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純愛 (순수할 순, 사랑 애): 순결한 사랑
-殉愛(따라 죽을 순, 사랑 애): 사랑을 위하여 몸을 바침.
순애 01 (부제: 첫 인상)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애를 처음 본 그 때.
순애 01
우리는 같은 학교 학생이다. 나는 3학년 그 애는 2학년.
나는 그 아이를 편의점에서 처음 보았다. 아니, 사실 그 전에도 스쳐가며 보긴 했겠지만 처음으로 관심이 갔던 건 그 날이었다.
나는 그 날 박찬열과 우산을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 날 비가 온 것도 우리의 비참한 마지막을 미리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 뭐야. 다 젖었어."
"우산 어딨어요?"
우산을 찾으러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보이는 라면을 먹고 있는 뒷모습이 왜 그렇게 예뻐 보였을까.
"잠시만요."
"아, 죄송합니다."
"어, 보라야."
"어? 안녕하세요, 오빠."
예뻤다.
내가 본 그 애의 첫인상은, 예쁘고 착해 보이는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야, 쟤 누구야?"
"아, 김보라라고 우리 학교 2학년. 예쁘지."
"어, 예쁘네. 근데 왜 처음 보지."
"쟤 학교에서 좀 그래. 소문도 안 좋고, 애들이 좀 안 좋게 보나 봐. 그래서 얌전히 지내는 거지, 뭐."
"착해 보이는데."
"응, 착해. 그 소문도 알고 보면 다 헛소리야. 맞는 거 하나도 없고. 그냥 여자애들 그러잖아. 예쁘면 괴롭히고. 그런 거지. 예쁘니까 질투해서 내는 소문."
"아..."
"왜, 관심 있어? 소개 시켜 줘?"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불쌍해서."
불쌍해서?
그래, 그 땐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줄 알고 관심을 두지 말았어야했다.
이렇게 마음이 커지기 전에.
-
다음 날, 학교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날 알아보는 눈치였다.
아이들의 눈이 있어서인지 피하려고 하기에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보라 맞지. 나 어제 찬열이 옆에 있었는데. 기억 나?"
"아, 네. 안녕하세요. 기억 나요. 저 그럼..."
주위의 시선.
그걸 신경쓰는 거겠지.
우리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아이.
게다가 그 아이가 다른 학생들이 싫어하는 아이라면, 데미지가 꽤 있을 거다.
보고 싶었다.
아이들의 괴롭힘을, 그 아이가 어떻게 감당해 나가는지.
"야. 아까 백현 선배가 너한테 인사했다며?"
"어제 잠깐 봤거든. 그래서..."
"어제? 왜? 왜 너 같은 애가 선배를 만나는데? 아, 맞다. 너 얼굴 믿고 나대는 애였지. 내가 그걸 까먹고 있었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면 뭔데. 말해 봐, 어?"
쟤인가. 괴롭힘의 주도자가.
뺨을 건드리고, 위아래로 훑어보며 위협적인 말투로 쏘아댄다.
"그냥 어제 편의점에서 라면 먹고 있는데 만난 거야. 우산 사러 오셨더라."
"그렇게 잠깐 만난 거 가지고, 백현 선배가 인사를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선배 아는 후배 없기로 유명한데 어디서 약을 팔아 이 년이."
"어, 어. 그만."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뺨을 건드리던 손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본 순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얘 말 맞아. 어제 찬열이랑 편의점 갔다가 만났어. 찬열이랑 인사하길래, 나도 아는 척 한 번 해 본 건데. 뭐 잘못됐니?"
"어, 어... 선배님."
올라간 팔을 잡으며 건넨 말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근데 나 진짜 궁금한 게 생겼는데."
"네?"
"너 나 알아? 왜 난 너 처음 보는데 너는 나에 대해서 그렇게 막 말하지? 음... 나 좀 당황스러운데."
"아, 아 그건. 그냥 애들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애들 누구? 그냥 소문 아니야? 나 아는 후배 없지 않은데. 여기, 보라도 있고."
"아, 제가 착각했나봐요.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이런 일 없게 해. 아무 잘못 없는 애 괴롭히는 것도 그만하고."
"... 네."
"보라야. 너는 나 좀 볼까?"
안절부절 못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손장난만 치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그 애 앞에 있으면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미안. 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때리려고 하길래. 혹시 싫으면."
"아니에요. 감사해요, 선배님."
"아, 그럼 다행이다. 다음에 이런 일 생기면 나한테 말해. 쟤네가 괴롭히든 딴 애들이 괴롭히든. 알겠지?"
"네, 진짜 감사합니다. 저,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진짜 힘들었는데."
"이제 괜찮아. 나한테 다 말해. 오늘 이런 일 생겨서 앞으로 애들한테 욕 많이 먹을지도 몰라. 그냥 못 들은 척 하고 한 귀로 흘려. 직접적으로 건들지는 못 할 거야, 아마. 혹시 그래도 괴롭히는 애 있으면 꼭 말하고. 응?"
"네... 감사합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안정시키면서 말했다.
그랬더니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아이.
"아니야,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러지 마. 이제 수업 시작하겠다. 들어가."
"네. 안녕히가세요, 선배님.
"응. 잘 가."
-
"야, 너 오늘 보라 만났냐?"
"어, 어떻게 알았냐?"
"소문 쫙 났더라, 새끼야."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새끼가, 진짜. 어젠 관심 없는 척하더니."
"관심 있는 거 아닌데? 그냥 인사 한 번 했더니 애들이 괴롭히길애 도와준 거 뿐인데 웬 오바."
"네, 네. 그러시겠죠. 그나저나, 애들한테 또 욕 먹을까 봐 나도 애들 앞에서 아는 척 안 하는데. 넌 뭐냐, 대책 없게."
... 진짜?
"어? 그랬어? 나 아까 걔 괴롭히던 애한테 걔 너랑 인사했다고도 말했는데. 안 되는 거였냐?"
"어? 아, 이 미친 놈이. 어쩐지 애들이 보라랑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너랑 아는 사이라서 나도 아는지 물어 보는 줄 알았지. 어쩔 거냐."
"뭘 어째. 이렇게 된 김에 그냥 떳떳하게 인사하고 다녀."
"뒤질래?"
"아, 미안 미안. 아아!"
실실 웃으면서 어깨 한 번 툭툭 쳤다고, 갑자기 때리는 건 또 뭐람.
어쨌든 그 날 이후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인사를 했다.
박찬열도 내가 몇 번 억지로 시켰더니 이젠 지가 알아서 잘 한다.
급식실 줄 서다가 만나도, 안녕.
매점에서 만나도, 안녕.
축구하다가 봐도, 안녕.
쉬는 시간에 만나도, 안녕.
그 아이도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하도 인사를 많이 하니까 이제는 먼저 선배님 안녕하세요, 하고 오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이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다.
어쩌면 있어서는 안 되었던, 우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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