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민윤기가 처음 만난건 약 한 달 전이다. 뭣도 모르고 혈혈단신으로 뉴욕에 유학을 온 나는 값비싼 홈스테이 대신에 하숙집을 알아봤는데 뉴욕에 우리나라 특유의 정겨운 하숙집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찾게 된 곳이 민윤기의 집이다.
"안녕하세요."
"김여주씨 맞죠?"
밤에 도착해 잠기지 않은 녹슨 대문을 열었더니 민윤기가 주방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고 내게 인사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처음 듣는 한국어에 나는 반가워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민윤기는 무늬 없는 검정색 앞치마에 손을 슥슥 닦고 나에게 쇼파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에스코트까지 해줬다.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하숙집 한번 잘 찾아왔다고 속으로 내 자신을 칭찬했다.
"아마 뉴욕에서 저말고 또 하숙집하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특히 한국인들은 말이에요."
민윤기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자신이 어떻게 하숙집을 운영하게 됐는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등 자기소개를 해줬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도 처음에는 얼마 안되는 현금 가지고 미국에 온 유학생이었는데 이 곳에서 홈스테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인이 갑작스럽게 다른 주로 이사를 가게 되서 민윤기에게 저렴한 값에 집을 넘겼다. 나는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신발이 몇 켤레 없던 것을 의아하게 여겼어서 민윤기가 말을 마치자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말고는 아무도 없는거에요?"
"위치가 안좋아서 그런지, 적응을 못하는건지, 금방 나가더라고요."
"아..."
민윤기는 잠시 뒷목을 긁적이더니 웃으면서 답해줬다. 하긴, 좀 후미진 곳에 있고 건물 자체도 음침하고, 다른 곳에 머물 수 있다면 나가는게 좋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한국인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점에 반했던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내 발로 나갈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민윤기가 준비한 김치볶음밥을 같이 먹고 그의 안내를 받아 3층에 위치한 나의 방으로 향했다. 건물은 총 5층까지 있는데 나와 민윤기 단 둘밖에 없다는게 약간 무서웠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자위했다. 그럼, 굿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한 나는 발랄하게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민윤기가 내내 웃던 얼굴을 굳히고 진지하게 내게 당부했다.
"저는 5층에 있을거에요. 되도록이면, 아니.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5층에 올라오지는 마세요."
"네?"
"이 집에서 무얼 해도 상관 없으니까 이것만 지켜줘요."
"네. 그럴게요."
무엇 때문에 저렇게 심각하게 부탁하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알겠다고 했다. 민윤기는 나에게 전과 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가볍게 인사한 뒤에 5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에 울리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무겁게 들린건 기분탓이길 바라고 나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부모님께 미국에 잘 도착했다고 알리고 집주인도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전화로 수다를 한참동안 떨다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 있었다. 나는 침대 옆에 있는 등을 끄고 편안하게 누워 잠드려고 했다.
'쿵, 쿵, 끼이익-'
어디서 나는 소리야? 눈을 감고 베게로 귀를 막으려 했지만 윗층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에 나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시만, 윗층? 윗층이라면... 5층에 집주인 민윤기밖에 없는데? 무슨 일 있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으려 했는데 머릿속으로 그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절대로 자신이 머무는 5층에는 오지 말라는 말.
"아아악!"
올라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던 그때에 민윤기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올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머리로는 하면 안될 짓임을 알면서도 나는 서둘러 방을 떠나 계단을 올랐다. 4층에서 5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도달하자 그 소리는 더욱 더 선명해졌다. 서늘한 공기가 내 발목을 잡고 더 이상은 안된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소리의 근원지인 복도의 맨끝 방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허억, 헉, 하아..."
방문에서 일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는 정지했다. 문 틈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황색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고 있었고 방 안에서는 숨을 몰아쉬는 듯한 버거운 소리가 들렸다.
"흐으..."
숨소리는 잠잠해지고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울음소리가 들렸다. 뭐하는거지?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민윤기를 확인하고 싶어 방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칼을 던지는 듯한 날카롭고도 불쾌한 소리가 울렸고 나는 손을 거둘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느껴졌다. 5층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다. 민윤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를 위해 오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쿵, 쿵, 쿵.'
