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름. 뭔지 알아?”
길을 걷다 길가 옆에 작게 솟아난 노란 꽃에 백현이 걸음을 멈추고 쭈그려 앉았다. 조심스럽게 꺾은 꽃은 아름다운 색을 자랑하며 제 모양새를 뽐냈다. 찬열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백현이 가까이서 보여주는 꽃에 눈을 찡그리면서 보다 잘 모르겠습니다, 했다.
“예쁘다. 그치?”
민들레를 부는 것 마냥 후- 후- 바람을 분 백현이 싱그럽게 웃었다. 항상 점잖은 행동만 해서 이런 어린애 같은 면모는 처음 봤다. 백현의 옆에 쭈그려 앉은 찬열은 꽃을 쥐고 노는 백현을 가만히 관찰했다. 백현은 엄지와 검지로 잡은 초록색 줄기를 휘휘 돌리며 회전하는 꽃을 보고 히히 웃었다. 귀엽게 솟아난 잎사귀를 몇 번 만지더니 줄기를 타고 올라가 노란 꽃잎을 매만졌다. 부드러운 꽃잎의 감촉에 흐흐 웃는 것이 개구쟁이 유치원생 같아 찬열도 비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색이 참 곱다. 그치?”
“그러게요.”
“너도 이 꽃이 마음에 들어?”
“세자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저도 좋습니다.”
“너 내가 세자라고 부르지 말랬지!”
서글서글한 인상이 짜증스러움으로 휙 바뀌었다. 아까는 호기심 많은 새끼 강아지 같았다면 이번엔 불평불만이 가득한 토끼 같다. 약간 공기를 넣은 통통한 볼에 웃음이 튀어나오자 그걸 놓치지 않은 백현이 불만을 드러냈다. 찬열은 입 꼬리가 올라가려는걸 꾹꾹 내리누르며 억지로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으면 너도 좋으냐는걸 물은 게 아니야. 너도 이 꽃이 좋으냐고 물은거지.”
“세자께서 좋다 하시는데 소인이 뭔들 싫다 하겠습니까. 좋다마다요.”
찬열이 짓궂게 웃으며 답하자 백현의 입이 대빨 튀어나왔다.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이 먹기 좋은 호빵 같다, 생각을 한 찬열은 실실 웃었다. 찬열의 실없는 웃음에 미간을 찌푸린 백현이 꽃을 찬열에게 가까이 하며 다시 말했다.
“예쁘냐고. 이게 예쁘냐고 물었다.”
코앞의 샛노란 꽃이 바람에 작게 휘날렸다. 일렁이는 꽃잎을 보며 찬열은 웃음을 거두었다. 아까 손으로 만진 탓인지 듬성듬성 빈자리가 생긴 꽃은 조금 휑해보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꽃을 보며 찬열은 대답을 기다리는 백현을 곁눈질했다. ─얼르은. 시선이 맞자 백현이 재촉했다. 아직 빠지지 않은 젖살이 볼에 잔뜩 달라붙어 있다. 약간 홍조를 띄운 백현의 볼을 보며 찬열은 멍청하게 대답했다.
“…예쁩니다.”
볼을 타고 올라간 시선이 아래로 쳐져 순해 보이는 눈꼬리에 도착했다.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이 속없이 웃었다. 설풋 웃자 눈꼬리가 좀 더 휘어지는 게 강아지상이 틀림 없었다. 꽃을 제쪽으로 가져간 백현은 찬열과 손에 쥔 꽃을 번갈아 보더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찬열이 왜 그러냐는 듯 표정으로 물어오자 으음- 하며 머리까지 긁적이다 다짐을 했는지 꽃을 찬열에게 건넸다. 결심이라도 한 얼굴이었다.
“나도 갖고 싶은데, 열이가 예쁘다고 했으니까.”
“……아.”
“열이는 예쁘니까 이거 가져도 돼.”
백현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마치 태양을 보는 것처럼 그 미소는 찬란했다. 찬열은 백현이 쥐어준 한 떨기 꽃을 잡으며 잠시 멍해있었다. 찬열의 손에 든 꽃잎을 살살 어루만지는 백현의 머리칼이 바람에 작게 일렁였다. 백현의 새카만 정수리가 바람에 살랑대는 것을 보고 찬열은 생각했다. 어쩌면, 진정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니라 세자일지도 모른다고. 푸스스 웃는 백현의 웃음소리가 투명한 물속에 물감을 퍼뜨리는 것 마냥 귓가에 생생히 울려 퍼졌다. 그때, 꽃을 든 찬열의 손이 작게 떨린다는 것을 어린 백현은 눈치 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