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ㅡ Written by.세모론
빌어먹을 성경, 아니 김성규는 왜 하필 그 때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 그 많던 타이밍을 놔두고 꼭 그 때 사라져야만 했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 심각하게 며칠 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오해를 풀려고 차 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 그 때 김성규가 빨리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잡혔더라면. 내가 김성규를 붙잡고 제대로 사과만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김성규만 생각하면 나에게 찾아오는 미약한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었을 텐데. 될 수만 있다면 그 때로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정말 김성규는 왜 그렇게 빨리 내 시야에서 사라져서는. 아이씨, 하나도 도움 되는게 없는 김성규 때문에 진짜 짜증난다.
치솟는 짜증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구기고 있었던 모양인지 메이크업 아티스트 누나가 얼굴 구기지 말라며 내게 야단을 쳤다. 짜증나는 김성규 생각이나 하다가 내가 지금 메이크업을 받는 중이라는 걸 깜빡했다. 젠장, 멍청한 남우현. 네, 하고 짧게 대답을 하며 화장을 받는 내내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안면근육을 억지로 풀려고 노력했다. 근데 젠장 맞게도 계속 김성규만 생각이 나서……그게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 죽어라 애만 먹었다. 결국은 누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송한 마음에 누나를 힐끗 쳐다봤다.
“얼굴 구기지 말라니까요. 왜 자꾸 인상 쓰세요 우현씨.”
“아, 죄송해요.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조금만 더 하면 다 끝나니까, 생각 안하도록 노력 해봐요. 조금만 참으세요.”
“네. 죄송합니다.”
근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냐고요. 벌써 이틀 내내 김성규에게 전하지 못했던 해명을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였다. 더이상 김성규를 떠올리지 말자고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떨쳐내려 해봐도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끈질기게 따라오는 김성규의 생각이다. 지독하다, 진짜. 이틀 내내 죽어라 생각했으면 됐지, 계속 이렇게 나를 쫓아오고 답답하게 만들면 기분 좋냐? 좋냐고 김성규! 진짜 왜 계속 김성규가 생각날까. 답을 알 수가 없어 답답해 미치겠다. 결국 지끈지끈 두통이 밀려왔다. 아무튼 김성규를 만나고 난 후로는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얘는 뭐 나랑 전생에 천하의 원수였나. 아랫입술이 저절로 툭 튀어나왔다.
“아직도 성규 생각하냐?”
“…….”
“둘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이더니 왜 갑자기 마지막에 싸우고 그런 거야?”
“오해가 생긴 것뿐이야.”
소파에 앉아있던 거남이 형이 혀를 쯧쯧 차며 다시 핸드폰 게임에 집중했다. 저 인간은 도대체, 위로하려고 물어본 거야 아님 약 올릴려고 물어본 거야? 형 덕분에 머리에 열만 더 몰려서 저절로 어금니가 으득으득 갈렸다. 참자 남우현.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았나. 참자, 참자, 참아. 후…….
“다 됐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다 끝났다는 메이크업아티스트 누나의 말에 나는 얼른 의자에서 내려왔다. 끝났다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늦게 누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면 나는 정말 화장이고 스케줄이고 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샵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눈 뒤집히며 포효할 만큼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이 말이다. 김성규로 인하여.
거남이 형이 기지개를 켜며 소파에서 일어나 나에게 휘적휘적 걸어왔다. 맞다, 이 양반도 나의 열을 상승시켜준 아주 고마운 인물이다. 나는 형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왜 노려봐.”
“열 받아.”
“뭐? 나? 나 때문에?”
“안 그래도 짜증났는데 형 때문에 더 짜증나.”
“내가 뭘? 웃긴 놈이네.”
“아씨, 됐고 가서 두통약이나 좀 사와.”
“머리 아프냐?”
“응. 차키 주고.”
“여기. 근데 부탁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기분 나쁘게.”
“나를 더 짜증나게 했던게 누군데.”
