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자고?"
내 물음과 동시에 오세훈은 짧게 입을 맞추었다.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리자, 웃으면서 대답 지금 안 해도 돼.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줄게 하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심장이 왜 이렇게 쿵쿵 뛰는지, 얼굴은 왜 또 붉어지는지, 내가 오세훈을 좋아하고 있었는지. 혼란스러운 15분은 오세훈이 옷을 갈아 입고 나옴으로써 끝났다. 오세훈은 평소처럼 나한테 어깨동무를 했고, 나는 괜히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 바빴다. 체육관 앞에 있는 아빠 차를 향해 뛰어가자, 오세훈은 내 등 뒤에 잘 가 하고 소리쳤다. 나는 뒤돌아 손을 흔들고, 차에 얼른 올라탔다. 그리곤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세훈이가 나 좋아한대.
아빠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래서 사귀자고 했어? 고백 받았어? 하고 물으셨다. 나는 괜히 투정을 부리며 대답을 피했지만 아빠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뒤로 넘겨주시며 아빠는 반대 안 해, 세훈이 만나는 게 아빠는 마음이 훨씬 편해. 우리 딸도 세훈이 좋으면 만나. 아니면, 다시 친구 하면 돼. 아직 열일곱이잖아.
[세훈아, 내일 학교 가?]
[응, 너네 집 앞으로 갈게.]
[알겠어, 잘 자!]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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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잠꼬대는 그렇게 할 게 뭐람. 자고 있는 오세훈에게 꿀밤을 놓으려 다가가는데, 오세훈이 눈을 감은 채 하면 죽어 하고 으름장을 놓는다. 안 자고 있었어? 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불을 끌어당긴다. 야, 난 너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 하고 투정을 부리자, 왜? 나 코 안 고는데? 하고 눈을 떠 나를 쳐다본다. 넌 몰라, 평생 모를거다. 메롱! 주방으로 가, 뭘 먹을지 냉장고를 열었는데 반찬은 커녕 쌀도 다 떨어져가기에 체념하고 지갑을 들었다. 드디어 장을 보는구나. 멍하니 앉아있는 오세훈을 보고 나 장 보러 간다 하자 같이 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세훈이다. 어딜 나간다고 그래, 나 사람 모이는 거 싫어. 내 말에 잠깐 고민하더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터덜터덜 내 옆에 선다. 뭐, 어쩌라고.
"이러면 아무도 몰라."
결국은 오세훈이랑 같이 마트에 왔다. 대충 재료를 담고 있는데, 자꾸 옆에 붙으면서 필요도 없는 걸 바구니에 담는다. 갖다 놔라. 계속 어금니를 꽉 물고 말을 해도, 들을 생각도 없는지 계속 주전부리나 간식 거리를 바구니에 담는다. 아, 진짜 무겁다고!!!!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세훈은 내 팔에 있던 바구니를 들고 앞서 걸어갔고, 나는 씩씩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계산을 하려고 계산대에 섰는데 오세훈이 포인트 카드 하며 나한테 손을 내민다. 아무 생각 없이 포인트 카드를 내밀고, 식재료가 담긴 봉지를 드는데...... 참, 나 돈 안 줬는데. 계산은 어떻게 한 거야. 내가 쳐다보자, 포인트 카드를 돌려주더니 자기 카드를 지갑에 끼워 넣는다.
"왜 네가 계산해?"
"포인트는 네 걸로 적립했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뭐가 문젠데, 키 줄어들어 내놔."
키 갖고 난리야! 키 크면 다야?! 오세훈 뒤를 따라 집에 도착해, 요리를 하기 위해서 앞치마를 매는데 오랜만에 매는 거라 못 묶고 낑낑 거리자, 오세훈이 걸어오더니 일부러 그러냐? 하고 리본을 묶어준다. 내가 뭐하러 일부러 그러겠어! 어이가 없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란말이를 하고, 어묵을 볶았다. 오세훈은 벌써부터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앉아있다. 밥그릇을 먼저 식탁에 내려놓고, 반찬을 하나씩 내놓자 웃으며 잘 먹겠습니다 하는 오세훈이다. 많이 먹고 집에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세훈 건너편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오세훈은 된장찌개를 한 입 먹고 고개를 끄덕이고, 반찬을 한 입 먹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역시, 김에리 하면서 웃었다. 웃긴 뭘 웃어.
"열심히 먹기나 하세요."
"역시 넌 나랑 결혼해."
"웃기지 마, 난 너랑 안 해."
"후회할텐데?"
그러시겠죠, 안 그러시겠어요? 비아냥 거리며 밥을 계속 먹다가 먼저 일어나자, 어디가? 하고 묻는다. 티비 볼 거야 하고 이불 위에 털썩 주저 앉아서 채널을 돌렸다. 오세훈은 밥을 다 먹었는지, 설거지는 내가 할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심은 있네. 따뜻하게 앉아, 티비를 보고 있자니 배도 부르고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조는 걸 본 건지, 오세훈은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나를 들어올려 침대로 옮겼다. 피곤하면 자 하더니 남은 설거지를 하러 갔는지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잠에서 깨보니 오세훈은 내 옆에 앉아 내가 자는 걸 빤히 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어? 하고 묻자, 한 시간 이라고 대답하더니 나를 일으켜 앉힌다.
