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잊고 계셨겠지만 이건 원래 다각 김명수만 주인공이 아님
한 시간 째 미동도 않고 서 있는 남자의 얼굴에 수트 차림의 남자가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휙 던졌다. 바닥에 흩어지는 그 종이는 편의점을 지나치는 옆모습이 찍힌 사진과 대략의 특징이 나열된 연쇄 살인범을 찾는 공개 수배 전단지였다.
“행동 조심하라고 했지.” “……” “어디서 뭘 하고 다니건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고 수 백 번도 더 말했잖아!”
격양된 목소리에 찔끔 놀랄 법도 하건만 상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건조한 반응에 하, 깊은 한숨을 내쉰 남자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 나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어. 내가 호출하기 전까지는 절대 나오지 마.”
나가보라는 손짓에 꾸벅 목례를 하고 그가 나가자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남자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 *
"캬! 그래! 존나 이 맛이지! 역시 쉬는 날에는 맥주와 함께!"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캔 맥주를 산 우현이 안주도 없이 길거리에 서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씨발 눈물 나는 2주 만의 퇴근이었다. 호승사자가 제게 들러붙은 이후로 편히 쉬어본 날이 없었다. 워커홀릭인지 이호원 검사는 자기까지 휴일 반납해가며 팀원들을 굴렸다. 이거 하나 처리해놓으면 저걸 가져다주고, 저걸 처리해 놓으면 이거 다시 보라고 던져주고, 이 일이고 저 일이고 다 끝냈다 싶으면 다른 작업을 시켰다. 예전 같으면 외근 이라도 나가서 한, 두 시간을 땡땡이치다 돌아오는데 요즘엔 그러지도 못한다. 오 분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호원이 전화해서 빨리 들어오라고 닦달을 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까 경찰청에서 차로 왕복 40분밖에 안 걸리는데 왜 45분 째 안 들어옵니까. 5분 더 드리겠습니다. 빨리 들어오세요. 망할. 네이버는 왜 길찾기 따위를 발명해가지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 잠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에 못자고 숨통을 죄어오는 근무 환경에 2주간 시달릴 대로 시달린 우현이 더는 못 하겠다며 탈출을 계획했다. 배가 살살 아프다, 원래 장이 안 좋다, 창자가 끊어지겠다, 스트레스성이다, 별명이 장 트러블타다 뭐 이딴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몇 시간이나 찡찡거리자 호원이 귀찮다는 듯이 퇴근을 허락했다. 저의 퇴근으로 팀원들의 업무량이 한 짐 늘어난 것에 대해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왔지만 호원은 딱 잘라서 ‘더 이상의 퇴근은 없다.’고 단언했다. 순식간에 피골이 상접해진 얼굴들에 그러면 안 되지만 우현은 실실 웃음이 났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얄밉게 인사를 하는 우현에게 호원이 말했다. “그리고 남형사님 내일 7시까지 출근하셔서 동일 전과 데이터 비교한 거 9시까지 마무리해주세요.“
씨발 그냥 야근을 시켜……. 도저히 불가능한 미션을 받았지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 라는 초긍정의 마인드로 우현은 사무실을 나섰다.
퇴근이라지만 거의 자정이 다된 시각에 이미 지하철이고 버스고 다 끊겼을 시간이라 우현은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이럴 때면 마이카 생각이 절실했다. 하지만 빠듯한 경찰 공무원 봉급으로 기름 값을 감당할 여력도 안 되고 우현은 그냥 이렇게 BMW(Bus Metro Walk)+택시를 애용하기로 했다. 그새 잠깐 잠이 든 우현은 택시 기사님이 “이 근처입니까?” 하고 깨우자 눈을 떴다. 2주 만에 보는 익숙한 골목길 전경에 절로 웃음이 났다. 집 앞에서 바로 내릴 수 있었지만 캔 맥주 생각이 간절해져서 골목 입구에서 차를 세웠던 거 였다. 막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동네에 쓰레기를 배출하는 장소에 아무렇게나 던진 우현의 등 뒤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동물이면 환장을 하는 우현이 홱 돌아보자 도도하게 고개를 돌린 고양이가 골목길 쪽으로 총총총 걸어갔다. 홀린 듯 고양이 뒤를 따라가며 야옹아, 야옹아 부르던 우현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던 고양이가 꺾어지는 골목을 지나자 휙 사라졌다.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신 우현이 다시 골목길을 빠져나가려 몸을 돌렸을 때,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형사의 직감으로 예삿소리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우현이 발소리를 죽이며 신음이 들린 곳을 향해 걸어갔다. 가로등이 오래되어 불빛이 껌뻑거린다. 시청에 전화해서 전구 갈아놓으라고 해야지. 이 와중에도 태평한 생각을 한 우현이 대수롭지 않게 골목 끝에 시선을 던졌을 때. 쓰러져 있는 중년 남성의 위에 올라타 사정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는 기다란 남자의 모습이 눈에 걸렸다. 중년의 남성은 아직 의식이 있는 듯 꿈틀꿈틀 거리며 신음을 뱉고, 그의 복부를 난자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거…어쩌면 내가 대어를 낚은 걸지도 모르겠는데.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연쇄 살인범의 몽타주에 우현은 일단 신고를 먼저 하기로 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우현이 발을 옮기자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 안에서 맥주 캔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골목길을 울렸다. 씨…발…. 조때다. 우현의 쪽으로 서서히 돌려지는 두 사람의 얼굴. 중년의 남성은 살았다는 표정이고, 모자를 쓴 사내는…마주친 눈이, 설핏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저씨 뭐해요!!! 신고하라니까!!!!”
