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내 사촌 오빠가 있었다. 03 (부제: 두 남자)
"2루수!"
아, 또 놓쳐.
"야, 몇 번째야. 똑바로 안 하냐."
"미안, 미안. 다음엔 진짜 잡을게, 꼭."
나는 우리 학교 야구부의 주전 투수.
며칠 동안 2, 3학년 선배들이 안 나오게 돼서 우리끼리만 훈련을 하고 있다.
"야, 야. 너무 그러지 마라."
"아, 뭘 그러지 마. 저 새끼 지금 정신 놓고 있잖아."
오세훈이다.
매일 이래.
뭐 조금만 화내면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야. 화 안 내는 게 좋은 게 아니야. 낼 땐 내야지. 그럼, 저거 시합 때도 저 따위로 하게 둬?"
"너 요즘 화 맨날 내잖아."
"뭐?"
"너 요즘 신경 많이 날카로워졌어. 알아?"
"허, 네가 뭔 상관인데."
"아, 그만해. 그만해. 얘 누나 걱정해서 그러는데 왜 그래."
"##태형. 하지 마라."
"웃기지 마. 얘가 내 걱정을 왜 해."
"왜 하냐니. 진짜 누나는."
"하지 말랬다."
"내가 뭐."
"아, 아니야. 훈련이나 하자. 다음은 뭐, 타격? 누나 공 좀 던져줘."
뭐야, 진짜.
내가 뭘 어쨌다고.
짜증나.
-
"야. 어깨 무리 가. 살살 던져."
"신경 꺼."
"야, 화났냐? 미안."
"안 났어."
"거짓말. 아까 나 말 좀 심했지. 미안해. 화 좀 풀어."
"아 알았어, 새끼야."
매일 투닥거려도 항상 이렇게 풀린다.
생각해보면 얘도 애가 참 착해.
오세훈은 포수다.
나랑 어릴 때부터 호흡을 맞춰 온, 꽤 잘 맞는 파트너다.
내 공은 얘가 제일 잘 잡는다.
나랑 오래 하기도 했고, 얘가 또 실력이 좋기도 하니까.
"오늘 여기까지 할까. 집에 가자."
"수고하셨습니다!"
이거는 그냥, 우리의 규칙 같은 거다.
같은 학년이라도 꼭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집에 가기.
"야, 떡볶이 먹고 가자."
"안 돼. 나 오늘 오빠가 빨리 오랬어."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잘 듣고 살았다고. 그냥 가자."
"오호라... 너 지금 네가 좋아하는 오빠가 빨리 들어오랬다고 튕기는 거냐? 그럴 만 하지. 응."
"김예림 입 다물지?"
"좋아해? 쟤 누구 좋아하는데."
쟨 왜 또 심각하게 저래.
"있어. 엄청나게 잘생긴 사람. 그치, 태형아."
"그럼, 그럼. 너무 잘생겨서 말이야. 와, 나는 그 형한테서 빛이 나는 줄 알았다니까."
"야, 너 그 사람 좋아해?"
"아, 뭐래. 오빠라니까? 사촌 오빠라고. 뭘 좋아해. 야, ㅇ태형. 안 가냐?"
"가, 가. 야, 세훈아. 우리 간다? 마음 잘 추스리고. 이 형이 응원하는 거 알지?"
"어..."
가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오세훈은 우리와 헤어진 후에도 계속 시무룩해 있었다.
왜 저러지.
아, 모르겠다.
-
백현 오빠가 우리를 초대했다.
오고 싶을 때 얘기하면 안 바쁠 때는 얼마든지 와도 된다고도 말했다.
백현 오빠랑은 말도 놨다.
가족인데 무슨 존댓말이냐고, 편하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형! 우리 왔어."
"어, 왔어? 앉아, 앉아. 밥 먹고 가."
"오예!"
저 자식은 뭐가 또 신나서.
아, 창피해. 정말.
"ㅇㅇ야. 너도 이리 와. 거기 서서 뭐해."
"아, 네."
아, 첸이 나를 챙겨주는 이 감격스러운 상황.
"야, ㅇ태형. 좀 앉아, 가만히."
"아, 왜. 형들이랑 빨리 친해져야 됨."
"야, 좀!"
"준면이 형! 그래서요."
아, 저 새끼 진짜.
"내버려 두지 그래. 남자애들 원래 저래."
"아... 네."
역시 달라.
내가 아는 박찬열이랑 너무 달라.
"자, 먹자."
"우와, 이거 다 누가 하셨어요?"
"경수가. 너네 온다고 신경 쓴 거야. 맛있겠지."
"응.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으아, 도경수가 만든 갈비찜이라니.
맛있어. ㅠㅠㅠㅠ
"근데 ㅇㅇ는 엄청 조용하다. 원래 이래?"
"네. 좀 그래요. 조용한 게 아니라 그냥 좀 무뚝뚝해요. 근데 형들 만나니까 들떠가지고 하루종일 실실대는데 누나 그러는 거 처음 봤다니까요, 진짜.
