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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할거야.

 

K의 말에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H가 마시던 걸 내려놓고 콜록거렸다. 그러나 K는 별다를 것 없다는 얼굴로 조용히 소파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여태껏 묵묵히 다른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니. 그것도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모두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거나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한 구석을 응시하기만 했다. 어차피, 이런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기에 그렇게 놀란 눈치들은 아니다. 다만 ‘진짜’ 일어날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녀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탁자 위로 놓여진 M의 쿠키가 식어가는 동안 그 어떠한 말들도 쉽게 꺼내지지 않았다. M은 울상으로 탁자보를 만지작거리며 애써 구웠던 쿠키와 잔들에 담긴 음료가 식어가는 걸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미 많은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그 얇은 손가락을 옭아매고 있었다.

 

“……이유는?”

 

힘겹게 누군가가 입을 떼었다. 그녀들 중 유일하게 전업주부인 T였다. 나름 이름 있는 한의사 남편을 둔 T. K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똑바로 허리를 곧추세우며 앉으며 이유? 하고 되물었다. 어쩐지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T가 이해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어서일까.

 

여섯 명 중 기혼자는 딱 두 명. K와 T. 둘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각 두 달의 차이를 두고 시집을 갔다. 그래서 둘은 결혼을 한 후에도 자주 만났다. 서로를 잘 이해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혼 이라는 것은 두 사람을 상당히 잘 이어줬다. 남편 흉, 아이들에 대한 부담감, 막힘없이 오르는 물가 덕분에 늘어나는 생활비, 사도사도 늘 부족한 것들. 미혼인 친구들은 이해 못할 것들을 둘은 서로에게 털어놓고는 했다. 그래서였는지 이 사단이 나기 전에도 K는 T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었다. 그러나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고야 말았고 지난주에서야 겨우 화해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쏙 들어간 줄 알았던 K의 이혼포고는 다시 슬금슬금 그녀들이 모여 앉은 탁자위로 기어올랐다. 그리고는 홍차와 커피가 담긴 잔에 들러붙어 진득한 몸짓으로 미약하게나마 온기가 남은 표면을 뒤덮는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와 활기찬 기운은 없어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그나마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거기서 비롯된 따뜻한 온기가 허공을 떠다니던 거실에는 이제 정적만이 감돌았다. G는 휴대폰을 꺼내 조심스레 시간을 확인했다.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더 남았다. 이미 약속 때문에 다섯 시에 가야해, 라고 말해둔 터라 빠져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나간다면 이 상황을 혼자 회피하려는 거야? 라는 질타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말할 수도 없었다. 벌써부터 친구들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향하는 것 같아 갈증이 났다. G는 조용히 내려놨던 잔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제 서야 조금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순간의 착각일지라도 G에게는 그 한 순간이라는 게 지금 필요했다.

 

그리고 G와는 달리 H는 홍차가 담긴 잔을 한 구석으로 밀어 넣고는 물었다.

 

“이혼이 그렇게 쉽냐?”

 

다소 까칠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녀의 평소 말투가 원래 그러했기에 모두들 개의치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까칠한 물음을 받은 K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직 이혼의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이유를 말하면 모두가 이해해줄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었지만 그녀는 결국 이유? 하고 되물었을 뿐 그동안은 조용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꿰뚫듯 날아온 H의 말에 K는 어째서인지 기다렸다는 듯, 턱을 치켜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쉽냐고? 당연히 쉽지는 않지. 그래도 난 할 거야. 내가 대학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그 사람이랑 산 세월이 몇 년인 줄 아니? 자그마치 7년이야. 그동안 애들도 둘이나 낳고 능력 있는 내 남편 덕분에 작지만 그래도 내 집이라는 것도 가지게 됐지. 애들? 큰 애는 손 많이 가는 5살이고 작은 애는 아직 걷는 것도 잘 못해. 물론 애들한테는 엄마가 필요해. 그런데 애는 나 혼자 키우니? 그 사람, 요즘 일 바쁘다고 회사에서 밥 먹고 자고 씻고. 큰 애가 나보고 아빠 어디 갔냐고 물을 때마다 회사에 있다고 말하기도 지쳤어. 내가 연락하면 받지도 않고. 일이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 연락 한 번을 안 해? 적어도 애들 잘 있냐는 문자 한 통 보낼 수 있는 거 아냐?”