“싸우자는 거냐 지금?”
“아, 머리 아파!!!”
형이 주먹을 말아 쥔 손을 치켜들며 나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지금 열 받아 눈에 뵈는 게 없는 나는 형에게 혀를 쏘옥 내밀어보이며 여유롭게 샵을 나와 벤으로 갔다. 뒤에서 형이 나에게 욕하는 소리가 아주 크게 잘 들렸지만 4년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형의 욕은 셀 수 없을정도로 많이 들어왔으므로 그냥 무시했다. 욕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어야지. 쯧.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벤으로 향하던 그 짧은 순간에도 후덥지근함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샵이 얼마나 시원했었는지 잘 알겠어서 다시 시원한 미용실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축축 늘어진다. 벤을 타려고 하는데 어디서 꺄악, 하는 소리가 들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더니 예상대로 나를 발견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소녀가 이쪽으로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오오미. 나는 얼른 벤 문을 옆으로 밀고 벤 안으로 몸을 숨겼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사진 찍어 줄 기분이 아니란다 얘들아. 소녀들이 뒤늦게 차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인 것을 안다. 미안해서 창문 밖의 아이들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어 줬으나 밖에서는 내가 안 보일게 뻔했다. 에휴, 깊은 한숨을 쉬며 그대로 좌석에 몸을 묻으며 누웠다.
“아…….”
코끝에서 넘실대는 공기에서 미약한 소독약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다. 아……. 파라노마처럼 내가 이곳에서 했던 짓들이 차례차례 떠오른다. 김성규를 앉히고 티격태격 대다가 다리를 치료하고. 그러다가 녀석의 뽀얀 다리에 시선이 팔려 그만 나도 모르게…….
“이 미친놈, 아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정말 미친놈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김성규를 보고 야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렸을까. 아니,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던것 자체가 이미 미친놈인거였다 나는. 망했다. 나는 내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또라이 중 상또라이 같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답답한 심정에 이내 차 천장에다 대고 으아아아악!! 크게 소리를 질렀다. 머리도 같이 쥐어뜯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곧 예능프로 녹화가 있어 차마 머리를 쥐어뜯지는 못했다. 으으. 근데, 녀석에게 해명하려고 했던 것처럼 나는 정말 실수로, 진짜 실수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던 거고 그 말은 절대로 내 의지대로 한 말이 아니었다. 레알! 아니 왜, 그런거 있지않은가. 내가, 내가 아닌 순간. 이게 어법에 맞나? 젠장, 아무튼. 나중에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엄청나게 후회하고 자기 전에 이불 속에서 하이 킥이나 뻥뻥 차게 만드는 순간. 내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를 행동의 결과물들. 그래. 김성규에게 야하다, 라고 했던 순간은 나는 나였으나 내가 아니었던, 잠시 정신이 나갔던 순간이었다 . 그래, 이거다.
“야하다…….”
새삼스럽게 되뇌어 말해보니 세상에 더없을 정도로 낯뜨거운 말이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한테 내가 진짜 뭔 생각으로, 이 딴 말을! 으아아악! 죽어라 남우현!! 이 정신 나간 새끼! 어떻게 김성규의 다리를 보고 그런 생각을, 그리고 어떻게 그걸 그대로 말로 뱉어낼 수가 있었지? 미친. 아오. 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허공에다 마구마구 날려댔다. 미쳤어, 미쳤어. 진짜.
근데 솔직하게 김성규가 다리가 예쁘긴 했다. 내가 내뱉었던대로 야한 건 아닌데, 쭉 뻗고 마른 다리에다가 또 발목은 어찌나 얇던지. 어떻게 남자의 다리가 그렇게 하얗고 다리털도 별로 없을 수 있지? 참 유들유들하게 생긴 다리였다. 객관적으로 정말 섹시하게 잘 빠진 매끈한 다리 같기도 했……. 야하지는 않고 섹시하다? 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걸까. 그리고 게이가 된 것 같은 이 더러운 기분은 도대체 뭘까.