우현이 간신히 남자의 칼끝을 피하며 쓰러져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남자도 많이 다친 터라 몸을 운신하기가 여간 힘들었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까 저 키 큰 남자와 마주쳤을 때, 가방을 골목 안쪽에 떨어뜨렸었다. 그 가방만 집으면, 그 안에 든 핸드폰만 꺼내면…! 중년이 움직여지지 않는 제 몸과 씨름하는 사이 우현은 이 미친 남자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씨발! 넌 지치지도 않냐?!”
헉헉대며 칼을 피하던 우현이 살인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의 행적과는 다르게 오늘은 모자를 썼지만 우현은 이놈이 100% 그 살인마라는 걸 직감 했다. 칼 쓰는 게 그저 그런 애송이가 아니다. 순식간에 망설임도 없이 골목 끝에서 여기까지 달려든 것도 그렇고, 저 아저씨를 찌르던 모습도 왠지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우현에게도 뻗어지는 칼끝이 죄다 급소를 향하는 걸 보면 이놈은 이 분야의 전문가임에 틀림없었다. 살인마의 칼을 피하려 휘두르던 우현의 손에 모자의 챙이 부딪혀 날아가면서 살인마의 예쁜 얼굴이 드러났다. 생각지 못한 얼굴에 멈칫하는 우현의 어깨에 남자가 칼을 찔러 넣었다.
“으악!!”
어깨로부터 퍼져 나온 고통에 온몸이 마비가 온 듯 손끝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떠는 우현을 보던 남자가 망설임 없이 박힌 칼을 쑥 뽑아냈다.
“헉!”
오른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피가 콸콸콸 쏟아졌다.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피에 의식이 깜빡 깜빡. 칼질 한 방에 이렇게 당하다니. 형사 자존심에 금이 가는 건 둘 째 치고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성을 끊어놓는 처절한 고통이었다. 결국 우현이 바닥에 쓰러지자 볼일이 끝났다는 듯 우현에게서 떨어진 남자가 중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 가방 쪽으로 간신히 기어간 남자가 가방을 뒤적여 핸드폰을 꺼내고 있었다. 다급하게 다이얼패드를 누르는 손길에 절박함이 느껴졌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 남자가 다급하게 “살려주,” 까지 외쳤을 때, 어느 새 중년의 곁에 다가온 살인마가 발로 핸드폰을 차서 저 멀리로 날려 보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저를 돌아보는 중년의 눈에 너무도 예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살인마의 모습이 보였다.
무차별적으로 상처를 휘젓는 남자의 손길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꺽꺽대던 중년의 고개가 꺾였다. 남자가 입고 있던 아이보리색 니트에 빨간 핏방울이 잔뜩 튀었다. 얼핏 보면 짙은 색으로 염색된 니트라고 생각될 만큼 피에 푹 젖은 모습이었다. 숨이 끊어진 중년의 곁에 선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여 뭔가를 꺼내더니 그 옆에 다리를 접고 앉았다. 낑낑 거리며 뭔가를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쓰러진 우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골목길을 돌아 사라지는 남자의 마른 뒷모습을 끝으로 우현은 정신을 잃었다. * * *
남우현 잘 됐다고 존나 놀렸는데.
"김 형사님. 여기 와서 이 자료들 좀 가져가세요.“ "이 부분 좀 문제 있는 것 같죠? 검토해주세요." "김 형사님. 이거…" "김 형사님. 아까 그 자료…" "김 형사님."