 

쉴 새 없이 날아오는 K의 말에 H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에게는 이미 K의 말이 이유를 가장한 투정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H는 독신주의자고 웬만해서는 남 일에 참견하기를 싫어하지만 얼마 전 그녀의 언니가 이십 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왔기에 K를 말리고 싶었다. 양육권 다툼, 재산 분할, 위자료, 집의 소유권 주장 등 언니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쁨에 찬 얼굴로 결혼식장에 발을 내밀 때는 몰랐었던 온갖 추잡하고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과정들을 그녀는 간접적으로나마 언니의 옆에서 끝까지 지켜봐야 했다. 그녀 또한 옆에서 언니를 돕고 그 덕분에 언니 쪽으로 유리한 것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로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언니에게 화를 내며 언니는 사람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면서 왜 결혼을 한 거냐고 물었다. 언니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H는 더 이상 독촉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는 벽에 던져버렸다. 덕분에 산지 두 달이 다 되어가던 휴대폰은 박살이 났다. H는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리던 휴대폰 대신 홍차 잔을 매만지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 잘 생각해. 너네도 알다시피 우리 언니, 얼마 전에 이혼했어. 나는 옆에서 그걸 다 봤어야 했고. 난 솔직히 말해서 더 이상 누군가가 이혼하는 걸 원치 않아. 생판 남이 이혼하겠다고 하면 아, 그래? 하겠지만 너희가 남이니? 이혼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기나 해? 이런저런 핑계 다대면서 이혼할거였으면 왜 결혼했어? 그런 거 다 감수하면서 사는 거라며? 너랑 T가 처음 결혼할 때 그 말 하고 다녔잖아?”

 

그런데 지금 와서 그걸 다 감수 못하겠으니까 이혼하겠다고? 나이 그만큼 먹었으면 적당히 해라 진짜. H가 신랄하게 내뱉는 말에 K가 움츠러드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그녀는 다시 소파 속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서 어린아이가 투정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너야 말로 결혼 안 했다고 말 너무 막하는 거 아냐? 네가 결혼이 얼마나 힘든 건줄 알기나 해? 서로 감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맞기는 하지. 그런데 이건 너무하잖아. 난 그냥 애 키우고 집안일 해주는 사람이니? 돈만 벌어오면 다야?”

 

K가 반격하듯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H는 갈수록 태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삼 K가 이렇게 생각이 어렸나, 싶기도 했고 그런 K가 어떻게 결혼해서 7년이나 살았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진즉에 이혼하겠다고 두 손 들고 외치지나 않은 게 다행인 것도 같았다. H는 뻐근해진 어깨를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뭐라 하기도 힘들었다. 뭔 말이 먹혀야 말리던가 하지…….

 

그리고 T가 다시 둘 사이를 중재하듯 말을 꺼냈다. 여태껏 K가 늘어놓는 이혼의 이유와 H의 반대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둘 다 좀 진정해. 옆집까지 다 들리겠어. 여기 우리 집이거든? 이제 나이도 좀 먹었는데 적당히 하자.”

 

T의 말 덕분에 K도 씩씩 거리던 걸 멈추고 식은 커피를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H는 또 그 모습을 진절머리 난다는 듯 쳐다보았다. H의 옆에 앉아 있던 G가 그녀의 허리를 쿡 찔렀다. 어느 정도 하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K, 너 부모님한테는 말씀드렸니?”

 

빈 커피 잔을 내려놓던 K가 움찔한다. 약간의 두려움이 그늘 친 얼굴이 고개를 젓는다. G가 놀란 얼굴로 말한다. 너, 그럼 남편한테는? 통보했어?

