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
집에 돌아왔을 때 남아있던 건 쓰러져 있던 아버지와 바닥에 흥건한 피, 그리고 그 위에 있던 권총이 전부였다. 우리 딸, 오늘 하루 안 힘들었어? 하고 내 등을 토닥일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질 않으셨다. 전화를 걸면 없는 번호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친척이랑 교류도 없었기에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었다. 오빠는 나를 꽉 안으며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꿈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아버지는 어릴 때 도움을 받았다며, 지금의 회사에 몸을 담으셨다. 우리나라에서 꽤 알아주는 대기업이였다. 그래서 난 돈으로 사람이 얼마나 치졸하고 비참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돈으로 얼마나 더러운 일들이 일어나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가 15살 오빠가 24살 때였다. 오빠는 경쟁사인 또 다른 대기업에 어린 나이지만 대리로 일을 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스카웃 되어 일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장례식에는 매스컴을 통해 비춰지던 대기업 임원들과 연예인들 각종 유명인사가 줄을 이었다. 오빠는 담담하게 그들을 맞이했고, 나는 내 눈에서 의심이라는 감정을 씻어낼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시간이 너무 경과한 뒤였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사건을 덮으려 애썼다.
그 때, 아버지와 꽤 자주 마찰이 있었던 이사진 한 명이 나한테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뒤로 피하자 충격이 큰 모양이구나 하며 웃으셨다. 마음 같아선 침을 뱉고 뺨을 내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식적인 걱정 뒤엔 분명히 나를 조롱하고 있을 것이다. 기분이 더러웠다.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하고 나한테 물었지만, 난 알고 있다. 이들이 분명 우리 어머니의 행방을 알 것이라고.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교복을 입은 남자 애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오빠는 잠시 쉰다고 앉아 있다가 그 애를 반겼다. 오빠는 자기를 잘 따르는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18살이고, 이름은 김종대라고. 셋이 빈소를 지키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장례 절차 모두를 따르던 종대 오빠는 이제 그만 학교에 나가야 한다며 내가 들고 있는 아버지 사진에 꾸벅 인사를 하고, 우리 오빠한테도 인사를 하더니 나한테 손을 흔들었다. 나 역시 손을 흔들자 웃으며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종대 오빠였다.
그렇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집이 아니여서,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오빠가 벌어오는 돈으로 충분히 우리는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행방이 확실치 않자, 내 기분과 상처는 생각도 않은 채 사망했다는 통보가 내려졌다. 오빠에게 화를 내며 어머니 주민등록번호와 사진이 담긴 종이 한 장을 던졌다. 오빠는 침착하게 다시 나를 안았다. 오빠가 네 보호자야, 에리야.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공부에 집중이 되긴 커녕, 활발하던 성격은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먼저 얘기를 꺼내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내 일이 된 시점이였다. 꿈에 나온 어머니는 음악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망설일 시간 따위 없었다. 그래, 음악을 한다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꽤 유명한 피아니스트셨다. 물론 결혼을 하고 난 뒤, 모든 음악 활동을 접으셔서 최근까지 아는 사람은 소수지만. 집에 돌아와, 손톱을 뜯으며 오빠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온 건 종대 오빠였다.
"준면이 형은?"
"나도 기다리는 중이야."
"손톱 뜯지 마, 손 망가져."
내 손을 깍지 껴 잡더니 자기 무릎 위로 내리는 종대 오빠였다. 오빠는 대학을 다니는 걸 포기하고, 바로 큰아버지가 하시는 목공소에 취직 했다고 들었다. 일은 안 힘들어? 내 물음에 오빠는 고개를 저으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뭐 하고 웃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오빠가 올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왜 이렇게 안 오지 하고 휴대폰을 들었을 때, 드디어 문이 열렸다. 다녀왔습니다.
시간을 늦출 수가 없어서 바로 음악을 배우겠다고,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자 오빠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대답이 유독 느렸다. 그러다 오빠는 살짝 웃으며, 하고 싶으면 해야지 하며 내 머리를 넘겼다. 그리곤 할 얘기가 있다며 종대 오빠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내 방에 들어와 학원을 알아봤고, 가까은 위치에 있는 학원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17살, 오빠는 26살이 되었다.
♪♬♪♬♩♪♬♩♩♪♪♬♪♬♩♩♬♩♪♪♬♩♪♬♩♬♩♪♬♩
인디계의 혜성, 에리. 음원 차트 10권 진입.
음악 방송은 물론 방송 활동이 전혀 없는 인디 가수가 음원 차트 10권에 이름이 오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이 두번째 음원 발표인 에리는 음원 공개와 동시에 음원 차트 상위권에 랭크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감싸는 따뜻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밝힌 에리는 '그리운 사람' 으로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곡을 들고 다시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달콤한 목소리로 듣기 좋은 멜로디를 그려내는 그녀는 밝혀진 바가 하나도 없어,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중이다.
"에리야, 이번 노래도 너무 좋다."