“옜다, 받아라. 더럽게 날씨 덥네.”
그렇게 혼자 생난리 블루스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석 문이 덜컥 열리더니 누워있는 내 얼굴 위로 햇빛이 잠깐 쏟아져 내렸다. 형이 차에 탔다. 벤이 덜컹하고 왼쪽으로 쏠리며 기우뚱 하길래 아씨, 형 살 좀 빼라니까! 라고 소리쳤는데 바로 닥치라는 날이 선 대답이 날아왔다. 형이 내 가슴팍에 던져준 두통약봉지를 집어 들어 앞뒤를 이리저리 살폈다. 두통이 있을 때는, 하며 어쩌구 저쩌구 정신없이도 문구를 써 놨다. 아, 갑자기 이거 말고 어렸을 때나 먹던 주황색 해열제가 먹고 싶어졌다. 진짜 달고 맛있었는데. 입맛을 쩝쩝 다시며 형이 건네준 생수를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물도 사오다니, 이런 센스쟁이. 물을 먼저 한 모금 마시고 약을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근데 형.”
“어.”
“나 미친놈인가 봐.”
“그걸 이제 알았냐?”
“응…….”
“심각하다 심각해.”
형이 생각해도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래……. 으휴.
*
“아씨, 저리가.”
“……이제는 혼잣말까지? 미쳤구나.”
“안 미쳤어.”
“아까는 미친것 같지 않냐고 물어봤잖아.”
“몰라, 몰라. 미칠 것 같아!!”
“미친 놈.”
형이 뭐라 중얼거리든 그딴거에 관심은 없고, 나는 지금 내 머리 속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김성규의 때문에 미치고 팔딱 뛰겠다. 진짜, 아까도 말했다시피 한 번 본 김성규의 얼굴이 내가 뭘 하고 있든 무슨 생각을 하든 계속 내 눈 앞에 둥둥 떠다닌다. 밀가루처럼 새하얀 그 얼굴이 둥둥, 구름마냥 둥둥. 이틀동안이나 나를 괴롭혔으면 됐지 아직도 안 사라지냐? 얄미워 죽겠다. 왜 계속 나를 괴롭히니 이 빌어먹을 김성규! 때려주고 싶네 진짜. 니 덕분에 내가 예능 가서도 곤욕을 치르고 왔다는 거 아니냐. MC들의 말에 집중도 못하고 다른 게스트들이 말할 때는 당연히 김성규 생각이나 하며 얼굴 굳히고 있고. 말실수도 하고 MC들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이나 하고. 지금 실시간 검색어 5위가 사석나무. 기자들은 내 엉뚱한 매력, 4차원적인 매력 어쩌고 저쩌고 왈가왈부 떠들며 기사를 빠르게 내고 있었다. 젠장.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다. 어째서 내가 녀석의 못생긴 얼굴을 잊지 못하고 이렇게 끙끙 앓고 있는거지? 어린 아이가 잘못 그은 사선같이 작고 긴 눈, 별로 예쁜 구석 없는 코. 얼굴 중 그나마 가장 예쁜 곳인 새빨간 입술. 아, 얼굴도 비비크림을 바른 사람마냥 하얬지. 화장하고 다니나. 암튼 아무리 봐도 특별히 끌리는 부분이 없는 이상 내 머릿속에 깊게 남지 않을 인상인데 도대체 왜! 왜! 잊혀지지 않냐고!
“스케줄 몇 개 남았어?”
“세 개.”
“절망적이다. 으아.”
“내일은 더 많아, 전에는 더 했으면서 엄살은.”
“몰라, 몰라.”
계속 김성규가 떠올라서 제대로 소화도 못 할 스케줄이 세 개나 더 있다니. 망했다. 나는 그대로 이마 위로 올렸던 안대를 내리고 잠시나마 눈을 붙이려 했다. 그래, 했다. 안녕, 김성규. 또 왔네. 둥둥. 또 둥둥 내 눈앞에 떠다니는구나. 젠장, 너를 갈아 마셔버릴까? 왜 자꾸 나타나니.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가 김성규의 환상은 더 선명했다.