내가 김씨인게 제일 후회스러운 순간이다. 하도 호원이 불러대는 통에 진절머리가 난 명수가 심각하게 성을 바꿀까를 고민하며 제 책상에 머리를 쿵 찧었다. 팀원들을 둘러보자 다들 이력이 났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다들 혼이 날아간 얼굴들이다. 우현이 다쳤음에도 병문안 갈 틈도 없이 좀비가 되어 일만 하고 있는 팀원들이 가여워진다. 망할 호승사자. 명수가 이제 입에 익은 그 별명을 부르며 투덜투덜 제게 주어진 잔무를 처리했다.
그러니까 명수가 연쇄 살인범 특별 수사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건, 남우현 탓이었다. 새벽에 난데없이 이호원 검사라며 전화가 걸려왔다.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은 명수는 멍청하게 에? 에? 를 반복하다가 우현이 다쳤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구요?
“남 형사가 다쳤는데,” “우현이가요? 어디를 다쳐요?” “연쇄 살인범을 만난 모양입니다. 지금 울림대 병원인데, 좀 와주시겠습니까?”
세수도 못하고 부리나케 달려간 병원에 누워있는 우현의 모습은 생각보다 말짱했다.
“…어디 다쳤냐?” “이거 안 보여?”
그러고 보니 우현이 가리킨 어깨에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다.
“출혈이 좀 심했을 뿐 생활에 지장은 없다더군요.” “그 살인마가 신경이랑 힘줄은 다 피하고 피만 터지게 찔러놨대. 완전 환상적이지 않냐?”
호원이 사다준 것으로 보이는 빵을 우적우적 씹던 우현이 남 일인 양 “인피니트 엘이 이제 엘코해제를 안 하겠대. 완전 말도 안 되지 않냐?” 이런 투로 말했다. 환상? 살인마가 퍽도 환상적이다. 내가 저걸 걱정해서 이 새벽에 눈곱도 못 떼고 달려왔단 말이지. 명수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호원도 꽤나 아니꼽다는 얼굴이다.
“신고를 받고 가봤더니 남 형사님이 그 근처에 쓰러져 있었답니다. 피해자는 역시나 사망한 상태였구요. 복부를 난자해 놓은 점이나 금니를 뽑아간 점, 피해자의 외형으로 볼 때 연쇄 살인범의 소행이 확실합니다. 벌써 열 번 째 피해자입니다. ”
아, 예… 멍청한 얼굴로 호원이 하는 말을 들으며 명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이걸 왜 나한테 말함? 이라고 말하는 듯한 명수의 띠꺼운 표정에 호원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김 형사님이 남 형사님 대신 함께 해주셨으면 해서요.” “네……예?” “아무래도 전담 형사셨고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실 테니 멀리 갈 것 없이 김 형사님을 영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가요?” “물론 제가요. 남 형사님도 동의하셨고.”
호원의 마지막 말에 명수가 팩 우현을 쏘아보자 우현은 어깨를 들썩,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또 대수롭지 않은 그 말투로 말했다.
“나 대신 니가 좀, 해야겠는데?”
뺨을 갈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환자인 점과 폭행을 유도하도록 만든 제공자가 제 앞에 멀뚱멀뚱 서 있다는 점을 고려해 명수는 욕구를 꾹꾹 눌러 참았다. 저놈의 개새끼. 내년엔 반드시 된장을.
“김 형사님. 뭐하십니까.” 괴로운 기억을 재생하느라 멍 때리고 있는 명수의 앞에 직접 얼굴을 들이댄 호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흡사 저승사자 같은 얼굴에 명수가 힉! 답지 않게 귀여운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이거 범인 몽타주인데 관할서 내에 빠짐없이 배부되도록 처리해주시구요. 부탁드린 동일 전과범 데이터는 정리 됐습니까?” “네, 네.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
민망했는지 큼큼, 목을 가다듬은 명수가 오늘 내내 정리한 데이터 파일을 저장했다. 책상 앞에 앉아 내내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적성에 안 맞았다. 차라리 발로 뛰는 게 훨씬 낫다. 좀이 쑤셔서 원. 뭉친 어깨를 쿵쿵 두드리며 몸을 풀던 명수가 우현의 진술을 토대로 그려진 용의자의 몽타주를 슬쩍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멀쩡한, 아니 것보다 예쁜 얼굴이다. 길가다가 마주치면 돌아볼 정도. 몽타주 따위인데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남자인데도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얼굴. 이런 얼굴이면 눈에 많이 띄일 텐데, 태연하게도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건 대범하다고 봐야 할지 미친 싸이코라고 봐야할 지. 넋을 놓고 몽타주를 내려다보던 명수를 힐끔 본 호원이 소리쳤다.
