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힘들지도 않은지 의사에게, 간호사에게,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번이고 허리를 숙여 꾸벅꾸벅 인사한 너징이 신이 난 걸음으로 병원을 나와. 끼익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나온 너징이 내리쬐는 햇살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다가, 밝게 보이는 세상에 잠시 움직임을 멈춰. 조금 전만 해도 그저 평범하기만 하던 풍경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눈이 부신지 몰라. 옷자락을 펄럭이는 바람도 신이나고 따갑다고 느껴졌던 여름햇살도 따사로워. 전에는 안들리던 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 소리도 귓가를 간지럽히는 것 같아. 후읍- 상쾌한 공기에 숨을 크게 들이신 너징이 이마를 간지럽히는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내뱉어. 그리고 쿵쾅쿵쾅 세차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노력해.
- 와아, 날씨 참 좋다!
근데 이게 진정된다고 진정되는 일이야? 결국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실패한 너징이 뭐 어때. 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걸음을 내딛어.
지난 번 조카 별이와 달이를 보살폈던 이후로 레이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그 전에는 귀여워요. 하고 한번 웃으며 지나쳤던 아이들을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면 그 아이가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어. 같이 TV를 보아도 아이들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백화점에서 아기옷을 보게 되면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야. 이 아가옷 귀엽지 않아요? 너무 작아요..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는거야. 덕분에 너징은 "아기옷 구경하러 오셨어요?" 하고 나와 옷을 소개해주려는 매점직원에 당황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어. 한번 쯤 너징이 레이, 아기 가지고 싶어요? 하고 물어보면 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나는 자기만 있어도 되요. 하고 웃으며 말했지만 너징은 레이가 아기를 갖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챘어. 괜찮다는 말은 아마도 아직 젋고 일하고 싶어하는 너징을 배려해서 한 말이겠지.
그런 레이를 떠올린 너징은 절로 함박웃음이 나오는 걸 느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본다면 이상하게 느낄법도 하겠지만, 지금 너징은 표정관리가 중요한게 아냐. 처음에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아기에 매우 당황했지만, 당황도 잠시 너징은 몸안에 자리잡은 새 생명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게 되었어. 나와, 레이의 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날만큼 행복한데, 레이가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환하게 웃어줄까? 아니면 너징을 꼬옥 껴안아줄까?
행복한 상상에 발걸음이 가벼워진 너징이 폴짝폴짝 뛰려던 발걸음을 위험하진 않지만 혹시라도 모르니 조심하시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생각나 뱃속에 아기를 위해 조심해야지, 암. 하고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걸음을 내딛어. 그래도 내딛는 걸음이 나비처럼 가벼워지고 그 안에 휘파람이 더해지는 건 참을 수 없는 것 같아. 그치?
지금 당장 전화를 할까? 아냐아냐. 레이는 지금 일하는 중인걸. 그러면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있을 때 불쑥 사진을 건낼까? ' 레이, 우리의 아기에요.' 하고. 아냐아냐. 그 때까지 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하고 행복한 상상을 하던 너징의 눈에 무언가가 잡혀.
- 어?
시선을 빼앗긴 그것에 걸음을 멈췄던 너징이 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 조심스럽게 유리창에 손을 대고 한참을 바라보던 너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레이를 놀래킬 방법을 찾은 것 같아.
- 나 왔어요 자기야
- 레이 왔어요?
곡 작업을 마치고 저녁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온 레이는 현관문 앞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너징에 놀라. 자신이 오길 기다린 건지 평상시보다 더 반갑게 저를 맞이하는 너징의 표정이 환한 걸 본 레이는 오늘은 너징에게 무언가 좋은일이 있었나보다 하고 생각해. 원래부터 너징은 생각이나 기분이 얼굴에 확 들어나는 타입이거든. 레이- 하고 저를 부르며 두팔을 뻗은 너징을 다정스레 품에 안은 레이가 너징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줘.
- 오늘 하루 잘보냈어요 자기야?
