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얼레벌레 극단생활 01
"간지작살 소주 따기!"
"ㅋㅋㅋ 진정해, 진정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하... 하하하...!! 하하하!!!"
장장 3개월 간 매일같이 올렸던 연극 <러브홀릭>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자리이자, 여주의 극단 입성을 축하하기 위한 술자리. 여주는 억지로 올린 광대가 아파서 당장이라도 자취방으로 도망가고 싶은 상태다. 회식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본인들끼리 취한 듯한 모습에 해탈해버린 여주.
김여주 / 주량 소주 2병 / 한 병 째 병나발 부는 중 / 낯가림 심함
"그래서 여주는 다음 작품 어떤 거 해보고 싶어?"
그나마 가장 눈치가 빠른 호석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여주를 눈치 채고 말을 붙였다. 술에 취해 더욱 휘어진 호석의 눈꼬리를 보며 여주는 이야기가 통할까 걱정됐지만 이내 차분해지는 네 사람에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어... 이번에 '로맨스' 했었으니까, 다음에는 '추리'나 '공포' 쪽은 어떨까요?"
"그래, 이제 여름도 다가오니까 오싹한 거 좋네."
"여주 무서운 거 잘 봐? 아, 아니다. 잘 쓰냐고 물어봐야 하나?"
"여주? 장난 아니지. 새내기 때 공포 영화 시놉시스 썼던 거 양교수님께 극찬 받지 않았나?"
"아, 아니... 극찬까진 아니구요..."
거품만 가득 낀 맥주를 마시던 남준의 말에 뒷목을 긁적이는 여주.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흐릿해진 새내기 시절의 이야기에 꽤나 쑥쓰러운 듯하다. 그 쑥쓰러움을 견디지 못한 여주는 연거푸 술만 들이켜는데... 이미 앞에서 병나발을 불었던 여주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여주 칭찬 받아서 얼굴 빨개지는 거야?"
"아... 아니에요. 그냥 좀 취기 올라서..."
"볼 터지는 거 아냐? 엄청 빨간데?"
"원래 조금만 마셔도 빨개지는 편이란 말이에여..."
여주를 중심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 분위기에 희석되지 못한 사람은 딱 한 명 있었으니. 바로 김석진이었다. 석진은 여주가 회식 장소에 들어오자마자, 왠지 낯익은 모습에 한참을 들여다 봤었다.
"따쉬..."
그리고 마침내 기억을 떠올려 냈다. <러브 홀릭> 첫 공연 당시 짝사랑을 끝내는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 오열을 했던 관객. 그 관객 때문에 하마터면 대사를 까먹을 뻔 했었지. 연기 만큼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석진이 실수할 뻔했던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그 실수를 유발한 장본인이 이 술자리에 있다니. 그것도 이제는 같은 극단의 소속이 되었다니. 거기에 아무리 남준이 극단 대표라지만, 제 멋대로 영입한 것도 극단 단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남준아, 잠시 나랑 나가서 이야기 좀 하고 오자."
남준을 따로 불러냈다. 날카롭게 서 있는 석진의 표정을 눈치 챈 것은,
호석 뿐이었다.
"아니, 글쎄... 내가 오빠 이름을 태형이 아니라 태평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거 이쬬?"
"그래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새 술에 취해 친해진 두 사람)
-
"으어... 죽게따... 바람 좀 쐬고 올게여..."
태형과 정신 없이 잔을 부딪히던 여주는 2병을 딱 비우자마자,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잔뜩 풀어진 채 헤실헤실 웃으며 한 잔만 더 하자는 태형의 팔을 떼어내고 밖으로 나온 여주. 편의점에 들러 다른 사람들의 숙취 해소제와 제가 마실 초코우유를 샀다. 그리고는 흥얼 흥얼. 최근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며 술집 앞으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주의 이름. 호기심 천국 여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제 이름을 꺼낸 사람들이 있는 골목길로 다가갔다.
"남준아, 섭섭해하지 말고 들어줘."
"솔직히 나는 네가 아무리 극단 대표여도 새로운 단원을 영입할 때는 우리의 입장도 들어 봤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통보하는 게 아니라."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잖아. 그치?"
"더군다나 사실 나는 여주 대본 실력도 몰라서 불안해. 마냥 우리 극단을 쉽게 보고 들어온 걸까봐."
"...!"
의도치 않게 석진이 자신에게 가진 적대감을 알아버린 여주. 전형적인 외유내유였던 여주는 숙취해소제와 초코우유가 들어있던 편의점 봉투를 떨어트리고,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무언가 땅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여주가 있던 자리를 돌아보는 석진과 남준. 덩그러니 놓여진 편의점 봉투에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었음을 짐작했다.
"... 네 말대로 내 생각이 조금 짧았던 것 같다."
"앞으로는 더 유의할게."
"그래도 여주 너무 나쁘게만은 보지마. 진짜 실력 있는 애니까."
내가 장담할게. 좀 머리 식히고 와라. 땅에 떨어진 편의점 봉투를 주워든 남준은 그대로 술집으로 들어섰다. 골목길에 홀로 남은 석진. 사실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굴 문제는 아니었는데. 괜히 본인이 실수할 뻔했다는 압박감에 남준을 몰아세운 것 같아 뒤늦게 마음이 쓰였다. 어쩌면 제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를 여주도 신경이 쓰였다.
석진은 누구보다 이성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가시를 잔뜩 세운 채로 남을 몰아놓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타입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속이 답답해진 석진은 끊었던 담배가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
"하... 나 어제 집에 어떻게 기어 들어왔지..."
어제 들은 말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김여주
"..."
어제 뱉은 말 여주가 들었을까봐 신경 쓰이는 김석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