"야,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또 뭔 소리를 하려고."
"너랑 결혼해야겠어."
맘 같아선 뺨을 아주 양쪽으로 갈기고 싶다. 저런 염치 없는 말이 입에서 저리도 잘 나올까. 사과는 커녕, 변명도 한 적 없으면서 뻔뻔하게 다시 나한테 왔다. 그것도 너무 자연스럽게, 일상인 것 마냥. 그냥 어쩔 수 없었다고, 난 너에 대한 마음이 변한 적 없다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그 말이면 되는데 왜 그런 말 없이 자꾸 들이대는지. 여전히 오세훈은 자존심이 강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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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사랑해"
"아니거든?"
"맞거든?"
"아, 내가 더 사랑해!"
2시간 째, 세훈이의 집에서 게임을 하면서 티격태격 중이다. 누가 더 사랑하느냐로 시작한 이 말다툼은 꼬박 2시간 내내, 서로가 더 사랑한다는 말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둘 다 절대 지지 않았다. 오세훈, 거짓말쟁이. 아무리 봐도 내가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 내 중얼거림에 세훈이는 김에리 멍청이, 아무리 봐도 내가 더 좋아하는데 하고 받아쳤다. 결국 내가 이기긴 했지만, 그 한마디로 2시간을 보낸 우리가 너무 웃겼다. 그래서 막 웃기 시작하자, 세훈이도 따라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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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이의 경기는 겨우 이틀이 남았다. 다행인 건,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거라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그리고 더이상 오세훈 몰래 경기를 보러다니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이였다. 오세훈이 휴가가 끝났음에도 우리 집에서 나가지 않은 탓이였다. 아, 안 간다고 할 수도 없고. 화장실을 갔다 나온 오세훈을 한껏 째려보자 어깨를 으쓱 하더니 옆에 와서 앉아서 자연스럽게 티비를 본다. 진짜 뻔뻔해 사람이야 능구렁이야 하고 중얼거리자 세훈이는 사람이야 하고 대답했다. 예, 그러시겠죠.
"야, 나 저녁에 약속 있어."
"같이 가자."
"뭐래, 백현이 오빠가 저녁 사준댔어."
"안 돼."
"오빠 결혼 했어, 언니도 같이 나온대."
"그래도 안 돼, 같이 가."
앤지, 어른인지. 나랑 동갑이 확실한지 의심이 되는 순간이였다. 별의 별 사람한테도 질투를 다 하네. 백현이 오빠는 사실 얼마 전에 결혼식을 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만난 언니라고 소개했는데, 성격도 너무 좋고 얼굴도 너무 예쁘게 생겨서 안심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세훈은 그 때 너무 바빠서 축의금만 전했다고 했으니 언니를 처음 만나는 샘이다. 아니, 근데 왜 앞에 앉아 있는 백현이 오빠에게 그렇게 눈빛을 쏴대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유부남도 예외는 없는 건가. 오세훈은 늘 이랬다. 우리 아빠와 할머니를 포함한 내 주위 모든 여자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내가 같이 있는 걸 그렇게 불편해 하고 질투를 했다. 그리고 헤어진 지금도 마찬가지다.
"야, 세훈아. 나 뚫리겠다."
"그래, 오빠 뚫리겠다."
"질투의 화신 어디 가냐."
"남자친구도 아니면서 난리야."
내 말 한마디에 오세훈은 나한테 눈빛을 쏴대기 시작했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다. 내가 손을 뻗으며 사과하자, 오세훈은 그 손을 잡고 두어번 흔들더니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리고 백현이 오빠는 휴대폰 화면을 한참 쳐다보더니, 내 쪽으로 돌려서 화면을 보여줬다.
오세훈 공식입장 발표, 여자친구 아니지만 호감 있어. 꾸준히 대시할 생각이다.
수영선수 오세훈(23)이 몇시간 전, 에이전시를 통해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여자친구는 아니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꾸준히 대시할 생각이며, 그 사람이 싫어한다면 공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 보여드릴테니 기대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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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세훈. 이거 뭐야?"
"지금 떴네, 뭐긴 뭐야. 인터뷰지."
"그래, 내 말은 이 내용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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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떨어져서 지내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붙어다녔다. 이상한 건, 내 성적은 자꾸만 떨어지는데 오세훈은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메달도 매번 땄다. 왜! 나만! 성적이 자꾸 떨어지냐고! 오세훈에게 투정을 부리자, 세훈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같이 공부하자며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덕에 2학년이 되어서는 성적도 많이 올랐다. 수정이는 근처 남고에 다니는 애와 연애를 시작했고, 자주 더블 데이트를 했다. 매번 데이트가 끝나면 수정이네 커플이 싸우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세훈 진짜 벤츠야, 너 보는 눈빛이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진다니까?"
"세훈이도 무뚝뚝한 편인데?"
"내 남자친구 앞에선 손톱만큼도 아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 나 자랑하는 거 좋아해, 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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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업로드 하는 병이 있나봐요. T^T. 혹시 연재 텀이 길어지더라도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최대한 빨리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재미가 없어지더라도 읽어주신다면 기대에 부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