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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있는 곳



2.

"오늘 되게 피곤해 보이네.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없어."

크리스는 루한이랑 동갑인 루한의 전속 매니저였다. 물론 예전부터 알던 사이긴 했지만, 루한이 단체 숙소에서 나와 따로 살기 시작한 5년 전부터 루한의 매니저가 되었다. 집은 루한 개인집 근처에 얻어 쉴 때도 자주 만나는 그런 사이였다. 크리스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어린 나이에 매니저가 되었지만 그만큼 총명하고 키도 크고 덩치도 있어 자신과 함께 할 때면 루한은 항상 든든했다. 

그는 루한과 같은 중국 출신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광저우 출신. 어릴 때 캐나다에 이민갔던 크리스는 4개국어가 가능한 유능한 사람이었다. 한국어도 이쯤되면 뛰어났고, 영어, 중국어, 심지어는 광동어도 잘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땐 항상 중국어와 한국어가 오고갔다. 해외에 나가 있을 땐 크리스가 항상 옆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도와 루한은 언제나 크리스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오래 산 루한의 유일한 친구였던 크리스는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허구연날 하소연하는 루한에게 크리스는 단 한번도 짜증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고마울 뿐.

"요즘 백현이랑 애들이랑 연락은 해?"
"응? 아, 그냥 카톡만. 단체 채팅방도 요즘은 좀 조용하네."
"그러게, 다들 바쁘니까."

크리스가 말 꺼낸 김에 애들에게 연락이나 하자 싶어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촬영하는 동안 꺼놨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도 없이 바꿔온 핸드폰이었지만, 어느 핸드폰이던간에 루한의 핸드폰의 배경은 항상 멤버들과 같이 찍었던 사진이 있었다. 이도 벌써 9년 전 첫 콘서트 당일 날 찍었던 사진이었다. 다섯 멤버 모두 다 풋풋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먼 옛날이라 더 이상 돌아갈수 없었다. 루한은 눈시울을 붉혔지만 이내 울면 안된다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안 피곤해?"
"피곤해."
"그럼 좀 자. 벌써 새벽 3시네. 서울 도착하려면 아직 2시간 남았어."
"넌 안 피곤해?"
"난 너 촬영할 때 잤어."

조용히 운전하던 크리스가 뒤돌아보더니 루한을 보며 씨익 웃어주었다. 크리스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힘든 내색도 전혀 하지 않고 항상 모든걸 자신을 위하다시피 해주니 루한도 그렇게 크리스를 챙겨 줄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자진해서 좀 더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한 연예계 생활에 사람들을 경계하는 루한은 먼저 호의를 베푸는게 서툴렀다. 그가 크리스에게 해줄 수 있는거라곤 크리스가 자고 있을 때 담요를 덮어준다던가, 오랜 촬영으로 지루해하고 있을 때 다가가 커피 한 잔을 준다던가, 명절 때 캐나다에 다녀올 수 있도록 티켓을 구해준다던가 그런 간단한 일 밖에 없었다. 그래서 루한은 항상 안타까웠다. 만약 크리스가 나중에 좋은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집이나 그렇게 큰 선물로 보답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크리스는 루한에게 존재감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에.

루한이 속해 있는 아이돌 그룹은 그룹활동을 멈춘지는 벌써 3년이나 되었다. 정규 앨범 5집을 이후로 각자 너무 바빠 그룹 앨범을 낼 수가 없었다. 간간히 모여 언젠가 나올 앨범을 위해 작업하는게 다였다. 멤버들은 모두 다 루한보다 어린 동생들인데, 백현, 종대, 경수는 두 살 어리고, 막내 세훈이는 네 살이나 어렸다. 루한은 이미 벌써 30대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아직 20대. 데뷔할 때는 루한이 유일한 20대고 나머지는 모두 10대였는데, 그 때 느끼는 감정돠 지금 느끼는 감정이 너무나도 달랐다. 루한은 순간 자신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만 동떨어져있는 기분이야.

물론 저 아이들과의 사이가 나쁜건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루한이 방송에 나올 때나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면 연락해서 오늘 방송이 좋았다, 다음 번엔 더 노력해서 이렇게 하면 될거 같다, 표정 연기가 좀 부족했다며 피드백 해주고 모니터링 해주는 좋은 동생들이었다. 그 아이들도 언젠가부터 두 명씩 나눠 생활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번 달 종대 생일에 다 같이 모여 생일 파티도 하고 그랬었다. 그 이후로 본 적은 없었지만.