종대 오빠가 이어폰을 빼더니 환하게 웃어보였다. 고맙다고 얘기 하자, 이렇게 좋은 노래 들려줘서 내가 더 고맙지 하며 더 밝게 웃어보인다. 종대 오빠가 없었으면 내가 지금처럼 웃을 수 있을까 싶었다. 오빠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바빠졌다. 그만큼 더 자주 연락하고, 더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지만 옆에 같이 있을 시간은 적었다. 오빠의 빈자리를 종대 오빠가 대신 채워주는 걸로 만족했다.
내 노래는 음원 차트에서 내려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막강한 음원 깡패 아티스트들과 아이돌이 컴백 했음에도 꾸준히 상위권에 랭크 되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 내가 누군지 알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내가 알려지는 게 목적이긴 했지만, 내가 알려지고 유명해지고 난 뒤 그 후폭풍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난 정신적으로 약해져있었다.
예은, '에리 노래 듣고 힘 많이 나, 한 번 만나고 싶다.'
.
.
.
.
자이언티, '에리는 아티스트다, 악기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션이다.'
.
.
.
.
백현, '에리의 목소리에 매력을 느낀다, 기회가 되면 듀엣을 하고 싶다.'
.
.
.
.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세번째 곡인 '약속' 을 발표한 뒤에는 더더욱 심해졌다. 오빠에게 상담을 하고 싶었지만, 집에 들어온 오빠의 얼굴에 피곤이 가득해 내 얘기로 인해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기 싫어서 관두었다. 대신 종대 오빠에게 털어놓자, 오빠는 공개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런 저런 부연 설명을 하며 오히려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나를 설득하곤 마지막에 말했다. 네 의견이 제일 중요하지, 뭐. 난 네 의견 백프로 다 존중해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오빠한테도 말을 하는 게 좋겠다.
[오빠, 나 그냥 방송 나갈래. 고민할 필요 없는 거 같아. 언제까지 이렇게 숨겨진다고 생각 안 해. 그런데 오빠 의견도 중요하니까, 오빠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오빠 동생인 거 아니까. 오빠 불편할까봐 그게 걱정이 돼.]
[우리 에리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빠가 감당할 몫은 오빠가 감당할게.]
[속보] 음원 깡패 에리, 방송 출연 감행?!
에리가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고 전해왔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제작진은 드디어 에리 섭외에 성공했다며, 다가오는 12월 방송에서 만나볼 수 있을 거라고 전했다. 에리의 출연에 스텝을 포함한 모든 제작진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며 리허설 상황을 살짝 공개할 예정이니 시청자 여러분도 많은 기대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오빠, 어떡해? 나 떨려."
대기실에 종대 오빠와 앉아 있는데, 너무 떨렸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건, 처음이였다. 손목에 새긴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문 이름을 손가락으로 쓸며 다짐했다. 열심히 할게요. 종대 오빠는 나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잘 할 거야, 우리 에리 하며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오빠는 문자와 전화로 응원을 대신했다. 회사 일이 바빠 얼굴을 못 봐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했다.
그리운 그대는 지금 어디 있는지 내 목소리는 들리는지 하고픈 말이 많은데
"안녕하세요, 에리입니다."
수많은 함성소리와 박수에 당황했지만 애써 긴장한 표정을 감추고 웃어보였다.
"에리 씨, 와 정말 모시기 어려웠어요."
"방송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아...... 계속 숨어서 음악을 하는 건 한계가 있을 거 같아서요."
"말하는 목소리도 너무 예쁘세요."
"감사합니다."
"곡은 다 직접 쓰신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곡을 쓰시나요?"
"그냥, 일상생활이나...... 제가 아직 어리지만 경험으로 느낀 감정이나 이런 걸 조금 더 듣기 좋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곡에서도 느껴지는데 되게 신중하신 성격 같아요, 조근조근 조용하시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앞에선 시끄러워요."
객석 곳곳에서 웃음 소리가 새어나오고, 진행자 분도 웃으셨다. 열아홉 살 답게 풋풋하네요 하는 말 뒤에, 다음 곡도 들어볼까요 하며 조명이 꺼졌다. 다음 곡을 준비하는 중에 객석에서 보이는 종대 오빠의 모습에 괜시리 웃음이 났다. 일도 바쁠텐데 항상 같이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할 때 다시 조명이 켜졌다. 노래를 부르면서 내 노래를 들어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이유 모를 감정이 벅차올랐다.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떨었다. 오빠와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견딜만했다. 그 때 문을 열고 진행자 분이 들어오셨다. 출연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꼭 좋은 노래 계속 해달라는 말을 이으셨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하고 인사한 뒤, 종대 오빠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종대 오빠가 가져온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내가 무대에서 얼마나 떨렸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자 종대 오빠가 그랬냐며 맞장구를 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에리 수고했어, 노래 잘 하더라. 일 하다가 잠깐 찾아서 봤어. 우리 동생이 제일 예쁘네.]
유희열, '에리, 소녀스러움에 안 보이는 무언가가 있어. 매력을 풍기는 새로운 느낌의 아티스트'
▽
국가대표 남자친구와 같이 연재를 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건 연재텀이 굉장히 길 거 같아요!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