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만이 살아남아산 속에 숨어지내는 중에
동생은 지뢰를 밟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마지막 남은 혈육인 할머니마저 싸늘하게 식어있는 걸 봤을때
나는 혀를 깨물 준비를 했다
그 때, 그 아이가 그 투박한 손으로 내 몸을 감싸주지 않았다면
난 이 지긋지긋한 삶을 정말 끝내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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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탈을 썼지만
인간이 아닌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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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면 반응하는 것을 보아 말을 알아듣는 것 같긴 했지만
낼 수 있는 소리는 그르렁,그르렁 거리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옷은 너덜너덜했고 씻은지는 한 달이 넘었는지 퀴퀴한 냄새가 났으며
몸은 단단하다 못해 돌덩이 같았다
일단 집으로 들여와, 사실 집이랄 것도 없는 허름한 오두막이지만,
먼저 이 아이를 마루에 앉히고 나도 그 앞에 앉았다
얘기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어우 냄새
일단 씻기기부터 하기로 했다
대충 남동생이 쓰던 칫솔로 이빨을 닦이고
몸을 씻기려고 했는데
일단 짐승같아 보이긴 했지만 겉모습은 건장한 청년이라서
저절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런 나를 보더니 갑자기 얘가 먼저 자기 옷을 훌러덩 다 벗더니
내 팔을 잡고 그르렁 댔다
나는 자꾸 보이는 아랫도리를 보지않으려 애써 노력하며
빡빡 비눗칠을 해서 온 몸을 씻겨주고 머리도 싹 감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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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디서 왔어?"
"..."
"몇살이야?"
"..."
"너 병신이야?"
"크르르"
참 신기하다
질문에는 하나도 대답못하면서 욕하면 어떻게 저렇게 귀신같이 알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크르르 대는건지
미안하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다시 얼굴을 풀고 배시시 웃는 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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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맞는 밤이 두려웠는데
다행히도 이 아이와 함께 밤을 맞게 되었다.
대충 마루에서 재우고 난 안방에 들어가서 자려고 했는데
자꾸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넌 저기서 자"
그런데 자꾸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싫다는 표현 같았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안방으로 들였다
"대신 나 건드리면 안돼"
평소엔 말 잘 알아듣더니
왜 저런말만 못 알아듣는건지
아니, 못 알아듣는 척 하는건지
병든 강아지처럼 낑낑대더니
슬그머니 나를 자기 품에 안았다
"스읍- 안된대두"
하고 가슴을 찰싹 때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르렁대면서
팔로 날 힘껏 안았다
힘은 어찌나 센지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고
난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우는 걸 눈치챘는지 팔을 살짝 풀고는
또 상처받은 강아지 얼굴을 하고서는
내 손을 잡고 올려서 자기 머리를 콩콩하고 쳤다
그 모습이 귀여워 살짝 웃었더니
내 기분이 풀린 줄 알았는지
이번엔 조금 더 부드럽게 날 안았다
맨날 싸늘한 방에서 혼자 자다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품에 있으니
기분이 야릇했다
그 날은
내가 집을 떠난 이후로
처음으로 아무 걱정 없이 푹 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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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같은 이 아이를 집에 들이긴 했는데
앞으로 가르칠 게 너무 많아 막막했다
일단 가장 먼저 힘조절을 못하는 것과
식탐 조절을 못하는게 제일 걱정되었다
그리고 제일 무서웠던 건
매일마다 살아있는 토끼, 개구리, 뱀, 어떤 날을 노루를 잡아와 내 앞에 던져주는 것이었다
자기딴엔 애정표현 비슷해보였는데
내 눈엔 그렇게 공포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일단 진정하고 잡아온 걸 불에 익혀서 한 조각 줬더니
이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매일 생고기만 먹다가 처음 먹어본 익힌 고기가 상당히 맛있었던 것 같았다
맨날 풀을 뜯어먹고 살던 나도
오랜만에 먹는 고기 맛이 너무 좋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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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 앞에 피어있는 꽃 냄새를 맡으며 살짝 웃으면
잠시뒤에 똑같은 꽃을 자기 품에도 넘칠 정도로 많이 꺾어와서는
나한테 받으라며 들이댔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하루는 그런 그 아이의 입술에 살짝 뽀뽀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으어어어어하고 괴성을 지르더니
꽃을 다 땅바닥에 내팽겨치고는
날 품에 안고 계속 입술에 뽀뽀를 해대는 거였다
그 날부터 그 아이는
매일 내가 칭찬해줄 만할 일을 먼저 해놓고선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선
입술을 쭉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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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해진 그의 품에서
나 혼자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날 살짝 품에서 떼더니
날 지긋이 바라봤다
그러고는 낮처럼 살짝 입을 맞추더니
이번엔 혀를 내 입에 집어넣어 부드럽게 혀를 놀렸다
낭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두막,
차디찬 마루였지만
그 아이의 존재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참 그렇게 입을 맞추더니
내가 숨이 막혀 살짝 가슴을 밀자
내 반응을 눈치채곤 아쉬운듯 으르렁대며
입술을 뗐다
이젠 제법 나에게 맞춰줄 줄 알게된 이 아이가 기특했다
처음 본 날, 날 살려주었던 이 아이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던 내게
하늘은 큰 선물을 주셨다
집을 떠나 피난을 온 이후로 웃어본 적이 없었던 날 웃게 해주고,
항상 내 걱정밖에 하지 않던 이 아이가 고마웠다
한참 그렇게 서로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영원히 지켜줄거지?"
내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이 아이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영원히 지켜줄게'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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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이가 지난 늑미때 늑대컨셉이랑 가장 잘 어울렸던것 같아요 그래서 망상썰이나 한번 가져와봤습니닿....망했지만...뀨...... 아 그리고 암호닉!! 비타민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암호닉처음이라수줍수줍해여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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