백현과 종대는 솔로 혹은 듀엣으로 앨범을 내고 콘서트도 했다. 경수는 한국에서 지내면서 싱어송라이터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자작곡 여럿이 담긴 앨범도 냈고, 혼자서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도 생겼다. 막내 세훈이는 소속사에서 연습생들에게 댄스를 가르침과 동시에 라디오 디제이를 하며 여전한 명성을 유지해나갔다. 다섯 사람 중에서 여전히 제일 잘나가고 인기가 많은 건 루한이었지만, 그 중 가수로서의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건 루한 뿐이었다.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정말 나는 배우인걸까 가수인걸까. 내가 되고 싶었던건 무엇이었는가. 

"잠이 안 와."
"Insomnia (불면증)?"
"모르겠어. 그냥 뭔가 갑자기 생각할게 많아졌어."
"무슨 생각."
"몰라, 그것도 몰라."
"뭘 다 몰라."

항상 하던 생각이었지만, 오늘따라 머리가 더 아파왔다. 그룹 활동 할 때도 이렇게 두통이 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경수가 와서 약도 챙겨주고 밥도 해주고 그랬었지만, 지금의 루한은 먼저 말 걸기도 버거웠다. 저 아이들이 먼저 말걸어줄 때 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어느새부터인가 다가가기 어려워졌던 것이었다. 단챗방에서 가끔 웃고 잠깐 말하는거 외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랐다. 서로 사이에 벽이 존재하는 듯 했다. 루한은 우울해져 담요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고, 금세 잠에 들었다.

또 바쁜 일주일이 지났고, 그 사이에 팀 멤버 중 한 명인 백현이 솔로 앨범을 발매 했다. 예전부터 발라드에 집착했던 백현이라 이번에도 발라드를 발매할거라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좋은 곡일 줄은 몰랐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자작곡은 어렵다며 손사래치던 백현이었지만, 이제는 수준급의 노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크리스에게 백현의 싸인이 그려진 앨범을 전해 받으며 루한은 단챗방에서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멤버들 사이로 말 한 마디를 던졌다. 용기를 내서.

루한: 백현아 솔로 앨범 축하해

말하자마자 멤버들이 모두 다 웬일로 루한형이 눈팅이 아니라 먼저 말을 하냐며 기뻐했다. 아이들은 여전했다. 서로를 안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때와 같은 순수함을 가졌고, 자신을 좋아해주고 있었다. 비록 리더는 백현이 맡았지만 네 명의 아이들은 항상 루한을 따랐다. 형이라고 항상 존중해주고 위해줬던 것이었다. 괜히 자신만 못된 마음 먹은거 같아 루한은 갑자기 또 서러워졌다.

루한: ㅋㅋㅋ앞으론 말 많이할게
큥: 형은 참 보기 어려워… 숙소에 좀 놀러와
도경수: 형 요즘 영화 준비하지 않나 바쁘잖아
종대: 맞닼ㅋㅋㅋ 형 언제 촬영시작해 나중에 보러감
도경수: 너가 가면 형 귀찮아 해 멍청아
종대: 웃기지마 너 내 과자먹지마
세훈: 다 시끄러워여 ㅡㅡ 지금 다 같이 있으면서 채팅으로 말함 ㅡㅡ
루한: ㅋㅋㅋㅋ 재밌어?ㅋㅋ

루한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즐거워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썬 이게 최선이니까. 그러면서 루한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신들의 데뷔곡을 틀었다. 벌써 10년 전의 곡이다.

저번주에 했던 촬영에 이어서 오늘도 또 똑같은 프로그램의 촬영이 있었다. 메이크업도 다 하고, 의상도 제대로 입었지만 루한은 텅 빈 대기실에 혼자 앉아있었다. 방금전까지 같이 있었던 크리스는 주변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오겠다며 사라졌다. 촬영이 시작되려면 아직 한시간이나 남아 루한은 곧 있으며 있을 영화 촬영을 위한 대본 리딩이나 하고 있었다. 저번 영화는 첩보원 역할을 맡아 좀 긴장감 있는 분위기였다면, 이번 영화는 데뷔작과 비슷한 서정적인 작품이었다. 그 때는 풋풋한 고등학생이었다면, 이번엔 이십대 중반의 남성 역할이었다. 30대임에도 불구하고 동안인 루한에게 적합한 역할이었다.