“김 형사님. 아직 덜 됐습니까?” “아, 지, 지금 보냅니다!”
* * * "흠." 명수가 보내온 파일을 받아 확인하던 호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원에게 서류를 결재 받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명수도 혹시나 또 제가 뭘 잘못 했을까봐 그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긴장해 있었다.
"김 형사님."
아니나 다를까. 또 호출. 명수는 제 잔업이 늘어나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호원에게로 갔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호원이 고개를 들고 명수에게 말했다.
"분석 잘 하셨네요." "아, 감사합," "근데 말이죠."
저 놈의 말 끊기 신공. 이 검사는 의사소통 과목은 안 배우셨나? 어째 자기 할 말만 딱딱하고 말아, 매번?! 가정교육이 잘못 됐나봐. 검사면 뭐해? 공부 잘하면 뭐해? 인간이 덜 됐는데!! 차마 말로 못한 욕을 속으로 한 바가지를 퍼부으며 명수는 최대한 공손한 얼굴을 하며 호원에게 대답했다. 네, 검사님.
"따로 분류해놓은 파일을 보니까 이 사람들은 조직 폭력배 일원이라고 기재되어 있네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동종 전과범 중 패턴이 비슷한 범인들을 묶고 보니 영등포구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흑호파'의 일원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흑호파요?" "네, 그 파일 내에 있는 11명 모두 '흑호파' 일원입니다."
명수는 그새 까슬까슬하게 돋아난 턱수염을 한 번 쓸었다. 손바닥이 따끔따끔하다. 이건 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스트레스성 수염이야. 난 늘 깔끔한 젠틀맨이었는데. 헛생각으로 빠지려던 명수가 호원의 지적에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연쇄 살인범의 패턴과도 비슷하구요?" "네. 뭐 이 범인들에게서는 치아 발치 과정이 없습니다만 잔혹하고 무자비한 살해 방법이나 살해 도구로 칼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점은 거의 100% 일치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업무가 끝났다는 생각에 명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뭔데요?
"김 형사님이 여기 잠입하는 겁니다." "…네?" "흑호파에 잠입하셔서 용의자로 의심되는 조직원을 감시하는 겁니다. 몽타주는 잘 봐 두셨죠?" "…예?" "그럼 오늘은 일단 집에 가셨다가 내일부터 폭력계 협조 받아서 흑호파 조직도에서 활동 내역까지 샅샅이 조사해봅시다. 퇴근하세요."
호원이 다다다 내뱉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혼을 뺏긴 모습으로 강력계 사무실을 터덜터덜 걸어 나오던 명수가 어느 순간 당했다는 걸 깨달은 듯 경찰청 복도에 서서 발악을 했다. 이호원 이 능구렁이 같은 검사 새끼!! 날 어느 새 조폭으로 만들었어! 명수가 발악을 하거나 말거나 호원은 조폭계에 수사 협조 요청을 하고 자료를 보내라며 닦달하고 있었다.
"보스 이름. 장동우. 32세. 뭐야, 디게 어리게 생겼는데? 끽해야 25로 보이는데 엄청 동안이구만. 것보다 눈이 무시무시하네. 지리겠소." 출근하자마자 제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보던 명수가 입을 함지박하게 벌리고 서있자 호원은 어서 그거나 마스터하라며 명수를 채근했다.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아 하나하나 열어 읽어 내리던 명수의 입에서 습관성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걸 언제 다 봐……. 우울한 마음에 명수가 책상에 팍 엎드렸다. 그 바람에 '장동우' 파일에서 사진들이 흩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몇 장의 사진을 줍던 명수가 사진 한 장에 행동을 멈췄다.
"이 사람은……."
동우의 옆에 스치듯 찍힌 얼굴. 흐리게 찍혀서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꽤나 미인형이다. 관련 자료를 확인해보니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경찰청 내에도 자료가 없는 듯 신원 미상이라고만 적혀 있는 그 얼굴은 장동우 옆에서 꽤나 자주 눈에 띄었다. 몇 달 전 죽었다는 전 보스 옆에도 있는 걸 보니 중심인물 인 것 같긴 한데, 얼굴이 그럴 얼굴은 또 아니다. 어디서 본 것도 같은……말하자면,
"예쁘게 생겼네."
저도 모르게 예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그 얼굴에 대고 예쁘다 어쩐다 그런 말을 하다니. 여자가 고픈가. 입맛을 쩝쩝 다신 명수가 익숙한 그 얼굴을 다시 자세히 관찰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아, 몰라 몰라."
생각이란 걸 하기가 귀찮아진 명수가 제 머리를 헤집으며 다시 책상에 엎드려 무성의하게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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