뒤돌아 서서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민윤기가 방문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로 된 방문은 더 이상 그 타격을 버티지 못할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도 소음이 한참동안 지속된 탓에 나는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민윤기와 마주보고 먹는 아침상에서 나는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민윤기는 단지 내가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서 그러는거라고 생각했는지 기운 내라고 초콜렛 몇 조각을 쥐어줬다.
"저는 가게 때문에 먼저 나갈게요."
민윤기는 후다닥 설거지를 마치고 급하게 겉옷을 챙기면서 내게 인사했다. 아직 아침을 먹고 있던 나는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고 그 큰 집에 홀로 남겨졌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민윤기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나는 순간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집을 비웠잖아."
약속을 하루도 안되서 어기는 꼴이 되버려도 괜찮다. 나는 같이 사는 사람이니 집주인의 수상한 행동이 의심된다면 확인할 권리가 있어.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창 밖으로 민윤기가 가게로 향하는 뒷모습을 끝까지 확인하고 서둘러 5층으로 발을 굴렸다.
막상 복도 끝에 달하니 손잡이를 돌릴 수가 없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 집에 온지 고작 몇 시간 됐다고 이러는거야. 하지만 나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이대로 넘기면 민윤기를 대할 때 나도 모르게 경계하게 될 것만 같아서.
'끼익-'
문이 열리고 보이는 방 안의 모습은 처참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어젯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고 증명해주는 칼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고 코드가 뽑힌 소형 냉장고에는 마개를 잃은 술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방의 입구에 있던 주황색 액체에서는 달달한 과일 냄새가 풍겼다.
"뭐야..."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은 방에 혼자 있는건 무서운 일이었다. 민윤기가 이 시간에 돌아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급히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들어왔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봉지들이 작은 탁자 위에 쌓여 있었다. 어떤 것에는 먼지가 쌓여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반면에 어떤 약통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집주인, 약 해?"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한국인이기에 나는 상상해본 적 없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병원을 얼마나 다닌건지 각각 다른 처방제가 담겨있는 약봉지들을 훑어보고 나는 질색했다. 내가 약품 이름은 다 모르지만, 저 비닐봉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 것 같은데. CSI 드라마에서 숱하게 봤던 대마초.
"맞네."
바싹 말린 풀잎들이 터질 것처럼 여러 봉지를 채우고 있었다. 그럼 나한테 약 하는거 들키지 않으려고 못 올라오게 했던건가? 평범하게만 느껴지던 방 안의 공기가 콧구멍을 통과해 폐 안을 채우는 섬뜩한 느낌에 나는 봉지를 내려놓고 방을 빠져 나왔다. 더 이상은 참견이겠지.
***
민윤기의 방에 출입하고나서도 그를 똑같이 대하기란 어려웠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나에게 친절했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었으며 밤에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악에 바친 것처럼 소리 질렀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걸맞게 소음을 견디면서 잠드는 방법을 터득했다.
며칠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이 집을 떠나야겠다고 결정했지만 이미 이번 달의 돈은 지불했기 때문에 한 달은 채우고 나가야 했다. 달력을 보니 이제 딱 일주일 남았다. 임시 방편이긴하지만 나가서 홈스테잉을 하게 되더라도 이 위험한 곳을 떠나야해. 나는 포크로 민윤기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돌돌 말면서 다짐했다.
작가의 말 |
어휴 짧아라 안쓰러운 분량 좀 보세요.. 독자님덜 신알신에 놀랐쥬....? 약 한 사발한 듯한 작가가 이런 글 올리니 놀랐쥬....?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에용 단편으로 할까 했다가 제 머리가 딸려서 일단 애매하게 마무맄ㅋㅋㅋ곧 다음 화 들고 올거에요! 맞춤법 검사기 안돌려서 엉망입니다...ㅠㅠㅠ 1분 차이 쌍둥이 글과는 다른 글이라서 암호닉 안적을게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