 

“아니……. 아직은 안 했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와 대책 없는 말에 M이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누구에게 짜증하나 잘 내지 않는 그녀인데도 미간이 좁혀드는 것이 보이자 H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말할 거야?”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점점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H는 더 이상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이혼하겠다는 소리를 안 하지. 그리고는 소파에 기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쩌자고, 우리는 이런 상황까지 왔나. 원래는 이러려고 만난 게 아니었는데. 슬그머니 K에 대한 원망이 치솟았다.

 

“여기가 네 포부 밝히자고 모인 자리니?”

 

G도 짜증이 났는지 아까와는 달리 가시가 돋친 말로 말했다. 그녀도 이 상황이 심히 답답하고 짜증이 났을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자리고, 무엇보다도 G는 꽤나 멀리 살기 때문에 더욱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어렵게 만든 자리로 이렇게 만났는데 그것이 망쳐질 위기에 처하자 그녀 나름의 분노와 원망이 친구라는 안전망을 뛰어넘어 이제는 중재라는 칼집으로 감싼 칼날을 들고 K를 향해 겨눈다. 나름 이성적인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고, M은 생각했다.

 

그리고 G의 말에 다시 발끈한 K가 말했다. 아니야, 할 거라고. 꼭 할 거라고. 그런데 왜 말 안했어? 남편한테 말도 안했으면서 이혼하겠다고? 너 우리랑 이혼하니? 우리가 네 남편이야? H만큼이나 신랄한 말들을 내뱉으며 G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쉿, 옆집에서 듣겠어. G의 옆에 있던 T가 과열되는 상황을 진정시키려 부엌으로 향했다. 쟁반에 얼음물이 담긴 잔을 올리고 가지고 오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주부였다. K에게서는 볼 수 없던 모습. 두 달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멀게만 느껴진다.

 

마셔. 그리고 진정해.

 

T가 쟁반에서 컵을 내려놓자 G는 숨을 들이킬 새도 없이 얼음물을 입안에 머금었다. 그리고는 화가 단단히 난듯 얼음을 아그작, 씹었다. 반면에 K도 나름 화난건지 T가 가져온 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갈수록 난잡해지고 과열되는 상황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만이 그녀들을 감싸 안았다.

 

그 와 중에 시간은 어처구니없게도 참, 늦게만 가네, 라고 G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새 그녀들이 모인 거실에는 초침이 똑딱거리는 소리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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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에요! 드디어 시험도 끝, 추석도 끝!!!!저는 추석에 전이랑 튀김만 하다가 기름이랑 같이 녹아버린것 같네요ㅠㅠㅠㅠㅠ흑흑 그다지 즐겁지는 않은 추석이기도 했

구요ㅠㅠㅠ

 

글에 관해 설명을 이제 덧붙이자면, 저희 엄마께서 사ㅇ과 전ㅇ ㅇ라는 프로를 즐겨보시는데 옆에서 따라 보다가ㅋㅋㅋㅋㅋ어휴, 저 사람들은 이혼을 무슨 밥 먹듯이 하니

라는 생각에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 글이 점점 산으로 가고, 내용이 첨가되고, 머리가딸리고.......그래서 결국 나눠서 올리게 되었습니다ㅠㅠㅠㅠㅠ 그

대에게 보내는 말들 과는 달리 작가인 저도 어떻게 내용이 나눠질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엉엉 아직 다 쓴것도 아니라서ㅠㅠ다썼으면 한꺼번에 올렸겠지마뉴ㅠㅠㅠㅠㅠ 그

래도 최대한 빨리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어쩌면 이 글의 뒷편보다 다른 단편이 먼저 나올지도 몰라요! 흐름을 깰 수도 있지만 너무 길어지면 질릴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 하나의 방편으로 마련은 해둔 상태입니다.

 

어째 올때마다 징징거리기만 하는 저이지만 참고 봐주시는 독자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매번 답글은 못 달아드리고 있지만 그래도 하트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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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히히 다 텍파로 다운받았어요!! 이제 자면서 조심조심 읽어야지^-^♥
10년 전
독자2
아학생이시구나..워낙세세하게표현을잘해서실제로겪은일을쓰신줄알았어요.근데이런글은이런곳에서는빛을못받을텐데..ㅠ충분히좋은필력이신것같으니까다른곳에도써보시는걸권할게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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