근데 이거 누가 잘못 보면 영락없이 사랑에 빠졌다고 오해하고도 남겠네. ……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떠올린 말이었지만 순간 정말 소름이 돋았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가. 쓱쓱 팔을 문지르며 돋아 오른 닭살을 집어넣으려 했다. 미안하다 닭살들아, 이 남우현이 많이 힘든건지 얼빠져서 빌어먹을 생각을 하고 말았구나. 아, 그건 진짜 말이 안 된다. 우웩.
형은 팔을 쓱쓱 비비는 나를 보며 내가 춥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지 온도를 높혔다.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더워, 온도 높히지 마! 라고 소리쳤고, 형은 욕을 했다. 얼씨구나. 오늘만 해서 몇 번째 듣는 욕이냐.
“형, 누군가가 계속 눈앞에 둥둥 떠다니면 어떻게 해야 돼?”
“귀신 보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누가 계속 생각난다고!”
“그럼 말을 그렇게 하던가, 설명을 그따위로 해 놓고.”
“뭐!”
“됐어, 누가 계속 생각난다고?”
“응. 좋은 의미로는 아닌데…….”
“하긴, 너도 애인 고플 때가 됐지. 누구야, 예뻐?”
“뭐래, 남잔데.”
끼익. 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한 덕분에 안대를 끼고 있어 아무것도 안 보였던 나는 그대로 앞좌석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퍽,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났는지 그 소리를 듣고 내가 놀랐다. 으아아아, 진짜 아파!! 뭐야, 형 미쳤어?! 얼른 쥐어뜯듯 안대를 벗고 형을 노려봤는데, 형은 정말 모든 흰자가 다 보일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의 쇼크먹은 표정을 무방비 상태로 직면한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라 팔딱 튀어 올랐다. 으악! 왜!!
“너 게이야?!”
“뭐? 뭐래!!”
“남자가 막 계속 생각나고 그런다며?”
“안 좋은 의미라고!! 걔한테 원한 있어서 그렇게 생각나는 거라니까!”
“그래도, 그래도 뭔가 있어!”
“뭐가! 없거든? 형은 나를 게이로 만들고 싶어?”
“…….”
“충격 먹은 표정 하지 말아줄래 제발? 갓길에다가 차 세우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빨리 가!”
“……너 설마 성규씨 좋아해?”
……. 저 삽살개 같은 형이 뭐라고 하는 거야. 난 그 남자가 김성규라고 말도 안 했는데? 아무리 형이 뚫린 입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건 도를 지나친 거잖아! 나는 도끼눈을 뜨며 형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형이 지금 나한테 얼마나 큰 충격을 준 줄 알아?! 나도 비스무리하게 실수로 그렇게 생각한적은 있었지만 형한테 들으니까 완전 충격이야!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그렇게 되면 형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아주 막 뱉는다? 빌어먹을. 말이 씨가 된다니, 나도 뭐라고 하고있는거지. 아아, 대박 멘붕이다. 형이나 나나. 형은 한참이나 나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형을 여전히 쏘아보고 있었다. 내가 김성규를 좋아한다고? 우에에엑, 아까 점심 때 먹었던 돈가스가 넘어올 것 같았다. 진짜로.
“제발 나 토 나오게 하지마. 없는 멀미 생길 것 같다.”
“……멘붕.”
“아, 아니라고! 내가 왜 미쳤다고 김성규를 좋아해!! 나 어제 승연이한테 고백 받은 남자야 남자! 나 여자 좋다고!”
“고백 거절했잖아.”
“컴백하자마자 스캔들 터지길 원해?!”
“…….”
“아, 나 게이 아니라고! 내가 왜 김성규를 좋아해!!”