대기실은 너무나도 큰데 루한은 그 큰 대기실을 혼자 사용했다. 조금은 외로웠다. 예전엔 작은 대기실에서 멤버들과 함께 쓰고 다른 그룹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었는데. 메이크업과 의상 담당팀은 오늘 같이 출연하는 같은 소속사 여자아이돌들 때문에 다들 그 쪽에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우울했던 루한은 혼잣말을 했다. 누구라도 다가와줘서 말 걸어줬음 좋겠다고.

"저기요, 아무도 안계시나요……."

누군가가 말을 하길래 고개들어서 문 쪽을 보니까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보니까 저번주에 봤던 그 막내 작가였다. 오늘은 귀여운 스냅백을 뒤로 돌려 쓰고 있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아, 루한씨. 잠깐 들어가도 되나요? 갑작스레 찾아온 막내 작가에 놀라서 루한은 벌떡 일어났다. 지금 한창 바쁠 때일텐데 자신을 찾아온 막내 작가가 의아했던 루한은 그에게 다가섰다.

"저번주에 싸인해주신거 감사하다고 전해드리러 왔어요."
"아, 그런건 당연히……."
"여동생이 정말 좋아했어요. 여태까지 팬싸인회는 신청하는 거마다 다 떨어져서 속상하던 앤데……."
"그러셨구나. 다음 번에도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막내 작가는 고맙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더 숙이더니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다고 나가버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대화가 오고갔던 대기실이었는데. 다시 혼자가 된 루한은 그 사람이 조금만이라도 더 같이 있어줬으면 했다. 별 얘기 안해도 좋으니까.

방송은 시작 되었고 또 뜨거운 조명이 얼굴을 달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조명 같은거 신경도 안썼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조명에도 얼굴이 빨개졌다. 10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은 세트장 안은 너무 더웠다. 이러다가 쓰러지면 어떡하지라 생각하며 루한은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루한을 향해 살짝 웃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셔츠가 너무 더워 신경쓰였다. 정신이 살짝 오락가락했지만 루한은 그래도 제대로 해야겠단 생각에 엠씨를 쳐다보았다. 저 분은 정말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열심히 하시는데 내가 이러면 안되지. 마음을 다잡고 관객석에 앉아서 자신만 바라보는 팬들에게 웃으면서 손짓 했다.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촬영이 또 다시 잠시 멈추고 루한은 또 멍하니 앉아있었다. 갑자기 막내 작가가 다가와 음료수를 건네었다. 루한이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마셨던 음료수였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알고 준건 아니였겠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사이라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꼈다.

"김민석씨?"
"아, 네?"
"고마워요."
"아…… 그냥 제가 마시려던거 보이시길래 드리는거……."

한 눈에 봐도 긴장하고 당황한 모습인데 아닌척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이 신인 때 모습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직업에 종사하고 있든 신입들은 다 비슷했다. 방송 작가 언제부터 일하신거에요? 아, 저번 달요. 나이는? 올해 서른살이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릴 줄 알았는데 동갑이란 사실에 루한은 살짝 놀랐다.

"아, 저희 동갑이에요. 안그렇게 보이겠지만……."
"동안이란 소리 많이 들으시겠네요."
"그게 좋진 않은거 같아요. 계속 무시당하니까."
"그래도 나이 조금만 더 먹으면 동안인게 더 좋아요."

칭찬 들으니까 혼자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건 벌써 몇 번이나 본 습관이었다. 부끄러울 때마다 그러는 거 같았다. 안그래도 하얀 피부가 부끄러우니 더 분홍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뭐하러 이 사람을 관찰하고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루한은 상당히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쪽에서 민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민석은 가보겠다며 조심스레 말했고, 루한은 웃으며 민석에게 대답했다.

"다음 부터는 말 놓으셔도 돼요."

민석도 환하게 웃어주면서 인사를 했다. 자신을 보면서 진정한 미소를 보여주는 민석 덕분에 루한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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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 넘 좋아요ㅠㅠㅠ 루민빨리 행쇼해라ㅠㅠㅠㅠㅠ 루한이 많이 외로워하는거같아서 좀 슬퍼요ㅜㅜ 그래도 민석이가 많이 도와주겠죠??ㅜㅜ 작가님 아싸랑해요 제 사랑 받으세요ㅠㅠ
10년 전
독자2
루민 언넝 행쇼해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3
아ㅜㅜㅜㅜ정말 루한이 너무 안타까워요ㅜㅜㅜㅜ얼른 누군가가 루한 마음 좀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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