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純愛 (순수할 순, 사랑 애): 순결한 사랑
-殉愛(따라 죽을 순, 사랑 애): 사랑을 위하여 몸을 바침.
순애 03 (부제: 영화)
"다 왔어?"
"네-."
"안 온 사람 손 들어 봐."
... 병신.
"없어요. 빨리 가요, 선배."
동아리 시간에 갖는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들떠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 하고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아이가 있었다.
순애 03
오늘 영화는 두 팀으로 나뉘어서 보기로 했다.
로맨스와 스릴러.
나는 당연히 보라가 고르는 걸로.
당연히 로맨스를 고르겠지, 했는데.
"저 스릴러요."
에?
"어? 스릴러? 너 무서운 거 잘 봐?"
"네."
오, 의외네.
"변백, 너는."
"어, 어 나도 스릴러."
"그럼 나도 스릴러."
표를 받아 온 박찬열이 팝콘을 사자고 했다.
알았다며 고개를 대충 끄덕인 후 발을 떼다 말고,
멀뚱멀뚱 가만히 서 있는 아이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같이 가자.
아이의 대답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저 아이들과 남겨지는 게 불안했다.
"뭐 먹을래?"
아이에게 물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괜찮아. 먹어, 사 줄게."
"저 진짜 괜찮은데."
손사레를 치며 사양하는 아이에도 그냥 내 마음대로 팝콘 하나를 사서 아이에게 안겨 주었다.
돈을 낸 후라 아이도 어쩔 수 없었는지 팝콘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쫄래쫄래 우리를 따라 상영관에 들어갔다.
-
영화를 보던 중 힐끗힐끗 옆을 돌아봤는데, 정말 영화를 보는 내내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여리여리한 이미지였는데 이렇게 잘 볼 줄은.
-
옆에서 뭐가 자꾸 위아래로 움직이길래 옆을 돌아봤다.
그랬더니 아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아닌가.
다들 소리를 꺅꺅 지르며 영화를 보는데 태평하게 자고 있다니.
대체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호기심은 일단 접고 아이를 내 어깨에 기대게 했다.
-
"으음..."
아이가 깼다.
"어, 깼어?"
"서, 선!"
"쉿!"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아이에 놀라 급하게 검지를 펴 입에 댔다.
그랬더니,
"아, 죄송해요."
하면서 헤실댔다.
... 귀엽긴.
"많이 피곤했나 보더라."
"어... 네?"
"색색대면서 잘 자던데."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역시 귀엽다.
-
"야, 노래방 가자."
"미친 놈. 싫어."
딱딱한 새끼...
"갈 거지, 얘들아?"
"네!"
"간다잖아."
"아, 거길 또 왜 가는데."
"오랜만이잖아. 가자."
그냥 무작정 박찬열의 어깨에 팔을 감아 끌고 갔다.
... 근데 이 새끼 키는 또 왜 이렇게 커.
-
♪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너 힘들 때
정 힘들면 단 한 번만 기억하겠니
나 살다가
♪
"우, 우와아아아!!"
"뭐예요, 선배 노래 왜 이렇게 잘 해요?"
"내가 또 못 하는 게 없잖냐."
"쟤 전에 가수 하겠다고 설치고 다닌 적도 있었는데, 뭐."
아, 저 새끼 입을 꼬매 버리던지 해야지.
"보라야."
"네?"
"뭐 듣고 싶어? 듣고 싶은 거 불러 줄게."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아이의 귀에 속삭였다.
"네? 아, 저, 저는... 음, '잊었니' 요."
"어? 아, 알았어."
뭐지, 이 느낌...
♪
(정준영 - 잊었니)
잊었니 날 잊어버렸니
그 수많은 추억들은 잊어버렸니
가슴은 널 향해 팔 벌려
오늘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추억이 점점 빛 바래가면
너와 거닐던 길에 우두커니 서
지우고 또 지우려 해도
니 숨결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잊었니 날 잊어버렸니 아직 난 널 기다리잖아
사랑이 또 울고 있잖아 가슴엔 늘 눈물이 고여
지워도 자꾸 지우려해도
그대 얼굴이 자꾸 떠오르네요
♪
"와. 감사합니다, 선배."
"어, 그래."
신경이 쓰였다.
저 노래를 듣는 동안의 아이의 표정이.
아니, 내게 저 노래를 추천해줄 때부터.
그 때부터 아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 좀 뛰어나서, 표정 변화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왜인지 그런 쪽에서 남들보다 민감했으니까.
-
"어, ##보라 그 쪽 혼자 가?"
"아, 네."
"거기 골목 어두운데. 데려다 줄게."
"아, 괜찮..."
"가자, 박찬열."
이번에는 어깨가 아니라 팔을 잡고 끌었다.
못 이기는 척 나서긴 했지만, 이 녀석도 신경이 쓰이긴 했던 것 같으니까.
]
셋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아이의 집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백현 선배, 아까 노래 잘 들었어요."
"아니야, 뭘. 근데 보라야, 너 혹시."
무슨 일 있어?
"네?"
"아, 아니야. 들어가."
"네, 감사합니다."
-
"뭐야, 뭐 신경쓰이는 거 있지."
"없어, 그런 거."
"이거 봐라. 또 거짓말이네."
짜증나게, 박찬열 이 자식은 내가 뭐만 하면 귀신같이 잡아낸다.
함께 한 세월은 무시 못 한다는 건가.
"아니, 아까 ##보라 표정이 좀 신경쓰여서."
"##보라?"
"어. 아까 잊었니 부를 때."
"에이, 뭐 그런 걸 신경 써. 발라드잖아. 감정 이입돼서 그런 거 아니야? 네가 좀 잘 부르냐. 너 감정 존나 잘 잡잖아."
"그런가..."
그래,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그 아이에게 어두운 면 따위, 없었으면 하니까.
그래, 없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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