나는 어제 최고로 잘나가는 여자아이돌 승연의 고백을 차버린 나를 가지고 혼자 말도 안되는 뭣같은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형의 어깨를 잡고 짤짤 흔들었다. 내 머리 위로 하늘이 무너지고 쓰나미가 덮쳐와도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틈만 나면 트리클로버의 댓글 창에 나를 까고 다니는 개싸가지 안티에다가 까칠하긴 더럽게 까칠한 김성규를 내가 왜! 나에게 대시해오는 수많은 예쁘고 쭉쭉빵빵한 여자들을 놔두고, 내가 왜 못생기고 재수없는 김성규를 좋아해?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아우, 근데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진짜 비호감이다 김성규. 하긴 그러니까 완벽한 나에게 질투를 느끼고 나의 안티 짓을 하고 다니는 거겠지. 훗. 우월해서 미안하다. 김성규. ……뭔가 이야기가 이상한 대로 샌 거 같은데.
“사랑은 원래 미- ”
“조용히 해. 스케줄 늦으면 책임질래? 가. 가라고.”
“어? 아, 응. 근데 그래도 우현- ”
“한번만 더 김성규를 좋아한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면 형을 사랑한다고 기자회견 열어버릴거야.”
“…….”
“이제 알겠어? 나 김성규 안 좋아한다는거.”
“응. 잘못했다.”
“알면 저녁 밥 맛있는걸로 사와.”
“젠장.”
다시금 부드럽게 걸어지는 차의 시동소리에 나는 바닥에다가 던져놨던 안대를 집어 탁탁 먼지를 털고 다시 썼다. 내가 김성규를 좋아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다니. 끔찍해. 테러블! 호러블! 내 이상형을 모르나. 귀엽고 깜찍하고 아담한 여자. 김성규가 귀엽고 깜찍하면 내가 형이 그러는 이유를 납득이라도 하지. 김성규가 귀엽고 깜……무리수다 진짜. 또 돈가스가 넘어올 것 같네. 게다가 김성규는 남자라고. 나와 똑같은거 달려있고 목젖 있고 수염 나고. 그런데 어떻게 내가 김성규를 좋아해. 으으, 어디서 돈가스 냄새가 나네. 아무튼 정말 개소리다. 죽었다 깨어나도 김성규를 좋아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하늘에다 대고 외칠 수 있는 나다. 온 국민 앞에서 선서라도 할 수 있다고.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김성규 얼굴이 안 떠다니네……했더니 다시 오네. 아씨. 너도 잠 좀 자라 귀찮은 성규야.
*
……나는 또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접속했지. 망연자실하게 영어로 써진 트리클로버의 배너를 바라보았다. 잠깐 촬영 쉬는시간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다른 여자 연예인들과 놀지는 못할망정. 나가야지……는 무슨. 이미 배너를 클릭하고 로그인을 하고 있는 나였다. 나는 사이보그 인가. 왜 머리와 손이 따로 놀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김성규를 욕해놓고 다시 김성규의 흔적을 찾고 있다니. 한심하다 한심해.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뇌의 명령을 개껌 마냥 씹은 나의 손은 성경을 찾아 이방저방을 찾아 클릭질을 해댔다. 야, 하지 말라고. 여전히 뇌가 명령을 해도 제멋대로 움직인다. ……일찐이세요? 김성규가 가장 잘 등장하는 직찍방을 들어가 봐도 이상하게 성경이라는 닉네임은 나를 만난 이후로 아무런 활동을 하고있지 않았다. 오호라, 나의 실물을 보고 충격 먹어서 안티질 때려쳤구나. 내가 이렇게 잘생기고 멋진 사람을 깠다니, 하며 지금쯤 집에서 이불을 쥐어뜯으며 울고 있을 거야. 나의 덕질을 위해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며 다니고 있을 지도 모르지. 하긴 내 실물이 얼마나 대박인데. 캬!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어?”
그러다 우연히 잡담방을 들어가게 된 나는, 이상한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뭐지 저 엄청난 오타는? 별은 또 몇 개나 붙여 놓은거야.
