

" 내일 시험이거든. 나도 이제 고인데, 공부해야지. "





아연은 올해 들어 열여섯 살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상이 사나운 나와 정반대로 수수하고 오목조목한 얼굴을 가졌다. 명랑해야 하는 나이와 달리 조용하고 낯을 많이 가린다. 내 동생에게서는 엄마가 보인다. 그런 아연이와 달리 쉽게 화를 내고 걸핏하면 욕을 내뱉는 나는 아빠를 닮았다.





다리 하나가 짧은 식탁은 제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흔들거린다. 그 위에 올려진 주전자를 집어 옆에 놓인 컵에 물을 따랐다. ..너도 마실래? 그 물음에 아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컵 하나를 더 꺼내 건넸다.



" 밥은.. 밥은 먹고 다니는 거야? "

" ...... "



컵을 건넬 때 서로의 손가락이 살짝 스쳤다. 어렸을 때부터 느꼈지만 아연이의 손은 언제나 만져도 따뜻했다. 손가락만 스쳤을 뿐인데 아연이의 온기가 확연히 전해졌다. 내 마르고 앙상한 손가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연이 끝내 물었다. 거짓말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언니. "

" 일하는 곳에서 밥은 제공, "

" 거기 일 그만두면 안돼? "





지금까지 아연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던 것일까. 정확히 일 년 전의 3월. 아직 겨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쌀쌀했던 날. 고등학교 삼 학년을 시작하지 못한 채 자퇴를 했다. 공부를 워낙 끈질기게 했던 터라 나를 보내는 선생들의 얼굴들은 다소 볼만했다. 학교를 내세워줄 수 있었던 학생을 떠나보내야 한다니. 그들의 머릿속은 그딴 생각뿐이었다. 



그때까지 아마 내가 해보지 못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장면 알바부터 공사장의 막노동까지. 노력했다. 피눈물 흘릴 그날까지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몇백 번 다짐했다. 하지만 돈이라는 건 더럽다.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려고 하는 나와 동생에게 세상은 자비로움이라는 것을 베풀지 않았다. 부모 없는 두 명의 고아들이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자퇴서를 낸 당일 동이 틀 즘 편의점 알바가 끝났다. 담배 하나를 물고 쪼그려 앉아 있던 나에게 포근한 인상의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왔었다. 돈이라도 달라고 하시려나. 나보다 더 얇은 옷을 걸치시고 있는 할머니를 보자 생각나는 것은 나 자신도 놀란 동정이라는 감정이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는 학교의 몇몇 아이들이 매일 던지던 시선. 이번에는 그 시선을 내가 던졌다.



" 저 거 학생, 보니까 뭣도 없는 거 같은데. "

" ...예? "

" 학생. 돈 좀 벌어볼래? "



그날 처음으로 나는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겼다. 열여덟 살의 내가 그 모든 일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사람에 의해 회전했다. 김아연. 나의 동생.





" 김아연, 너... "

" 언니 자신도 부끄럽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언니 몸은, 소중하지도 않아? "

" ..그만해. "

" 그거 알아? 매일 약해빠져서 들어오는 꼴 정말 한심해 보여. "

" 그만하라고 했지. "

" 아니, 그만 못해. 아무리 돈 없어도 그런 식으로 돈 버는 거 역겨워. 역겹다고!"



육 년 만에 동생에게 손찌검을 했다. 욱식거리는 손바닥을 나도 모르게 부여잡았다. 손에 불이라도 난 느낌에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집 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잠시 동안 아연이는 고개를 숙인 채 제 볼을 부여잡았다.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에 몸이 얼어붙고만 말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엄마와 아빠가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가졌을 때? 아빠가 처음으로 술을 마신 그때? ...내가 몸을 팔기 시작했을 때?



닭똥 같은 눈물이 아연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걸 아연이는 또 보이기 싫었는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상태로 재빠르게 제 손등으로 벅벅 닦는다. 내심 속으로는 아연이가 펑펑 울어주기를 바랐다. 나에게 욕설을 퍼붇기를. 언니를 꾸짖기를. 





숨을 연달아 내쉬며 화장실로 들어가 울었다. 눈이 따가워 손으로 문지르니 미처 업소에서 닦이지 않았던 굳은 화장이 묻어 나왔다.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구멍 난 스타킹은 오늘도 쓰레기통 안으로 돌진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방 안은 이미 어두웠다. 구석에서 이불을 깔고 누워있는 아연이에게 다가갔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연이의 머리칼을 넘겼다.



"..너는... 너는 몰라."

"......"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버티기 어려운지.."

"......"

"계속 그렇게 있어. 언니처럼 미친년 되지 말고.. 아연아. ...응?"





 아침에 입은 교복을 갈아입지 않은 채 잠든 나의 동생과 그런 아연이를 위해 울어주는 나는 참으로 불쌍했다.












> 아영이와 아연이는 고아입니다. 엄마는 행방불명, 아빠는 자살.

> 유흥업소라는 곳을 정당화 하려는 목적이 절대 아닙니다. 그저 아영이의 감정선과 상황을 확실히, 제대로 잡고 싶었어요.

> 정작 남주 세훈이는.. 도대체 언제 등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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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첫편부터 확실히 저를 이끈 글이었어요 매력있는 분위기와 퇴폐함에 감동하고 가요 또 인물들의 처지또한 잘 이해했어요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신알신도 하고 갈게요~~재밌어요 잘보고 가요!!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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