- 네. 레이는 오늘 하루 잘보냈어요?
대답하며 저를 올려다 보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해. 그 얼굴이 사랑스러워 쪽 하고 가볍게 뽀뽀한 레이가 웃으며 대답해. 네. 자기 생각하면서 하루 보냈어요.
- 배 많이 고프죠? 얼른 와서 앉아요 레이.
레이의 품에 안겨 레이의 가슴에 뺨을 부비던 너징이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내뱉더니 레이를 부엌쪽으로 살짝 끌어당겨. 저를 끌어당기는 너징의 손길에 미소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 레이의 눈앞에 테이블 한가득 차려진 밥상이 보여. 신혼이라서 매 식사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던 너징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말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차린적은 없어서 레이는 당황해.
- 이거 다 자기가 한거에요?
- 네!
놀란 목소리로 묻는 레이에 너징이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해. 이건 갈비찜이구요, 이건 계란말이. 이건 자기가 좋아하는 샐러드, 이건 레이가 목마를까봐 준비한 주스에요.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음식들을 소개하는 너징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레이가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자기야 이렇게 무리하면 어떡해요.
- 하나도 무리 안했어요. 레이. 정말이에요.
- 그래도 난 자기가 차려주는 건 밥하고 김치뿐이라도 좋아요. 무리하지 말아요.
레이의 걱정에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로 젓던 너징도 결국 레이의 마지막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알았어요. 레이 앞으로는 욕심 안 낼게요. 근데, 정말로 내가 차려주면 김치뿐이라도 좋아요? 네. 좋아요. 마지막까지 단호하게 대답하는 레이에 너징의 얼굴이 싱글벙글해져. 그래도 레이, 이미 차린거니까 맛있게 먹어줄거죠? 그렇죠? 작은 두손으로 제 손을 잡고 말간 눈을 깜빡이며 묻는 너징에 엄한 표정을 지었던 레이도 어쩌지 못하고 결국 웃어보여.
- 꼭꼭, 많-이 먹어요 레이. 이거 다- 먹어야 해요.
활짝 웃으며 제 밥그릇 위에 갈비를 한점 얹어주고 웃는 너징을 보며 레이도 활짝 웃어. 네. 맛있게 먹을게요 자기야.
- 레이. 있잖아요
- 응?
- 보여줄거 있어요...
밥을 다 먹고 거실로 자리를 옮겨 레이의 품에서 한참을 꼼지락 거리던 너징이 레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 머뭇거리며 말을 중간중간 멈추던 너징이 뭔데요?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는 레이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헤헤 하고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몸을 일으켜. 잠시만 기다려요 레이. 가져올게요. 레이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 너징이 신이나선 안방으로 들어가. 그리고는 레이 몰래 숨겨두었던 상자를 침대 밑에서 꺼내. 읏-차. 너징의 어깨너비보다 조금 더 큰 분홍색 상자는 하얀 리본으로 포장되어 있었어. 상자를 보고 또 한번 샐쭉하니 웃어보인 너징이 이내 거실에서 궁금해 하고 있을 레이를 떠올리곤 총총총 안방을 나와.
- 그게 뭐에요 자기야?
- 이거요? 음...
레이에게 온 선물이요. 밝게 대답한 너징이 상자를 조심스레 테이블위에 놓곤 레이의 옆에 앉아. 선물이요? 궁금증이 더한 레이가 혹시 제 생일인가 하고 생각해. 하지만 이내 더운 여름날씨를 생각하곤 생각을 접어. 아무리 생각해도 제게 선물이 올 까닭이 없는데.
.- 열어봐요 레이! 으응, 알았어요. 고민하던 레이는 이상하게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재촉하는 너징의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럽게 리본을 풀어. 스륵 작은 소리를 내면서 리본이 풀리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연 레이의 눈에 노란 운동화 두켤레가 보여. 아, 너징이 레이에게 선물하는 커플신발이구나 하고 밝게 웃으려던 레이가 두 신발 사이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것에 웃음을 멈춰. 저건...- 아빠가 된 걸 축하해요 레이!
