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 주말에 아침부터 일어나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거 입으면 괜찮으려나?
몇 시지? 헥, 벌써 12시야? 늦겠네.
-
"야 성이름! 왜 이렇게 늦어?"
"문자 보냈잖아, 바보야."
"뭔 소리ㅇ, 아 보냈구나. 못 봤어 미안."
"됐어, 영화나 보러 가. 네가 예매했지?"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아니 뭐, 네가 지금까지 워낙 제대로 한 게 없어서 말이야,"
"지는."
"너보단 내가 낫지."
"오늘도 늦었으면서 낫기는 무슨."
"야,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뭐, 준비하다 늦었냐?"
"내가 널 만나러 오는데 뭐하러 내 생김새에 신경을 쓰냐?"
"왜? 준비하다 늦은 거면 오늘은 예쁘니까 용서해 주려고 했지."
"하하 뭐래, 내가 뭐 하루 이틀 예뻐서 그러십니까 김민규씨?"
"하긴, 성이름씨가 예쁜 게 하루 이틀은 아니죠."
하긴은 무슨 하긴이야. 얘가 오늘 미쳤나, 왜 이래.
"뭐라는 거야... 우리 안 늦었어? 몇 시 영화야?"
"예매 해 놨으니까 표만 뽑으면 돼서 여유있다니까? 12시 45분 영화."
"지금 12시 40분인데...?"
"뭐? 미친, 준비하는 데에 시간을 몇 시간이나 쳐 부은 거야 도대체!"
"아니 아까는 용서해 준다면서 갑자기 뭐래!"
"아 그래 오늘 존나 예쁘니까 용서는 하겠는데, 영화 못 보게 생겼잖아!"
"못 보기는 무슨. 뭐 이게 연극이나 콘서트나 그런 거면 몰라도 영화는 중간에도 들어갈 수 있거든요?"
"확실해?"
"..."
"바보."
-
"봐봐, 영화는 시작한 다음에도 들어갈 수 있다니까?"
"조용히 해."
뭐야, 왜 말을 저렇게 잘라, 기분 나쁘게. 영화관 안에서 조용히 하는 게 예절인 건 아는데 막 그렇게 크게 말한 것도 아니고.
-
김민규랑 나는 알고 지낸 지 9년 가까이 돼 간다.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지낸 사이이고, 애초에 알게 된 이유가 부모님끼리 친하시기 때문인 만큼 만날 기회가 자주 있어서 같이 있는데 어쩌면 익숙하다. 내가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다면 같이 보러 가고, 심심할 때 전화나 톡하고, 평소에 그냥 어쩌다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이 김민규다. 조금 본능적인 행동이랄까.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본능적으로 찾아가게 되는 그런 존재였는데 최근 들어(11개월이 최근이라고 말하기는 긴 세월이긴 하지만) 김민규를 아무 이유 없이 찾게 되는 건 아니라고 느꼈다. 인정하기 정말 싫지만 내가 얘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9년동안 알고 지냈으니 이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정이 들었을 뿐이라고 세뇌시키기도 했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거다. 아니, 걔가 내 앞에서 웃으면 신경 쓰이는데, 이게 정이 들어서라고? 말도 안 돼.
나보다 얘를 잘 아는 사람은 김민규 부모님 밖에 없을 거다. 김민규도 나보다 자신을 모를 거다. 자신은 모르지만 속이 아닌 겉을 보게 되는 입장으로서 알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예를 들면 습관이라든지, 말투라든지, 잘생겼다든지... 가 아니고.
-
영화가 끝났는데 아직도 아까 김민규가 나의 말을 잘랐던 것이 거슬린다.
"생각보다는 재미 없네."
"얼마나 기대했길래."
"아니, 나는 최소한 성이름 잠꼬대 하는 거 지켜보는 것보단 재미있을 줄 알았지-."
"죽고 싶냐?"
다행히 아까 내 말을 자른 것은 별 의미가 없었나보다. 내가 너무 크게 말했었나?
"야, 나 배고파."
"나도 배고프다. 뭐 먹으러 갈래?"
"아, 또 이 김민규님께서 맛있는 걸 쏘시려고 일부러 팝콘을 안 사셨잖습니까?"
"시간 없어서 못 산 거잖아. 영화관 오는 이유의 반이 팝콘인데..."