[☆★☆★남우현 게이인 듯☆★☆★]
염병할. 뭔가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아무래도……등골 쪽에서 식음 땀이 삐질 흘렀다. 설마, 너, 김성규 니가 설마……. 아니지? 아니지 성규야, 나는 너 믿는다.
[내가 어제 우연히 남우현을 만났거든? 그런데 남우현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잘 못 알아본 거야;; ㅎㄷㄷ 그래서 내가 아닌 거 같다고 했는데 갑자기 나무가 제대로 보라면서 쓰고있던 모자랑 선글라스를 벗는데, 나무를 알아보고 사람들이 몰렸다? ㅇㅇ 젠장. 그러다가 몰려드는 나무 팬들 때문에 내가 다쳤는데 남우현이 나를 벤에 데려가 치료해줌.....근데 막 치료해주다가 말고 내 다리를 보더니 야하다, 이러는 거야;;;;;;;;;;아 땀나;;;;;;;;진짜;;;;;나 남잔데;;;;;;;;;;;;남우현 게이인 듯;;;;;; 이거 레알 실화 진짜;;;;;나무현 미쳤음;;;;;;]
니 새끼를 믿기는 개뿔, 내가 언제 너 죽이고 만다, 진짜. 이걸 여기다 올려?!! 창피하지도 않냐?! 아무리 여기가 익명방이라고 해도 내가 모를 줄 아냐!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걸 어떻게 여기다 올릴 수 있어!! 으악!! 미친 김성규!! 나는 얼른 댓글창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익인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인 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종낙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눈물나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인 3: 남우현 게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여 난 환영임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게이라도 되버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ㅏ젠장 남우현 더 좋아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인 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나 글쓰니 부럽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난 설레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누가 이걸로 팬픽 써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박ㅋㅋㅋㅋㅋㅋㅋ남우현 사랑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게이나 돼 버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인 5: 내가 게이라닝!! 게이라닝!!
└ 익인 7: 다들 그렇게 게이가 되는 것이다☆★
익인 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성경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글쓴이: 아님;;
이 댓글들은 다 뭐지. 엄청나게 웃긴데 마냥 웃을 수가 없는 이 불편함은.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내 사랑 인슾들아, 이러면 안돼요. 게이나 되버리라니……. 정말 이 오빠가 게이면 좋겠니? 하하. 그리고 김성규, 성경 이 자식. 니가 성경이 아니긴 무슨. 내가 안 볼 줄 알았냐? 웃긴다 진짜. 나는 얼른 김성규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익인 8 (내가 씀): ㅡㅡ 이 글 책임 질 수 있어요? 어떻게..우현오빠가 게이라니;; 이런 글 퍼지면 괜히 안티들한테 욕먹고 그러니깐 자제해줬으면 해요. 기사라도 나면 어쩔려구;; 자중합시다 성경님^.^
크, 말 잘한다 남우현! 낄낄, 마지막 말에 화 좀 나겠지? 이제야 좀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다. 감히 어디서 내가 게이라는 헛소리를 퍼트리고 다녀? 간이 아주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만? 그렇구만! 뭐, 물론 따지고 보면 헛소리를 한 내 잘못이지만. 큼큼. 혼자 감탄하면 혹시 답답글이 달릴지도 몰라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피디님의 쉬는 시간 끝났다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에이씨. 하는 수 없이 나는 트리클로버를 나가고 거남이 형을 불렀다.
“형, 해킹 잘해?”
“응?”
“트리클로버에 들어가서 성경을 찾아, 그녀석 정보 좀 캐내줘.”
“나 못하는데.”
“그럼 잘 하는 친구한테 부탁이라도 해봐.”
김성규, 넌 이제 죽었다. 어디서 감히 이 남우현을 건드려. 콱 그냥! 나는 얼른 스튜디오 안으로 쫑쫑 뛰어갔다. 전쟁의 시작이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