너징이 활짝 웃으며 소리치곤 짝짝짝 박수를 쳐. 그러는 동안에도 레이의 멍한 표정은 풀어지지 않아. 레이의 눈동자는 작고 노란 아기신발과 그 위에 올려진 초음파 사진에 멈춰있어. 한참을 멍하니 굳어 움직이지 않던 레이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초음파 사진을 집어 들어. 까만 배경에 콕 찍힌 점. 그리고 그 밑에 써인 「 만나서 반가워요 아빠! 」라는 글자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던 레이가 이내 고개를 돌려 너징에게 물어.
- 이거.. 우리 아기예요?
애써 숨기려 했지만 감춰지지 않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너징은 저도 또 한번 벅차오르는 마음을 느껴. 괜스레 나오는 울음을 고개를 잠시 숙이고 꾹꾹 삼킨 너징이 레이를 향해 활짝 웃어보이며 말해.
- 응, 우리 아기예요 레이.
우리 아기.. 너징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레이가 이내 붉어진 눈가를 숨기려 고개를 돌려. 아.. 나는-.. 울음섞인 탄성을 내뱉은 레이가 팔을 뻗어 급하게 너징을 꼭 껴안아. 숨막힐 듯 그렇게 있는 힘껏 껴안은 레이에 너징은 답답할 만도 한데 팔을 뻗어 떨리는 어깨를 토닥여줘. 하려던 말을 다 잇지 못한 레이가 저를 토닥이는 손길에 품안에 너징을 더 껴안아. 당신이, 당신안에.. 우리 아이가..
- 나는.. 자기야... 나는요...
- 응, 알아요 레이.
자기야.. 나는,..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한 마디 말만 되풀이 하는 레이를 따뜻하게 품안에 안은 너징의 눈가도 붉어. 이렇게 울어 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감동해 줄 줄은 몰랐는데..너징은 이제서야 레이가 얼마나 아이를 기다렸는지 깨달았어. 너징과 온전히 한 가족이 되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말이야. 왜 우냐고 웃으며 장난을 걸어야 한다고 너징은 생각했지만 어떡해. 너징도 울음이 나는 걸.
- 나, 나 좋은 아빠가 될게요.. 꼭 좋은, 아빠가...
- 그래요 레이.
우리 좋은 엄마 아빠가 되도록 노력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너징도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로 뺨을 적시고 말아. 한참을 서로를 끌어안고 울던 너징과 레이는 이내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이렇게 울면 안돼는데.. 아직도 붉은 레이의 눈가를 손으로 조심스레 닦아준 너징이 활짝 웃어보여. 레이. 네 자기야. 저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에 레이는 다시한번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꾹 참아. 사랑해요. 눈꼬리를 휘고 환하게 웃으며 너징을 본 레이는 그 순간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느껴. 저릿해지는 가슴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내 사랑, 내 삶의 이유인, 나의 전부. 신이 내린 선물.
- 나도 사랑해요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눈물을 멈춘 레이가 환히 웃으며 너징에게 말해. 그리고 레이의 뜨거운 입술이 너징의 부드러운 입술에 닿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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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ㅠㅠㅠㅠ 레이야아 ㅠㅠㅠㅠㅠㅠㅠㅠ본격 제가 써놓고 제가 우는 글 ㅠㅠㅠㅠㅠㅠㅠ
환하게 웃어줄것 같았던 레이가 처음으로 우는 모습을 본 너징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벅차오르는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으나..fail ㅠㅠ
부디 제가 전해드리고자 했던 그 감정이 여러분에게 잘 전달되었길 바라요ㅠㅠ
+암호닉 신청해주신 소희님, 솜이님, 여랴님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댓글 달아주신 많은 독자분들까지, 모두 사랑해요♡
앞으로는 모든 분들께 답글 달아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여러분이 꿈꾸는 결혼이 이루어질때까지 키스풀의 결혼장려글은 계속 됩니다 ㅋㅋ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