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정호석] 셋만 아는 하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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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 바 없이 추운 겨울밤.
은은한 달빛과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쌓여있는 눈들과 겨울은 너무나 차갑지만 유일하게 복잡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이 밤 산책 뿐인지라 늘 이 시간에 나오곤 한다. 간밤에 내렸던 눈이 마당을 가득 덮어 버려 걷는 내내 눈 밟히는 소리와 함께 신고 있던 신발이 젖어갔다.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른 채, 고민만을 떠올리며 무작정 걷다가 빨갛게 얼어버린 손끝과 젖어버린 신발을 이제야 봐버렸다.
손이 얼어붙고 신발이 젖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늘도 긴 시간을 고민했지만 오늘도 이 근심 걱정은 정작 해결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먹물을 쏟은 것 마냥 까맣던 하늘에 회색의 눈구름이 작게 몰려든 모습이 보였다. 곧 눈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무거운 한숨을 쉬며 침소에 들기 위해 차가워진 손끝을 꼭 쥔 채로 방을 향해 걸었다. 도착한 방문 앞의 댓돌 위로 신발을 벗어두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옷도 벗지 않은 채로 무작정 깔아놓은 이불 위로 몸을 뉘었다. 천장을 마주하고선 또 한참을 생각했다. 정말 어떡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긴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데 방문 너머로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 몇 번이 들리더니 낯익은 목소리가 문 틈새로 흘러들어왔다.
"혹, 깨어있다면 잠시 나와 얘기 좀 하자꾸나."
오라버니의 목소리였다. 춥고 늦은 밤에 웬일인가 싶어 이불 위로 누워있던 몸을 그대로 일으켜 문 앞으로 다가섰다. 문을 열기도 전에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도통 잠이 안 와서 말이지."
그 목소리에 물기가 조금 어려있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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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밤 산책을 할 때, 시리도록 차던 바람이 문득 떠올라 입고 있던 옷 그대로에 장옷 하나를 걸쳐 입고 방을 나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방문을 등진 채로 신발을 놓아둔 댓돌에 걸터앉아 가만히 앉아있는 오라버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그 옆에 다가서 신발을 신기 위해 치마를 걷어 올리다 치맛단이 스치는 소리에 뒤돌아 본 오라버니는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늦은 밤에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오라버니."
"신발이 젖어있는 것을 보고 방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아 불렀는데,"
"..."
"이 오라비가 잠을 깨운 건 아닐까, 했다."
"괜한 걱정이십니다."
"허나, 자다 일어나 옷을 입고 단장한 것치곤 꽤나 빨리 나왔으니 아직 침소에 들기 전인 모양인 것 같아 다행이구나."
늦게까지 돌아다니던 것을 들켰다는 사실에 뭐라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당황함에 벙쪄있던 내 표정을 보더니 생각했던 반응과 달라 머쓱했던 오라버니는 허허, 하며 웃더니 댓돌에서 일어나 좀 걷자는 말 한마디와 함께 먼저 앞장서 걸어갔다. 아직 마르지 않은 신발을 고쳐 신고 묵묵히 오라버니의 뒤를 따라갔다.
뒤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먼저 갔던 오라버니의 발걸음이 멈춰있던 곳은 마당에 크게 자리 잡은 연못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연못을 바라보던 오라버니의 옆에 다가섰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연못을 바라보던 오라버니가 고개를 들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곧 있으면 이 오라비가 혼례를 치르는데 우리 누이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하구나."
섭섭하느냐, 아니면 별다른 감정이 없느냐. 질문은 내게 하지만 정작 구름이 끼여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오라버니를 고개 돌려 쳐다보았다. 얼굴을 마주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자신이 없는 것인지 오라버니는 밤하늘만을 꿋꿋하게 바라보며 말을 할 뿐이었다.
"이 오라비는 싫구나. 사랑하는 이를 두고 다른 사람과 혼인이라니."
오라버니의 혼례라, 사실 전부터 들어왔던 얘기다. 아버지가 나 몰래 오라버니를 따로 아버지의 방으로 불렀던 날에 혼인 얘기가 오가던 것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까. 정말 혼인을 하는 게 사실이냐 물었을 때, 눈을 마주하지 않고 그렇다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며칠간은 방에 틀어박혀 눈물을 쏟아내기 급급했다. 밥도 먹지 않고 밖에 나오지도 않는 내가 걱정됐던 것인지 오라버니는 문 앞에 서서 밥 좀 먹어라, 걱정된다는 말을 매일같이 했지만 날 두고 혼례를 준비하는 오라버니가 그때는 너무나도 미워서 그 말 마저 무시하고 도통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계속 되자 결국은 내 반응에 화가 난 오라버니가 무작정 방문을 열고 들어와 걱정 시키지 말라며 화를 크게 냈던 적이 있었는데 처음보는 오라버니의 반응에 아무 말도 못 한 채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어깨를 붙잡던 손을 떼어내고 나를 울면서 껴안았었다. 자신도 혼인하기 싫다고. 사랑하는 이를 두고 어찌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겠냐며 꼭 안은 채로 내게 말을 해왔다. 이 일이 있던 이후로 나는 밤에 혼자 산책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고.
남매 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니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니까. 우리는 다른 남매들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 관계였으니까.
