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8살, 현재 부산에 거주하는 흔한 여고생이다.
매일이 따분하던 내게 흥미로운 취미가 생겼다.
얼마 전 엄마 친구 부탁으로 인해 우리 집 2층에 하숙하게 된 엄마 친구 아들(이하 내 미래 남편)을 보고나서 반했다고
하면 이지훈이 날 비웃겠지만 난 진심이다.
층이 달라 거의 마주 칠 일이 없었지만 식사를 할 때나 엄마 심부름을 할 때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루하루 오빠를 눈으로 쫒고 또 쫒지만 정작 내색 한 번 못하는 내가 미웠다.
오빠는 보컬 트레이너로 일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언제 한 번 스치듯 들은 노래소리는 정말 내 마음을 때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내 18살의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내 생일이 다가왔다, 12월 24일.
그런 의미에서 다같이 모여 파티를 하잔 말이 들려왔다.
당연히 오빠를 볼 수 있단 사실에 얼른 승락하고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난 그 날 아침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 00아... 어쩌지, 석민이가 급하게 일이 생겼다네. 우리끼리 먼저 먹자. "
아 나 엄청 기다렸는데...
살짝 적막이 감도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물론 내 생일을 챙겨야하는 의무나 식사에 꼭 참여해야 할 의무 또한 없었지만 그냥 미웠다.
밖에 내리는 폭설에 숨도 못 쉬고 묻힌 작은 생명처럼 늘 오빠를 기다리기만 했던 나는 지쳐 잠이 들었다.
" 00아, 일어나봐. "
나를 흔드는 손길에 눈을 떠보니 오빠가 보였다.
눈을 그대로 맞고 온건지 오빠의 넓은 어깨 위로 한 송이, 두 송이 그렇게 맺혀있었다.
" 미안해, 오빠가 늦었지? 그래도 아직 12시 안 지났어. 이거 뜯어볼래? "
작게 고갤 끄덕이고 귀엽게 포장된 상자를 열었다.
" 우와... "
그 안엔 나를 닮은 작은 인형과 오빠를 닮은 인형이 자리잡고 있었다.
" 보니까 너 나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괜찮지 선물? "
마냥 날 여동생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산타 할아버지한테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내일이면 다 잊게 해달라고 빌어야겠다.
" 오빠 내가 좋아하는 거 알고 있잖아요, 왜 내만 자꾸 오빠 기다리고 보고 싶어하는데요? 오빠 내가 어려서 그러나? "
" 00아 오빠 말 잘 들어봐, 우리 00이는 아직 수능도 쳐야하고... "
"... 됐어요, 선물은 준 거니까 그냥 받을게요. 미안해요 어린 기집애가 뭣도 모르면서 사랑 타령해서. "
이렇게 끝날거면 차라리 날 깨울지를 말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오빠 방에 미리 선물을 갖다두지 말 걸.
00은 그 날 밤 석민이 자신의 녹음을 듣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또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미안함의 의미또한 알 수 없었다.
' 오빠! 저 크면요 저랑 결혼해요! 메리 투 미! '
커버린 그와 커가는 중인 나에게 산타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19살을 오직 수능을 위해 살았다, 아니 수능을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냈다.
석민오빠 또한 원룸을 구해 나갔고 그렇게 내 인생은 점차 무료해졌다.
수능을 끝내고 나왔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19살이 되면 수능을 치고, 수능을 치며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면 오빠에게 당당히 고백하려 했다.
최종 목표가 사라진 지금 나는 너무 쓸쓸했고 애달펐다.
그렇게 터덜터덜 들어온 집안은 깜깜했다.
한숨을 푹 쉬고나니 갑자기 어디선가 석민오빠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내 앞으로 차근차근 온다.
머리엔 고깔을 쓰고 손은 촛불을 붙인 케이크를 들고 수능 축하 노래를 부르며 마침내 그가 내게 왔다.
" 오빠가 너무 늦은거야? "
" 아니요, 아니에요. "
아이처럼 그가 웃었다.
그리고 그 날 숨겨진 뒷 이야길 내게 들려줬다.
그 역시 나를 좋아했다는 것.
나 못지않게 힘들었을 그를 다시 한 번 꼭 안았다.
" 미안하다 오빠야, 미안해 내가... 내만 힘든 줄 알고... "
" 괜찮아, 우리 00이 이제 철 들었나보네. 내 생각도 해줄 줄 알고? "
여전히 멋진 아니 조금 더 멋있어진 그와 조금 더 성숙해진 19살의 내가 마주보고있다.
그리고 그의 달달한 엔딩멘트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 메리 투 미, 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