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걸으며 뒤를 돌아보니 화염에 둘러싸인 마을이 빨갛게 빛을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절대로 저 색에 물들여지지 않으리라, 절대 저들에게 굴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신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그저 호위무사 정국이 저를 이끌며 잡고있는 오른손 하나에 의지해 정신없이 뛰었다. 잠시도 쉬지 않으며 가파른 산을 넘어가고 있었기에 숨이 더욱 가빠왔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검은 사내들이 보이지 않자 조금은 안심이되어 손을 놓자, 앞만보던 정국이 저를 뒤돌아본다. " 잠시만... 잠시만, 쉬어가면 안되겠느냐 " 걸어간다 하여도 고된 가파른 산행길을 단시간동안 그리 급히 올랐으니 지칠만도 하였다. 그러나 제 앞에서 저를 끌고 있는 정국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 안됩니다. 곧 머지않아 그자들이 따라붙을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지만 곧 쫓아올 것이라는 말에 다 잊고 금세 정국의 손에 이끌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뒤 보이는 작은 마을에 안심이 되어 긴장이 풀리니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곧바로 정국의 손에 이끌려 마을의 한 민가에 들어가게 되었다. * 저와 정국이 신세를 지게 된 작은 민가는 마을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어 혹여나 저를 쫓는 무리가 오더라도 금방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구석 한켠에 개어져 있는 이불더미에 몸을 기대니, 짧은 시간동안 심하게 몸을 혹사시켰던 탓인지 금방 몸이 노곤해짐과 동시에 제게 남은 유일한 단 한 사람, 정국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았다. 열 하나, 그 어린 나이에 정국은 벌써 저의 호위무사라는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 이름이 무어냐? " " 정국이라고 합니다. " " 난 호위무사 같은 거 필요없다. " " 그저 명에 따를 뿐입니다. " " 굳이 그렇게 명을 어길 수 없다면, 명대로 하는 수 밖에. 내게서 적어도 삼보는 떨어져 걷거라. 이게 내 명이다. " 그리고 그 운명 때문에 첫 만남부터 자신에게 매몰차게 굴었던 저를 위해 항상 나서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마치 지금처럼. * 마을에 도착하고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의 소리가 거세졌다. 또 저를 지킨다고 밖에 서있을 정국을 안에 들라하면 보나마나 들어오지 않을 것이 눈에 훤하기에 다른 방법을 택했다. " 정국아, " " .....예 " " 들어오거라, 명이다 " 명(命) 그를 움직이게 하는 절대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왜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기에 이상하여 문을 열어보니 분명 비를 맞고 서있어야 할 정국은 문 옆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배 위에 올려진 손과 주변에 번져있는 피를 보아하니 저를 쫓아오던 검은 일행들의 칼에 의한 상처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가지 이상한 점은 상처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 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정국의 상태였다. 그리고 곧 그 원인을 깨달았다. 독(毒) 그들이 치밀하게 칼에 독을 발라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정국은 그 칼에 베인 채 바로 달리지 않았던가. 분명 독이 온몸에 퍼져있을 것이었다.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정국은 계속 처마 밑으로 들이치는 비를 맞으며 밖에 있었던 것이다. 황급히 정국은 방안으로 옮겨 보았지만 이미 늦은 듯 하였다. 믿고싶지 않았다. 떠나보낼 수 없었다. 호위무사 그 이상으로 제게 스며들어버린 정국을, 제게 남은 유일한 사람을 이리 쉽게 보낼 수는 없었다. " 아니된다, 죽지마라. 눈 감지도 말고 말 하지도 말아라. 제발 살아만 있어라. 명이다. 죽지마라. 죽으면 안된다. 한번도 내 명을 거역한 적이 없지 않느냐. 죽으면 아니된다. " 저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가엾게도 감기려는 눈을 점점 이겨내지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조금이라도 더 저의 곁에 남으려 노력하였다. 그러다 곧 정국의 눈이 완전히 감기었다. " 일어나다오 눈을 떠다오. 다시 내게 아가씨라고 한번만 더 말해다오. 너를 이리 보낼 수는 없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나에게 모든 것을 바친 널 이리 어찌 보낸 단 말이냐. " 울음이 잔뜩 섞인 다급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울려 퍼졌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도 저의 주변에 남아있지 않았기에, 아무도 저의 슬픔을 알아주지 못하였다. 잠시 뒤 비마저 더 거세지더니 곧 빠르게 저의 울음소리를 삼켜버렸다. 그렇게 혼자서 남은 정국마저 떠나보냈다. 글감이 생각났는데.. 또...죽네요...'ㅅ' 사실 제가 새드엔딩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그런가 또 죽는 걸 생각했네요... 이번 글은 bgm을 들으면서 써서 우울할 수 밖에 없었어요.(핑계)(시선회피) 가랑비는 윤기...호위무사는 정국이.. 다음 글은 좀..살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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