"우리가 그렇게 좋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근데 무뚝뚝한 건 누구랑 똑같네."
"그거 내 얘기냐?"
박찬열.
"아니, 난 누구라고 한 적 없는데."
"뭐래. 나잖아."
"찔리나 보다. 그치, 태형아."
"네? 하하..."
"밥이나 먹지."
"예, 예."
-
"원카드!"
엑소도 이런 거 하는 구나.
"ㅇㅇ가 눈 왜 그래?"
"아, 저 렌즈 꼈는데 좀 건조해서."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일어나서 어디론가 가는 한 사람.
"박찬열, 어디 가냐?"
어, 인공 눈물.
"아, 감사합니다."
"됐어. 빨리 넣어. 그렇게 건조하면 인공눈물을 좀 가지고 다니던가.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아... 가지고 다닐게요. 진짜 감사해요."
"어."
이건 도와주는 거야, 혼 내는 거야.
아, 몰라.
박찬열이 가지고 있던 인공눈물이라니.
평생 소장한다.
나에게 나도 몰랐던 사촌 오빠가 있었다. 04 (부제: 꿈)
너는 뭐가 되고 싶니.
너는 나중에 뭘 할 거니.
따위의 질문에 제대로 답 해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
"저는 꿈이 없습니다."
"네?"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학교의 지루한 진로 특강.
학교에서 초청한 강사가 우리 반에서 강연을 했다.
그리고 나서 유치하게 무슨 장래희망 발표 같은 걸 시키는데.
꿈이 없다고 대답하니 꽤나 당황한 듯한 강사.
고등학생 씩이나 됐는데 꿈이 없다는 게 놀라운 건가.
무능한 강사 같으니라고.
"그, 그럼 학생은 뭘 좋아하죠? 좋아하는 것과 관련지어서 미래의 직업을 정하는 게 좋아요."
"좋아하는 건... 음, 야구요."
"여학생인데, 야구요?"
지겹다, 지겨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발언이 굉장히 불쾌했다.
성차별도 아니고.
이제는 현실을 알아서 화내고 그럴 것도 없지만.
"네. 야구 말고는 없는데요."
"여학생이니까 야구 선수를 할 수는 없고. 조금 더 고민해 보도록 하죠. 네, 좋습니다. 다음 학생."
좋긴 대체 뭐가 좋다는 거야.
꿈을 찾아준다는 이딴 진로 특강은 몇 번이나 받아 봤지만,
정작 이런 걸 듣고 내 꿈을 정하게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전히 나는 꿈이 없고, 내겐 미래가 없는 것만 같다.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 뿐.
이미 태형이나 세훈이한테는 여러 구단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다.
미래가 정해져 있는 이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대체 나는, 뭘 해야 하는 걸까.
-
EXO가 대상을 받았다.
백현 오빠한테 축하 문자를 남겼다.
화면으로 보이는 눈물을 흘리는 멤버들과, 또 함께 우는 팬들.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쟁쟁한 선배들을 이기고 대상을 받았다.
이보다 기쁠 수 있을까.
그런데도 현장에 있는 팬들처럼 눈물이 흐르지 않는 건,
아마 오래 전에 메말라 버린 내 감정 탓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더라.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이후로 운 기억은 내 기억에도, 태형이 기억에도 없다.
그냥 운 적이 없는 거겠지.
그런데, 대상을 받는 엑소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이 알 수 없는 느낌은, 대체 뭘까.
-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다.
나도 좋아했고, 또 많이 불렀다.
점점 야구에 목숨 걸다시피 매달리면서 멀리하게 되었지만.
야구.
나는 마운드 위에 서 있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 느낌이 좋다.
나를 응원해주는 소리가 좋고, 내가 타자를 아웃시켰을 때 들리는 함성소리가 좋다.
사람들의 관심. 내 팬들. 날 향한 함성.
-
얼마 전에 엑소 숙소에 놀러 갔다가 멤버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엿들은 적이 있다.
"야, 그 날 우리 팬들 봤냐?"
"소리 진짜 컸어. 깜짝 놀랐다니까. ㅋㅋ"
"우리 상 받을 때 같이 우는 거 봤냐. 진짜 그거보고 울컥해가지고."
이 오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항상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또 이런 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또 상을 받는 모습을 볼 때에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리고 오늘 내린 결론.
그건,
부러움이었다.
무대에서 팬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본인의 앨범을 갖는 것이.
나는 부러웠다.
사람들의 관심. 내 팬들. 날 향한 함성. 엑소에 대한 부러움.
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알면서도 부정했다.
야구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기에.
하지만 이젠, 인정할 때도 됐지.
가수.
연예인.
아이돌.
그게 오늘부로 정해진, 내 꿈이다.
딱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 아이가 어떻게 그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작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썼습니다.
그래서 작게 삽입했어요.
댓글 달고 작은 포인트라도 돌려 받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