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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박대리님이 퇴근 후에 한 턱 쏘신다고 해서 집에 먹을 것도 없었는데 잘 됐다! 하고 따라감. 넷이 앉아 수저를 놓고 주문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박대리님이 갑자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심.
"이거 하나씩 받으세요"
뜬금없이 박대리님이 내민 건 흰 봉투였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들고 차장님과 이대리님은 아무렇지 않게 봉투를 열어보심.
"네, 저 결혼해요"
"먼저 가다니.."
"그래 박대리, 축의금은 마음만 받아"
"이 청첩장 디자인은 누구 의견이냐"
나도 봉투를 열어보니 앞면에는 '웨딩' 이라는 영어문구가 적혀있었고 내용을 보자마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신부 정수정'이었음
"수정언니 결혼한다는 사람이... 박대리님..."
"왜 막내, 놀라워? 자원3팀 정수정 남편 될 사람이 나야"
잠깐 혼란이 왔다가고 기다리던 밥이 나옴. 숟가락질을 하는데 계속 앞머리가 흘러내려서 내 머리가 밥을 먹는 건지 내가 밥을 먹는 건지 헷갈림. 갑자기 머리가 안 흘러 내리길래 뭐지 하고 옆을 보니 차장님이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고 계심. 분명히 박대리님 주선으로 만들어진 자리였지만 오늘도 역시 먼저 식사를 마치신 차장님이 외투를 챙겨 계산을 하러 가심.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기다리고 계시던 차장님 차에 올라탐.
"영화 볼까요"
"뭐 보고 싶어요"
"톰 히들스던 나오는 그.."
"끝난지 오래 아닌가"
나온지 한달은 더 됐다는 차장님 말에 갑자기 급 시무룩해짐.
"그럼 그거 봐요, 왜 요즘 여자들이 다 좋아한다는 그 배우"
차장님이 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음. 친구면 친구, 후배면 후배, 본 사람들은 다 뻑가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그 영화. 내가 저도 그 배우한테 빠지면 어쩌시려고요? 하고 장난스레 물으니 나를 한 번 힐끔 보더니 역으로 차장님이 시무룩해지심. 입을 삐죽거린다던지 흥, 하는 소리를 낸다던지 하지는 않지만 나 삐졌어요 하는 게 눈에 다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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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데 중간중간 무서운 장면이 슥슥 지나감. 영화 시작부터 엔딩까지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영화를 보다가 내가 움찔 움찔 놀라면 한 번 스윽 쳐다보고 팔걸이 위로 자기 손을 슬쩍 내밈. 그럼 그 위로 손을 살짝 올려놓고 영화를 봄. 안 끝날 것 같더니 끝나긴 끝남.
"안 무서웠어요"
"무섭던데"
"하나도 안 무서워 보였는데"
"척하는 거지, 옆에서 그렇게 겁에 질려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 정도로 겁쟁이는 아니라며 잡아떼자 네, 그래요, 알았어요. 하며 강아지 달래듯 고개를 끄덕끄덕 하심. 화장실에 갔다가 나와보니 기다리던 차장님이 없음. 두리번 두리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선 손에 따뜻한 음료가 든 컵을 쥐어줌. 이게 뭐에요? 물으니 대답이 없음. 마셔보니 우유임. 왠 우유냐고 또 물으니 이 저녁에 커피마시고 밤 샐일 있냐고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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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어느샌가 또 잠이듦.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쯤 일어나보니 나는 차장님 패딩에 갇혀있고 차장님은 열심히 운전중이심. 난방까지 더해져 땀이 날 것 같았는데 집에 도착함. 따라 내리시더니 자기 가슴팍을 툭툭침. 어떡하라는 것이지요? 하는 표정을 지으니 그냥 자기가 와서 덥썩 안으심.
"영화가 너무 무서웠나 그냥은 못 가겠다"
한 삼초 그렇게 안고 있다가 먼저 떨어져서 잘자요. 하고 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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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회사에 가보니 자리에 방석이고 핫팩이고 이것저것 많음. 나는 분명 산 기억이 없는데 대리님들이 가져다 두셨을리도 없고 차장님께 메신저를 보냄.
[ 차장님이 가져다 두셨어요? 09 : 05 ]
[ 근무시간에 땡땡이 치면 혼나요 09 : 14 ]
[ 제 자리에 있는 거 09 :16 ]
[ 네. 여기 이사원 좋아하는 사람 나말고 없잖아 09 : 19 ]
뭐라고 답장을 보낼까 머리를 굴리는데 또 메세지가 옴.
[ 손이 너무 차더라 09 : 20 ]
[ 일 열심히 해요 09 : 20 ]
고개를 돌려 손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내니 슬쩍 보곤 피식 웃으심. 그 뒤로도 자주 슬쩍슬쩍 쳐다봤지만 업무시간에는 역시 눈길 한 번 안주고 모니터에만 집중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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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도 잘 부탁드려요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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