"그럼 뭐, 팝콘 먹을래? 사줘?"
"뭐래. 영화 볼 때 먹어야 맛있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여자들은 자신이 '아무거나'라고 말했을 때 남자가 설마 '아무거나라고 했으니 마음 놓고 골라야지!'한다고 생각하냐? 아무거나가 제일 힘든 거 알아?"
"알지. 나도 힘들어."
"그런데 왜..."
"김민규가 날 얼마나 잘 아는지 보려고-"
"나 너 몰라. 누구세요?"
"... 떡볶이 먹으러 가자."
"떡볶이? 야, 이 오빠가 보기보다 돈이 좀 많거든? 내가 오늘 쏘겠다는데 떡볶이를 고르냐."
"오빠는 무슨. 떡볶이 먹고 빙수 먹으러 가자."
"아 빙수 요즘 존ㄴ, 아니 엄청 비싼데."
"그러니까 사달라고요 김민규 오빠님,"
"알았어."
"웬일로 순하게 내 말을 듣냐, 김민규가?"
"오빠라고 해줬으니까."
"오빠라고 불리는 게 좋아? 오구, 김민규 오빠님이세요?"
"아, 꺼져. 떡볶이나 먹으러 가 빨리."
"예..."
아 떨려 미치겠네.
-
떡볶이도 먹고, 빙수도 먹고 밖으로 나와서 30분 가까이 쓸 데 없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간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야,
"성이름 안 들어가도 되냐?"
"이제 6시 되어가는데 무슨."
"예전에는 막 6시 되면 집 빨리 들어가야 된다고 나 버리고 도망가고 그랬으면서."
"지금은 다르지, 아직 하고 싶은 얘기도 다 못 했는데."
"아, 너 할 말 있다며. 아까 까먹었다면서 아직도 기억 안 나냐?"
"아니. 기억났는데 말 안 해도 되는 딱히 안 중요한 말이었어."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한 말은 중요한 말이야 ㅋㅋ?"
"그렇긴 하네."
아, 어떡해.
"기억 안 나서 그렇지? 기억 날 때까지 이 오빠가 기다려주마."
"오빠는 무슨."
"난 할 일이 많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1년이라도 내줄 수 있어."
"말이라도 고맙다, 야."
"나 사실 아까부터 할 말 기억났었는데 끼어들 타이밍 고밍하고 있었어. 네가 말이 그냥 많은 수준이어야지."
"지금이 끼어들 타이밍이야! 빨리 말해!"
"진짜로 말해?"
"중요한 거 아니라면서 뭘 그리 뜸 들여."
"나 너 좋아해! 하하 별로 중요하지 않지? 그래 맞아 그런 것 같아 딱히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야. 우리가 오늘 한 말들 중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인 것 같지 않니? 이런 말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보내라고 있는 말이지! 그러니까 방금 내가 이런 중요하지 않은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있고 우리 다시 하던 얘기 이어하는 건 어때?"
"그래, 정말 딱히 중요한 얘기 아니네."
"응...?"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나도 너 좋아하고 너도 나 좋아하는 거 다 알던데? 우리만 모르던 거 같아."
"뭐라고...?"
"나도 너 좋아한다고 ㅋㅋㅋ."
"아...?"
"바보. 아 몰라 나 지금 안 그래 보여도 부끄러워 미칠 거 같으니까 집 간다? 성이름 너 집 도착해서 꼭 연락해라 나 지금은 네 얼굴 보고 말 못할 거 같아. 진짜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서... 잘 가!"
-
-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밍빙구라고 합니다 히히 필명 참 귀엽죠(뭐래
쓸 데 없이 망상이 막 밀려와서 제 머릿속에 쌓여 있던 민규들을 10분 만에 모두 털어 놓아 버린 글이라서 퀄이 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네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이 계신다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앞으로도 이렇게 짧게 짧게 저의 망상들을 털어내러 올 거에요
글잡에 글을 써 봤는데 쓸 때마다 끝마치지를 못해서 제 성격이 끈기가 정말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주기적으로 올 거라는 기대는 말아 주세요... 하하
어쨌든! 이 글을 포인트를 내고 읽으셨다면! 돌려받으셔야죠?! 저는 댓글을 먹고 서식합니다! 죽지 않도록 댓글을 마구 남겨주세요!
그럼 이만 밍빙구였습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