나 또한 마주할 자신이 없어 연못에 시선을 둔 채로 오라버니에게 대답했다.
"섭섭하지 않으면 거짓이겠지요. 그러나,"
"..."
"오라버니가 혼인을 해야만 저희 남매도 다른 남매들처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다투기도 하고, 서로 장난도 치고, 그런 평범한 남매."
"하긴, 다른 남매들과는 많이 다르지."
"...저희 남매 간의 사이는 연인처럼 애틋하니까요."
한참을 서있던 탓에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으로 손끝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손을 입가로 가져다가 입김을 불어 손을 녹이는 내 모습을 본 것인지 오라버니는 차가워진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닿아있는 큰손이 제법 따뜻했다. 손을 잡고 있는 도중에도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았지만 단지 손이 따뜻해서 잡고 있는 것이라고 홀로 타협하며 내칠 생각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오라버니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의 의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남매간에 할 행동이 전혀 아니란 것을. 가만히 연못만을 지켜보고 있던 내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하게 한 오라버니는 내 얼굴을 마주한 채로 한참을 머뭇거리던 입을 열고 내게 말했다.
"사랑해서, 사랑해서 정말로 미안해."
진심이 가득 담겨 말하는 목소리. 그리고 눈물이 맺혀 나를 바라보는 눈. 그 말과 눈물을 보곤 나도 사랑한다 말하고 싶었지만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라 문득 떠올라 어깨에 올려진 손을 내치고 몸과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해 또다시 어깨를 잡아 아까와 같은 마주하는 모습을 하게 한 탓에 무용지물이 돼버렸지만 그런 오라버니에게 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 눈을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랑한단 고백이 나올게 분명했기에. 단단히 잡고 있는 어깨탓에 차마 몸은 제자리로 돌리지 못하니 눈빛만 마주하지 말자,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얼음장마냥 차가운 목소리로 몸을 좀 놓아 달라는 말을 했지만 전혀 놔 줄 생각 없는것인지 내 말을 무시하고는 한 손으로 고개마저 돌려버렸다. 나 봐, 똑바로. 낮게 깔린 목소리에 겁을 먹었지만 절대로 눈을 마주하진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지친건지 오라버니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왜 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리도 무정하게 대하는 것이냐."
"..."
"슬프구나. 따뜻한 진심이 담긴 눈을 왜 보여주지 않는 것인지."
그 말에도 묵묵무답인 나를 보더니 쓴웃음을 짓고는 또 다시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남매로서, 선을 넘어서진 않겠다. 약속할 수 있어."
오라버니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저 말이 우리 사이엔 절실히 필요한 말인데 왜 막상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정도로 슬프고 씁쓸하게 들려오는 걸까. 하던 말이 남아있는지 다만, 하고 말을 이어하는 오라버니를 차마 바라보진 못하고 나 혼자 생각했다. 저 입에선 무슨 말이 마저 나올까, 하며.
"마지막으로, 선 한 번 밟고 물러나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드니 눈물이 잔뜩 고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오라버니의 눈과 마주쳤다. 애써 저 눈물을 무시하고 그 말이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 했지만 묻기도 전에 코가 닿을 정도로 내 얼굴을 가까이한 오라버니는 어깨에 머물러있던 자신의 손을 떼어내더니 얼어붙은 내 볼을 움켜쥐고 그대로 입술을 부딪쳐왔다. 아까처럼 매정하게 내칠 생각조차 나질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이니까.
그래, 마지막인데, 뭐.
이 정도는 정말 괜찮지 않을까.
욕심 한 번 부려보고 싶다. 마지막이니까.
오라버니도, 나도 전혀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입술을 맞대고 있던 도중, 볼에 닿는 차가움에 놀라 눈을 떴다.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눈이 오는구나, 입술을 떼고 허리에 손을 감아 품에 안긴 채로 말을 했다. 오라버니, 눈 와요. 내 말에 오라버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선 그러게, 하며 품에 안겨있던 나를 더욱 단단히 안아왔다.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눈이 덮어버렸으면.
아무도 모르게 우리 남매와 눈만이 아는 하얀 비밀이 되어버렸으면.
이젠 정말 남들과 같은 그런 남매가 되어있었으면.
다음 생엔,
서로 이렇게 힘들 일이 절대로 없었으면.
이런 일로 고민하지 않게 남매로 만나지 않았으면.
그땐 정말 남들과 같은 그런 연인이 되어있었으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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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필명으로 다시 한 번 글을 올리게 될 줄은 몰랐네요. 첫사랑 글 한 번 쓰고 말 필명이었는데 말이죠. 하하하하
이번 글도 단언컨대 재미도 감동도 없는 글이라고 저는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은 감사해요! 별거아닌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그나저나 글이 이해 가시는지 모르겠네요. 제 나름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남매간의 사랑' 이런걸 생각하고 썼는데! 알아봐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소재가 가끔씩 생각나면 호석이 단편을 자주 쓰러 올지도 모르겠네요! 제 머리와 손이 열일해주면 참 좋을텐데.
만약, 다음에 또 글을 올린다면... 더욱 재밌고 유익한(?) 글로 찾아뵈면 좋겠네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모두 행복하세요^0^♡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